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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최저임금'이 만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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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최저임금'이 만나려면 [한반도 브리핑] 한반도 평화, 일상과 연결돼야 한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이 된 2018년 7월 27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장례식이 있었고 북한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전 비서 김지은 씨는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증언했다. 이날 기록적 폭염 속에서 진보와 평화, 성 평등의 가능성이 현실과 부딪히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국제질서에서 정당 체계, 일상의 성차별 권력 구조까지 기정질서 전반에 몰아닥친 2018년 전반기 한반도의 변화는 모두 역사적이었다.

이를 시간 순서로 살펴보면,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만들 것을 천명하면서, 남북 관계의 물꼬가 트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평창 올림픽 기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유예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용하면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의 "쌍중단"이 선언됐다.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로 '미투'도 시작됐다. 2월 평창올림픽에 참석한 북의 특사단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3월 남의 특사단이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며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가 숨가쁘게 진행됐다. 3월 25~28일 북경에서 김정은 집권 이래 첫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30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하였고, 3월 31일~4월 1일에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비밀리에 방북해 김정은과 회담했다.

4월 11일 고노 다로 (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이 2015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방한했고, 13~18일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예술단을 이끌고 방북하여 국빈 대우를 받으며 2017년 11월 특사로 방북했을 때는 만나지 못했던 김정은을 두 차례 면담했다. 4월 20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하여 핵 무력-경제 건설 병진노선을 변경하여 경제 건설에 집중하는 전략적 선회를 결의하였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이윤택과 고은, 안희정, 정봉주 등이 '미투' 고발을 당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1심 유죄 판결이 있었다.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새로운 남북, 북미 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을 한반도 비핵화와 병행 추진하는 새로운 평화의 원칙에 합의했다.

이는 북한의 선(先) 비핵화에 대해서 경제적, 외교적 보상을 제공하는 기존 협상 모델의 폐기, 더 나아가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완전히 제거되기 전에는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은 물론 한미동맹이나 한반도 정전체제의 그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미국 패권의 기존 문법 및 기성질서의 전면적 변화를 의미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에 관한 판문점 선언"은 남북 관계의 획기적 개선과 긴장 완화에 이어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 의제를 다루었다. 구체적으로 평화체제 관련 3조 4항은 "남과 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고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을 평가하고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는, 한반도 비핵화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명문화하였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역시 새로운 북미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판문점 선언에 따른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미군 유해 송환 순의 합의를 이루었다. 협상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구체적 규정과 실천도 이어졌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전문은, 리비아 모델을 거부하며 북한이 강력하게 요구했던, '트럼프 방식'을 두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security guarantees)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 간의 안보 대 안보의 교환이다. 둘째, 북미의 적대관계 청산과 신뢰구축이 비핵화에 기여한다는 신뢰의 원칙이다.

정상회담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비용이 많이 들고 도발적인 한미 '워게임'의 중단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8월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유예'되고, 평창 올림픽 기간의 잠정적인 '쌍중단'이 연장되었다.

워싱턴의 주류 외교안보 엘리트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트럼프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대한 공약은 전혀 얻어내지 못한 채, 그간 방어적이며 정당한 것으로 규정되어 온 한미 연합훈련을 북한의 주장처럼 도발적으로 규정하고 한국과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관세전쟁과 이란 핵 합의 파기, G7 및 나토와의 불화,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으로 제재와 규탄을 받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옹호 등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패권의 기존 문법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었다. 뮬러 특검에 대한 트럼프의 '사법 방해'와 언론에 대한 공격 등 미국 민주주의의 침식 또한 트럼프에 대한 비판의 주요한 이유이다.

트럼프는 지난 25년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지 못한 전임 행정부와 소위 전문가들의 무능을 비판하며, 자신의 대담한 압박과 협상으로 한반도에서 평화가 열리고 미국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졌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워싱턴의 주류는 북한이 완전히 무장해제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불신과 경계, 적대의식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비록 문제가 많고 불완전하지만, 전쟁의 위협 자체가 평화를 향한 협상으로 반전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 자체가 힐러리 클린턴으로 대변되는 기존 엘리트들에 대한 대중의 단죄였다. 공화당은 트럼프에게 접수되었고, 여론은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다. 트럼프의 새로운 대북 협상, 새로운 한반도 평화의 비전이 장기적으로 제도화될 지는 대단히 불확실하지만 단기적으로 전복될 가능성 또한 대단히 낮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14일 백악관 웹페이지에 이를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한 자신의 업적으로 이미 등재한 터이다.

