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쿠바와 비슷한 시스템
쿠바의 의료가 주목받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쿠바와 의료시스템이 유사하다. 리·동에 진료소가 있다. 우리의 보건소 같은 곳이다. 여기에 서너 명의 의사가 있다. 이들은 찾아오는 환자도 보지만, 자신이 맡고 있는 가정을 방문해 의료상담을 하고 질병을 체크하기도 한다. 이른바 의사담당구역제이다. 시·군·구역에는 시·군·구역 인민병원이 있다. 그 위에는 도·직할시 인민병원과 대학병원이 있다. 북한 의료시스템의 핵심은 '의사담당구역제'에 있다. 각 가정을 담당하는 의사가 최일선에서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세밀하게 파악해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체계이다. 쿠바의 '패밀리 닥터' 제도도 이와 같은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코로나19를 확실히 통제하고 있다면, 의사담당구역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의료체계는 비슷하지만, 북한의 의료수준과 장비는 쿠바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쿠바는 부족한 재원 가운데서도 우선적으로 의료에 투자를 했고, 그것이 관광과 연계돼 의료관광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것이 다시 선순환을 일으켜 높은 의료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은 초기투자가 약했고,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곤란한 상황은 개선되지 못했다.미국의 경제제재, 코로나 치료제 공급에 걸림돌
이와 함께 쿠바는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에도 투자를 해왔다. 쿠바는 1981년 뎅기열이 발생해 골머리를 앓았는데, 그 와중에 인터페론(인터페론 알파-2B 재조합체. IFNrec)이라는 백신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 약이 코로나 19 확산을 막아줄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실제로 15개국이 쿠바에 이 약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도 이 약을 코로나 19 치료제 30종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그런데 이 약이 치료제 실제 사용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경제 제재 때문이다. 미국은 1961년 단교 이래 지속적으로 쿠바에 경제 제재를 가해왔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의 관계정상화로 제재가 일부 해제되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제재를 강화했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이 인터페론을 써보고 싶어도 쉽게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은 쿠바의 의사파견을 '노동력 착취', '돈벌이'로 비판한다. 그토록 미워하는 쿠바가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 있으니 배가 아플 만도 하다. 물론 미국의 주장대로 이런 의사 파견은 노동력 착취일 수도 있다. 파견되는 쿠바 의사들이 받는 월급은 50달러이다. 물론 파견받는 나라에서 주는 돈은 이것보다 많다. 그 중 50달러만 의사에게 주고 나머지는 쿠바 정부가 가져간다. 그 돈은 무료교육, 무료의료에 쓰인다. 쿠바는 당당하게 그렇게 얘기한다. 50달러 받는 의사도 스스로 나서고, 번 돈은 공공의료에 쓰는 시스템, 선순환일까? 착취일까?제재로 북한도 방역 난관
제재는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보건의료 분야의 의약품·장비 부족도 훨씬 심해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 5월 내놓은 '북한 보건의료 분야의 변화와 전망'이라는 보고서가 잘 보여준다. 병원에 의약품이 모자라 환자들이 치료받기 어렵고, 돈 있는 사람들만 장마당에 유통되는 약을 사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무상의료제, 지역담당의사제가 실시되어 보편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시설이 낙후돼 양질의 서비스는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제재로 제약원료와 의약품, 장비 수입에 제한이 심해져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북한은 의료인력과 의료기관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다. 2014년 통계가 가장 최근 것인데, 인구 천 명당 의사 수가 3.5명으로 당시 한국의 2.2명보다 많았다. 그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인력과 병원은 어느 정도 되는데, 약이 없고 장비가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가 이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말하면서, 노동당 정치국 회의까지 열어 코로나19 방역대책을 집중 논의하고, <조선중앙TV>를 통해 "감염 위험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 같은 환경은 우리의 투쟁과 전진에도 일정한 장애를 조성하는 조건으로 될 수 있습니다"라고 위기의식을 직접 표출하는 것을 보면, 북한도 매우 어려운 상황임은 틀림없어 보인다.정부 지나치게 소극적
이런 와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정부의 태도이다. 북한이 민간단체를 통해 마스크, 진단키트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 여러 민간단체를 통해서였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필자가 잘 아는 통일 운동단체 대표도 지원요청을 받았다. 어렵지만 돈을 마련해 진단키트를 지원하려 했다. 북측과 접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중국 출장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언론에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 북한의 요청이었는데, 정부 고위 관계자가 언론에 얘기했고, 이를 알게 된 북한이 '안 받겠다'하면서 무산됐다. 통일운동단체 대표는 '정부가 총선과 야당의 공세를 두려워해 무산시킨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작은 계기라도 잡고 남북관계를 더 크게 풀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깝다. 그나마 손 소독제 지원 한 건이 반출 승인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게 진보정부의 태도 맞나 하는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총선이지만 북한에 인도적 지원 정도를 소신 있게 못하는 정부가 답답하기도 하다. 당당하게 할 만한 조치는 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꿋꿋한 지도자의 신념(leadership beliefs)이 그립기도 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20개국 화상 특별정상회의에서 "전 세계적인 유행병에 대응할 국가들의 능력을 약화할 수 있는 제재의 면제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미국을 향해 '쿠바의 의약품 수출 풀어라', '북한에 대한 제재도 대폭 완화해라'라고 말하면 더 시원하겠다. 미국은 이런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더 열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정부도 지나치게 좌고우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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