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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도시에서 해리포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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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도시에서 해리포터를 만나다 [손호철의 포르투갈 여행기] 7. 포르투 : 포르투갈의 '정신적 수도'와 <해리 포터>
엄청나게 높은 다리, 다리, 다리….

북포르투갈의 중심지로 리스본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큰 포르투(Porto)는 다양한 모양의 다리들이 놓여있는 '다리의 도시'이다. 원래 바닷가에 철책으로 감싼 작은 '요새도시'였던 포르투에는 19세기 후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도우루강 주변으로 주거지들이 형성됐다. 도우루 계곡을 흘러내려온 도우루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포르투는 시내 한 복판을 도우루강이 관통하는 꼴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여러 다리들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강폭이 넓은 만큼 그 길이는 엄청나게 길다.

핀하우를 거쳐 한참을 달려 포르투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엄청나게 높은 다리가 나타났고 자동차는 그 밑의 도로를 지나갔다. 특히 다리 위에 움직이는 깨알만한 작은 점들을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다. 찾아보니, 이 다리는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에펠이 1887년 만든 D. 마링 피아 다리다. 길이가 353미터로 1894년 더 긴 다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7년 간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높이 61미터에 단일한 아치로 무게를 버티고 있다.

그런 만큼 에펠이 완성 당시 "강철로 지을 수 있는 한계에 도전한 다리"라고 자랑스러워했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원래 포르투와 리스본 열차가 오가던 다리이지만 1991년 다른 다리로 철도를 옮기고, 지금은 간이 크고 모험심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포르투 시내와 도우루강을 감상하는 관광용 다리로 사용되고 있다. 밑에서 올려다봐도 사람들이 새까만 점으로 보이는데 저 위에서 다리를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떨지 아찔하다. 높이 61미터면 거의 20층 이상의 빌딩에서 허공을 걷는다는 이야기이다.

▲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에펠이 1887년 포르투의 도우루강에 만든 D. 마링피아 다리 ⓒ 손호철

고대 시절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식민지였다. 포르투라는 이름부터가 중요한 항구라는 의미로, 로마인들이 라틴어로 '항구'라는 뜻의 '포르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포르투갈의 수도는 물론 리스본이다. 그러나 포르투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포르투가 '포르투갈의 정신적 수도'라고 자부한다. 두 가지만 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우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와인의 이름이 바로 '포트(port) 와인' 내지 '포르투(porto)와인'이다. 이 와인들은 도우루 계곡에서 만들어졌지만 포르투에서 세계로 수출되면서 '도우루 와인'이 아닌 이 같은 이름을 갖게 됐다.

보다 중요한 것으로,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포르투에서 나왔다. 포르투갈은 '포르투의 구역'이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8세기 초부터 아랍의 지배 하에 있었다. 9세기 말 포르투와 인근 지역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지배하는 자치지역이 생겨났는데 이를 '포르투의 구역'이라는 뜻의 '포르투 칼르(Portus Calle)'로 불렸다. 이후 알폰소왕이 12세기 초 독립국가를 선언하면서 우리가 아는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생겨났고 그 이름을 포르투갈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곳은 포르투갈을 대탐험의 나라로 이끈 항해왕 헨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1387년 포르투갈의 존 왕은 영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랭카스타의 공주와 이곳에서 결혼을 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포르투갈을 해상제국으로 인도한 항해왕 헨리이다. 헨리가 아프리카원정에 나섰던 1415년 포르투 주민들은 소를 잡아 원정대에게 살코기 등은 다 내주고 육지에 남은 자신들은 내장만 먹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포르투 스타일 소내장 요리'이다.

