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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 후보 공천한 박근혜, 부산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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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추문' 후보 공천한 박근혜, 부산서 통할까? [4.11총선 현장②] 부산 수영, 유재중 VS 박형준
"아니, 아(아이)를 찍으라니, 장난합니까"

부산 사상에서 돼지국밥집을 하는 50대 아주머니가 내뱉은 일갈이다. 한번 터진 말문은 닫히지 않았다. "요란하게 공천한다고 했는데, 누가 부산에 내려왔는지 도통 모르겠다. 얼굴들은 바뀌었는데 주변에 '누구 누구가 어디로 왔다더라' 하는 사람들도 없다. 간간이 뉴스를 보면 이름이 나오긴 하는데, 아이 이름 뭐더라, 손수조. 그것 빼고 기억도 안 난다"는 것이다. "야당은 들썩들썩 하긴 하는데 새누리당은 성추문으로 시끄럽기나 하고, 새누리당이 뭐가 바뀌긴 바뀐 건가? 내가 봤을 땐 똑같다. 정치고 뭐고 다 싫다"고 했다.

총선까지 20여일 남짓 남은 가운데 부산에는 새누리당의 '무원칙 공천' 후폭풍이 불어오고 있다. 부산 지역 새누리당 17석 중 불출마를 포함해 이른바 '물갈이'가 된 곳은 9석이다. 물갈이 비율은 56.2%다. 그러나 '깔끔한 물갈이'라면 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 원칙 없는 '시스템 공천'이 만들어낸 부산의 여권 선거 지형은 여기저기 '물갈이' 흔적으로 얼룩이 졌다. 친이 학살도, 친박 공천도 아니었다. 새누리당 간판만 쥔 채 낯선 땅에 던져진 인사들도 있다. 뒤죽박죽이었다.

이를 두고 지역 정가에서는 "부산시장 선거와 관련해 정치적 야심이 있는 부산 지역 실세 A 의원과 B 의원이 빚은 졸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엄호성 전 의원 등으로 이뤄진 '무소속 연대'가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공천 후폭풍' 속에서 나름 눈여겨 볼 만한 지역이 있다. 당 지도부의 갑작스러운 경선 룰 변경으로 경선을 거부하고 수영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그는 스스로를 원칙 없는 '박근혜 친위 공천'의 희생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 부산 수영구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특보 ⓒ뉴시스

'친박' 과시한 '불륜 파문' 현역 의원, '무소속' 박형준은 넘을 수 있을까?

수영구 선거 사무실에서 만난 박형준 전 수석의 입가에는 물집이 터져 있었다. 껑충한 키를 연신 굽히면서 사무실을 찾아온 지역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21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그는 "이번 국민경선의 일방적 취소는 민주주의를 농락한 사건"이라며 "일부 소인배들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국민에게 공천권을 주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그들은 말로는 친박을 외치지만 사실상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망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무소속 출마자와 달리 박 전 수석의 말이 주목받는 것은 친박계 유재중 의원의 '불륜 의혹' 때문이다. 유 의원과 불륜 의혹을 폭로한 K씨 간 고소 고발전으로 번지고 있는 이 사건은 정무적 관점에서 볼 때 새누리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지도부는 유 의원에게 공천장을 쥐어줬다. 정두언 의원은 이를 "웃기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형준 불출마는 아주 지역적인 문제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것, 그리고 친박에 의해 희생됐다는 것, 이런 이유들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불공정 공천 파문이나, 유재중 의원의 불륜 의혹이 있지만 구도는 단순하다. 새누리당 후보 대 무소속 후보 구도"라고 말했다.

수영구 선거에서 유일한 쟁점이 있다면 유재중 의원의 불륜 논란을 둘러싼 공방이다. 유재중 의원의 구청장 시절 그에게 성관계를 강요당했다고 주장한 K씨가 두 차례 기자회견을 했고, 유재중 의원은 '눈물의 삭발식'과 함께 K씨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파장은 중앙당까지 번졌고, 당내에서는 "다른 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이유로 유 의원 공천에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다. 여기에 K씨는 자신이 제기한 의혹을 허위사실이라고 일축한 유 의원의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며 역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
▲ 유재중 의원의 불륜 의혹을 폭로한 K씨가 얼굴을 가린채 국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유재중 의원과 박형준 전 수석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친박계인 유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한 뒤 불복을 선언하고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때,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박 전 수석은 공천장을 받았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미래 권력'으로 당을 완전히 장악한 박근혜 의원의 측근 유 의원은 공천을 받았고, 박 전 수석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유 의원이 참여한 '친박 무소속 연대'가 부산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피로감이 높은 부산에서 박 전 수석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정치권 인사들은 "'무소속 돌풍'의 전제 조건은 '동정을 얼마나 유발시키느냐' 여부"라고 입을 모은다. 2008년에는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동정심이 워낙 강해 무소속 후보들의 '학살론'이 먹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민락동에 거주하는 50대 전상영 씨(가명)는 "박형준 씨 무소속 출마했다던데, 유재중 씨는 지역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많고, 박근혜랑 가깝지 않습니까. 박형준 씨도 사람이 딱 뿌러지는 맛이 있어서, 골고루 인기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누가 이길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막상막하일 것 같다. 이번에 박형준 씨가 좀 고생을 한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현역 프리미엄과 '박근혜 효과'는 성추문 논란을 잠식시키고 있는 중이다.
▲ 삭발식을 하고 있는 유재중 의원 ⓒ연합

야당이 '죽쑤는' 동안 박근혜 자신감은 상승

우여곡절 끝에 '불륜 의혹' 유재중 의원은 공천을 받았다. 부글부글 끓는 지역 민심과 상관없이 박근혜 위원장의 자신감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부산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김무성 의원마저 총선 선대위 중책을 맡지 못했다. 박 위원장 본인이 직접 부산 선거를 지휘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부산 지역에서 만난 10여 명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박근혜 위원장의 '파워'를 높이 평가했다. 한 택시 기사는 "총선하고 대선은 다르죠. 새누리당은 한번 쥐어박고 싶지만, 대선되면 대부분이 박근혜 찍는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불륜'과 같은 휘발성 강한 이슈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이 중앙 정치판에서 야권 연대 부정 경선 파문으로 삐걱거리고 있을 때, 박근혜 위원장은 자신감을 앞세워 "4.11총선 최대 관심 지역"이라는 부산을 여유있게 요리하고 있다.

유재중-박형준이 맞붙는 수영구와 함께, 민주통합당 김영춘 전 최고위원이 출마한 부산진갑에 도전장을 낸 무소속 정근 후보의 선전 여부 등, 일부 관심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부산을 아우르는 '무소속 돌풍'은 좀처럼 있을 것 같지 않다. 부산 지역 야당 후보들의 한숨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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