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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없는 핵 신고? 미국에 '선제타격' 명단 넘기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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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없는 핵 신고? 미국에 '선제타격' 명단 넘기는 셈 [한반도 브리핑] 북한의 '불가역'과 미국의 '가역', 어떻게 맞바꿔야 할까?
1. 종전 외교의 시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4월 1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시 한국전쟁의 종전에 관해서 "남북이 (정상회담 의제로) 종전을 논의하고 있으며, 어떻게 협의 되느냐에 달려있지만, 그들의 종전 논의는 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열흘 후 4월 27일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의 3항에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라며 종전과 관련한 문구가 들어갔다.

선언의 3항뿐만 아니라 선언문의 전문 (前文) 격에 해당하는 앞부분에도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중략)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고"라는 문구가 포함돼있다.

이로부터 약 한 달 반 뒤에 열린 6월 12일(현지 시각)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싱가포르 선언문 3항에는 (북한 <노동신문>에 발표된 발표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한편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회담 전후에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과거 전문가들의 비관론을 비판했고, 자신의 방식이 과거 방식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과거의 관행과 편견에 발목을 잡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여기서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북핵 비핵화 과정은 (한반도 비핵화라고 쓰고 북핵 비핵화라고 읽는다) 종전 논의가 비핵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알렉산더의 칼 역할을 하였고, 미국 대통령이 거기에 힘을 실어주면서 비교적 순탄하게 미북 정상회담까지 협상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종전 논의를 합의문에서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 비핵화 과정이 이제 다시 과거의 편견과 관행으로 돌아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의 문구들에 나와 있듯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기로만 되어 있을 뿐, 어떠한 조건 하에서 어떤 순서로, 또 어떤 형식으로 종전선언을 할 것인지, 그 선언이 3자 종전선언인지 4자 종전선언인지, 상징적 선언인지, 협정인지 등이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또한 종전선언 다음 단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회담도 남북미 3자인지 아니면 남북미중 4자인지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문에도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고만 되어 있고, 종전선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실 이러한 합의문은 좋은 합의문일 수도 있고 나쁜 합의문일 수도 있는데, 좋은 것은 정상의 축복 하에 큰 틀의 방향을 정해 놓고 실무진들이 일을 빨리 진행시킬 때이고, 나쁜 것은 정상이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합의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지 못할 때 신뢰부족과 합의문의 구체성 결여로 인하여 양쪽 모두 합의실행을 극히 조심스러워할 때이다.

이번 비핵화 과정은 정상이 처음부터 깊이 개입하였기 때문에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을 기대하였는데, 결국은 신뢰부족과 구체성부족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지점에 와 있다.

▲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 종전 외교의 문제점

그런데 여기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몇 가지 나타난다. 첫째, 종전 논의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칼이었다면, 가장 애지중지하고 역점을 기울여서 다루었어야 했던 것이 바로 그 종전선언을 어떠한 조건과 순서, 형식을 갖추고 언제 하느냐에 대한 남북미 간 합의였을 것이다.

