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군대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하나." 동아제약 면접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던져진 질문이 알려지자 채용 성차별이 다시금 공론화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면접에서 경험한 차별적 질문을 사회관계서비스망에 올리기도 했다. 채용차별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하지 않겠다. 나는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이 차별금지법을 함께 다루지 않는 점에 조금 놀랐다. 변희수 하사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차별금지법 관련 기사가 쏟아지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인식된다. 다수의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앞세운 반동성애 세력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면서 형성된 인식이다. 차별금지법의 의미가 협소하게 이해되는 걸 우려하며 보편적 인권을 위한 기본법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도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 실현을 위한 법이고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도 계속 쌓이는, 미룰 수 없는 상식이라는 점. 사실 차별금지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도 뭔가 헛헛하다. '모두를 위한 법'이라 누구를 위한 법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달까. 민주주의 사회에 필요한 '좋은 법'이지만 '내게 무슨 소용 있는지' 우리 사회는 아직 상상해보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움직여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여러 연구나 설문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한국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는 데 대다수가 동의한다. 그런데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 물어보면 조금 낮은 비율로 응답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도 같은 결과다.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82.0%였는데, 지난 1년 동안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7.2%였다. 차별은 심각한데 '남이 당하는 일'이다. 정말 그럴까? '내가 차별받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내가 겪은 일이 차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부터 어렵다. 어떤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탈락했다고 해보자. 남성일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외모가 말끔할수록, 학벌이 좋을수록, '좋은 일자리'를 구한다는 현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이유로 탈락했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내게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약 모집공고나 채용 절차, 면접 과정 등에서 차별이 분명한 사실을 확인했다면, 또는 직장에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임금을 공정하게 받지 못했다면, 심지어 괴롭힘을 당한다면, 달라질까? 이때에도 '차별'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차별받았다는 주장은 사회에 자신을 약자로 드러내는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공감과 연대보다 멸시와 공격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용기 내어 말해도 '예민한 사람' 취급받다가 끝나기 쉽다. 그러니 차별 경험에 대응하는 경우는 적을 수밖에 없다. 보궐선거가 끝나고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출구조사 결과가 대비되면서 20년 전에 위헌 판정을 받은 군가산점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남녀평등복무제가 대안처럼 제시되기도 했다. 여성이 더 차별받기는 하지만 남성도 억울하다는 류의 말만 반복하는 것이 정치의 현주소다. 억울함을 나누어 '평등' 복무하면 남성의 억울함은 사라지는지, 차별은 그대로 두고 여성에게 군복무 의무를 부과하면 평등이 저절로 온다는 말인지. '평등복무' 논란은 차별을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갈등 정도로 치부하며 평등을 비틀어버린다.('청년'을 두고 품평하는 것부터 얼마나 차별적인지도 되짚어볼 일이다.) 차별을 집단 간의 갈등으로 다루는 정치는 차별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성차별은 여성만 당하고, 여성은 성차별만 당할까? 성차별이 남성과 여성 간의 대립 문제로 다뤄질수록 여성은 차별 경험을 말할 때 '남성'에 맞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성별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차별은 남성도 겪지만 남성은 이를 성차별로 해석하지 못한다. 더욱이 여성이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만 겪는 것도 아니다. 동아제약 채용차별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점은 이미 지적되었지만 여성이 일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남녀' 차별만이 아니다. 장애, 나이, 고용 형태, 인종, 사상 등 수많은 이유로 벌어지는 차별을 모두 남성이 당하는 것일 리 없지 않은가.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 퀴어문화축제를 두고 '안 볼 권리'를 말하는 정치인도, 차별금지법을 공약에서 뺀 대통령도, 혐오 발언 지적을 당하는 국회의원도, 모두 차별에 반대한다. 차별받는 사람의 말하기는 시작되지도 못했는데 차별이 무엇인지 번연히 안다는 듯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91.1%였다. 우리는 이제 차별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차별을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응을 시작할 때 무엇이 차별인지 사회적으로 확인된다. 그래야 차별을 해석할 기준과 언어가 축적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차별을 알아차리고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차별을 받은 후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무대응 응답이 71.7%였다. 대응하지 않는 이유 역시 많은 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대응한들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대응하다가 더 곤란한 일을 겪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당신이 차별받은 경험을 말한다면 무언가 변화할 것이고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누가 해야 할까? 그게 차별금지법이다. 차별에 관한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는 점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해서도 비슷할 듯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다수가 동의한다. 차별금지법이 당신에게 필요하냐 묻는다면 조금 줄어들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행동하겠냐고 묻는다면 훨씬 낮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차별받은 경험을 말하고 대응하는 용기보다 조금 작은 힘으로도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에 나설 수 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궁금하다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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