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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만명의 공포', 부산 선거 변수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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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만명의 공포', 부산 선거 변수 되나? [4.11총선 현장⑥] 고리원전 사태로 뒤숭숭한 부산 해운대기장을
고리 원전 정전 사고 및 은폐 의혹으로 전국 이슈의 중심이 된 기장군에서도 선거가 한창이다.

"치를 떨었다"는 기장 주민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고리 1호기의 정전 사고는 심각한 문제다. 지난 달 9일 발전기 보호계전기 시험 중 작업자 실수로 고리 1호에 전원 공급이 12분간 중단된 사태가 발생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전원 중단이 장기화됐다면 노심 용해로 '후쿠시마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었다. 문제는 이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해운대에서 기장읍내로 건너가는 도중 40대 택시 기사는 "원전 때문에 부산 사람들도 불안하죠. 아무도 모르게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고가 났다는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고를 은폐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기장군 뿐 아니라 부산 지역 유권자들의 불안도 만만치 않다고 귀뜸했다. 기장 읍내로 향하는 도중, 부산시의회의 '원전 안전 개선 대책 조속 이행 및 고리 원전 1호기 폐쇄 촉구 대정부 건의안' 채택 소식을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 민심이 고리 1호기 폐쇄를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산시의회는 새누리당이 압도적 다수다.

▲ 고리원전 ⓒ프레시안(이대희)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고리 원전은 기장군 장안읍에 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고리 원전은 공포의 대상이다. 이미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을 '재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07년 고리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면서 30년 된 비상디젤발전기는 교체하지 않았다. 전원 공급 중단 상태에서 가동되지 않았던 바로 그 비상디젤발전기다.

사고 사실이 알려진 후 부산환경운동연합 최수영 사무처장은 "고리원전에는 현재 5기가 가동 중에 있고 3기가 건설되고 있으며, 4기가 추가로 지어질 계획이어서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이 된다"며 "노후원전의 수명연장 가동과 원전의 집중은 원전 반경 30㎞내에 살고 있는 320만 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정치권이 민심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4.11총선, 고리 1호기 폐쇄 문제가 부산 선거 쟁점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 "원전 폐쇄 주장 잠재워야" VS 민주 "고리 원전 폐쇄 관철시키겠다"

현역인 친이계 안경률 의원이 공천에 탈락한 부산 해운대기장을 선거구는 현재 무주공산이다.

새누리당은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를 공천했다. 공천 탈락에 반발해 기장군수를 두 차례 지낸 최현돌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3선 의원 출신 김동주 후보도 새누리당 고문직을 사임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여기에 부산 '혁신과통합' 공동대표를 지낸 유창열 후보가 민주통합당 간판을 들고 나섰다. 녹색당에서는 환경운동가인 구자상 후보가 뛰고 있다.

기장 읍내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선거가 있다고 하는데 관심 없다. 원전 문제도 불안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다 거기서 거기인 인물들이 왔다가는데, 제대로 해법을 내 놓은 적이 없지 않나"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상당했다. 특히 고리 원전 1호기에 가까울수록 '불안 체감도'는 커진다. 원전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길천마을 주민들은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들은 한수원에 마을 집단 이주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길천마을 김명덕 이장은 "총선 앞두고 후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길천마을 주민들 이전 문제를 빨리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설계 수명이 다했으면 폐기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우리만 문제인가.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이 다 문제가 된다. 원전 없으면 전기를 못쓰니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우리같은 힘없는 사람들은 앉아서 죽으라는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심은 악화되는데 정치권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김명덕 이장의 말처럼 "정치인들에게 큰 기대 안한다"는 실망감이 팽배한 이유다.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는 지난 22일 고리 원전을 방문한 후 "국민적인 불안의 확산을 막고 무조건적인 원전 폐쇄 주장을 잠재우기 위해 원전 운영의 투명성 확보 방안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전 폐쇄' 전면 요구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무소속 최현돌 후보의 경우 "정부의 안전성 검토가 끝나봐야 한다"고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앞서 홍석우 지식경제부장관은 "고리원전 1호기의 안전성 검토와 조직 점검을 위해 외부 기관에 용역을 의뢰하겠다"고 밝혔었다.

반면 야당은 고리 원전 폐쇄에 적극적이다. 민주통합당 부산 지역 후보들은 공동 공약으로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고리원전 1호기를 폐쇄하고, 추가 원전 건설과 핵단지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지역에는 유창열 전 부산 '혁신과통합' 공동대표가 출마한 상황이다. 녹색당 구자상 후보는 고리원전 1호기 완전 폐쇄를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누리, '낙하산 공천'으로 시끌…'부산 민심' 다시 잡을 수 있을까?

해운대기장을의 판세는 안개속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는 '낙하산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이 서울 관악을에 공천 신청한 하태경 후보를 부산 북강서을에 보냈다가, 다시 해운대기장을로 '뺑뺑이'를 돌린 셈이다. 부산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해온 유창열 후보를 내세운 민주통합당은 이 지역에서 당 지지도가 자체가 낮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여기에 만만치 않은 여권 성향 무소속 인사들이 출마했다.

'비(非)새누리당' 후보들의 공세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민주통합당 유창열 후보는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는 복지를 말하면서 무상급식을 극렬히 반대한 장본인이다. 공천 눈치를 보면서 연고가 뚜렷하지도 않은 지역에 낙점돼 여론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무소속 최현돌 후보 측은 "용병 공천, 돌려막기 공천, 낙하산 공천이라는 말이 있다. 하태경 후보는 전입 신고를 한지도 20일 정도밖에 안됐다. 북강서을에 거주 신고를 다 했다가 이 쪽으로 부랴부랴 옮겼다. 저희도 하 후보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뭐라 말하기도 민망하다"고 비판했다.

지역 사무실에서 만난 하태경 후보는 "그런 공세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만약 북구청장 후보가 해운대구청장 후보로 나섰다고 하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나라 일 하는 국회의원은 다르다. 지나치고 과도한 비판 아닌가. 저는 이 지역에 연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 바로 이웃 동네 반송이다.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라고 반박했다. '극우 인사', '무상급식 반대 인사' 등의 비판에 대해서도 하 후보는 "애초에 '종북 세력'에 맞서 나오긴 했지만, 지금은 보수 혁신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 전 세계에서 실시하는 나라가 몇 나라 없는 게 사실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해운대기장을 지역의 표심은 기장군, 그리고 해운대 좌동신도시 두 곳이 좌우한다. 기장군 지역은 농촌 지역이고 좌동 신도시는 도시 지역인데, 각각 유권자의 절반 정도가 거주하는 곳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좌동 신도시에 승부를 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장군은 지역을 훑어온 '토종 무소속' 후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고리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이 지역에서 "원전 확대"를 외쳐온 새누리당의 신진 인사가, '공천 후폭풍'을 헤치고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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