뿐만 아니라 포르투는 포르투갈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중심지이자 보루였다. 이는 포르투가 일찍이 유럽과의 교역의 중심지로 유럽의 근대 민주주의 사상을 가장 먼저 접촉하고 들여왔기 때문이다. 1820~30년대 포르투갈에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세우자는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곳은 포르투였다. 1832년에서 33년까지 왕당파군 8만 명은 공화군 8000명이 저항하는 포르투를 포위하고 1년 간 압박했다. 수적 열세와 식량 부족에 따른 굶주림과 질병 등에도 불구하고 포르투 주민들은 영웅적으로 버텨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때 생겨난 별명이 '불패의 도시 포르투'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현재의 포르투갈 공화국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자유주의 혁명 당시에도 포르투는 다시 한 번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보루였다. 포르투는 '민주주의, 평등, 휴머니즘'을 내걸고 왕정 타도에 앞장섰다. 그런 만큼 포르투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다른 어느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포르투 관광의 핵심인 구시가지 히베리아지구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히베리아지구로 차를 몰았다. 히베리아지구로 들어가자 포르투의 렌드마크 같은 높은 탑이 나타났다. 18세기에 지은 '성직자의 교회'라는 성당의 부속건물인 '성직자의 탑'이다. 탑 한 쪽에 시계가 달려 있어 '시계탑'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그 높이 때문에 구시가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 숙소를 찾아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미로 같은 구시가지를 20분 이상 헤맸다. 간신히 찾고 보니 성직자의 탑의 바로 뒤였다. 이렇게 쉬운 곳을 찾느라고 이리 고생을 했으니. 하지만 덕분에 아름다운 골목을 구경했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 포르투의 랜드마크인 '성직자의 탑' ⓒ 손호철

숙소에 짐을 풀고 조금 전에 차로 헤맨 구시가지를 목적 없이 걸었다. 아름다운 골목길은 첩첩이 쌓인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었다. 낡고 세월의 흔적이 쌓인 건물들과 수많은 발자국에 의해 이제는 반들반들해진 대리석 조각의 보도블록들을 걷고 있자,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색창연한 커다란 분수대가 있어 설명을 읽어보니 1772년에 만든 음수대였다.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물고기들을 가지각색의 헝겊으로 만들어 걸어 놓은 상점 진열장으로부터 각종 코르크 마개를 모아 놓은 진열장 등 낡은 건물 사이로 나타나는 상점들도 너무 아름답다. 왜 포르투가 '2001년 유럽문화의 수도'로 선정되었는지 이해가 됐다.

▲ 역사가 묻어나는 포르투 역사지구의 뒷골목 ⓒ 손호철

▲ 250년 된 음수대 ⓒ 손호철

▲ 포르투갈의 상징인 물고기 장식을 파는 가게의 진열창이 너무 아릅답다. ⓒ 손호철

골목길을 나와 큰 길을 걸어 바닷가로 향했다. 큰 길에도 아름다운 건물들이 이어진다. 조금 걷자 'Casa Oriental'이라는 상호의 멋진 집이 나타났다. 1910년부터 영업했더니 100년이 넘는 상점인데, '동양집'이라니 뭐 하는 집인지 궁금해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환성이 터져 나왔다. 포르투갈, 특히 포르투가 자랑하는 상품인 해산물 통조림을 파는 곳인데, 통조림으로 벽면을 가득 채워 진열한 것이 기하학적인 예술작품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정어리 통조림이외에도 문어, 새우 등 포르투 앞바다에서 잡히는 각가지 해산물들을 통조림으로 만든 것을 팔았다. 값은 일반 슈퍼에서 파는 것보다 비싸지만 너무 예뻐서 선물용으로 가득 샀다.

▲ 100년 된 통조림가게 ⓒ 손호철

▲ 예술이 따로 없는 통조림 진열 ⓒ 손호철

포르투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성당과 아담한 포르투대학을 지나자 큰 와인 가게가 나타났다. 각 와인 병에는 노란 쪽지에 가격이 쓰여 있는데 포르트 와인은 보통 20유로가 넘고, 수백 유로를 넘는 것도 있었다. 역시 포르트 와인은 가격이 보통 와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조금 더 가자 시청사가 있는 아름다운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가자 도도하게 흐르는 북포르투갈의 젖줄인 도우루강이 나타났다. 강 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도우루 계곡으로부터 와인을 실어 나르던 라벨로라는 배를 타고 도우루강 크루즈를 즐기고 있었고, 강 건너에는 강을 따라 지은 각종 건물들의 멋진 풍경이 이어진다.

