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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ㆍ손학규가 살아야 문재인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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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ㆍ손학규가 살아야 문재인도 산다 [이철희 칼럼] '속 빈' 국민경선으로는 못 이긴다
기대난망, 이대로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의 기세와 흐름으로는 민주당 경선이 대중적 열망을 담아내는 역동적 경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당의 기획이나 대선 주자들의 행보도 성에 차지 않기는 매일반이다.

2002년 민주당의 국민경선 카드는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참여의 열기는 일거에 판세를 뒤집었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임기 말 온갖 비리 의혹과 스캔들로 몰렸던 민주당으로선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변화였다. 당시 국민경선은 낡고 정체된 정치권에 혁신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됐다. 폐쇄적 정당구조를 바꿀 수 있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일진광풍을 일으킨 것이다.

흔히 하듯이 형식과 내용을 구분한다면, 국민경선은 형식을 바꿔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이 제도에 의해 내용적으로 민주당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당의 협애한 사회적 기반이 확장된 것도 아니고, 정책과 노선이 혁신적으로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선출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자잘한 실수 몇 개로 급전직하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국정 지지율이 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민주당 대선 경선의 흥행은 이른바 '빅3'의 치열한 경합에 달렸다. 왼쪽부터 문재인 의원, 김두관 전 지사, 손학규 전 대표. ⓒ프레시안
국민경선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대거 동원되거나, 정당의 사회적 기반으로 편입되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참여의 코스트를 감당할 수 있는 중산층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돼 당의 진로를 좌우하게 됐다. 국민경선 이후에도 공직이나 당직 선거에서 문턱을 없앤 일련의 조치가 계속 됐으나 당의 지지기반이 계층적 프레임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개혁의 이름으로 지구당이 폐지됨에 따라 정당, 특히 진보적 정당의 조직적 기반이 현저하게 축소됐다. 지구당을 통해 지역의 영세자영업자나 저소득 노인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접근이 제도적으로 봉쇄됐다. 지구당이 지역위원회나 당원협의회로 바뀌면서 이제 그 성격도 당 조직에서 개인 조직으로 달라졌다. 후보 중심의 조직으로 바뀌면서 정당의 풀뿌리 기반은 거의 망실되고, 그 결과 지역사회의 약자들이나 열패자들이 정당을 통해 동원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국민경선 또는 형식에서의 개혁이 민주당에게는 되레 손해를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집권당이었을 때 노동이나 사회경제적 이슈는 홀대하고 평화나 파병 등 민족·민주적 이슈에 몰입했다. 정책적 편향이나 이슈 경도가 오히려 강화된 것이다.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 진보성을 강화시켜 나간 것은 이런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책에서의 진보화는 추진되었으나 당의 조직적 기반을 재편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 권리에서 당원과 일반 시민 간의 차이가 없어지고,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중산층의 참여는 늘었으나 사회경제적 하층과의 조직적 연계는 대부분 사라졌다. 따라서 정책적 진보화는 당의 계층적 기반을 조정하는 것으로 연결돼야 그 의미가 온전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에선 이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민주당의 대선 경선은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동원되고, 확장되는 계기여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에 그쳐서는, 즉 이른바 관심을 끄는 흥행에 머물러서는 승리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정치나 선거, 투표에 관심을 잃은 외면층, 기권층에게 호소하고, 그들을 동원할 수 있을 때 민주당의 경선이 불평등 해소의 시대적 흐름, 정권교체의 사회적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경선이 분위기 상 흥행이 되려면 우선 김두관 전 지사의 지지율이 움직여야 한다. 뉴 페이스에다 아웃사이더인 김 전 지사가 강하게 드라이브해 판도에 변화를 만들어내야 경선이 재미있어 진다. 어떤 승부든 처음의 구도대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되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김두관 변수'는 민주당 경선의 흥행 여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라 하겠다. 하지만 지난 8일 출마선언 이후 김 전지사는 기대만큼 강한 임팩트를 못주고 있다. 이러면 곤란하다.

'김두관 변수'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고 있는 반면, 손학규 전 대표는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에 대한 호응도 좋고, 간결하고 강한 언술로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민주당의 경선이 재밌는 3파전으로 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손 전 대표의 지지율 역시 아직 움직이고 있지는 않지만 머지않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손 전 대표의 지지율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와 민주당 지지층 간의 미스매치(mismatch)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통적인 인물유형이나 이력에서 그는 거의 일탈에 가깝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더불어 정치하지 않았고, 출신지역도 수도권이다. 게다가 성향까지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세대 대결의 구도에서 야권이 의지하는 20~30대가 좋아할 스타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손 전 대표의 지지율이 움직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머지않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김두관 전 지사가 분발해 판이 출렁이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고조되면 새삼 손 전 대표를 '발견'하는 유권자도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경선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손 전대표의 진면목이나 메시지에 대한 관심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만약에 '김두관 변수'가 미미한 것으로 판정되면서 경선판이 문재인 대 손학규로 전개되는 것도 손 전 대표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친노 대 비노, 영남 대 수도권, 새로움 대 안정감의 1:1 구도로 경선이 진행될 것이고, 이런 구도는 손 전 대표에게 해볼 만한 것이다.

민주당 경선이 '문재인 대세'로 밋밋하게 진행되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이번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문재인 의원도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명실상부한 국가 지도자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 본선 승리의 동력도 만들어낼 수 있다. 아직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를 뒷배로 해서 친노 세력이 떠밀어 올린 인물이란 이미지 부담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란 출마 선언 당시의 슬로건도 실패작이고, 새롭게 내건 '사람이 먼저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민주당의 경선이 당의 기반을 넓히고, 멀리는 2007년의 대선과 2008년의 총선에서 투표에 불참한 기권층, 가까이는 지난 총선에서 투표 동기를 찾지 못한 기권층을 동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스티븐 쉬어(Steven E, Schier) 교수의 구분에 의하면, 활성화(activation)가 아니라 동원(mobilization)이 답이다.

당의 풀뿌리 조직이 움직여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진영(정당·세력 등)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동원이다. 반대로 활성화는 소수의 특정 집단을 선거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선 정당 조직이 아니라 후보의 매력이 중요하다.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약간 거칠게 비교하자면, 동원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투표에 나서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고 활성화는 스윙보터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은 반MB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정권교체라는 여론이 상당히 높다. 게다가 박 의원은 경제민주화, 복지 등 기존의 보수와는 다른 정책적 어젠더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인간적 매력에 대한 호응도 적지 않다. 따라서 스윙보터에 주목하는 활성화 전략으로는 승리하기 어렵다. 선거를 통해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을 줌으로써 기권했던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동원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당의 사회경제적 기반도 넓어진다.

국민경선만으로는 안 된다. 열린 형식을 넘어 알찬 내용을 채우는 것, 이것이 민주당과 민주당 후보들이 갈 길이다. 그래야 본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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