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원의 요청에 여야 의원이 함께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고,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봉제공장이 밀집된 마을, 작은 것들이 모여 큰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외된 공장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가는 작업은 여야가 따로 없을 것이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 붐이 일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있었던 도전과 변화의 결과물로서 현재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결성된 협동조합과 그 구성원들의 웃음과 가능성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1960~70년대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섬유의류업종이 IMF를 기점으로 도시의 그림자 취급을 받으며 소외되고 있는 것은 업종의 한계가 아닌 정책적 무관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금융과 서비스의 성장을 외치면서 제조업을 외면하는 아이러니, 제조업이라고 하면 장치산업 중심의 거대한 공장만 떠올리는 관료적 사고의 한계가 우리 경제의 뿌리를 서서히 말려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되지만, 이곳 창신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이하 '봉제조합')』의 이야기는 작은 마음이 보여 큰 역사를 만들어가는 희망을 보여준다.
봉제공장의 기술자가 패션쇼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수다공방 패션쇼"와 "참신나는옷"이라는 제조업 중심의 사회적기업이 이곳 창신동에서 태어나면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거나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바로 "할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은 공장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기업의 시도로 이어졌고,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 통과와 함께 협동조합의 형태로 스스로 변화·발전하게 되었다.
봉제조합은 이제 막 출발했지만, 그 내실은 그간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듯 탄탄하다. 설립 6개월 만에 정식 조합원 230여 명과 동호회 형태의 모임회원 700여 명을 넘어섰다. 각 구성원이 5~15명 정도의 직원과 함께 일하는 공장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수 천명의 기술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다.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소박하다. 노동자들에게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봉지커피와 드링크제, 주전부리를 공동구매하고 모든 공장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쓰레기봉투, 실과 기초 부자재를 공동으로 구매·사용해서 생산원가를 절감한다. 명절에는 직원과 친지들에게 줄 선물도 협의를 통해 대량으로 함께 구입하고 있다. 조합비와 공동구매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수익금으로 상근실무자의 인건비를 겨우 충당할 정도이지만, 이런 사업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남다르다. 생산자 협동조합이 이처럼 재미있게 운영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 봉제협동조합, '모래알'이 '흙'으로 변해가는 신호가 될 수 있을까. ⓒ전순옥 의원 제공 |
사업체라고 하지만, 그 규모가 영세할수록 자영업의 형태와 가까워지고 개별 업체가 다루는 품목이 다르면 같은 봉제업이라 하더라도 이해관계가 달라 협력이 힘들어진다. 바로 이런 점에서 봉제업계 사람들은 스스로를 "모래알"이라고 자칭하는데, 봉제조합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이 모래알이 "흙"으로 변해가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씨가 뿌려지면 싹을 틔어내어 생명을 움트게 하는 흙은 모래알만큼 작은 알갱이들이지만 모래보다 훨씬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술을 가진 생산자협동조합이 소비자협동조합과 함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다.
협동조합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극한 경쟁을 넘어 '협력과 호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가장 오래되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탄생한 봉제조합은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고 포장하는 언어는 거칠지만 '공동브랜드 개발'과 '글로벌 SPA브랜드와 경쟁'이라는 구체적이고 원대한 꿈을 보건대 자신들의 고생스러웠던 과거와 인내가 마침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렵고 현란한 학문적 수사로 표출되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과 결연한 음성 속에 드디어 희망이 뿌리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 심어준 희망이 아니다. 작은 마음들이 모여 스스로 일구어낸 희망이다. 이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몫일 것이다. 사회적 경제를 꽃피우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가까운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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