▲ 포르투 와인 가게 ⓒ 손호철

그러나 고개를 돌려 강 건너에서 강 이쪽, 즉 히베리아지구의 강변으로 눈길을 옮기면 경치는 더욱 아름답다. 인도 전용의 강변도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치를 즐기고 있고 여기저기 거리 악사들의 공연이 열리고 있다. 강변 도로 뒤에는 3~4미터 높이의 돌담 위에 형형색색의 옛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색의 향연이다. 특히 이들 건물들의 1층은 대부분 식당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도우루강을 감상하며 음식이나 음료를 즐기고 있다. 이 경치는 강을 건너 반대쪽이나 크루즈를 타고 강 위에서 보면 더욱 아름답다.

▲ 도우루강변 가게들의 색깔이 멋지다. ⓒ 손호철

▲ 도우루 강변 가게 창에 바친 강 반대편 건물들 ⓒ 손호철

강을 따라 조금 걸어가자 또 다른 다리가 나타났다. 돔 루이스 1세 다리다. 19세기 말에 돔 루이스 1세의 생일 선물로 지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붙어있는 다리이다. D. 마링 피아 다리와 마찬가지로 강철을 이용해 아치형으로 지었지만 이 다리는 D. 마링 피아 다리와 달리 2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으로는 차와 사람들이 다니고 위층으로는 지하철이 다닌다. 돌 루이스 1세 다리를 반환점으로 다시 돌아와 강변의 경치 좋은 식당에서 포르투 와인에 식사를 즐겼다.

▲ 도우루강으로 포르투와인을 운반하던 배는 이제 관광선이 됐다. ⓒ 손호철

그러나 요즘 들어 포르투 최고의 관광 명소는 포르투 대성당도, 성직자의 탑도, 히베리아지구 강변 식당가도 아니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서점이다. 도우루강으로 가기 위해 시내를 걷고 있다가, 사람들이 길게 서 있는 엄청나게 긴 줄을 발견했다. 포르투 어디에서도 보지 못 한 광경이자, 파리 루부르박물관 앞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뭘 보기 위해 땡볕에 이렇게 줄을 서 있나" 궁금해서 줄 끝으로 가보니, 다른 것이 아니라 한 서점이었다. 요즘 같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서점이 관광 명소라니? 그것도 긴 줄을 서서 5유로짜리 입장권을 사야하고 다시 한 시간 이상 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관광 명소이다. 그것은 <해리포터> 때문이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2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초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 설상가상으로 도둑이 들어 어머니 유품을 다 도둑맞았다. 그는 절망을 벗어나기 위해 1991년 영어학원 교사로 포르투에 왔다. 여기에서 그는 중고생 학생들과 비즈니스맨, 주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시간이 날 때면 해리포터 7권의 시리즈에 대해 구상을 하고 준비를 했다. 그 때 틈이 나면 들렀던 곳이 바로 렐루(Lello)서점이라고 한다. 그는 포르투에서 열애에 빠져 딸 제시카 출산했지만 출산 직후 파국을 맞아 한 달 된 딸을 안고 영국으로 돌아가 <해리포터>를 썼다.

▲ <해리포터> 때문에 포르투의 제1의 관광지로 떠오른 렐루서점에 들어가기 위해 한시간씩 줄을 선 사람들 ⓒ 손호철

렐루서점은 1906년 아트누보와 네오-고딕 풍으로 건설된 서점으로, 아름다운 건축으로 소문이 난 서점이다. 그 결과 최근에 세계적인 여행 안내서인 '론리 플래닛'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3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서점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리포터>가 출판되고 <해리포터>에 나오는 서점이 여기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미어지기 시작했고, 할 수 없이 2015년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 '산업'에 방점을 찍은 문화 '산업'이고 '팬덤 현상'이다.

