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마련된 현행 도서정가제가 올해 11월 20일까지 재검토를 앞두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변경으로 바뀌는 것은 책 판매 가격만이 아닐 것입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동안 신생출판사, 신간발행종수, 독립서점이 늘어났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기획하고, 작성하고, 제작하고, 유통하고, 독해하고, 논의하는 ‘책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이 촉발한 사회적 논의에 책의 생태계에 속해 있는 출판사노동자, 책방운영자, 작가들도 고민을 보태고자 합니다.
내게는 막내 외삼촌이 있다. 3남 2녀의 막내로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삼촌에 대해 모르는 사실은 그것 말고도 많은데, 삼촌이 58년생 개띠라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내가 물을 때마다 삼촌은 나이는 모르고 살아야 한다고, 나이를 말하면 그 나이만큼 늙어버린다며 대답을 피해왔다. 그래서 그런가. 확실히 삼촌이 동안이긴 하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스물세 살의 삼촌이 서점을 차리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도통 모르겠다. 들었던 것 같긴 한데 잊어버렸다.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 하니까? 별다른 기술이 없어서? 아무튼 삼촌은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문예서점’을 열었고, IMF 여파로 직장을 잃은 건물 주인이 자기가 직접 서점을 하겠다며 삼촌을 쫓아낼 때까지 18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다. 나는 지금도 막내 외삼촌을 종종 책가게 삼촌이라고 부른다.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의 간판. 출입문 양 옆에 놓인 잡지와 참고서 진열대. 삼면을 둘러싼 책장과 책들. 가게 중앙을 차지한 평대. 평대 끝은 카운터였고 뒤편의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삼촌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쪽방이 있었다. 열 평 남짓한 작은 서점이 젊은 삼촌에게는 집이고 일터였으며 아마도 전부였을 것이다. 나는 카운터 옆에 놓인 스툴에 앉아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수많은 오후를 보냈다. <시튼 동물기>, <파브르 곤충기>, <그리스 로마 신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학교는 밤마다 이상해>, <대머리 산>, <따개비 한문 숙어>, <맹꽁이 서당>, <소라의 봄>, <YS는 못말려>, <대도무문>, <영웅문>, <퇴마록>, <주라기 공원> 등등…… 돌이켜보면 책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인터넷 서점의 인문분야 MD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서평가로.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 하고 별다른 기술도 없어서 벌써 10년 넘게 책과 관련된 일로 생계를 꾸려왔다. 그런데 동화와 학습 만화와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썰렁한 농담을 늘어놓는 유머집과 대중소설에서 책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웠다고? 진심?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읽어야 할 모든 책을 그곳에서 읽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책을 읽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들을 봤다는 사실이다. 나는 평대에 누워 있는 책들의 표지를 봤고, 표지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모자이크를 봤으며, 그것이 그때그때 바뀌는 모습을 봤다. 나는 서가에 꽂혀 있던 책들을,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서가가 모여 만들어진 서점이라는 장소를 봤다. “나는 세 가지 읽는 방법, 즉 세 가지 독서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7년 롤랑 바르트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에게 말했다. 첫 번째는 책을 쳐다보는 것. 두 번째는 강의 준비나 글을 써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메모를 하면서 꼼꼼히 읽는 것. 세 번째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순전한 즐거움을 위해 읽는 것.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 방식이다. “나는 책을 받고,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래서 그 책을 쳐다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독서방식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책 읽기에 대해 결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낭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사유의 거래에 대해서>라는 작은 책에서 낭시는 이렇게 말한다. “서적상은 초월적인 독자이다. 그는 고객이 책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고객들은 서적상의 독서를 읽는 독자이며 동시에 그에게서 구매한 책들을 읽는 독자이다. 