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선 대선 지지율에서 10%포인트 정도의 차이로 민주당 후보 바이든이 앞선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40% 정도를 유지해 견고한 면을 갖고 있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민주당 지지층이 결속하면서 바이든의 지지율이 50%를 상회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250만 명이 넘고, 사망자도 12만 명이 넘어 세계 최고를 달리는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대선 경쟁에서 앞서고 있다면 더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도 "이전보다 더 좋은 상황"이라 하고, "두드러진 진전을 이뤘다"고 말하는 등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아 재난 리더십을 상실하는 상황을 자초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낮아졌고, 최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스스로도 재선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 대선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가 아닐 수 없다. 북핵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만큼, 또 대통령이 정책을 좌우하는 면이 큰 만큼 미국의 대통령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대비하는 작업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의식 있는 사람들은 괴롭겠지만 북핵 문제는 해결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전반적 여론이 북한에 대해서는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11월 대선까지는 미국이 제재를 일부라도 해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제재 일부 해제 없이 북핵협상이 타결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선이후는 상황이 다르다. 트럼프는 재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워싱턴의 외교안보 기득권 세력과 다른 접근으로 문제를 풀어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 욕구도 크다. 노벨평화상을 받아 그동안의 갖은 잘못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자 하는 욕심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 재선된 트럼프가 북핵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더 주목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지금까지 그와 그의 참모들이 밝혀온 대북정책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트럼프식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 보텀업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맹국 한국과 협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대북 제재는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은 트럼프와 유사하지만 상향식(보텀업, bottom-up) 한국과의 협의는 많이 다른 측면이다. 내년 초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는 상황으로 미리 가보자.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웬디 셔먼,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했던 커트 캠벨 등이 국무장관이나 부장관, 차관 등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한반도 상황을 잘 아는 인물들이다. 보텀업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 했으니 이들에게 북핵협상이 맡겨질 것이다. 동맹국 한국과 협의해서 북핵문제를 풀어가겠다고 했으니 이들은 우선 문재인 정부와 협의할 것이다. 이들이 우선 묻는 것은 두 가지가 될 것이다.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나? 그리고 대화를 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나? 첫 질문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답은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가능성 있다"가 될 것이다. 그 다음 이들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라고 물을 것이다. 그때 분명한 자료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 중 핵심은 대화에 따른 북한의 변화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북한과 대화해서 이산가족 상봉하고 있고, 비무장지대 평화도 이루었으며, 서해상의 충돌 가능성도 줄였다. 필요하면 언제든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신뢰가 조성된 만큼 긴장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내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조성돼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행정부는 빅딜보다는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문제를 진전시키는 스타일이다. 그들의 외교이념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도 관련국들과 협의를 충분히 하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한국이 쌓아놓은 공든탑이 있다면 그 기반 위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탑을 튼튼히 쌓아 놓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남북관계가 계속 경색으로 이어져 내년을 맞는 상황 말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다시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아직 변화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하면서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미국이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대북 제재다. 제재가 계속되면 북한은 도발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다시 제재는 강화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8년은 기대는 많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다시 재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미국에 보고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목매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북핵문제의 그림자가 한반도에 길게 드리워져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미국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미국이 나서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먼저 만나고 얘기하고 일을 진전시켜야 한다. 북한 얘기를 들어줄 것은 들어주고, 북한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나 유엔에 할 얘기는 또 해야 한다. 그게 남북관계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길이고, 남북-한미-북미 관계를 선순환으로 돌릴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안문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KBS 통일부·정치부·국제부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습니다. 2012년부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북한의 대외관계', '동북아 국제관계'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외교 방안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국내외의 저명한 저널에 연구결과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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