또 종전선언이 왜 중요하고, 종전선언을 하면 왜 비핵화를 촉진시킬 수 있고, 종전선언에 대해서 미국이 왜 조심스러운지 등, "왜"와 관련된 질문에 서로 답을 공유하고 있었어야 했다. 즉 문제의식이 공유되어서 합의문이 나왔어야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과연 문제의식에 대한 협상실무진 간 공유가 있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둘째, 만약 종전선언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조건, 순서, 형식에 대한 합의의 공유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었다면 우리 당국자는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을 매우 분주하게, 그리고 전략적으로 뛰어 다니면서 종전선언의 조건과 순서, 형식, 시기에 대한 합의를 도출 했어야 했다. 즉 "종전선언 로드맵"을 만들어서 남북미 간에 공유할 수 있었어야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러한 전략이 과연 있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셋째, 요즘 종전선언의 조건으로 미국이 내세우는 "신고"라는 말이 (핵과 관련하여 어디까지 신고해야 하는지가 모호한)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워싱턴 D.C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비판한 소위 과거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미국정부가 받아들여 과거의 견해와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히 좋은 징조는 아니다. 이러한 현상이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신속하고 정교한 대응책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3. 선 신고, 후 선언의 문제점 : 비가역 대 가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략적 실수를 통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국에게 종전선언이 왜 비핵화를 촉진하는지를 설득하고 설명하고, 원안대로 설득이 안 된다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북한은 아직 전쟁 상대국이다. 군사력으로 보면 훨씬 약세인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잠깐 방심하면 언제 군사적으로 당할지 모르는 전쟁 중에 있다. 물론 우리도 북한으로부터 언제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한 전쟁 중에 만약 북한이 억지력의 관점에서 자신의 최고 핵심전력이자 방어무기인 핵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일방적이고 투명하게 미국에 신고한다면, 적장에게 선제타격의 목표물을 알아서 넘기는 것이 된다. 영화에서 보면 적국 스파이나 할 짓이다.

만약 미국의 비확산 전문가나 한반도 전문가, 군수산업 관련 전문가들이 북한의 신고를 믿을 수 없는 신고라고 일제히 포문을 열면, 비핵화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로 바뀌고 북한은 군사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될뿐만 아니라 매일 선제타격의 공포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신고는 매우 "비가역적"인 행위다. 그래서 아무리 독재국가이고, 권력기반이 안정되어 있고, 또 백두혈통의 김정은 위원장이라 하더라도 이제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 없이 선제타격의 목표물을 미국에 먼저 건네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군부와 인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권력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반면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언급한 것과 달리 종전선언은 그렇게 비가역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한번 선언하면 다시 원상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비가역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종전선언을 취소할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이전의 현상유지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협정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한미동맹의 우산 속에서 북한을 다시 적대국으로 설정하고, 여태까지 해 오던 것을 그대로 할 수 있다. 북한을 다시 "악의 축"으로, "불량국가"로 규정할 수 있고 국가안보보고서나 핵 태세 보고서에서 확실한 위협으로 명확히 언급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그대로 유지하고,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주한미군의 주둔을 설득할 명분도 충분하다. 상황에 따라 오히려 이전의 현상유지보다 더욱 더 강력해진 동맹과 주한미군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합동군사훈련도 재개되고, 전략자산도 다시 들어오고, 미사일 방어무기도 더욱 전격적으로 들어올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종전선언과 핵 신고의 교환은 북한에게 매우 불리한 "비가역적 조치"와 비교적 "가역적인 선언"의 교환이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의 명분을 주어 군부와 인민을 끌고 갈 수 있게 하려면 종전선언이나 그에 준하는 미국의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종전선언 이후의 평화체제나 유엔사의 문제, 주한미군, 주일미군의 문제 등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북한의 붕괴를 포함하여) 비핵화가 되면 나올 문제들이다. 북한의 항복으로 종전이 되어도 나올 문제이고, 평화적으로 비핵화의 길을 가더라도 나올 문제이다. 이 문제가 골치아프다고 계속 뒤로 미룬다면, 이는 책임의 방기이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4. "종전의 시작"이라도 선언하자

필자는 종전선언이 어려우면 종전과정의 로드맵을 만들어 "종전의 시작"을 먼저 선언하고, 종전의 마무리와 함께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협상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물론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면 종전선언이 선행하고 핵 신고가 따르는 순서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전문가들의 머리를 빌어 지혜를 모아 대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들에 그 지혜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비핵화의 끝장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전략수립 및 실행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시대적 요구가 있다. 임기응변적인 대응도 중요하지만, 전술과 전략을 정교하게 조화시키는 준비된 외교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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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이근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해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외교안보연구원 (현 국립외교원)교수를 거쳐 2000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국제정치이론과 "국제질서의 진화"가 최근 주요 연구주제이고, 정책논문으로는 남북관계, 한미관계, 동아시아 국제정치 등에 관한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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