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피와 똥이 물과 땅에 넘친다
오래 서러운 땅이라 오래 아름다웠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투기와 개발의 광풍을 피했고, 돈 될 만한 것도 없이 바람과 돌 뿐인 망명자의 땅이라 해녀와 물새의 터전으로 오래 살아남았다. 아무나 비행기를 못타던 시절에는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어 부유층에게만 허락된 휴가지였고, 그 부유층에게 한국이면서도 한국이 아닌 이국적 경관과,외국여행 같은 비행여행의 과시적 특권을 누리게 해 준 덕분으로, 특별히 사랑받은 섬이었다. 여행자유화가 시작되고 항공여행이 보편화되자 소수의 특권이었던 항공여행이 중산층의 소비양식으로 확대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던 제주도는 수도권 전철 시간대로 도착하는 원격 수도권이자 서울의 일일 생활권이 되었다. 글로벌 경제와 함께 관광산업은 점점 팽창했고, 저가항공기가 나라 안팎에서 점점 더 많은 관광객을 섬으로 실어왔다. 제주의 현재 인구가 67만 명 정도 된다. 67만 명이 사는 섬에 한 해 오는 관광객은 15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제주는 67만 명을 먹여 살리기에도 땅과 물이 부족한 ‘섬’이다. 1500만 명의 방문객에는 먹고 쓰는 물자가 그만큼 따라 온다. 모든 것이 제주에서 생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떠나도 함께 온 것이 따라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 흔적은 쓰레기로 고스란히 제주에 남는다. 제주는 그 쓰레기를 묻을 땅도 없다. 지난 해에는 제주의 압축쓰레기가 필리핀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되돌아오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1500만 명이 입도하는 제주에서 나온 쓰레기를 다 제주도민이 배출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수와 분뇨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다. 제주에선 제주 주민보다 더 많은 90만 마리에 가까운 돼지들이 매년 도축된다. 제주의 상징이고 옛날엔 제주 사람들이 가족이고 친족이라 여겼던 흑돼지 19만 마리도 포함된다. 제주에서 하루에 도축되는 동물은 무려 2600마리고, 돼지는 시간당 100마리가 죽는다. 해안은 물론이고 중산간 지대까지 개발되어 골프장과 리조트가 빼곡하게 들어찼다. 피와 똥이 이미 물과 땅을 넘치고 있다. 포화 한계를 넘어선 제주는 점점 죽음의 섬이 되어간다.이상한 셈법
그런데 그 섬에 공항을 하나 더 짓겠다고 한다. 공항이 둘이 되면 관광객이 두 배로 올 수 있단다. 지금 공항만 해도 여객 수용인원이 2500만 명이다. 그런데 공항이 하나 더 생기면 곱절로 많은 사람들이 더 제주에 올 수 있단다. 제주에 대한 ‘수요’가 4500만 명인데, 공항이 하나뿐이라 그 중 절반이 제주에 못 온단다. 이 희한한 셈법은 수요-공급의 논리에 따라 관광 수요에 대한 상품 공급량을 계산한다. 주민들이 살고 있고, 수많은 생명들의 거주지이며,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 상품처럼 산출하는 것이다. 시장에 제주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 제주를 더 내놓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4500만 명이라는 저 숫자도 현실적 근거가 없거니와, 아무리 올 사람이 그만큼 있다 한들, 그에 맞춰 섬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과연 제주 2공항이 제주 경제를 살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제주는 이미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자동차로 4시간이면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작은 섬에 해마다 대한민국 인구만큼 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 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더 많은 비행기가 제주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토해내고,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고기와 회가 더 많이 팔리고,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가 뚫리면, 그게 제주 살리는 길이 될까? 쓰레기, 분뇨, 오수가 늘어나는 만큼 제주의 물과 식량, 토지는 부족해진다. 서울-제주 구간만 해도 지금도 매일 5분 10분 단위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개발론자들은 그래서 위험하니 공항을 더 지어야 한단다. 분초단위로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으니까. 하늘길은 비행기로 교통정체가 일어날 지경이고, 운항도 관제도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서 더 많은 관광객을 싣고 더 많은 비행기가 제주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도록 공항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하늘만 포화가 아니라 섬도 바다도 포화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제주도는 이미 생태한계에 도달해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항 추가가 아니라 입도 제한이다.제주도가 지구라면
제주도를 지구라고 생각해보자. 요즘 우리는 생태적 한계에 도달한 지구의 위기를 날마다 실감한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같은 전지구적 위기는 그동안 환경을 파괴해온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적 응답이다. 이런 상태의 지구에, 만약 외계로부터 지구 인구보다 수십 배가 많은 방문자들이 와서,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고 떠나버린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지구도 하나뿐이고, 제주도 하나뿐이다. 그곳이 당신이 사는 동네라고 생각해보자. 아무리 땅값 집값이 오른들, 당신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땅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서 살면서, 그 집갑 땅값 오르는 것을 마냥 기뻐하며 살 수 있겠는가. 밀물처럼 밀려온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돈으로 세워진 성은 돈이 끊기는 순간 폐허가 되는 법이다. 