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두 사람의 신경전을 보면서, 2020년 1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한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생각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리스 대사는 '개별관광'을 포함한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어떠한 계획을 실행하거나 이행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재 하에 관광은 허용된다. 그러나 북한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반입하는 짐에 포함된 물건 일부가 제재에 위반 된다"고 덧붙였다. 해리스 대사의 추가 언급은, 2019년 초 독감약 타미플루를 북에 실어다 줄 차량의 군사분계선 통과 문제를 두고 유엔사령부(사실상 미국 정부 입장)가 지원을 불허했던 일도 생각나게 했다. 2018년 11월 20일 한미 워킹그룹 출범 이후, 인도적 차원의 남북 간 교류 협력마저 부차적인 이유를 핑계 대는 미국의 '트집' 때문에 실행되지 못했다. 2018년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평화 행보는 한미 워킹그룹 때문에 2019년엔 한 발짝도 못 나갔다. 마침내 1년 8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꽉 막힌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문 대통령은 7월 안보라인을 교체했다. 통일부 장관에 정치인 출신 이인영 의원, 지북파인 서훈 국정원장을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했다. 외교부 제1차관에 청와대 내 자주파로 불리는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을 임명했다. 특히 최종건 차관의 임명은 한미관계에서 앞으로 할 말은 하면서 한미 워킹그룹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도로 해석된다. 해리스 대사와의 첫 만남에서 이인영 장관은 한미 간 협의기구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제약한다면 워킹그룹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워킹그룹 내에서 논의할 것과는 별개로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해리스 대사는 '패스트 트랙'이란 워킹그룹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남북관계가 '비핵화'보다 앞서가지 말 것을 재차 주문했다. 해리스 대사의 태도는 지난 1월과 달라진 것 없이 요지부동이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원명 : 한일협상조약)'은 '보호'라는 미명하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아 간 조약이다. 2018년 11월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은 일종의 TF(Task Force : 군사와 행정 분야에서 임무를 할당받아 해결하기 위해 편성되는 임시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반 동안 남북관계를 철저히 통제해 왔다.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의 대북 행보를 한 번에 통제하려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효율성이 크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선 남북관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족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미 워킹그룹이 효율성이 크다고 말하는 우리 외교당국자들도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선 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할 의지도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 대북정책은 현재 미국의 대내외정책 우선순위에서 한참 멀어져 있다. 그리고 만약 미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대북정책이 가닥을 잡으려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북핵 문제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면 그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손 놓고 미국이 준비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이런 점에서 한미 워킹그룹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이인영 장관의 방침대로 워킹그룹 범위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도 한미동맹이라는 명분 하에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이 눈앞의 남북관계 발목만 잡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외교의 미래까지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18년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그리고 9.19 남북군사분야합의서의 내용들을 보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 행보를 통제하지 못하면 동북아에서의 미국 헤게모니가 손상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에 따라 미국은 '패스트 트랙'이니 '효율성'이니 하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해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었다. 이는 한국에 내리 먹인 협의기구였다. 2년여 동안 한미 워킹그룹 역할을 지켜보면서, 이 기구는 한반도에서의 우리 주도권 행사를 막는 족쇄일 뿐 아니라, 이대로 간다면 향후 우리 외교의 미래 지평까지 좁혀 버리게 생겼다. 115년 전 대한제국 고관들도 '보호'라는 탈을 쓴 을사늑약이 5년 후 한일합병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우리 민족은 36년 동안 국가를 잃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새 외교안보팀은 차기 정부의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나아가 우리나라 외교의 미래를 위해 한미 워킹그룹을 반드시 재조정해야 한다. 나라마다 국가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정치 속에서, 그리고 동맹이라 할지라도,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우리의 국가이익이 희생되는 우(遇)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국가이익을 최우선에 놓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천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어렵게 만든 그 많은 남북 간 합의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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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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