서적상의 독서는 모든 책의 모든 페이지를 오롯이 해독해내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독서는 ‘읽기lectio’이면서 동시에 ‘선택하기electio’이다. 선택한다. 책에서 나온 생각들을, 책이 본래 지니고 있는 이데아에 따라서, 책에 따라서, 독서에 따라서, 독자들에 따라서, 그리고 편집자들에 따라서 (…) 추호의 모호함도 없이 말해보자면, 서적상은 서적 전달자이다. 서적을 가져오고 전시하고, 서적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동네서점에서 만나는 것은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책들이다. 그것은 서점 주인이 나름의 이유로 ‘선택한’ 책들이고, 그렇기에 더 이상 단순한 책들이 아니며, 우리는 그 사실을 오직 ‘쳐다봄으로써’ 만 알아챌 수 있다. 조금 과장하면, 그때 우리가 쳐다보는 것은 서점이라는 유한한 우주에 놓인 책들의 (뜻밖의) 조합이 만드는 일종의 성좌다. “서점은 은밀한 시선, 강렬한 조명, 탐문, 조사, 선별, 추출이나 발췌 등 모든 종류의 열림이 있는 보편적 장소를 독자에게 열어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책이 가지고 있는 관계를 풀어주고, 숨을 돌리게 두었다가, 잠시 몸을 흔들어대는 것, 책이 가진 충족성과 정합성을 소실하는 것이다. (…) 시선은 진열장과 진열 테이블 위를 훑는다. 이곳저곳에 멈추었다가 실루엣이나 이미지, 다양한 표식에 따라 책의 컬러나 포맷으로 훌쩍훌쩍 뛰어넘는다. 매료되고, 이끌리고, 매혹되도록 몸을 맡긴다.” 물론 별과 달리 책은 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지기만 해도 책은 독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무게, 입자, 부드러움을 통해서 책이 전하는 목소리의 변화나 심정의 동요를 식별해낼 수 있다.” 한때 나는 동네서점의 쇠락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책이건 클릭 몇 번으로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내가 찾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작은 동네서점을 굳이 찾을 이유는 없지 않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에는 거의 모든 책이 있지만 그것은 아무 냄새도 없고 두께를 가늠할 수도 없는 납작한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찾는 책을 곧바로 검색할 수 있지만 만질 수도, 고개를 돌려 주위의 책들을 둘러보거나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닐 수도 없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을 꼼꼼하게 읽는 기쁨이나 택배를 기다리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이다. 내가 일찍이 알았으나 잊어버렸고,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기쁨이다. 내가 동네서점을 다시 찾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탐방서점> 때문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선택한 책들을 쳐다보았고 그 사이를 걸었다. 어머니는 늘 내게 너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걷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걸어야 한다. (2016년 12월 28일)
2. 일기
10월 8일11월 20일 재검토를 앞둔 도서정가제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느냐는 친절한 제안을 받았다. 물론 나는 수락했다. 가독성을 위해 원고 중간중간 적당한 이미지를 넣어달라고, 참고로 원고료는 없다고 했다. 그건 좀 곤란한데… 10월 9일 도서정가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마흔 살이고, 이름은 금정연, 프리랜서 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라고 해야겠지만.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근하기 싫어서 아침마다 울었다. 적어도 사나흘에 한 번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에 우는 버릇은 사라졌다. 원고를 쓰기 싫어서 밤새도록 울었던 적도 있지만 이제 나는 울지 않는다. 이 구역의 눈물은 아직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가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 울음 총량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니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흘릴 수 있는 눈물의 양이 정해져 있거나… 그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살 수 있는 책의 양이 정해져 있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더 이상 책 같은 건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 다음 이틀 뒤에 인터넷 서점에서 당일배송된 택배 상자를 열며 더 이상 책 같은 건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런 내가 도서정가제 현행 유지나 강화를 주장해도 되는 건가? 반값 할인이나 1+1을 하라고 시위를 해도 모자랄 판에…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건 2001년 무렵이었다. 10퍼센트 할인은 기본이고 20퍼센트, 30퍼센트까지 할인하는 책들을 보며 처음에는 사기라고 생각했다. 책을 할인해서 판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세상에! 어쩐지 횡재한 기분이 된 나는 당장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책장에 책들이 쌓여갔다. 