북한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3차례에 걸쳐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시작했고, 3차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당과 국가 및 인민 차원에서 그리고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어떤 경우에는 변치 않는다는 '3대 불변'을 천명했다. 트럼프가 설사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과 군사적 옵션으로 선회하더라도,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기는 힘들 것이다.

4월 20일 경제건설에 집중하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결의는 북한에 대한 핵전쟁 위협이 없는 한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을 선언했다. 한미 양국이 현재의 협상 기조에서 군사적 대결로 전격적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북한은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합의된 상호주의와 안보 대 안보의 교환‧신뢰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주동적인 조치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상응조치를 압박할 것이다.

미국의 패권은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국의 외교안보 관료기구에 제도화되어 있다. 친미는 한국 보수에게는 이념이며, 그 상징이자 제도는 역시 한미 동맹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남남 갈등'을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민주정부 3기 문재인 정부에게도 한미 동맹은 정치적 금단의 영역이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워싱턴 주류와 한국 보수의 첫 반응은 경제 재제를 벗어나고 동맹을 이완시키고자 하는 '꼼수'라는 것이었다.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고 통상적인 한미 군사훈련을 용인한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주요한 동력이었다.

한국의 보수는 북한의 행태가 위장 '평화 쇼'라며, 강력하고 일관되게 비판했다. 하지만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기존의 패권전략, 대북정책, 한미 동맹을 깨뜨렸고, 2017년 한반도 전쟁의 위협은 평화에 대한 갈망을 낳았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지방선거 구호로 내걸었고, 홍준표 대표는 5월 17일 트럼프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한반도가 아니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그 어떤 보상도 제공하지 말 것과 정상회담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할 것,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한미 동맹을 유지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후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압승했다. 홍준표 대표는 사퇴했고 이후 미국의 배반을 성토했다. 6월 말 김종필이 사망했고, 이른바 '새정치'의 상징이던 안철수 전 의원이 7월 정계를 떠났다.

그 사이 7월 7일 3차 혜화역 시위대는 6만 명의 '물리적 여성'으로 늘어났다. 15일 노동계는 물론 자영업자들도 최저임금위원회의 올해 대비 10.9% 인상된 2019년 최저임금 8390원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2017년 이전의 '앙시엔 레짐'은 깨졌다. 하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다. 안보는 물론 경제와 가치에서도 전면적으로 미국과 일체화되는 한미 전략동맹의 기조는 모두 무너졌다. 친미와 반공으로 보수가 재건되기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기무사의 세월호 사찰이나 '계엄령 문건'으로 군부의 적폐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3축'을 유지하고자 하며, 소위 안보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북한의 장사정포 후방 배치에 대한 상응조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전면적인 군축을 가로막고 있다. '쌍중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조치로 연장되었을 뿐이다.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합의된 한반도 평화의 원칙을 실행계획으로 만들고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동맹의 관성과 제재의 굴레를 창의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정전체제의 평화를 지킨 핵심이지만, 동시에 한반도 안보 딜레마의 핵심이다. 동맹의 전투태세를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한,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전면적으로 완화하기는 불가능하다.

또한 한미 동맹을 정치적 금기로 여기는 한,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미연합사와 유엔사 사령관을 겸직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세 가지 원칙/길을 동시에 이행하기는, 특히 북한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도 어렵다. 기존의 대북 경제 제재를 유지하는 한, 남북 경협의 추진도 불가능하다.

평화의 제도화는 국내정치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청년 실업과 최저 임금 문제 등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정하듯, 대단히 힘든 경제적 구조 개혁을 요구한다. 그리고 '미투'나 '물리적 여성들'의 요구는 기존의 그 어떤 (국제)정치적, 경제적, 계급적 거대 담론으로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남북 경협으로 공영의 기반을 닦고, 국방비를 줄여서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모병제로 청년들의 자기계발 시간을 보장하고 성 차별의 군사문화를 해소하며, 동맹의 안위가 아니라 시민과 여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등 평화가 어떻게 일자리와 복지, 성 평등과 정의로 이어질지를 설득하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평화와 진보, 정의를 위한 대담한 개혁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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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이혜정 교수는 2002년부터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외교와 국제정치를 연구‧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로 '정치적 현상의 기원'을 중심으로 군부 정치 개입의 기원을 탐구하기 시작해 미국 패권의 기원과 근대 국제관계의 기원으로 연구 지평을 넓혔고, 한미 동맹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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