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미국은 왜 저위력 핵무기 개발해 실전 배치하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미국은 왜 저위력 핵무기 개발해 실전 배치하나? [안문석의 한반도 깊이보기] 미국은 왜 조약을 지키지 않나

미국이 최근 새로운 핵무기를 만들어 해군부대에 배치했다. W76-2라는 저위력 핵무기이다. 저위력 핵무기란 위력이 20kt(킬로톤) 미만인 것을 말한다. 1kt이 TNT폭약 1000톤이 폭발했을 때의 위력이니까 20kt이면 TNT폭약 2만톤이 폭발했을 때의 위력이다.

물론 이는 결코 적지 않은 것이지만, 핵무기가 워낙 무서운 무기라 이 정도는 저위력으로 보는 것이다. W76-2는 5~7kt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W76은 100kt, W76-1은 90kt의 위력을 가졌는데, 이것들의 위력을 낮춰서 새로 개발한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해 배치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아니 우리와 직접 관련된 일이다. 미국이 작은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핵사용의 신뢰성을 높여 억지(deterrence)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큰 핵무기(전략핵무기)는 엄청난 피해 때문에 실제 사용 가능성은 낮다. 핵사용의 신뢰성은 낮은 것이다. 실제로 그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상대국이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전략 핵무기는 한 번 사용하면 수십만의 희생자를 내지만, 저위력 핵무기는 100명 정도의 희생자만 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 그렇게 적은 희생자를 낼 수 있는 핵무기이니 실제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서 상대국이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그런데 사용의 신뢰성을 높인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되겠지만, 실제 사용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저위력 핵무기의 상대는 중국, 러시아, 북한의 핵무기이다. 미국과 이들 국가들은 남중국해, 대만해협, 서해 등에서 충돌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만에 하나 충돌이 발생하고 그것이 격화되면 작은 핵무기가 사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저위력 핵무기는 사용 가능성이 높은 무기 아닌가.

미국의 생각대로 저위력 핵무기가 억지를 강화해 오히려 군사적 충돌을 막아줄 수도 있다. 핵무기의 확대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이론도 있다.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가 주장하는 '합리적 억지론'(rational deterrence theory)이다.

핵을 가진 국가들이 많아지면 서로 충돌을 두려워하고 군사력 사용을 자제해 핵전쟁은 물론, 재래식 전쟁도 발생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주장이다. 낙관적인 생각이라서 '확산 낙관론'(proliferation optimism)이라고도 한다. 이 이론이 맞다면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를 만들어서 배치하는 것이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 반론이 있다. '조직이론'(organization theory)이다. 스콧 세이건(Scott Sagan)과 조시 웨들(Josh Weddle)의 주장이다. 핵무기는 군에서 운용하고, 군은 위기의 단계에 따라 행동의 절차가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핵무기를 발사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낙관론과 대비되는 '확산 비관론'(proliferation pessimism)이다.

합리적 억지론은 인간 이성에 대한 절대 신뢰에 근거한 이론이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행동하는가? 의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매우 이성적으로만 판단할 것이라고 전적으로 믿어도 되는가? 역시 의문이다. 게다가 조직이론이 아니더라도 핵무기의 증대는 핵사고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1966년 스페인 팔로메어 사건은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미군 B-52 폭격기가 수소폭탄을 싣고 공중급유 훈련을 하고 있었다. 급유를 받으려다 급유기와 충돌했다. 급유기는 바로 폭발했다. 폭격기에도 불이 붙었다. 조종사는 탈출해야 했다. 수소폭탄을 그대로 두면 불에 폭발할 수 있었다. 바다에 떨어뜨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바다를 향해 떨어뜨렸다. 하나는 바다에 떨어졌지만, 나머지 3개는 팔로메어 마을에 떨어졌다. 그 중 하나는 낙하산이 펴져 안전했다. 하지만 2개는 땅에 떨어져 깨졌다. 핵폭탄이 터질 뻔 했다. 다행히 탄두를 둘러싼 안전장치가 파괴되지 않아 재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정도로 심하진 않더라도 아찔한 핵사고는 수백 건에 이른다. 그러니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는 미국에게도 다른 나라에게도 분명 위험의 증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미국은 왜 조약을 초개처럼 버리는지 모르겠다. NPT(핵확산금지조약)의 전문에는 조약 당사국들은 조속한 시일에 핵무기 경쟁을 중지하도록 되어 있다. 핵군비축소의 방향으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조약이 발효된 지 50년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새로운 핵무기를 만든다. 게다가 미국은 핵개발을 하려는 나라에 NPT를 들이댄다. 비핵국가는 핵개발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조항만. 이중적이다. 같은 조약을 '너는 지켜라 나는 안 지킨다' 식이니 어불성설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이 북한은 비난할 때는 늘 유엔결의를 안 지켰다고 한다. 핵실험,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하지 못하게 한 유엔결의를 위반했다는 얘기다. 하긴 북한은 이미 NPT를 탈퇴했으니 NPT 얘기를 할 시기는 지나기도 했다. 다시 돌아오라는 얘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유엔결의라는 것도 미국이 주도해서 북한을 타깃으로 만든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를 만들었으니 국제평화를 해치는 행위이다. 유엔안보리 소집해서 제재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다. 북한은 그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힘이 없다. 설혹 회의가 소집된다 해도 미국이 반대하면 그만이다. 거부권이 있다. 미국을 제재할 수 있는 안보리 결의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있는 조약 안 지키고, 없는 결의 만들어서 제재하고.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현실주의 논리를 미국은 잘도 따른다. 유엔도 현실주의의 높은 장벽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다.

미국은 조약을 안 지킬 뿐만 아니라 버리기도 한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도 폐기했고,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을 위한 의정서에도 반대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도 거부했고, 거슬러 올라가면 1차대전 직후 국제연맹조약에도 서명을 하지 않았다.

국가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안보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우리도, 북한도 그렇게 한다. 그걸 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중잣대는 곤란하다. 나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남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다르면 신뢰는 무너진다. 서로 신뢰하지 않는 단계는 '전쟁의 상태'(state of war), 즉 전쟁은 아니더라도 전쟁과 같은 갈등, 쟁투의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미국에 대고 신뢰, 도덕 이런 것을 얘기 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는 짓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문석
안문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KBS 통일부·정치부·국제부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습니다. 2012년부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북한의 대외관계', '동북아 국제관계'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외교 방안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국내외의 저명한 저널에 연구결과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