군대에서 밤샘 근무를 하며 잠을 쫓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이주의 마이리뷰’니 ‘이달의 마이리뷰’ 같은 것에 뽑히며 100만원이 넘는 적립금을 상금으로 받았다. 결국 300만원 남짓한 카드빚과 함께 제대했다. 모두 책을 사느라 진 빚이었다. 카드빚을 갚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더 많은 책을 사기 시작했으며, 계속해서 책을 사기 위해 직원으로 입사했다. 넘쳐나는 책들 속에서,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은 없어 생선가게를 지키는 고양이처럼 괴로워했고, 결국 관뒀다. 처음에는 1년 정도 쉴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서평가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서평을 쓰면 원고료를 준다고 해서 썼을 뿐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서평을 잘 쓰지 않지만 여전히 서평가라고 불린다. 딱히 부를 호칭이 없어서다. 이제 약간 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모든 비극의 시작에 온라인 서점의 무분별한 할인 판매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악연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다… 10월 12일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벼르던 ‘디스코 엘리시움’을 플레이했다. 범죄 소설을 그대로 게임으로 옮겨 놓은 듯한 구성.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빼곡하게 이어지는 대화를 보다 보니 눈이 아팠다. 이럴 거면 그냥 책을 읽는 게 낫지 않나? 그렇지만 왜 계속해서 하게 되는 건지… 게임 상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형사와 오컬트를 신봉하는 서점 주인의 대화를 옮겨 본다. 당신_ “가게에 손님은 거의 없는데, 정말 그게(*손님이 책을 구매하게 해준다는 부적) 효과가 있다고 믿으시나요?”플레랑스_ 부인이 안경을 살짝 고쳐 쓴다. “선생님, 저는 상업과 신비학에 조예가 깊답니다.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요.”당신_ “할인 행사를 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고객들을 좀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플레랑스_ “할인을 하라고요?! 선생님, 선생님은 책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군요. 게다가 상품 할인은, 파멸의 망령들을 부추기는 짓인걸요... 그것들은 절망을 감지할 수 있거든요.”
10월 15일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글을 쓸 때마다 이번에는 정말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보면 어떻게든 쓰긴 하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못 쓸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쓸 수 있는 글의 총량을 오래 전에 이미 채운 느낌이다. 예전에는 쓸 수 있는 동안 열심히 써두면 다 밑바탕이 되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책이 쌓이고 인지도가 쌓이고 인맥이 쌓이고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쌓이는 건 피로와 원한, 그리고 트윗 뿐이다. 10월 18일도서정가제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처음 내가 생각한 건 다양한 ‘나’를 등장시켜 각각의 입장을 말하게 하는 형식이었다. 1) 외삼촌의 동네서점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2) 인터넷 서점에서 일한 나3) 소설가 김중혁과 함께 동네서점 주인들을 인터뷰한 <탐방서점>을 쓴 나4) 더 이상 책 같은 건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온라인 서점의 주문 버튼을 클릭하는 나5)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중고책을 사는 나6) 5천 부를 넘기기 힘든 비인기 작가로서의 나 7) 한달 매출이 16억원이라는 기사를 보고 호기심에 난생처음 웹소설 <전지적 독자시점> 무료회차를 보기 시작했다가 일주일만에 500회가 넘는 유료회차를 모두 읽어버린 나 “소중한 동네서점을 지키자! 도서정가제 사수하자”1)이 소리친다. “할인이 뭐가 나빠! 그렇게 치면 굿즈가 더 나빠!”2)가 맞받아친다. 그때 3)이 끼어든다. “제가 <탐방서점>을 하던 2016년에도 이미 동네서점은 힘들었습니다.” 3)이 잠시 멈춘다. 자신의 말에 권위를 싣기 위해 연출된 포즈다. “물론 그때도 도서정가제는 있었죠.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있던 4)가 중얼거린다. “책을 할인하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까요? 할인하는 책들을 사들인다고 오히려 카드빚만 늘어나는 거 아닐까요? 이러나저러나 이미 망한 거 아닐까요? 출판계 말고 저요.” 5)는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갈수록 책의 수명이 너무 짧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초반에 팔리지 않으면 영영 묻혀 버리고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연예인이 제 책을 SNS에 올리거나 TV 드라마에 잠깐이라도 나오거나 아니면 제가 팽수라도 되지 않는 이상…” 6)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한다. 조금 울먹이는 것도 같다. “전자책이랑 종이책은 다르다, 같은 도서정가제로 묶기 애매하다, 뭐 이런 말을 하려고 나를 부른 것 같은데, <전지적 독자시점>은 전자책이 아니라 연재소설이잖아요. 