하긴 <해리 포터>가 1997~2007년까지 10년 간 7권이 출판되어 지금까지 5억 권이 팔렸고, 특히 7권의 시리즈 중 마지막 책은 미국에서만 출간 24시간에 1천 만 권 이상 팔렸다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판타지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해리포터>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대중성만은 나와 같은 진보학자들이나 진보운동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전운동이 기승을 부리던 1960년 후반, 밥 딜런과 함께 포크음악을 주도했던 참여음악가가 필 오츠다. 그는 70년대 들어 닉슨이 집권하는 등 미국이 보수화되고 진보음악이 인기를 잃자 엘리스 프레슬리의 복장을 하고 전기기타를 들고 공연장에 나타나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는 진보음악이 대중성을 잃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진보음악이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대중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고민을 그런 식으로 분출한 것이다. 서점 앞의 긴 줄을 보고 있자, '진보적 사상의 책도 해리포터와 같은 대중성을 갖도록 쓸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이 돈을 내고 줄을 서면서까지 서점 구경을 하나 궁금해서 다음 날 새벽 같이 일어나 서점으로 향했다. 사실 숙소가 구시가지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포르투가 '파티의 도시'라 밤새 젊은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까지 부르고 돌아다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서점으로 가는 길은 어제 파티의 흔적인 빈 술병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었다. 서점 옆 가게 앞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노숙자의 잠자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 밤샘 파티를 하고 새벽같이 귀가들에 오르고 있는 청년들(좌)과 '파티의 도시'다운 흔적들 ⓒ 손호철

▲ 어느 도시에나 있는 노숙자들이 포르투라고 예외는 아니다. ⓒ 손호철

서점에 도착해서 보니 아침 8시 반이고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가서 새벽부터 이렇게 줄 서서 기다려보기도, 1착을 해보기도 평생 처음이다. 문 바로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명씩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홉시가 넘자 긴 줄이 생겼고 조금 지나자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지나자 직원들이 한명씩 나타나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열시가 가까워지자 직원들이 문을 열고 관람객들을 들여보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중동 계통으로 보이는 사람 셋이 내 앞에 끼어들어 먼저 들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줄 뒤를 가리키며 "저 뒤에 가서 줄을 서라"고 이야기했더니 웃으면서 티켓을 보여줬다. 그것은 20유로짜리 티켓이었다. 20유로짜리는 줄 서지 않고 제일 먼저 들어가는 급행권라는 것이다. 젠장! 서점 입장권까지 급행료라니! 아무리 자본주의지만, 해도 너무하다. 정나미가 떨어져 구경이고 뭐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줄 서 있던 것이 아까워 꾹 참았다.

급행료를 낸 이들이 제일 먼저 들어가고 다음 차례에 내가 들어갔다. 서점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하게도 서점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계단이다. 짙은 핑크 색이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이 계단은 그 분위기부터 <해리포터>의 마술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특이한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면 마치 성당의 창문처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천장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이층에 진열된 책장의 모습들, 그리고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일층 서점의 모습들도 환상적이다. 왜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의 하나로 선정됐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줄을 섰던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서점 안은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서점이 아니라 도떼기시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 렐루서점에 들어가면 <해리포토>의 분위기가 나는 계단이 우리를 맞는다. ⓒ 손호철

서점에서 물건을 사면 입장권 5유로를 물건 가격에서 빼준다고 해서 <해리포터>의 광팬인 딸을 위해 도자기로 만든 서점 기념품을 픽업해 계산대로 가지고 갔다. 그러자 종업원이 5유로 환불은 책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내가 사고 싶은 피카소 책이 있어 집어 들었다. 헌데 책의 가격 표시에 딱지를 붙여 값을 적어 놓았다. 이상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찾아보니 거기에 나오는 정가보다 10유로 비싸게 붙여 놓았다. 정가보다 10유로 비싸게 가격을 적어 놓고 5유로 환불해준다니, 도둑이 따로 없다! 외관은 세계에서 손 뽑힐 정도로 아름다운지 모르지만, 이 서점은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탐욕의 보고'이고 '문화의 상업화'의 상징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 2층에서 바라다 본 서점의 아름다운 전경 ⓒ 손호철

▲ 2층에서 내려다 본 서점 ⓒ 손호철

▲ 포르투의 고풍스런 뒷골목 거리 ⓒ 손호철

▲ 핑크색 벽과 2층에 심은 나무들의 조합이 멋지다. ⓒ 손호철

▲ 구시가지 골목 풍경 ⓒ 손호철

▲ 시청광장 ⓒ 손호철

▲ 도우루 강변으로 가는 길 ⓒ 손호철

▲ 도우루 강변 데이트 풍경 ⓒ 손호철

▲ 도우루강을 가로지르는 2층다리 ⓒ 손호철

▲ 렐루서점은 서점에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내야한다. ⓒ 손호철

▲ 관광객이 가득한 렐루서점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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