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13 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로 누가 나설 것인가 설왕설래가 오가던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과 시민사회는 시장후보로 김영춘 해수부 장관을 선호한다는 측근의 보고를 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 측근은 오거돈이 후보가 될 경우 지지세력이 제대로 결집할지, 그리고 그 때문에 당선이 되더라도 시정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대통령의 말.
"아니 그만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긴 그만한 사람이 없긴 하다. 그는 열 명의 자식 중 넷째다. 그런데 아들만 열 명인 집안 봤는가. 그는 고위 공직자 출신일 뿐 아니라 부산 대표 기업 집안이다. 그런 사람이 보수 정당의 안마당인 부산에서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연이어 도전해 무소속 포함 세 번이나 떨어진 경우 봤는가. 그는 참여정부 시절 장관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부산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서울에서 고위 공직자를 지내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사는 사람 봤는가. 문재인과 오거돈 딱 둘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은 부산 선대본부 출범식 연설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문재인을 바로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은 부산 선대본부 출범식 연설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오거돈을 바로 뒤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이 오거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거돈이 문재인을 선택한 것입니다."
노무현과의 의리, 그리고 무모한 도전
영남지역의 정통 관료 출신이면서도 부산의 대표적 금수저 집안 사람인 그가 열린우리당 후보로 계속 선거에 나가 결국 떨어지기를 반복한 데 대해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한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2003년 10월 부산시 행정부시장 시절 안상영 시장이 뇌물 수수로 구속되자 그는 시장 권한대행이 됐다. 2004년 6월 재보궐선거에서 그가 만약 한나라당에 입당했다면 무난히 부산시장이 되었을 것이다. 후배인 허남식 부시장에게 패하는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산 발전을 위해서는 여당 시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2005년 열릴 계획으로 준비 중이던 APEC 정상회담은 제주도 개최가 내부적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시장대행이던 그는 APEC 정상회담을 부산에 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어 관철시키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시장선거에 나섰다. 결과는 득표율 37.7%의 완패. 경남고 출신에 부산의 주류 중 주류인 그였지만 지역정치의 벽은 높았다. 비 부산출신에게 진 것이다. 사실상 그가 유치했던 APEC 정상회담도 결국 허남식 시장 아래 치러지게 된다.
해수부 장관이던 2006년 다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은 그에게 출마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선거는 출마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아니면 여당 후보로 나설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대통령과의 의리를 따르기로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인기가 없기도 했지만 박근혜 당시 대표의 "대전은요?" 때문에 결정타를 맞았던 바로 그 선거다. 결과는 4분의1 득표에도 못 미치는 24.1%. 또다시 허남식에게 패하기도 했지만 득표율이 너무 낮다는 민망함에 스스로도 아쉬움을 토로한 선거였다.
고독한 친노
민주당 부산시당이나 진보진영에선 그에 대한 비토 정서가 상당하다. 우선 그에겐 '금수저 출신 정통 관료' 이미지로 인한 거리감이 있다. 그런데 2014년 무소속으로 세 번째 출마했을 때 김영춘 민주당 후보의 양보로 야권 단일후보가 됐음에도 민주당의 구청장 후보나 시의원, 구의원 후보들과의 공동 유세를 거부한 게 결정적이다. 과거 두 번의 낙선에서 "사람은 좋은데 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얻게 된 원성은 강했고 오래갔다.
그 거부감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이어졌다. 지난해 연말부터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줄곧 압도적 1위를 달렸음에도 오거돈에 대한 민주당이나 시민사회의 반응은 탐탁치 않았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내부적으로 어떻게든 김영춘 장관을 출마시키는 쪽으로 계획을 세웠고 실제 김 장관의 출마를 촉구하는 선언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복수의 관계자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연초까지도 오거돈은 만약 김영춘이 출마할 경우 4년 전 김영춘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자신에게 양보했듯, 이번엔 자신이 양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꺼이 '페이스메이커' 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제1당의 위치를 빼앗길 뿐 아니라 국회의장까지 넘겨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민주당의 만류로 인해 결국 김영춘 장관의 지방선거 차출은 무산된다. (이개호 의원도 같은 경우이다. 반대로 김경수와 박남춘의 경우는 그들이 아니면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에 예외적으로 허용한 경우이다.)
결국 오거돈이 다시 나가게 됐다. 사실 그가 김영춘에게 양보할 생각까지 했던 것은 "정치를 다시 해야 하나"라는 스스로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시장이 돼서 부산을 위해 일하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오랜 기간 '회색인'으로 지내야 했던 지난 시간의 버거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과의 인연, 그리고 그와의 의리 때문에 열린우리당에 발을 디디긴 했지만 사실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는 혼자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친구들은 모두 강 건너 보수진영에 있었다. 보수에게는 "괜히 노무현과 어울렸다가 후배한테 두 번이나 지고 망신만 당했다"는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회색인이었고 경계인이었다. 외로운 친노였던 것이다.
지금도 오거돈에 대한 진보진영의 거부감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가 기회주의자라는 말도 있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출마설이 돌아서인가.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그쪽에 입당이나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다. 또 수많은 노회한 정치인들이 그러했듯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위한 선거운동에 나서지도 않았다. 너무나 그럴 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바보 같은 도전'은 부산의 정권 교체로 이어질 것인가
1991년 이후 부산은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의 일당독재였다. 그 당이라면 심지어 죽은 사람마저 뽑아준 게 부산이다. 그 결과는? 부산은 거의 모든 경제 및 복지 지표에서 최악이다. 실업률 뿐 아니라 청년실업률까지 광역단체 최악이니 당연히 역외 이주 비율이 최고이고 청년들이 떠나니 노인인구 비중이 최고인데 자살률마저 전국 최고다. 이런 동네에서 아이를 낳을 이유가 있겠나. 출산률마저 전국 최저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의 정권교체를 희망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전문가들은 결국 51대49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 오거돈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20% 이상 앞선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는 과다 대표되는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자는 응답을 꺼리는 탓에 과소 대표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지방선거는 젊은층의 투표율이 특히 낮다.
이번마저 실패하면 앞으로 상당 기간 부산에서의 정권 교체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하다. 2004년 총선 때 20% 앞서기도 했지만 결국 다 뒤집어졌다. 2016년이 돼서야 5석 건졌다.
오거돈은 이제 그 고독한 싸움을 마무리할 것인가. 이번엔 '바보 같은 도전'에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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