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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의원님께 보내는 편지...도서정가제를 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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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의원님께 보내는 편지...도서정가제를 꼭 지켜주세요 [도서정가제와 책의 생태계] 4

2014년 마련된 현행 도서정가제가 올해 11월 20일까지 재검토를 앞두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변경으로 바뀌는 것은 책 판매 가격만이 아닐 것입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동안 신생출판사, 신간발행종수, 독립서점이 늘어났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기획하고, 작성하고, 제작하고, 유통하고, 독해하고, 논의하는 ‘책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이 촉발한 사회적 논의에 책의 생태계에 속해 있는 출판사노동자, 책방운영자, 작가들도 고민을 보태고자 합니다.

도서정가제와 책의 생태계 연재 바로가기

안녕하세요. 저는 혜화동에서 1인 출판사를 꾸려 일하고 있는 이현화입니다. 아울러 의원님의 지역구인 종로구 주민이기도 하지요. 기억하실 리 없겠지만,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실로 책 한 권과 편지를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어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드렸는데, 이번에는 온라인 지면을 통해 편지를 드립니다.
▲지난 9월 이낙연 의원께 보낸 책과 손편지 ⓒ이현화
▲지난 9월 이낙연 의원께 보낸 책과 손편지 ⓒ이현화
지난 번 책과 편지를 보낸 뒤 의원님은 물론 함께 일하는 분들 모두 바쁘실 터라 회신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잘 받았다는 문자라도 오지 않을까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제가 편지를 드렸던 건 출판생태계의 큰 걱정거리인 도서정가제 관련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십사 청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이후 많은 분들이 발 벗고 나서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서정가제 개악’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상황이 염려스러워 다시 또 이 지면을 통해 의원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거의 무명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그저 조용히 책을 만들며 사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고 싶은 저로서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 먹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출판 문화의 중요성을 잘 아실 의원님이시라면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실 거라는 믿음이 용기를 내게 해줬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대학로 책방이음 조진석 대표 (출처 : 불광문고 장수련 점장 SNS)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몸 담고 있는 출판, 서점업계는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골목마다 동네책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작은 출판사들 역시 늘어나고 있으며, 새롭게 진입하는 저자들의 다양한 책들이 독자들과 여러 모양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여러 존재들로 인해 독자들은 동네 가까운 곳에 색깔 있는 문화거점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함께 읽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책을 만들고 책방에서는 책을 골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독자들은 마음에 드는 자신만의 책을 만나는 경험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저자와 독자들이 직접 만나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책 한 권을 매개로 다정하고 따뜻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풍경은 어느덧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일까요.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그 직전까지 출판생태계는 무한경쟁, 무한할인의 광풍으로 그저 황폐화되어가기만 했습니다. 동네의 책방들은 문을 닫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출판사들은 살을 깎는 무한할인으로 내몰려야 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출판생태계 구성원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약간의 공정성을 보완해 시행한 개정도서정가제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저 역시 이런 변화에 힘 입어 작지만 저만의 출판사를 시작하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긴 말이 필요 없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변화를 경험한 저는 이렇게 긍정적인 효과가 확실하니,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언제 어디에서도 똑같은 조건으로 책을 고를 수 있는, 완전도서정가제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런 바람을 품은 건 2020년 11월이 바로 3년마다 돌아오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의 지속 여부를 검토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접하게 된 소식은 완전도서정가제의 시행은커녕 개정 도서정가제조차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였습니다. 