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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의 이웃이 생각하는 도서정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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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의 이웃이 생각하는 도서정가제 [도서정가제와 책의 생태계] 3

2014년 마련된 현행 도서정가제가 올해 11월 20일까지 재검토를 앞두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변경으로 바뀌는 것은 책 판매 가격만이 아닐 것입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동안 신생출판사, 신간발행종수, 독립서점이 늘어났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기획하고, 작성하고, 제작하고, 유통하고, 독해하고, 논의하는 ‘책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이 촉발한 사회적 논의에 책의 생태계에 속해 있는 출판사노동자, 책방운영자, 작가들도 고민을 보태고자 합니다.

동네책방과의 관계

나는 인디 음악씬에서 음악을 해왔고, 지난 5-6년은 저자 혹은 역자로 몇 권의 책에 참여해왔다. 동네서점과는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간간히 저자로 북토크를 하러 가거나 음악가로 공연을 하러 가기도 한다. 또 동네서점 방문자들로부터 내 책이 진열되어 있거나 음악이 틀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좋은 이웃’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통영 ‘봄날의 책방’에서 방문기를 쓰고 있는 필자 ⓒ김목인

사실 누구도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동네서점과 나의 관계가 마냥 ‘감성적’으로 비치지는 않았으면 한다.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논의를 읽다 보니 마치 도서정가제 지지가 시장의 기능이나 실질적 통계를 외면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드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굉장한 오해다. 나는 우리 중 누구도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동네서점 역시 이윤과 무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더라도 엄연히 책을 팔아 운영되는 곳이고, 나 역시 그곳에 초대될 때는 서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즉, 이곳 역시 작은 이익이 오가는 시장이다. 그러므로 도서정가제의 개정이 결정된다는 11월 20일을 길목에 비유하자면, 문화가 시장논리로 접어드는 길목이 아니라 이미 시장논리 안에 있는 어느 길목일 것이다. 작은 책방과 공간들은 이미 시장을 겪어 왔고 거기에서 정가제를 주장하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를 지지하는 것은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출발선의 압도적 차이로 경쟁마저 못하게 하는 불공정을 막기 위한 위기감의 표출인 것이다.

음악씬에서의 경험

나는 오래 전 <음악가의 밭>이라는 노래를 쓰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해보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한창 홍대 앞의 공간들이 높은 집세나 재건축에 의해 밀려날 때였고, 음악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후원금을 모으거나 릴레이로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었다. 벌어지고 있는 일에 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추상적으로 보였던 그 때, 우연히 <대칭성 인류학>(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2005 동아시아)이라는 책에서 위안을 얻었었다. 우리가 매번 겪는 비슷한 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에 의해 가능해졌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오래 전에는 무언가를 주고받을 때 여러 가지 의미 때문에 함부로 주고받으면 안 되는 윤리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물건들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제거한 뒤에야’ 손쉽게 자본을 불리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었다. 의미를 생각지 않아야 쉽게 가격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래 전 이미 그렇게 시작된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공연하던 공간들도 그곳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가격의 논리’에 의해 결국 사라진 셈이었다. 그럼 그 많은 일과 의미들이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갔을까?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지금의 동네책방들이 그런 공간들에서 흩어진 역할을 일부 맡아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책방들도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얼핏 달라 보이지만 본질은 같은 압력 말이다.
▲동네책방에서는 이렇게 주민으로서 소개를 해주기도 한다. 불광문고.ⓒ김목인

사라진 뒤를 상상하긴 힘들다

아마 공연장과 동네책방은 다르겠지만, ‘도서정가제 개정’ 같은 위기가 있을 때에는 동네서점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 역시 폄훼되기 시작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즉, 누군가는 서점주인의 정성어린 큐레이팅이나 동네의 커뮤니티로서의 기능, 책 읽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적 기능 등을 ‘감상적이고’, ‘대체 가능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또 점원과의 대면 없이 가격 비교로 구입하는 인터넷 쇼핑의 깔끔함과 비교하며 번거로운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요즘에는 어느 분야에나 그런 야박한 비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것들이 곧잘 먹혀드는 건 무언가가 사라진 뒤를 미리 상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라진 뒤의 현실

내가 ‘사라진 뒤’를 경험한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음반점이다. 내가 한때 둘러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진열대들 중 절반이 사라졌는데, 그건 바로 음반점이었다. 사실 내가 음악을 시작할 무렵에도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인기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미 선물로 음반을 받기는 싫다는 취향 설문조사 기사가 있었고, 많은 음반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것이 취향의 변화 때문인지, MP3 불법 다운로드 때문인지 다양한 갑론을박도 있었다.
▲한때 열심히 사 모은 음반들 ⓒ김목인
게다가 그 때는 공교롭게도 인디 음반들이 한창 제작기술과 홍보 노하우를 쌓아가며 음반 시장을 다양하게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나 같은 음악인들도 그 시기의 덕을 많이 보았고 말이다. 우리 모두가 불가능해보였던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반 자체가 그렇게 빠르게 사라질 줄은 몰랐다. 물론 음원 스트리밍으로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지만, 그 변화의 결과들은 결코 소규모 음반사들과 음악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글쎄, 내가 느낀 변화가 얼마나 있을까? ‘며칠 전 네 음반을 샀어.’ 라는 친구의 말이 ‘내가 음원을 샀으니 너에게도 몇 백원 갈 거야.’로 바뀌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가 음반 시장과 관련해 한 일이라고는 음반 몇 장을 발매한 것과 음반점이 다 사라지도록 뒤로 계속 물러선 것뿐이다. 그러나 하나의 문화가 어떤 식으로 쇠퇴하는지 지켜볼 수는 있었다. 그건 이런 식이었다. 1. 딱히 대세라 할 수도 없었던 어떤 문화가 더 쇠퇴한다.2. 정부나 대기업은 결코 그런 문화를 진심으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항상 소비자와 시민의 편의를 명분으로 삼는다.3. 쇠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한다.4. 명확한 통계가 없는 상태에서 논쟁이 시작된다.5.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돌을 던진다. 어디에? 쇠퇴하는 쪽에.6. 그럼에도 문화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어떻게? 압축된 모습으로 저기 한 구석에. 아마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동네서점이 위기에 처한다면 그 위기의 형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북토크 직전의 동네책방. 제주 소심한 책방. ⓒ김목인

동네서점은 공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의는 분명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보면 불공정한 경쟁의 문이 열릴 경우 누군가는 자본을 불리고 누군가의 공간은 사라질 거라는 것은 분명하다. 또 시장이 알아서 균형을 잡기보다 더 소수의 시장이 될 거라는 것은 명확하다. 나는 동네서점 같은 공간이 많아야 공익적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는 물량으로 승부하는 것보다 문화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동네서점들은 우리가 돈을 모아 세운 곳도 아니고, 나라에서 세워준 곳도 아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공간들이다. 과거의 동네 서점들이 사라졌던 전국 곳곳의 공간을 알아서 밀도 있게 채워주고 있는 동네책방을 불공정한 경쟁에 밀어 넣는 건 공익적인 면에서도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김목인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번역가로 활동해왔습니다. <음악가 자신의 노래> <한 다발의 시선> <콜라보 씨의 일일> 등의 앨범을 냈고, <다르마 행려> <Howl : 울부짖음 그리고 또 다른 시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등을 옮겼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음악가 자신의 노래>와 <음악가 김목인의 걸어다니는 수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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