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선생은 청나라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중국인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교류 속에 당시의 청에 대해, 그리고 국제 사회 등에 대해 파악했다. 그런데 그 방법상, 연암 선생의 예리한 통찰력이 있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중국어 구사가 여의치 않아 필담에 의존하는 등 보다 더 깊이 있는 파악 등에는 다소 제약이 따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연암 선생보다는 다소 나은 환경 속에 있는 것 같다. 먼저 이곳에서 만나거나 교류하는 사람들이 선생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각계각층의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하는 가운데 그들이 보는 중국과 글로벌 사회에 대한 관점 등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외국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중국인들 및 외국인들을 만나 교류할 때면 중국어를 비롯해 영어와 일본어 등 몇 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조금은 더 깊이 있는 파악이 가능하다. 중국 각지를 다니면서도 아프리카인들과는 영어로,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동남아인들과는 일본어 등을 사용하며 미중 양국이 말하는 "자유와 권리" 등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였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미중 양국이 이해하는 "자유와 권리" 등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난 이들 제3의 외국인들과의 논의 속에서 그 생각이 틀리지 만은 않았다는 느낌이 더 들게 되었다.
먼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미국식 자유와 권리. 미국식 자유는 개개인의 자유 극대화를 토대로 한다. 미국식 권리는 그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향유되도록 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 향유되기 위해서는 그 어느 것의 개입과 간섭 등도 최소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권위주의 국가 등의 관점에서 볼 때는, "너무 방임적이지 않나? 저러다가 사회의 안정 등이 흔들리게 되면"이라는 우려도 자아내곤 한다. 한편, 각 나라의 역사 발전 과정이나 현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자유와 권리라는 것에 대해서도 각국이 어느 정도는 고유 색채를 띠는 것도 이상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미국식 자유와 권리를 근간으로 하는 많은 국가들도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미국은 역사 발전 과정에서 총기 소지가 필요했다. 그 결과, 총기 소유의 자유로 인해, 타국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의 총기 사고 또한 끊이질 않고 있다. 또한 서구식 자유와 권리를 채택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개인의 자유가 미국 등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제한되고 있다. 미국에서 향유되는 많은 자유가 허용되지 않으며 위반 시 벌금으로 다스리는 "벌금 국가"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식 제도 도입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이었던 일본 또한 미국과 상이한 역사 발전 등을 거쳐서 그런지, 미국과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국식 자유와 권리는 어떨까? 먼저, 우리에게는 "중국식 자유와 권리"라는 표현부터가 낯설다. 오랜 기간 미국을 비롯한 서구식 개념에 익숙하다 보니, 그것 외에는 뭔가 이상하고 잘못된 듯한 느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는 매우 다른 역사 발전 과정을 거쳐왔고 또 지금도 사회주의라는 "이질적" 제도를 지니고 있는 중국식의 자유와 권리 등이, 미국식과는 퍽 다른 중국만의 고유한 특징을 지니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중국식 양상을 곰곰 들여다 보면, '개인 차원의' 자유의 극대화를 토대로 하고 있는 미국식에 비해 '사회 차원의' 고려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전체의 안정과 발전 등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개입 권한 등을 지니고 있다. 중국 사회로부터 필요 시에는 사회 전체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다소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 자유의 극대화에 방점을 찍어 온 국가들로부터는 "자유의 제한" 등과 같은 비난도 받게 된다. 자유와 권리를 둘러싼 미중 양국의 사뭇 다른 모습은, 코로나19 상황을 둘러싼 양국의 상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개인적 차원이 더 중시되는 미국에서는, "내가 죽더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내 자유를 침해하지 마라"며 총기까지 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개인에 대한 정부의 개입 권한이 가뜩이나 제한적인 미국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뚜렷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사회적 차원이 더 중시되는 중국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그것만 주창하다가 사회 전체가 더 혼란스럽게 되면 결국 모두에게 더 큰 피해가 가지 않는가"라는 사고가 공유된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한 강한 대처로 서구로부터는 비난을 받지만, 정작 중국 사회에서는 지지를 받으며 준수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개념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류 보편적"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을 토대로 볼 때, 중국식 자유와 권리는 과연 이 잣대에 어긋나는 것일까? 코로나19에 대해 강한 봉쇄와 격리 조치 등을 취하고 있는 중국식 모습이 인류의 보편적 자유와 권리 개념 등에 과연 얼마나 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중국식 자유와 권리라는 것이, 어쩌면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낯설지 만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서구식 제도 등을 본격 도입하고 익숙하게 된 건 20세기 들어서부터이다. 즉, 100여 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웃나라' 중국식 제도 등은, 수 천년 간의 역사 교류 과정 속에서 우리 안의 깊은 곳에서는 이미 매우 익숙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한동안 서구식에 집중해 온 탓에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식이 어떻고 중국식이 어떻고 하며 나와 다른 남의 특징을 인정하지 않는 닫힌 사고적 대립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우리 식이 아닌 것을 두고 제3자가 왈가왈부하기 보다는, 차라리 우리에게 더 잘 맞는 우리식 자유와 권리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
* 우수근 교수는 <한중글로벌협회> 회장 및 중국 관련 인터넷 전문 매체인 <아시아팩트뉴스>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아시아팩트뉴스>에 연재됐던 '우수근의 신열하일기'를 새롭게 가감수정하여 게재한 것입니다.
우수근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상하이 화동사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거친 뒤 상하이 동화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저서로는 <미국인의 발견>, <캄보디아에서 한‧일을 보다> <한국인 우군의 한‧일의 장벽이란 무엇인가>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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