이런 우려가 우려에서 그치지 않고 당장 삶의 기반을 흔드는 위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이 출판생태계에 속한 많은 분들을 불안하게 하고, 그 불안이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한다는 외침으로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한다는 간절한 외침에 대해 어떤 분들은 ‘자유경쟁 시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잡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너무 비싸서 책을 살 수가 없으니 싸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영세 책방 주인들과 작은 출판사들을 위해 소비자가 비용을 치를 수는 없다’고도 합니다. 이런 말과 글을 대할 때마다 저는 섬뜩합니다. 다 저를 향한 말인 것 같아 그렇습니다. 책 한 권을 만들고 파는 과정에서 자유경쟁 시대에 발 맞춰 무한할인에 다양한 홍보비를 책정하지 못하는 저는 과연 경쟁력이 없는 걸까요? 무한 경쟁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정성껏 책을 만들겠다는 제 노력은 무가치한 걸까요? 부유함을 꿈꾸는 대신 소박함을 선택한 제 삶의 방식은 어리석은 걸까요? 그래서 결국 도태되어야 하는 걸까요? 1만 권, 2만 권이 아닌 1천 권이 팔리는 책은 무의미한 걸까요? 책값이 비싸다는 분들은 그동안 어떤 책을 읽어오신 분들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책의 정가에 순수 제작비 이외에 노동자들의 인건비는 적정하게 고려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이미 제대로 된 정가를 책정하지 못하는 책값을, 그마저도 더 할인해서 사고 싶어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께 책 한 권의 가치란 어떤 의미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며 출판 산업을 비웃는 듯한 분들께는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할인을 해서 더 싼값에 책을 내놓으면 과연 지금보다 책을 더 많이 사고 읽으실까요? 책값이 부담이 되는 분이라면, 책값이 비싸서 책을 못 보시는 분들이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은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걸까요? 저는 2018년 봄, 1인 출판사를 시작해서 첫 책을 낸 이래 지금까지 10여 권의 책을 만들어왔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제가 만든 책을 눈여겨봐주시는 독자분들과 따뜻하고 진지한 소통을 나누며 지냈고, 책 한 권마다에 집중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책 만드는 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제 일상은 소박하지만 안전합니다. 아울러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자부심과 조금씩이지만 제가 만든 책을 알아봐주는 독자들과 교감의 폭을 넓히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성실하고 소박한 제 일상의 평화는 위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운동장이 기울어지면 저는 당장 운동장 위쪽이 아닌 아래 쪽으로 떨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장 아래로 떨어지는 건 저뿐만이 아니지요. 책을 만드는 누구나 어떻게 팔까에만 더 고민해야 하니, 많이 팔리는 책만 눈에 띄는 세상이 올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1994년부터 책을 만드는 노동자로 일해온 저는 제가 만든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바람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책 한 권을 만들어 1만 권, 2만 권을 팔겠다는 야심도 없습니다. 그저 정성껏 만들어 때로는 1천 권, 잘하면 2~3천 권씩 팔리는 걸 꿈꾸며 한 사람의 편집자로 제가 평생 해온 이 일이, 제 손을 통해 나간 책들이 한 사람의 독자에게 이로운 것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 60~70대가 될 때까지 존중 받으며 품고 살고 싶습니다. 이런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평생 해온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은 일을 나이와 관계 없이 꾸준히 해나가며 그로 인해 삶의 기본적인 요건을 채울 수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요? 출판생태계에는 나이 들어서까지 책을 만들고 책을 팔며 책을 통해 이 사회의 문화의 축을 튼튼하게 세우려는 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경쟁력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도서정가제입니다. 나아가 전국 어디서나, 온라인, 오프라인 막론하고 모든 책을 모든 곳에서 같은 값에 사고 파는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면 이러한 사회 변화는 밑에서부터 훨씬 더 견고하고 건강하게 자리를 잡아나갈 것입니다. 지난 번 드린 편지에 책 한 권을 같이 보내드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동네책방 생존 탐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만들겠다고 생각할 때 염두에 둔 제목은 ‘동네책방 전성기 탐구’였습니다. 