그건 이거랑 상관없는 거 아니에요?”조목조목 따지는 7)을 보며 나는 말없이 ctrl+a를 누른 다음 del 키를 누른다…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나의 다양한 개인적 입장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지금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책과 아무 상관없는 건전한 취미생활, 이를테면 밖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날 필요 없이 방구석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디제잉 같은 것이다. 나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인터넷에 디제잉 기기를 검색했다. 디제잉의 세계는 생각보다 방대했고, 비쌌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나는 기기를 사는 대신 <이지 디제잉>이라는 책을 샀다. 중고로. 아싸, 개이득… 10월 19일마감이 코앞인데 한 줄도 못 썼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 세 권을 연달아 읽었다. 1)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산문선>(허진 옮김, 열린책들, 2020) 중 ‘책과 담배’2)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이승연.박상현 옮김, 반비, 2019) 3) 장-뤽 낭시,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이선희 옮김, 길, 2016)
75년 전에 쓴 에세이에서, 조지 오웰은 “책을 사는 것, 심지어 책을 읽는 것은 너무 값비싼 취미라서 보통 사람은 접근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도전한다. 그는 간단한 계산을 통해 지난 15년 간 자신이 년 평균 25파운드, 일주일에 약 9실링 9페니의 독서비용을 지출했다고 밝힌다. 1946년 영국에서 플레이어스 담배 83개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반면 오웰이 1년 동안 피우는 담뱃값은 거의 40파운드에 달한다. 오웰은 그답지 않게 아무리 많이 책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독서 비용이 담뱃값과 술값을 합친 금액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온건한 추측을 한다. 물론 그 말은 맞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책값에 박한 걸까? 오웰은 다소 씁쓸한 결론을 내린다. “책 소비량이 지금까지처럼 계속 적다면, 최소한 책을 사거나 빌리는 돈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보다 투견장이나 영화관, 술집에 가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인정하자.” 프랭클린 포어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이 출판계를 비롯한 기존의 문화산업, 나아가 지식 생태계를 끝장냈다고 주장한다. 거대 테크 기업들은 지식 독점기업들이기도 한데, 그들의 핵심은 지식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지식을 거르고 정리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맞춤 피드’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제 중요한 것은 팩트가 아니다. 옳고 그름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도 아니다. 낚시, 가짜뉴스, 유명인에 대한 자극적인 가십은 모두 우리의 시선을 잡아 트래픽을 늘리고 자신들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테크 기업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공짜 점심’이다. 포어는 말한다. “읽고 보고 들을 것이 넘쳐나고,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끝도 없이 사이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오디언스의 주의를 끄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미국의 현대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이런 상황을 ‘총체적인 소음(Total Noise)’이라고 불렀다. 총체적인 소음 속에서 우리는 집중력이 떨어진 채로 인터넷의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글을 읽게 되었다. (…)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주의력은 결핍된다.” 이것이 구글과 페이스북과 아마존과 애플이 만든 멋진 신세계다. 우리는 책과 책이 상징하는 과거의 지식체계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의도적으로’ 멀어지고 있다. 사실 내 경우에는 조금 멀어질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조만간 페이스북을 시작해야 할듯… 장-뤽 낭시에 대해서라면, 그만두자. 오늘은 이미 지나치게 많은 것을 읽었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했던 생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피로는 남았다. 언제나 남는 건 피로뿐이다…
