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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노회찬·심상정·유시민의 패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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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노회찬·심상정·유시민의 패착은… [박동천 칼럼] 한국 진보의 비장한 실패
나는 강기갑,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이 순서는 단지 가나다순일 뿐이니 오해 마시라) 등이 통합진보당을 혁신하려고 기울인 노력을 지지한다. 이석기와 김재연이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국회의원직에서 자진 사퇴해서, 진보세력의 위신을 조금이라도 지켜주는 편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이석기와 김재연이 자진사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제는 강노심유도 "자신사퇴"를 들먹이지는 않는다. 가망 없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언제부터 가망이 없어졌을까? 7월 26일 김제남의 사보타지 때문은 아니다. 김제남 때문에 못하게 된 것은 출당이지 의원직 제명은 아니다. 그래서 묵은 의문이 하나 터져 나온다. 소위 혁신파는 이석기와 김재연과 관련해서 무엇이 목표였을까? 국회의원을 못하게 만드는 것? 당에서만 제명하고 국회의원은 계속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아니면 뚜렷한 목표는 없이 그저 뭔가 그들을 혼냈다고 기록에 남기는 것?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세번째였던 것 같다. 국회의원직에서 쫓아내는 게 목표라면, 지금이라도 민주당에게 한나라당과 합세해서 제명시켜 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국회의원직에서 쫓아내는 게 목표였다면, 김제남의 사보타지를 두고 그렇게까지 욕할 일도 아니고, 그 일 때문에 멘붕에 빠질 일도 아니다. 어차피 출당시켜봤자 국회의원 신분은 유지가 될 테니까, 출당 못시켜서 멘붕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국회의원직에서 쫓아내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는 뜻이 된다.

이석기와 김재연의 국회의원직을 통합진보당이 박탈할 수 있는 길은 현행법상 전혀 없다. 엊그제 법이 바뀌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4월에도 없었고 5월에도 없었고 6월에도 없었다. 그런데 왜 "자진사퇴"를 요구한다는 안에 그렇게 목을 매달았던 것일까? 자진사퇴를 기어이 안 한다고 할 때 민주당의 협조를 얻어 (그리고 국회사상 초유의 선례를 남기면서) 국회의원 제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 해봤자 출당시키는 (이것이야말로 한나라-새누리당이 즐겨 써먹는 용두사미 수법이다) 정도로 참고 넘어갈 것이었으면서, 왜 그렇게 자진사퇴에 묵직한 추를 주렁주렁 매달았던 것일까?

▲ 통합진보당 김재연, 이석기 의원 (왼쪽부터)ⓒ연합
감정과 이치가 쉽사리, 대단히 편의주의적으로, 혼동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해결하는 과제와 어떤 사람을 혼내주는 과제가 혼동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목표가 무엇인지 자신들도 뚜렷하게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하나의 빌미를 기화로 모든 일을 처리해 보겠다는 사행심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일들을 되짚으면서 따져보자.

비례대표 후보 경선과정에서 "총제적인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판단이 계기가 되어 소위 당권파가 오래 전부터 자행해 오던 전횡이 불거지고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보수언론까지 합세해서 당권파를 비난하던 와중에 드디어 "종북" 매카시즘의 광풍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자, 강노심유도 당권파를 제거하고 말고는 주제가 아니고, 단지 경선 부정사태에 책임을 묻는 것이 주제라고 칸막이를 쳤다. 경선 과정에 총체적인 부정이 있었기 때문에 경선으로 뽑힌 모든 후보가 총사퇴해야 맞다는 것이었다.

