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와 '각 세우기'에 골몰하던 야당이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의 외국 잡지 기고에 대해 일제히 비판을 내놨다. 문 특보가 지난달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 가운데 "평화협정 채택 뒤에는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쓴 대목이 문제가 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너무 들떠 계신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이런 와중에 문정인 특보가 '한반도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판문점 선언'이 결국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핵 우산 철폐를 의미했던 것인지 문재인 대통령께서 국민 앞에 분명히 대답해 달라"고 공세를 폈다. 김 원내대표는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며 "아직 들떠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당은 이날 오전 장제원 수석대변인 명의로 낸 공식 논평에서도 "주한미군 철수가 청와대의 입장이 아니라면 문정인 특보를 즉각 파면하라"며 "그간 문 특보가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청와대는 '개인적 의견'이라며 치고 빠졌지만, 평창동계올림픽 전 한미연합훈련 축소, 사드(THAAD) 기지 일반환경영향평가 전환 등 그 '개인적 의견'은 대부분 적중했다. 청와대와 교감 없는 개인적 의견이 정부 정책으로 정확하게 적중하고 있으니, 일심동체가 아니라면 돗자리를 깔아도 될 수준"이라고 비꼬았다.
장 수석대변인은 "그렇기 때문에 문 특보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청와대와의 긴밀한 교감 속에 선제적 여론 조성 차원에서 진행된 역할 분담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라며 "청와대는 평화협정 체결의 조건이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중도·개혁보수를 자처하는 바른미래당 역시 비슷한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도대체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의 특보인지 김정은 위원장의 특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은 문 특보 주장이 본인 생각과 다르고 대한민국의 입장과 다르다고 한다면 즉각 해임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평화협정이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평화협정이 될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역시 공식 논평을 통해 문 특보 해임을 촉구했다.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도 별도 입장문을 내어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문 특보가 대통령의 뜻을 미리 밝힌 것이 아닌가 더 심각하게 걱정한다"며 "현 단계에서 어떤 형태의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북한 핵무기가 되돌릴 수 없도록 완전히 폐기됐다는 사실이 완벽하게 검증되는 순간에서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안 후보는 "주한미군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축이면서, 북한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력이고, 대한민국 경제의 기반인 국제적 신뢰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라며 "청와대와 일부 정부 인사들 중에서도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를 북한을 회유하는 카드로 쓸 수 있다고 보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는 국가의 안보를 걸고 외양적 평화를 얻으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등 범(汎)보수진영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낳은 4.27 남북정상회담과 이에 이어질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체제 이슈가 지방선거 의제가 되지는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전날 "남북관계는 2000년 이후 대한민국 선거에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4.27 회담 직후부터 "위장 평화쇼", "감성팔이" 등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오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남경필·유정복·김태호·박성효 등 한국당 광역단체장 후보들과 김태흠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른 내는 등 당내에서도 '너무 나갔다'거나 '야당이라도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 한다'는 지적이 속출하고 있다. 문 특보의 <포린 어페어스> 기고 논란은 이런 가운데 촉발됐다.
이날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이고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으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 특보에서 전화를 걸어 "대통령 입장과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文대통령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문제…평화협정과 상관없다") 야당의 공세가 격화하는 가운데, 논란을 일단락짓기 위한 조치로 풀이됐다.
다만 문 특보의 <포린 어페어스> 기고를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단순화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문 특보가 지난달 30일 잡지에 낸 기고는 A4용지 4장을 조금 넘는 분량(원고지 38매, 약 1780단어)이며, 전체 42개 문단 가운데 주한미군 관련 내용은 끝에서 2번째 문단의 절반인 4개 문장(60단어) 정도다. 기고문은 앞에서부터 2/3가량을 할애해 판문점 선언에 대한 해설 등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성과를 미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있고, 마지막 1/3은 향후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실제로 이행하는 데 있어 예상되는 난관 및 문제점들에 대해 짚었다.
문 특보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평화체제 구축에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time-consuming)는 점 △이른바 'CVID'에 대한 남북미 3자 간의 접근방식 차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여부 △미국과 한국의 국내정치적 제약 요인 등을 들었다. 주한미군 관련 내용은 이 가운데 마지막인 '한국의 국내정치적 제약 요인'에 대한 것으로, 문 특보는 "한국도 국내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만약 평화협정이 조인되면 주한미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것(협정)이 채택된 뒤에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보수세력은 주한미군의 철수·감축을 강하게 반대할 것이고, 이는 문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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