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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지배하는 '과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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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지배하는 '과학'이란? [서리풀 연구通] 암약하는 기업, 방관하는 정부
한국 사회에서 기업이 돈벌이를 하다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경우는 낯설지 않다. 연구자가 사람들의 고통보다는 연구비를 제공하는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 또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관련 기사 : 윤소하 "식약처장, 교수 시절 인보사 용역보고서 작성")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를 확산하기 위해 연구자 네트워크를 설립하거나(☞ 관련 기사 : 코카콜라가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 좀 더 노골적 방식으로 저명한 연구자에게 직접 연구비를 제공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관련 기사 : 그 연구, 왜 하셨어요?)

최근 국제학술지 <세계화와 건강>에 발표된 논문은 다국적 기업들이 공중보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취한 전략 중 일부를 보여준다.(☞ 바로 가기 : )

국제생명과학연구소(International Life Science Institute, ILSI)는 코카콜라를 비롯한 여러 다국적 기업들이 지원해 온 연구기관이다. 기업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은 이 연구소가 가짜 과학을 내세우는 전위대의 하나이며, 겉으로는 중립적 과학을 표방하면서 기업에 유리한 입장을 정책 결정자와 국제기구들에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고 비판해왔다.

이 연구소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 미국 시민단체 '알 권리(Right to Know)' 공동 연구팀은 식품기업이나 음료기업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돈을 받은 사람, 해당 업계와 관련된 법적 지위 또는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을 추려내어 이들의 전자우편과 첨부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료는 놀랍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한 것이었다. ILSI는 기업에 유리한 내용을 홍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코카콜라의 전 수석부회장이자 ILSI 설립자로 오랜 기간 연구소 회장을 맡아온 알렉스 말라스피나가 보낸 전자우편은 미국에서 새로 나온 가이드라인 내용에 개탄하며 닥쳐올 미래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정말 재앙입니다! 그들은(정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탄산음료에 매기는 세금, 수정된 학교 급식 프로그램, 사람들에게 설탕 섭취를 줄이도록 가르치는 강력한 교육, 설탕이 들어간 음식과 음료에 대한 광고 규제, 가공식품에 첨가하는 설탕의 양을 줄이라는 질병통제센터의 압박 같은 것 말이지요. 또 많은 나라가 미국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이라고 예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에 대한) 강력한 방어를 넘어서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에게 분명한 방해가 되는 사람들에게 로비를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2017년 즈음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은 ILSI를 민간 행위자로 간주하면서, ILSI가 기업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말라스피나는 당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었던 마가렛 챈에게 접근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챈은 이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세계보건기구가 아니라 기업이라며 기업의 중요성을 강변하는 동시에, 챈이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고 미국의 이해에 반하여 움직인다는 민족주의적 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런 결과를 기반으로 ILSI가 기업 이해에 적대적인 정책이나 사람들을 좌절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동시에 이런 종류의 조직을 공익 목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자선단체로 여겨서는 안 되며, 이들이 지원하는 연구는 식품, 음료, 보조제, 농화학 기업의 이해를 촉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 기업과 연구자, 기업과 정부 기관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정보공개 청구를 한다고 해도 이 연구처럼 이메일 자료까지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도 'ILSI 코리아'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ILSI 코리아의 홈페이지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농촌진흥청, 식품안전정보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로고가 ILSI 로고와 나란히 놓여있다.(☞ 바로 가기 :)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기업에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자료를 삭제하라'고 조언한 환경부 공무원의 행태로부터, 이들 사이의 은밀하고 위험한 관계를 상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관련 기사 : <국민일보> 7월 24일 자 )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회적 공익에 책무성을 가져야 할 연구자와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결국 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기업, 연구자, 국가 모두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매서운 감시뿐이다.

* 서지정보
- Steele, S., Ruskin, G., Sarcevic, L., McKee, M., & Stuckler, D. (2019). Are industry-funded charities promoting “advocacy-led studies” or “evidence-based science”?: a case study of the International Life Sciences Institute. Globalization and health, 15(1),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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