만약 충분한 다수가 확보되어 이러한 대책을 당의 방침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오직 그랬을 때에만, 불거진 문제가 이것으로써 수습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이는 수습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얼마나 다수여야 충분한 다수인지가 관건이 되는데, 이견을 가지고 이 방침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묵살할 수 있는 다수가 충분한 다수다. 실제로 벌어진 현실을 보면, 이 방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묵살하지 못했다. 얼핏 보면, 황선과 조윤숙은 제명했으니까 이석기와 김재연의 제명 실패만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김제남의 갈팡질팡 때문에 당이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처음의 방침 자체가 문제였다고 본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석기와 김재연이 자진해서 사퇴하지 않을 때 그들을 어떻게 국회의원직에서 사퇴시킬지에 관해 전혀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형체불명의 여론, 따라서 아주 무책임할 수밖에 없는 여론에 의지해서 막연한 요행을 바라고 일을 추진한 탓이라는 진단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애당초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도 해법으로는 굉장히 다양한 가능성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성공가능성도 매우 높았던 대안들도 많이 있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조준호의 진상보고서는 자체적으로 추가 조사의 필요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으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는 진상조사를 일단 추진할 수 있었다. 이랬다고 진상조사가 과연 "제대로" 이뤄졌을까? 나는 물론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통합진보당 말고 어떤 다른 곳에서 어떤 다른 문제로 "진상조사단"이라는 것이 꾸려진들, 그렇게 해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말지를 누가 내게 묻는다면 해봐야 안다는 대꾸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사실은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의 경우라도 내 대답은 "해봐야 안다"밖에 없다. 다른 대안으로는 전원 사퇴 말고 몇 명만 상징적으로 사퇴하는 길도 없지 않았다. 아래 다시 적겠지만, 어차피 책임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퇴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 이상은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대안들이 당내에서 충분한 공감을 자아내려면 당권파와 혁신파 사이에 타협을 거쳐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혁신파는 "경선과정의 총체적 부정"이라는 것을 워낙 잘못된 일로 봤기 때문에, 그런 일에는 타협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맘속에 배수진을 쳤기 때문에, 저런 대안을 완강하게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바로 거기에 착오가 있었다. 일의 성패를 주어진 여건의 맥락 안에서 도모하는 관점이 사유를 인도하지 못하고, 실패에 종종 뒤따르는 비장미를 추구하는 도착된 심미주의가 작용한 것이다.

실패로 끝나도 고귀한 시도가 세상에는 있다. 실패에 수반되는 비장미가 진짜인 경우는 어떤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유일한 길이 그 길뿐이었을 때다. 다른 길들이 있었는데도, 오직 비장미를 연출하기 위해 실패가 뻔한 길을 택했다면, 그렇게 연출된 비장미는 가식에 불과하다. 경선으로 뽑힌 비례대표 후보 전원 사퇴가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유일한 길이었을까?

대리투표가 광범위하게 행해졌다는 정황까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무슨 가치가 훼손되고, 그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면, 먼저 몇 가지를 물어야 한다. 대리투표는 민주주의에서 절대로 없어야 할 절대악인가? 실제로 대리투표가 행해져서 결과가 선에서 악으로 바뀌었는가?

대리투표는 절대악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리라고 하는 행위는 현대 사회에서 지극히 널리 이뤄지는 일이고, 그 대부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선거법에서 대리투표를 금지하고 있다면, 대리투표가 절대악이라서가 아니라, 대리투표를 허용했을 때 우려되는 어떤 가능성, 즉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의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대리투표가 절대악은 이미 아닌데, 어쨌든 하나의 악이기는 했는지를 가려내려면, 두번째 질문, 즉 실제로 대리투표가 행해져서 그 때문에 결과가 선에서 악으로 바뀌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당내 일각에서 실제로 제기되었지만, 당을 대표하는 권위적인 기구에서는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단순히 대리투표가 잘못이기 때문에 투표 결과를 통째로 인정할 수 없고, 그러니까 경선을 통해 명부에 오른 후보들은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만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황선이나 조윤숙이 어떤 비리를 저질러서 책임을 져야 하는지, 대리투표가 없었더라면 이석기, 윤금순, 김재연 대신 누가 당선되었을 것인지 등에 관해, 어떤 확정적인 대답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그런 대답을 찾아보려는 자세 자체가 없었다.

실질적인 결과야 어쨌든지, 대리투표가 이뤄진 것은 적어도 절차적 하자로 매우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생각이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추진한 원동력이었다고 한다면, 누구보다도 그렇게 추진한 당사자들이 얼마나 생각이 짧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아주 간단하게 밝힐 수 있다.

투표를 대리로 한 것이 만약 잘못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자신의 투표권을 빼앗긴 당사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부당함을 고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 당사자들이 나서서 강탈당한 권리의 회복을 요청했다는 얘기는 별로 못 들었다. 다시 말해, "관행적으로 늘 있던 일"이라는 당권파 측의 반론에 일리가 상당히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아무리 관행일지라도, 그것이 잘못이라면 고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잘못"이라는 판정을 최초에 누가 해야 하는가? 누가 할 수 있는가? 권리를 침해당한 당사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에서부터 그 판정이 이뤄져야 사안의 본질이 명명백백해지지 않겠는가? 당사자들이 무슨 이유에서든 미온적이거나 소극적인데, 혁신파의 간부들이 대신해서 불의를 구제하겠다고 나선다면, 비례대표 후보를 뽑는 의사의 표현은 대리로 하면 안 되는데 이러한 불의의 판단과 규제는 왜 대리로 해도 되는가?