하지만 책을 만들면서 전성기는 고사하고 생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책방의 사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출판생태계의 소중한 구성원인 이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책을 만들며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이 책의 저자이신 출판평론가 한미화 선생님과 함께 나누며, 이 책이 어떻게든 책방들에게 응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책을 출간할 무렵 도서정가제가 개악이 된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이를 막기 위해 동네책방 사장님들이 앞장서서 청와대와 국회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한편으로 제가 만든 이 책을 호소문과 함께 문화체육부 장관님을 비롯해 국회의원 몇몇 분들과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 공무원분들께 단체로 보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여러 상황이 안타깝지만, 이 책이 그렇게라도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동네책방에서 국회의원 및 관계 기관 담당자에게 보낸 호소문과 <동네책방 생존 탐구> (출처 : 불광문고 장수련 점장 SNS)
▲ 동네책방에서 국회의원 및 관계 기관 담당자에게 보낸 호소문과 <동네책방 생존 탐구> (출처 : 불광문고 장수련 점장 SNS)
그런데 뜻밖에 며칠 지나지 않아 받는 분 주소란에 분명하게 이름까지 써서 보낸 이 책들이 몇몇 곳으로부터 반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유는 ‘수취인 거절’이라고 했습니다. 반송되어 돌아온 것이 어디 단지 책 한 권만이겠습니까. 그분들께 보낸, 책방의 생존을 넘어 출판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 갈 곳을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수취 거절로 반송되어온 책 중 일부. (출처 : 불광문고 장수련 점장 SNS)
▲수취 거절로 반송되어온 책 중 일부. (출처 : 불광문고 장수련 점장 SNS)
▲수취 거절로 반송되어온 책 중 일부. (출처 : 불광문고 장수련 점장 SNS)
어쩌면 이 편지를 다시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때였던 듯합니다. 처음에 편지를 드릴 때는 <동네책방 생존 탐구>라는 책을 만들고 펴낸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로서, 관계 기관에 이 책을 보낸다는 책방 사장님들의 노력을 저 역시 그냥 지켜만 볼 수 없어 뜻을 같이 하는 마음으로 보내드렸는데, 지금 다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반송되어온 그 책이, 갈 곳을 잃고 어딘가에 쌓여 있을 그 책이, 거기 실린 그 마음이 애달프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책이 그렇게 갈 곳을 잃어버린 그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제 마음을 이해해주실 수 있으실지요. 쓰다 보니 두서 없는 글이 길어져 이만 마무리할 때가 된 듯합니다. 모쪼록 앞서 말씀 드렸듯 이 책을 기획할 때만 해도 ‘동네책방 전성기 탐구’였던 제목이 어쩌다 ‘생존 탐구’가 되었는지 관심을 갖고 살펴봐주시고, 우리 사회가 책방, 나아가 출판생태계의 ‘전성기’를 마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주시길 청합니다. 아울러 도서정가제가 지향하는 사회가 의원님이 만들고 싶어하는 세상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밝은 눈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확신이 없으시다면 종로구에 이미 따뜻한 문화거점으로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수많은 동네책방 중 어느 곳이라도 퇴근길에 문득 들러주십시오. 그곳에서 도서정가제로 인해 이제 막 살아나 씨앗으로 무르익고 싹을 틔우고 있는 책생태계가 우리의 문화를 얼마나 안전하게 지키고 나아가 풍요롭게 만들어나갈지 열린 마음으로 상상해주시고, 조금만 더 먼 미래를 함께 꿈꿔주십시오. 지금까지 쓴 글들의 맥락은 사라지고, 그저 ‘힘 없는 자영업자’의 읍소처럼 보일까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자의 힘과 그것이 만들어낸 인류 역사의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아실 의원님이라면 이 글이 비단 개인의 읍소가 아니라 대한민국 출판생태계, 나아가 문화생태계를 위한 간절한 청임을 알아봐주실 거라 믿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시절, 중책을 맡으셔서 고충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모쪼록 건강 살피시기 바랍니다. 의원님의 행보를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2020년 10월 혜화1117 이현화 드림

이현화 : 1994년부터 거의 쭉 출판편집자로 살았다. 인문교양서와 문화예술서를 주로 출간하는 여러 출판사에 다니며 관련 분야의 책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 2017년 6월 오래되고 낡은 한옥 한 채와 인연이 닿아 이 집에서 출판사를 열기로 결심, 2018년 4월부터 출판사 '혜화1117' 대표가 되었다. 지금은 약 일 년 반 동안 고쳐 지은 한옥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한옥을 수선하고 출판사를 차리기까지의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책 <나의 집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와 출판사를 시작하고 만 2년여의 기록을 담은 책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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