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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치료재료에 대한 환상, 그리고 여성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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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첨단 치료재료에 대한 환상, 그리고 여성 건강 [서리풀 연구通] 질 그물망(vaginal mesh) 이야기
며칠 전 호주 여성들이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이 생산한 질 그물망에 대해 집단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관련 기사 : <가디언> 11월 21일 자 '') 오늘 소개할 논문은 호주 머시 병원 연구자와 세계여성비뇨의학회의 전임 회장이 국제학술지 <완경기 Climacteric>에 발표한 것으로, 이 사건의 배경과 교훈을 다루고 있다.(☞ 바로 가기 : '')

출산 후 많은 여성이 복압이 올라갈 때 무의식적으로 소변이 흘러나오는 복압성 요실금, 혹은 골반 안에 있어야 할 장기가 빠져나오는 골반장기 탈출을 겪는다. 이런 질환들은 여성의 일상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5년 복압성 요실금을 치료하는 간단한 수술법이 개발되면서 매년 30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이와 관련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더 나은 치료법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골반 바닥을 지탱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재료인 질 그물망(vaginal mesh)이 개발되었다. 이전의 수술법으로 치료받은 여성의 상당수는 재발로 고통받았고, 질 그물망은 재발을 막는 좋은 해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질 그물망 자체가 또 다른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탈장 수술에 도움이 되는 재료이니 골반 장기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아닌) 믿음에 기초하여 질 그물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 기존 방법을 이용한 골반장기 탈출 수술 후의 재발률이 상당히 과대추정되었다는 점이 주로 작동했다.

이야기의 연원을 좇다 보면 보스턴사이언티픽이 복압성 요실금에 쓰는 ProtoGenⓇ 그물망을 미국 식품의약청(FDA) 510(k) 체계에 따라 허가를 받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FDA의 510(k) 체계는 모든 치료재료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안전성, 유효성 평가를 할 수 없으니 기존에 허가받은 치료재료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허가를 해주는 허가 간소화 절차이다.(☞ 관련 기사 : '그 제품은 안전한가요? 국가의 책임을 묻다') 이 제품은 원래 복부 탈장 수술에 이용되었으나 이 절차 덕분에 별도의 평가 없이 질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1999년 보스턴사이언티픽은 안전성 우려가 있다며 해당 제품을 시장에서 철수시켰지만, 미국 FDA는 그 이후로도 이런 종류의 그물망 제품이 중등도 위험 수준인 Class Ⅱ에 해당한다고 간주하여 510(k)에 따라 허가를 내어주었다. 다른 규제기관들은 FDA 기준을 통과했으니 이 제품들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았다. 이후 질 그물망 사용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그물망 수축, 그물망 노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에 대한 훈련은 주말을 이용해 진행되는 단기 교육이 대부분이었다.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외과 의사들이 여성 환자의 몸에 그물망을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2008년 미국 FDA는 그물망 사용과 관련하여 드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물망 노출, 질 출혈, 그물망과 관련된 통증, 감염, 장기 천공, 배뇨 시 증상, 성교 시 통증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의사를 훈련하고,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후 동의를 받으라는 권고를 내놓았다. 2011년 FDA는 두 번째 안전 서한을 발표하고, 다음 해 안전성과 유효성 문제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명령했다. 이후 바드(Bard)사와 존슨앤존슨의 자회사인 에티콘(Ethicon)사는 제품 상당수를 회수했다. 이어 2016년 FDA는 질 탈출증에 쓰는 그물망을 위험한 치료재료 등급인 Class Ⅲ으로 재분류했지만, 복압성 요실금 수술에 쓰이는 그물망은 재분류하지 않았다.

한편 2008년 호주의 치료제품관리국(Therapeutic Goods Administration, TGA)은 FDA의 경고를 수용하여 골반 바닥 강화에 쓰이는 그물망의 안전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후 관련된 부작용으로 고통받던 환자들이 조직화 되었고, 그물망 이슈가 정치화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호주 상원 의회에서 이에 대한 공식 조사를 수행하기에 이른다. 상원 조사위원회는 그물망의 이용과 도입에 대한 규제, 자료 기록, 임상 진료 개선, 새로운 치료재료와 시술을 도입하는 적절한 거버넌스 구조를 개발하고, 그물망 부작용이 발생한 여성의 필요에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바로 가기 : '') 다른 나라들에서도 조사가 이어졌다. 유럽연합의 새로운 건강 위험에 대한 과학위원회(Scientific Committee on Emerging and Newly Identified Health Risks, SCENIHR), 스코틀랜드의 독립검토보고서,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 또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2018년 호주와 뉴질랜드의 규제 기관은 골반장기 탈출에 쓰는 질 그물망의 허가를 철회했고, 같은 해 6월 영국에서도 모든 그물망 삽입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2017년 12월 뉴질랜드의 보건부 장관은 그물망 생산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생산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그물망 삽입술이 시행되는 빈도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물망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이와 관련된 의료소송 역시 늘어났다. 2012년 바드사(社)를 상대로 한 피해자의 첫 승소 판결에서, 550만 달러(약 65억 원)의 보상금 지급이 결정되었다. 이 사례 덕분에 세계적으로 질 그물망 부작용에 대한 집단 소송이 시작되었다. 골반장기 탈출과 복압성 요실금 치료에 쓰는 서로 다른 종류의 그물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소송 광고와 언론 보도로 인해 불필요한 우려와 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검토한 후 논문의 끝부분에서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첫째, 여성의 질이 매우 특수한 장기라는 점이다. 그동안 의사들은 해부학적 정상성에 근거한 결과로 수술의 성과를 판단했지, 수술받은 여성이 경험하는 성 기능의 변화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물망 시술 후 성교 시 통증을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며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던 의사의 모습이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관련 기사 : <가디언> 2017년 8월 28일 자 '') 둘째, 새로운 치료재료를 이용한 시술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근거가 충분한지 따져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기술의 효과에 열광하며 긴 시간에 걸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익숙한 지적이다. 셋째, 그물망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훈련 기간이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에, 숙련도가 부족한 의사가 수술을 수술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넷째, 그물망으로 인한 부작용의 강도를 고려할 때 수술 결과를 정리한 자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지금 문제가 된 수술과 재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의 수술방법에도 문제가 있음으로, 소송과 부정적 이미지만을 이유로 해당 제품이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해로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영국과 미국,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질 그물망으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지만, 한국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2006년 민간의료보험 회사들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요실금 수술 ‘사태’를 떠올려보면, 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수술을 받은 것을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관련 기사 : <한겨레> 2006년 6월 23일 자 '') 이 수술이 속칭 '이쁜이 수술'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소문까지 생각해보면, 피해를 보았더라도 선뜻 나서 이야기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크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제가 없기를 기원하며 정부가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이 문제인지, 치료재료를 도입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정부는 안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논문의 저자들이 강조했듯, 모든 과정은 환자들의 관점에서 환자의 참여와 감시 아래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 서지정보
- Karmakar, D., & Hayward, L. (2019). What can we learn from the vaginal mesh story? Climacteric, 22(3), 277-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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