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을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했다고 해서 엄청난 충격을 줬던 해수부 어업지도원 피격사건은 김정은 위원장의 설명이 담긴 통지문으로 좀 다른 국면이 된 것 같다. 사살도 그렇지만 시신을 소각했다는 점이 공분을 샀는데 북측 통지문은 부유물을 태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더 확인해보고 구할 수 있는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경계근무 원칙에 얽매여 불행한 사태를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의 영역을 방어하고 코로나19 방역에 북한이 주의를 집중한다고 하지만 북한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든 점이 분명 있다. 그런데 이후 대응에 나선 야당의 말들도 수긍하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한 굴종, 눈치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은 정략이 중요하게 여겨지겠지만, 중요한 점은 콕 집어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어업지도원을 발견한 시간부터 북한군이 총격을 가하는 시간까지다. 시각으로 따지면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09시 40분까지이다. 월북을 위한 것이었든, 실족이었든 남측 시민이 북측에 가게 되었고 북한이 이를 발견했으면, 또 이를 우리군이 알게 됐으면 이때 중요한 것은 북한과 소통해 시민의 안전을 기하는 일이다. 월북의사가 분명하면 일단 북측이 데려가 조사를 해야 할 것이고, 우연하게 북으로 가게 되었다면 남측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코로나19에 민감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충분한 방역조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려면 당연히 남북의 소통채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없는 것이 문제다. 2018년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이후 관계는 경색되었다. 북미 핵협상이 답보상태였고 북한이 기대하던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불만이 쌓인 북한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한 상황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은 없어졌고, 군 통신선, 적십자 연락선도 불통 상태다. 지난 6월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직전 남측과의 연락선을 완전 차단했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이 남북연락통로를 차단했었는데, 2018년 1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다시 연락선 통신이 재개됐다. 그러다 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통신을 차단하면서 다시 불통이 된 것이다. 북한은 연락선을 차단하면서 2018년 4월 북한의 당 중앙위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연락선도 끊었다. 남북이 직접 통화할 수 있는 라인을 모두 없앤 것이다. 다만 살아있는 것은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와 북한 간의 직통전화뿐이다. 통신선이 살아 있었다면 북측과 통신하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남측 시민을 구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촉구했을 것이다. 물론 군이 첩보를 확보하는 소스가 밝혀지는 것을 꺼려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었겠지만 시민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첩보소스가 드러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대처방안을 강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연락통로가 모두 죽어 있으니 그런 노력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껏 할 수 있었던 게 유엔사 군정위를 통해 북한에 사실관계 확인 통지문을 보내는 정도였다. 유엔사는 사실상 미군의 통제 하에 있다. 더욱이 북한은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이 맡는 것에 반발하면서 1991년부터는 군사정전위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연락통로가 살아 있어도 실제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실제 군사정전위 채널로 보낸 어업지도원 피격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통지문에 북한은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야당의 공격처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대북포용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그 원인은 핵협상의 교착이다. 대북포용정책이 없었으면, 다시 말해 대북봉쇄정책을 실시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더 큰 일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경제제재를 풀고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핵협상은 진전이 안 되고, 남측에서는 봉쇄정책을 계속하는 상황이라면 북한은 그들이 오랫동안 보여준 대로 도발로 가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과성 떨어지는 비합리적인 얘기는 의미 없다.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포용정책과 북한의 도발적 행위는 인과성이 없다. 개성공단에 자금이 유입되면 북한이 그 돈으로 핵개발 한다는 얘기와 같다. 박근혜 정부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나중에는 "증거는 없다"고 했지 않은가. 핵·미사일은 북한의 안보전략에 따라서 나오는 것이다. 남측의 지원이 있든 없든, 북한이 가진 자원을 우선 배분해서 추진해온 것이다. 지원이 없다고 그 전략이 수립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남측의 지원이 북미관계, 북한의 미국에 대한 정책, 북한의 핵-미사일-경제건설 연계전략 등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 도발적 행위의 근본원인을 따져보고, 이를 해결하는 데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심대한 도발에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는 것 물론 중하다. 하지만 동시에 북미 핵협상이 진전되도록 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도록 하는 전략에 배전의 노력을 투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우선 통신선은 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안문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KBS 통일부·정치부·국제부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습니다. 2012년부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북한의 대외관계', '동북아 국제관계'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외교 방안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국내외의 저명한 저널에 연구결과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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