10월 20일마감일. 여전히 원고는 쓰지 못했다. 독촉 메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제과제빵을 배워서 망원시장에 마카롱 가게를 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가게 이름은 ‘장-뤽 망시’. 10월 22일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거대 온라인 서점(거대 상업 출판사)과 작은 동네서점(작지만 가치 있는 작은 출판사)의 대립 구도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도서정가제가 만들어진 게 정확하게 그런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글 또한 그렇게 쓰여져야 한다. 동네서점을 하던 삼촌에 대한 추억과 동네서점의 가치를 ‘인문학적’인 동시에 ‘웅숭깊은’ 언어로 적어가는 장-뤽 낭시의 인용으로… 그런데 자꾸 기시감이 드는 이유가 뭘까? 나는 드롭박스의 ‘납품’ 폴더에 들어가 ‘서점’을 검색한다. 열두 건의 검색 결과 중에서 ‘161218_동네서점_금정연.hwp’라는 파일을 클릭한다. 2016년 12월 18일에 <책방산책 – 서울>이라는 단행본을 위해 쓴 ‘쳐다보기, 걷기’라는 제목의 원고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과 정확하게 같은 원고이기도 하다. 나는 4년이나 일찍 이 글을 썼다. 아니면 그냥 지나치게 많은 글을 썼거나… 10월 23일새벽 4시쯤에 아가가 울어서 깼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들었는데, 5시에 아가가 다시 울었다. 어디가 안 좋은 거 아닌가? 아내와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기분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쁜 꿈을 꿨니? 덕분에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도서정가제 원고는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포어의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계속 생각난다. 포어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아침일찍 일어나 책상 앞에 섰던 헤밍웨이와 원고료를 십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던 피츠제럴드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작가들도 돈에 신경썼다. 그들에게도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필요했고, 자신의 창조적인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다. 원고료가 없었다면 다른 생업을 가져야 했고 글쓰기에 매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포어는 도서관에서 자신이 일하는 ‘뉴리퍼블릭’지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엘리자베스 비숍이니 랠프 앨리슨이니 하는 과거의 위대한 작가들이 보낸 편지와 엽서를 발견한다. “그런데 수신인들의 이름이 아무리 화려해도, 편지 내용은 이상하리만치 내게 익숙했다. 마치 내가 요즘 저자들로부터 받는 이메일을 그대로 가져다 쓴 듯한 내용이었다. 서류철들에는 저자들의 불평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난 작품에 대한 원고료는 왜 도착하지 않나요?’ ‘편집자분께서 제 원고료를 좀 올려주실 방법이 없을까요?’ 때로는 화나 있고 때로는 간곡하게 사정하는 편지들일 뿐, 매력적인 내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제 저녁, 나도 한 잡지 편집자에게 예상보다 적게 들어온 원고료를 문의하는 메일을 보내놓은 상태였다. 포어는 과거의 가난했던 작가들의 삶을 생각하며 조금쯤 숙연한 마음이 된다. 하지만 정말 숙연한 순간은 따로 있다. 그는 한 편지에서 리뷰 한 편에 원고료 150달러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움찔한다. ‘뉴리퍼블릭’이 웹사이트에서 발행하는 거의 같은 분량의 리뷰에 대해 똑같은 액수를 지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페이지를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80년 동안 물가가 상승했는데도 원고료는 변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은 근현대 세계 경제사를 통틀어 최악의 시기였던 대공황 때 받았던 것과 동일한 금액의 원고료를 지금도 받고 있는 것이다.”(프링클린 포어, 앞의 책, 216-219쪽) 150달러는 16만 9275원이다. 리뷰 한 편이 일반적으로 원고지 8매에서 20매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내가 받는 금액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80년 전은 모르겠지만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원고료가 거의 같았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런데 만약 80년 후에도 같은 금액이면 어떡하지?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 테고, 아가가 자랄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 아가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책은 <칭찬왕 뽀로로>와 <안전왕 뽀로로>, 그리고 <뽀롱뽀롱 뽀로로 가방 스티커북> 시리즈다. 기저귀를 갈자고 하면 뽀로로가 나오는 책을 소파에 올려놓고 그 앞에 서서 기저귀를 가는 동안 책을 읽는다. 밤이 늦어 자러 가야 한다고 말하면 신경질을 내며 안 된다고, 일단 손을 내저은 다음 재빨리 책을 펼치고 맹렬히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한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하면 엄청 빠른 속도로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를 타는 어린이처럼, 자기 전에 한 페이지라도 더 보기 위해서. 아가가 왜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가 앞에서 함부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3. 겸손한 제안