이와 같은 고려는 대리투표가 앞으로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거기에 무언가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여태까지 있었던 것만큼의 정처 없는 소동을 벌일 정도로 잘못은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잘못인 것은 맞되, 과연 당을 깨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잘못이냐는 질문은 한국 진보진영에서 상습적으로 발견되는 폐쇄적 사유를 치유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리투표가 실질적으로 잘못인지 여부를 떠나 어쨌든 법이 금지하는 것이니 잘못이라는 식의 율법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통로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대리투표가 일종의 관행이었다고 하면, 그 관행은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고친다고 하면 바로 당장 고쳐야 하는 것일까? 바로 당장 고칠 수는 있는 것일까? 이석기와 김재연이 자진사퇴하면, 또는 그들을 출당조치하면 전국 각지의 당원들 사이에 만연하던 관행이 바로 당장 바뀔까? 이런 종류의 관행을 바꾸는 일은, 혁신파의 발걸음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주도권이 형성되어 있는 상태라고 해도, 꼼꼼한 기획과 관리, 그리고 지극 정성이 거기 곁들여졌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석기와 김재연이 만약 자진사퇴했다고 한다면, 대리투표의 관행에 대해 커다란 경종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진해서 사퇴하게 만들 길은 세상에 없다. 사퇴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을 사퇴시키려면 강제 사퇴 말고는 길이 없는데, 국회의원을 강제 사퇴시킬 수 있는 길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의원수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퇴 또는 제명을 통해 경종을 울린다는 발상은 전제가 도저히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폐기되었어야 마땅한 것이다. 이처럼 어떤 각도에서 살펴보더라도, 대리투표라는 관행을 당장 화끈하게 없애버릴 수 있는 길은 없다. 어차피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보면, 앞으로 있게 될 경선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근차근 디테일을 충실하게 챙기면서 방비하는 것이 온당한 길이다. 이석기와 김재연까지 자진 사퇴해서 쾌도난마의 경종을 울렸더라면 효과가 더욱 컸겠지만, 여태까지 있었던 상채기만 해도 대리투표에 대해 당원 대다수는 상당한 경각심을 가졌을 것이다.

쓰라린 좌절을 겪은 혁신파가 탈당을 해야 할지, 탈당해서 새 당을 만들어야 할지 민주당으로 들어가야 할지, 나는 이런 문제는 남에게 권고하는 순간 주제 넘는 짓이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 그리고 함께 잘 알아서 지혜롭게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단, 어떤 판단을 내리든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을 참고하면, 장차 한국 정치를 위해 훨씬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실의 세력관계를 도외시한 기획이 실패했을 때 얼마나 참담한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번의 기획이 좋은 뜻에서 출발했는데 실패했을까? 위에 적었지만 다시 적는다. 감정과 이치가 쉽사리, 대단히 편의주의적으로, 혼동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떤 일을 해결하는 과제와 어떤 사람을 혼내주는 과제가 혼동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목표가 무엇인지 자신들도 뚜렷하게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하나의 빌미를 기화로 모든 일을 처리해 보겠다는 사행심 때문이었다.

뜻이 아무리 높고 아름다워도 성사시킬 만한 힘이 부족할 때에는 부분적인 성과에 일단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해치울 만큼 힘이 강할 때에는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과연 높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끝없이 자문해야 한다. 특히 그 일은 높고 아름답더라도 그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지를 자문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번 경우에 강심노유의 뜻은 누가 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아름답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애당초 뜻했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자체가, 논란이 이석기와 김재연의 사퇴문제로 집중되면서, 불분명해지고 말았다. 자기들에게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주어졌다고 해도, 일을 추진한 방식에는 전횡의 요소가 상당히 섞여 있었다. 상대가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이 쪽 편의 전횡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반대 세력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오판한 것은 아마추어리즘의 냄새가 짙다.

탈당을 하든, 분당을 하든, 아니면 이 논란을 여기서 일단 접고 당 안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하든, 이와 같은 실책들을 깨닫고 스스로를 경계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칼자루만 잡았다 하면 칼질에 미쳐서 어디서 그쳐야 하는지를 모른다. 한국의 진보는 맘에 안 드는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구 하나 지목해서 사퇴시키든지 아니면 자기가 사퇴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칼자루 잡았을 때 칼질을 조심해야 하고, 누구 사퇴시키기 전에 진짜 문제의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며, 싫다고 보따리 싸는 짓은 아주 가끔만 시도해야지 상습적으로 했다가는 자신을 망치고 공동체를 망칠 뿐이다. 이를 알고 실천적으로 궁행하는 정치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안철수가 인기를 끌 이유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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