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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말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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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말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황재옥의 '한반도 톡'] 미국과 '외교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에 기용한 것은 정 장관의 2018년 대북접촉 경험을 바이든 정부와 공유하고, 임기 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려는 것이다. 정 장관은 1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가진 취임 후 첫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위한 한미공조를 주문했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은 한일 갈등부터 해소할 것을 주문하면서 정 장관이 제기한 문제들은 향후 조율해 나가자고 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우리는 한‧미‧일 3각 협력에 열려 있고, 한일관계 복원을 위해 과거사 문제와 양국 간 실질 협력을 분리해 접근하려 하는데, 일본은 두 사안을 연계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이 한일 과거사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 치 양보도 하지 않는 입장을 전했다. 미국이 우리에게 한일 갈등부터 해소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GSOMIA) 복원을 바라기 때문이다. 한일 지소미아가 복원돼야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한‧미‧일 3각 동맹으로 묶을 수 있고,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이 그만큼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자신의 국익을 위해 한국의 대일 양보를 요구하는 셈이다. 바이든 정부는 백악관 NSC에 인도태평양조정관 자리를 신설하고, 오바마 정부 시절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을 설계한 커트 캠벨을 임명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대부분을 뒤집으면서도 오히려 대중압박 전략은 보강해 나가는 기세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지명자가 19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을 '중대 도전' '추격하는 도전'이라고 규정한 것은 바이든 정부 내 대중압박 강화 전략의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다. 미국은 한일 갈등 해소를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배상 문제를 그냥 덮고 갈 수는 없다. 지난 4년 동안의 정책을 미국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 뒤집거나 덮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사안에 관한 한 한미동맹 문제 이전에 국민정서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위안부를 '매춘부'로 규정한 하버드대 램비어 교수의 논문은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우리네 분노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미국도 이 같은 상황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편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배상 문제만 나오면 '국제법 위반'을 거론한다. 일본이 툭하면 꺼내는 국제법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뿐이다. 기껏해야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말, 오바마 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서둘러 체결된 '위안부 관련 합의'를 덧붙일 수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양자 간 조약, 특히 불평등한 과정을 거친 협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는 많다. 바이든 정부가 대중압박에 집중하면 할수록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핵문제가 차지하는 우선순위는 낮아질 것이다. 그리되면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자 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은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이 한‧미‧일 3각동맹의 하위체계로 편입되어 우리가 미국의 대중압박 최일선에 서게 된다면 대중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미국의 대중압박 전략을 치고 나갈 수 있는 약한 고리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전경련의 '코로나19 이후 한중 경제관계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2020.9)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대유럽연합(EU)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5%, 대중남미 수출은 34.3%, 대인도 수출은 34.5%가량 감소하며 전체적으로 약 10.6% 감소했다. 반면, 6월 이후 대중국 수출은 플러스로 돌아서면서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19년 1~7월 24.3%에서 20년 1~7월 25.8%로 1.5% 포인트 높아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사아다 가쓰미 논설위원은 <한국과 일본은 왜?>(2020.11)라는 책에서 문재인 정부 이후 증폭된 한일 갈등의 원인을 '강해진 한국이 내미는 도전장'으로 규정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아베 정부의 반발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성장과 G10까지 오른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진짜 이유라 했다. 그는 이제 한국인들은 1965년 한일협정이 불평등조약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한일의 국력이 마침내 대등해졌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의 국력은 G10이고,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GFP 보고서, 2021)이다. 사아다 논설위원은 한일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한 셈이다. 그러면 국내정치적으로 우리가 한일 갈등을 일방적으로 봉합하고 넘어갈 수 없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우리의 정서와 자존심을 도외시하고 미국에 추종만 할 수 없다면, '새로운 길'은 없을까?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실천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더 건강하고 자유로운 미래를 위해 잠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함께 감수하자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하에서도 인간관계와 사회질서는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새롭게 'k-방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외교에서도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잠재력을 정확히 알고, 우리가 목표하는 것을 향해 '외교적 거리두기(Diplomatic Distancing)'를 실행해 보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선 한미 협력 강화를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 관한 일본의 합당한 조치없이 한일 갈등을 봉합하고 나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의 큰 틀 안에서 북핵문제 트랙과 한일관계 트랙을 별개로 밟아 나가는 '투 트랙 외교'를 해 볼 수 있다. 적어도 한일관계와 관련해선 한미 간에도 일정 정도의 '외교적 거리두기'를 할 수도 있다. 이는 한미공조라는 미명하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더 이상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다. 차기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위한 든든한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도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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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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