대한민국에서 가난한 작가들이 가족이나 나라의 짐이 되는 것을 예방하고 이들과 이들이 쓰는 책이 국민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도록 만들기 위한 제안. 도서정가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도 동네서점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출판계는 매년 단군이래 최대 불황을 갱신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작가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번다. 대법원이 밝힌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질서의 혼란을 방지하고, 저자, 출판사, 서점을 안정적으로 보호 육성하여 소비자인 독자에게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의 간행물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도서정가제 입법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러니 기왕 문체부에서 ‘소비자 후생 고려’라는 명목으로 도서정가제 재논의를 통보한 김에 저자,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주인공(스포일러라 이름을 밝힐 수 없음)을 따라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할인 행사를 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고객들을 좀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좋은 할인과 나쁜 할인이 있다(헐리우드 영화에 흔히 나오는 ‘좋은 경찰, 나쁜 경찰’ 같은 느낌으로). 나쁜 할인은 온라인에서 하는 할인이다.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할인. 출판사와 저자와 서점을 어렵게 만드는 할인. 여기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좋은 할인은 오프라인에서 하는 할인이다. 와우북 페스티벌이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하는 할인. 출판사의 창고대방출 할인이나 반품도서 할인 등등. 출판사 입장에서는 멀쩡한 반품도서를 폐기하는 것보단 얼마라도 받고 파는 게 나을 수 있고, 창고에 쌓여서 보관비용만 나가는 악성 재고를 헐값에라도 털어버리는 게 나을 수 있다. 문제는 온라인에서 하는 할인의 폐해를 막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다보니 오프라인에서 하는 할인까지 막혀버렸다는 것.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는 할인을 할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단순히 일년에 두어 번 도서전에서 할인 판매나 출판사 창고 세일을 허용하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대형서점이 아닌) 동네서점에서 할인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이다. 즉, 출판사가 예전에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 이벤트를 했던 것처럼 동네서점에서 할인 이벤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렇다면 동네서점은 온라인 서점과 비교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출판사는 판매가 정체된 구간 도서를 적절한 할인가격에 판매할 수 있고, 저자들은 책의 수명이 조금이라도 연장되기를 기대할 수(혹은 유명 작가와 같은 가격에 책이 팔릴 때는 선택 받지 못하다가,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며 새롭게 발견될 수) 있으며, 물론 독자들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유통질서가 혼란스러워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 서점과 달리 공간과 접근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뜻일 수도 있고…
더 큰 효과를 위해서는, 동네서점에서 상시 할인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출판사가 제안한 할인 행사 도서가 아니더라도, 서점 주인의 판단에 의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온라인 서점이 그랬던 것처럼. 물론 그러려면 공급률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혹시 예전에 온라인 서점에서는 할인을 하는데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할인을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셨는지? 임대료 때문도 아니고(임대료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네서점 주인이 특별히 돈을 밝혀서도 아니다. 애초에 출판사에서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가격(공급률)이 온라인 서점에는 정가의 60퍼센트 내외, 오프라인 서점에는 정가의 70퍼센트 이상으로 10퍼센트 넘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온라인 서점과 직접 거래를 한다. 하지만 모든 동네서점과 일일이 직거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도매상을 통해 거래한다. 따라서 출판사에서는 같은 가격에 출고 한다고 해도 온라인 서점과 동네서점이 공급 받는 가격은 달라지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하다. 