관광 개발은 카지노 자본주의의 약탈경제를 대표한다. 지대수익이 제주도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 도박판에서 돈을 버는 건, 소수의 토지소유자, 자산가, 투자자들뿐이다. 그들은 제주가 투자 매력을 잃는 즉시 투자금을 회수해서 철수할 것이다. 오염된 자연과 흉물로 남은 온갖 폐기자산을 끌어안고 살아가야할 사람들은 떠날 수 없는 섬의 주민들이다.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에는 화석연료 산업이 사양산업이 될 거라고 한다. 거대 금융투자회사들도 화석연료 산업에서 투자 철회를 검토하고 있다. 물론 생태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자본의 수익성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것이지만, 금융자본의 계산서에도 이 산업에 적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관광산업은 대표적인 ‘화석연료 산업’ 분야다. 관광은 자동차, 항공, 선박 등 석유 이동성에 기초한다. 저렴한 석유와 저렴한 노동이 저렴한 관광을 지탱해왔다. 산업자본주의 시기 1세계 노동자들의 소득 향상과 금융자본주의 시기의 부채경제가 전 세계적인 관광 수요를 창출해왔다. 관광은 자본주의 경제의 부흥기에 탄생해서 성장기에 탄력을 받는 소비산업이며, 불황기에 가장 타격을 입는 산업이다. 지금은 어떤가? 어떤 보수적인 경제학자도 앞으로의 경제를 낙관하는 사람은 없다. 세계 경제는 이미 장기불황기에 접어들었다. ‘지속가능한 경제’라는 말은 좌파의 언어나 생태주의자의 언어가 아니라, 팽창과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직시한 자본가 그룹에서 발명된 용어다. 지금은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할 당시와 또 다른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다. 당장 지난 3월로 돌아가보자. 코로나19사태로 제주공항 항공노선이 전면 중단되었다. 다시 회복되긴 했지만,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장기화될 것이고, 재난이 끝나기 전에 새로운 재난이 찾아올 것이다. 전지구적 재난은 지구화된 경제체제에 대한 재조정을 요구한다. 우리의 생활방식도 변해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의 지구를 구하는 첫 번째 실천론이 ‘비행기 타지 말자’ 아니던가. 항공업과 관광업은 축소되고 타격을 입게 될 대표 분야다. 아시아나와 이스타 항공의 추락은 시작일 뿐이다.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대량해고 되어 잘려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 노선이 더 늘어나고, 관광객이 늘어날 것을 근거로 한 ‘미래 수요’ 예측이 여전히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제주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
관광산업은 정부가 인위적 경기부양 수단으로 주로 이용하는 불황탈출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관광특수를 노리는 공항건설은 ‘올림픽 특수’를 노리는 올림픽 개발의 논리와 똑같이 닮았다. 이 전략의 성공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소득이 향상될 것이라던 올림픽은 결국 지대상승과 합법적 토지약탈, 돌이킬 수 없는 자연파괴와 공공부채를 남겨놓고, 토건업자와 부자들의 주머니만 불려주고 끝났다. 나는 그 잔치가 끝난 곳에서 살고 있는 강원도 주민이다. 오래 전에 금강산관광 개발 붐이 남겨놓은 폐허도 있다. 강원도 고성군에서 북녘 금강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도 곳곳에 문 닫은 식당과 가게, 주유소, 숙박시설이 유령처럼 남아있다. 주민들은 그 때 진 빚에 아직도 허덕인다. 강원도도 제주도와 비슷한 운명의 땅이다. 비옥한 토지가 없어 수탈이 적었고, 산간오지라 접근성이 떨어져 개발의 광풍을 피해갔다. 덕분에 오래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 투자가치로 재발견되었을 때, 서울에서 가장 빨리 동해안에 도착하기 위해 도로가 뚫리고, 더 쉽게 설악산 전망을 갖기 위해 케이블카가 고안되고, 전망 좋은 곳마다 호텔, 리조트, 아파트가 올라갔다. 그런 중에도 설악산 안에는 경기를 잃어버린 옛 관광지의 건물들이 계속 낡아가고 있다. 코로나19는 다가올 재난을 가리킨다. 식량위기, 쓰레기위기, 물의 위기가, 총체적인 기후위기 속에 차례로 예고되어 있다. 지금 필요한 건 관광개발이나 대규모 토건사업 같은 부채경제로 투기자본에 대한 지역경제 종속을 또다시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지역기반 농산업을 다시 살리고, 관광객이 오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자급과 순환의 지역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일어난 일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다. 제주 2공항이 제주도민의 문제만이 아니며 우리가 연대하여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다. 그간 ‘이해관계자 거버넌스’라는 주주자본주의 논리는 이해당사자들만 모아 협의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속여왔다. 상관없는 사람 빠지라는 이 가짜 민주주의는 제주 살지 않는 사람들을 논의에서 배제한다. 그러나 올림픽 반대투쟁이 개최지 주민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제주공항 반대투쟁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제주를 사랑하고, 소비하고, 관계 맺어온 사람들에겐 그만큼 환경부채와 함께 이 섬의 미래에 대한 공동의 책임이 있다. 오름과 바당은 친구들의 연대를 기다린다.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고 한다. 국토부의 ‘제2공항 전략환경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동의절차가 남아 있다. 평가서가 법적 지위를 갖고 국토부가 계획을 고시하려면 환경부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평화의 섬, 생명의 섬, 제주를 지킬 수 있도록 환경부의 부동의와 정부의 사업철회를 압박하고 요청해주시길 시민 여러분께 부탁드린다. 그리도 또 특별히 한 사람에게 더 요청한다. “지구호가 기후위기로 침몰 위기에 처한 오늘날, 평범하지만 위대한 기후행동이 모두에게 요청된다.” 지난 4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한 말이다. 지금 바로 당신에게 그 기후행동을 요청한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