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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안철수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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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안철수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 [박동천 칼럼] 안철수의 딜레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한국에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게 벌어지고 있다.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여론조사 기관들이 그의 지지도를 물어 날마다 중계방송하는 현상이다. 물론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이어지는 현상이다. 왜 높을까?

내 나름대로 대략 꼽아보자면, 우선 창조적인 기술개발을 선도했던 만큼 지적인 역량이 있을 것 같고, 기업경영에 성공했으니 현실감각도 있을 것이고, 백신 프로그램을 외국 기업에 팔아넘기지 않았으니 민족의식도 어느 정도는 갖췄을 터이며, 출세한 신분이면서도 기득권의 개혁을 강조하고 있으니 정의감도 있으리라는 기대감들이 겹쳐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자질에서 이 정도 되는 인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높은 인기는 개인적인 자질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가 민주당에 입당한대도 과연 현재처럼 높은 인기를 누릴까? 지지층 가운데 무당파가 상당수 빠져나갈 것이다. 그는 기존 정치판 바깥에서 활동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그 사실이 자신에게 커다란 자산이라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기에 안철수의 딜레마가 있다. 민주당에서 후보가 결정되고, 다시 그 후보와 단일화 경쟁에서 안철수가 승리하게 되면 박근혜를 꺾을 확률은 대단히 높아 보인다. 박근혜는 이명박을 어떻게든 정리하지 않으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아버지 박정희를 정리하지 못한다면 1000만 표 남짓 고정표에서 머무를 공산이 크다. 반면에 안철수는 중도무당파를 흡수하고 개혁성향 유권자들의 박근혜 거부 투표까지 합산하면 10%포인트 차이 이상의 압승도 가능할 것이다.

▲ 안철수 서울대 교수 ⓒ프레시안
그러나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어떤가? 국회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개혁을 하자면 한편으로 민주당과 진보당에서 각개약진으로 터져 나오는 여러 갈래 목소리들을 달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새누리당의 심술궂은 방해공작도 물리쳐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하면 과반에 가까운 새누리당이 몽니를 부릴 것이고, 그렇다고 새누리당 의원들과 손잡고 "개혁"을 빙자한 말장난에 나섰다가는 강력한 민심이반을 겪고 말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은 난제를 특별히 지적하는 까닭은 안철수가 4월 선거 때 민주당이 "정당 내부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아" 실망감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민주정치에서 집단 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그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만약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합리성을 바람직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대통령에 설사 당선되더라도, 관료제와 사법부와 언론계와 재계를 장악하고 있는 강고한 기득권 구조에 포섭되어 얼굴마담 노릇에 그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개발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구상들이 기득권의 벽에 짓눌려 번번이 좌절당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의 내부 이해관계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지난 60년 역사를 통해 민주화 운동이 도달한 현주소다. 민주당과 진보당을 합한 민주진보세력 내부의 이해관계 역시 지난 60년간 축적된 민주진보적 열망이 모여 있는 현주소다. 이들이 안에서 어떤 정교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들을 소재로 삼지 않고는 한국정치를 탈바꿈할 길은 없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더럽다고 매도할 일이 아니라, 내부에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상태의 이해관계 중에서 개인적 보상의 차원과 사회적 변혁의 차원을 면밀하게 분별해서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묵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바깥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오직 안에 들어가 상대방과 같이 부대끼면서 시도해야 실낱만큼이라도 성공 가능성이 열린다. 이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오랜 독재 시대를 지나오면서 고난을 받아온 민주진보 측 인사들의 맘속에는 개인적 감정이 이념적 명분으로 쉽사리 혼동되기 때문에, 안철수의 "상식"이 저절로 그들에게도 상식이라고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설득을 시도하다가 벽에 부딪치면 타협책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타협이 시도되는 순간 반대파들로부터 "나눠먹기"라는 비난이 솟구칠 것이다. 이와 같은 비난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도저히 설득도 타협도 불가능하다면, 효과적인 묵살을 보증하기 위해 자기편의 동맹을 충분히 확보해 둬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누구를 상대로 설득을 시도하고, 누구와는 타협을 어떻게 하며, 어떤 상대는 묵살할 수밖에 없는지를 제대로 분간해내는 사람이 리더다. 그리고 그런 형태의 리더십을 지혜로우면서도 평화롭게 발휘하는 사람이어야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열어나갈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이어야 과반수를 차지한 새누리당을 상대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정치는 없다. 한국 정치가 여태까지 저질에 머무르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를 개선하겠다는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만이 중구난방으로 난무할 뿐, 실질적인 제도의 개선책이 발굴되지 못한다. 정치권력을 원칙도 명분도 없이 오로지 사익만을 위해 무자비하게 휘두르면서 자기는 정치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는 이명박에서 끝나야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면서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경쟁자를 매도할 때 써먹는 욕설로 간주하는 무뇌아 수준의 언설은 박근혜에서 끝나야 한다.

나는 안철수가 민주당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사이에 단일화는 '박원순 모델'로 치러지는 것이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정책적 쟁점의 내용을 파고들어가야 하고, 그리고 정치판 안팎에서 나름의 의견과 입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소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존 정치판에 속한 민주당은 안철수에게 부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민주당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거리두기만으로는 되지 않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점은 안철수에게만이 아니라 민주당 내 후보들에게도 똑같이 치명적인 과제에 해당한다. 민주당을 통합시켜서 끌고 갈 수 있는 리더가 나온다면 부동층에 대해서도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안철수라면 단일후보가 되고 대통령에도 당선될 것이다. 그가 민주당 후보라면 안철수도 꺾고 박근혜도 꺾을 것이다. 만약 민주당을 가치와 정책과 노선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인물이 나오지 못한다면, 누가 단일 후보로 나서든지 박근혜를 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 국면에서 안철수의 존재는 이와 같은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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