나는 온라인 서점과 동네서점이 같은 가격에 책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동네서점들이 지금보다 10퍼센트 이상 낮은 가격으로 책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늘어난 이익률 안에서 자유롭게 상시 할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서점은 그렇게 할 수 없는 동안에. 어떻게? 서점과 도매상이 조금씩 마진을 양보해야 한다. 에를 들어, 온오프 공통으로 65퍼센트 공급률을 고수하는 출판사는 도매상에 60퍼센트에 책을 보내고, 10퍼센트의 마진을 남기는 도매상은 5퍼센트만 남기고 동네서점으로 책을 보내는 것이다. 동네서점이 책을 65퍼센트에 공급받을 수 있도록.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어쩌면 더 많은) 문제가 있다. 먼저, 도매상은 땅을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업계 2위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지난 6월 기업회생신청을 하며 많은 출판사와 서점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체부가 송인서적을 인수하면 어떨까?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며 일종의 지원 사업 같은 개념으로, 올바른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지식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부 기관이 출판이나 서점에 직접 뛰어든다면 모양새도 우습고 자칫하면 검열이나 특정 진영에 대한 편파 등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유통은 상대적으로 그런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을까. 다음으로는, 출판사도 어렵다는 거다. 동네서점을 위해 제 살을 깎으며 공급률을 낮출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해법이 있다. 바로 온라인 서점 공급률을 올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온오프 공통으로 65퍼센트 공급률을 고수하는 출판사라면 (동네서점으로 책이 나가는) 도매상에 60퍼센트에 책을 보내는 대신, 온라인 서점에는 70퍼센트에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동네서점을 위해 낮춘 공급률을 훨씬 상회하는 이익률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작가들에게 n-1쇄 정산(다음 쇄를 찍어야 이전 쇄의 인세를 주는 방식)을 유지하는 몇몇 대형 출판사들도 최소한 분기별 인세 정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유일한 문제는 온라인 서점이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매출이 주춤하던 상황에서도 할인율 제한으로 인한 이익률 개선으로 온라인 서점의 영업이익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더불어 공격적으로 중고매장을 늘려나가고 중고도서시장을 성장시킴으로써 매출 또한 크게 늘었다. 과거에 ‘반값책’이 했던 역할을 이제 중고책이 하는 셈이다. 문제는 출판사나 저자에게 쥐꼬리만큼이라도 이익을 주었던 ‘반값책’과 달리, 중고책은 1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온라인 서점은 공급률을 조금 양보해도 된다. 망하지 않는다. 이러다 망한다는 소리가 몇 년째 꾸준히 나오는 동네에서 소수의 독점 기업들이 너무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지 않은가.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산업 자체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것이 유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면서도 저자, 출판사, 서점을 안정적으로 보호 육성하여 소비자인 독자에게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의 간행물을 제공하는 동시에 소비자 후생까지 고려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설령 그것이 ‘디스코 엘리시움’의 서점주인이 말하는 것처럼 파멸의 망령을 부추기는 짓이라고 하더라도, 뭐 어떤가? 고작해야 하나의 절망을 다른 절망으로 대체하는 일일 뿐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필요한 작업을 촉진하려고 애쓰는 데에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조금도 얽혀 있지 않다는 점을 정말 진심으로 고백하는 바이다. 문화를 증진하고 늘 어려운 출판계를 부양하고 가망없는 작가들을 구제하며 시민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줌으로써 우리나라의 공익에 도임이 되려는 것 말고 다른 동기는 없다. 이 제안으로 단 한푼이라도 벌려고 해도 그럴 만한 능력이 내게는 없다. 일단 이 원고부터 공짜로 쓰는 것이고, 나 역시 책의 저자로서 어느 정도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거기서 얻는 이득보다 더 큰돈을 책값으로 써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 쳐다보기, 걷기’는 <책방산책 – 서울>에 실린 동명의 원고를 재활용했다.
*‘2. 일기’와 ‘3. 겸손한 제안’은 각각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조너선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의 형식과 몇몇 문장을 차용했다.
금정연은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입니다.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아무튼, 택시>, <담배와 영화>를 쓰고 <문학의 기쁨> 등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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