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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이들은 손목에 칼을 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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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아이들은 손목에 칼을 대는가 [정희준의 어퍼컷] 21세기 대한민국 신풍속도 '자해중독'

"스트레스 이유가 많아요. 연애문제도 짜증나고 학원 스트레스도 그렇고 부모님 때문에도. 그래서 그어봤는데 하도 많이 그었는지 이제 피가 보여도 별 흥미도 안 느껴지고 뭐 이젠 그어도 그게 그거인거 같네요."

"내 첫 자해는 중학생 때였다. 수행평가가 하기 싫어 손에 유리를 깨뜨려 자해를 했다. 그게 첫 시작이었고 이후 나는 손목에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슬프거나 화나거나 심심할 때 시도 때도 없이 자해를 했다."

인터넷에 '중학생 자해'를 검색하니 접하게 되는 풍경이다. 놀랍다.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모두 스트레스 때문인데 원인은 다양하다. 학교, 부모, 친구, 연애.

그런데 이것이 최근 유행이라 해야 할지, 전염이라 해야 할지 많은 아이들에게 번지고 있나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들은 자해를 감행한다. 여기엔 어른들의 무관심도 한 몫 하나보다.

"제가 중학생이거든요.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 자해를 해봤어요. 상처도 별로 안 나서 계속 긋고 있는데 뭐 부모님도 봤는데 별 신경 안 쓰셔서 그냥 하고 있어요."

보통 샤프는 시작 단계다. 심각한 아이들은 칼을 쓴다. 대부분 커터칼이다. 이때부터는 피를 본다. 이 단계부터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한다. 과감해진다. 이때부터의 자해는 중독성이 있다. 스무살 남짓이 되어서도 끊지 못한다.

"처음엔 피가 살짝 날 정도였다. 그런데 성인이 되니 과감해졌다. 스트레스 받는데 터놓을 곳 없을 때마다 자해를 했다. 자해를 하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그만두지 못했다."

"중학생 때 자해를 시작했다. 너무 힘들면 자해를 했다. 자해 없이는 안 되겠더라. 지금 한 20줄 정도 그은 것 같다. 점점 강도도 세지고, 횟수도 늘어나고. 자해하면 억울한 게 풀리고 편안해졌다. 안심이 됐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제 자해를 한 뒤 죄책감이나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자해를 끊을 수 없었던 건 내가 자해를 함으로써 특별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더럽고 추한 내가 예쁘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인생의 엑스트라였던 내가 주인공이 되는 그 기분. 이 때문에 난 자해를 끊을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랑을 받고 싶단 전제도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냥 나는 외로운 것 같다. 외로움 그래 외롭다."

자해의 시작, 외로움

아이들이 '자해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통로를 찾게 나선다. 주변으로부터의 무시, 무관심, 왕따, 배신, 폭력으로 인한 아픔을 해결할 방법을 찾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할 때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 시작이 자해이고 그 최고 정점은 바로 자살이다.

"자해에 자살 시도 별거 다해봤습니다. 난간에 발도 수백 번 넘게 내딛어봤습니다. 너무 힘들고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팔목에 자해자국은 많아지기만 하고...</span>"

그런데 만약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20세 초반 여성의 심경이다.

"첫 가해는 중학생 때. 부모가 없어 삼촌집에서 지내다 학교에서 자해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관심 가져 주시는 것 보고 그때부터 했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심한 아이들은 안 보이는 곳에 세게 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몸을 가끔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인터넷에서는 그 상처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들도 있다. 친구가 알게 됐을 때 자신의 자해를 고백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다시 한 번 깊은 갈등에 빠지게 된다. 자해를 고백하면 이해해주는 친구들도 있지만 반대로 등을 돌리는 친구도 있기 때문이다. "전교생이 다 알지만 나에게는 친구들이 있다"는 아이도 있지만 반대로 친구들이 "징그럽다," "극혐이다"라고 말해 울컥했고 죽고 싶다는 아이도 있다.

자해의 전염, 시대의 트렌드인가

부산의 대표적 중산층 거주지역에 있는 중학교들에서는 요즘 자해가 유행이다. 25명 안팎 한 반에서 서너 명이 자해를 해 학교가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봄엔 한 중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생이 등굣길에 투신자살을 하기도 했다. 등교하던 수많은 학생들이 이를 목격해 동네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자해는 이른바 '문제아'들의 문제가 아니다. 김해의 중산층 밀집거주지역인 한 신도시에서도 자해가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부모가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가정의 아이나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도 자해를 한다. 특히 최근 자해는 전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행 같기도 한데 다른 한편 트렌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이 '따라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학교는 자해를 상습적으로 하는 학생에게 흰색의 무딘 플라시특 대용물(?)을 줬다. 그 아이는 이걸 가지고 생각날 때마다 교실에서 긋고 있다고 한다. 학교의 대응도 이런 수준이다.

자해 따라하기의 원인으로 많은 아이들이 요즘 인기 있는 한 래퍼를 지목한다. "아빠도 자해했었어. 엄마도 자살시도를 했어", "생일날 새벽 4시에 손목 흥건하게 했어 됐냐 ××놈아", "면도기로 ×창 냈던 손목 땜에 반다나를 차기 시작했고 그 흉터는 한 달 만에 사라져", "이거 봐 2주 전에 그었던 것도 이제 거의 안 보여" 등의 가사로 버무려진 그의 노래에 청소년들이 호응하고 있고 한 언론은 이를 기사화 할 뿐 아니라 양팔과 손목 앞뒤로 선명한 자해 상처들을 확대까지 해서 보여주고 있다.

가정과 학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집과 학교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이다. 아이들이 마음의 안식을 느껴야 할 곳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집과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곳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대화를 원하는데 부모는 그 대화를 외면하고 오히려 아이들을 나무란다. 학교는 무관심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를 불신한다.

모든 학교는 상담교실을 운영한다. 이름하여 위클래스. 그러나 아이들은 그곳에 가지 않는다. 괜히 갔다가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찍힌다고 한다. 괜히 가서 말했다가 다른 친구들까지 알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들도 외부의 비싼 사설 상담소를 찾게 된다.

부모에 대한 배신감, 학교에 대한 불신

아이들이 노스페이스를 떼로 입고 PC방에 떼로 몰려다니며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들 간의 관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아니, 집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왜? 친구들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나 학교로부터의 스트레스가 친구들과의 관계나 자신만의 취미로도 해소될 수 없을 경우, 특히 친구로부터도 외면당하는 경우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낄 때,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터놓고 이야기 할 상대가 이 세상에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들은 자해를 하거나 옥상으로 올라간다. 스스로 우울증이 있다는 밝힌 중학생이다.

"학교에서 한 심리검사결과를 엄마한테 보여줬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 가관이에요. 너만 힘든 거 아니다, 다들 힘들다, 너처럼 표내지 않는다, 니가 노력해야 한다, 네 정신세계에 문제가 있다, 사춘기 땐 다 그렇다, 우울증이 자랑이 아니다, 엄마도 힘들다... 사실 제 우울증 원인의 80프로는 엄마 때문입니다. 이런 엄마가 너무 × 같고 살기 싫어서 자해도 해봤고 자살 시도도 해봤습니다. 죽어버리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요. 팔에 자해자국은 많아지기만 하는데..."


나 지금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아이에게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부모. 이들에게 아이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절망감과 외로움이 아이들을 끔찍한 순간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역시 아이들의 고민은 아이들이 제일 잘 안다. 어른들은 알 수가 없는 세계다. 위 글에 대한 댓글이다.

"꼭 저희 엄마 보는 것 같네요 진짜. 자해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힘들었다는 거잖아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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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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