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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CEO로는 농업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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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공한 CEO로는 농업 살릴 수 없다"

'초록 대안' 농업<13> '농업 살리기 사회협약'이 필요하다

지난 여름 한 민간단체에서 주최하는 농촌 활성화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영농조합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젊은 농민이 "농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농민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돈이 되어야 사람들이 농촌에 살게 되고 농촌이 활성화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00%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농민 모두가 그 영농조합 대표처럼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누구나 노력하면 농업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먼저 지난 10년간 농가 경제가 악화된 원인부터 살펴보자. 농가소득은 1995년 2200만 원에서 2004년 2900만 원으로 연간 3.67%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4.38%로 농가소득 증가율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관련된 지표를 더 살펴보면 이 기간의 농업 총수익은 2.75% 상승하는 데에 그쳤고 농업소득은 1.68% 상승하는 데 그쳤다.

농가소득의 증가는 농업 총수익, 즉 농산물 판매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농업외 소득에 의존했다는 이야기이며 더구나 농업 총수익에 비해 농업소득의 증가율이 작은 이유는 농가 경영비가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를 방증하는 통계자료가 있는데 농협중앙회에서 조사하는 농가판매지수 즉 농산물 판매와 관련되어 있는 가격지수는 같은 기간에 3.07% 상승한 데 반해 농가구매지수 즉 농업 경영이나 가계지출에 관련된 가격지수는 5.94%가 증가된 된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농업 경영비는 같은 기간 동안 18.10%나 증가했고 농가의 소비지출은 같은 기간에 7.45%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지난 10년간의 농가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첫째 지난 10년간 농업을 통한 소득증가율이 물가상승률 보다 낮았다. 둘째 농산물의 가격 상승률은 물가상승률 보다 낮은 데에 비해 농민이 구입해야 하는 물품의 가격상승률은 물가상승률 보다 높아서 농업경영비와 농가지출을 증가시켰다. 셋째 지난 10년간 농업경영비의 증가율은 물가상승률보다 4~5배나 되는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다. 넷째 지난 10년간 농가의 소비지출의 상승률도 물가상승률보다 높았다. 즉 우리나라 농민이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는 농가경영비와 가계소비 지출이 많아지는 데에 비해 농산물 가격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민이 돈을 벌게 하려면…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이 돈을 벌게 하는 방법은 자명하다. 첫째, 농업소득을 많게 해야 한다. 농업소득을 늘리려면 농가당 생산량을 늘리거나, 안정적인 판로를 만들고 높은 가격을 얻게 하는 방법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는 규모 확대를 통해 농가당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농가당 수익을 높이고 규모의 이익을 통해 농가 경영비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농가 경영비의 증가율이 높은 상태에서 생산방식의 전환 없는 규모의 확대는 농가 경영비를 거꾸로 증가시켜 농업소득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안정적인 판로의 확보와 높은 가격을 받는 문제는 농산물 수입 개방과 연관되어 있다. 농산물 수입 개방을 전제로 한 완전한 경쟁적 시장기구 안에서 그 해답을 찾기 어렵다.

둘째 농가의 농업 경영비를 줄여야 한다. 다시 통계청의 농업 경영비 통계자료를 보면 농업 경영비를 수선 및 농구비, 노무비, 양축비, 비료 및 농약비, 임차료, 기타 비용으로 나누고 있는데 수선 및 농구비는 같은 기간 오히려 감소하였고 임차료는 2.6% 증가에 그쳤으며 나머지 비용의 증가율이 10~14% 증가율을 보인 반면 기타 비용의 증가율이 57.0%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기타 비용이란 종묘비, 광열비, 수리비, 위탁영농비, 조세 및 부담금, 지급이자, 영농잡비용, 보험료 및 수수료, 기타 판매 및 관리비, 감가상각비를 의미하는데 기타 비용 중에 어떠한 비용이 증가한 것인지 통계청의 자료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농가의 농업용 부채의 연평균 증가율이 같은 기간 18.56%인 것에서 유추해보면 많은 부분이 부채에 대한 이자로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농가 부채에서 기인한 이자를 비롯한 잡다한 농업 경영비를 줄여야 할 것이다.

셋째 농가의 가계지출을 줄여야 한다. 농가의 가계지출은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식료품비, 주거비, 광열수도비 등 소비지출과 조세, 보험 등의 비소비지출로 나누는데, 감소를 보이고 있는 항목도 있지만 교통오락비 31.41%, 교통통신비 17.70%, 광열수도비 11.71%, 보건의료비 5.27%로, 지출이 늘어난 항목들은 그 증가율이 물가상승률보다 높다.

교육비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통계상 교육비는 감소하고 있지만 2003년부터 농민이 지출하는 출타자녀학비 보조금을 교육비에 계상하지 않고 비소비 지출의 기타 항목으로 집계하고 있는데, 지난해의 경우 비소비 지출의 기타항목은 539만9000원으로 소비지출의 교육비 74만9000원인데 비해 월등히 높았다. 결국 출타 자녀의 학자금을 교육비로 합산하면 교육비의 증가율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농가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농촌의 교육, 문화, 생활여건의 향상을 통해 이러한 비용의 증가를 막아야 한다.

농업·농촌 살리기는 곧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ㆍ농촌 대책이 이러한 현황 분석에 부문별로 대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ㆍ농촌의 현실과 상황에 보다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는 의구심이 든다. 농업ㆍ농촌 대책을 세 가지 관점에서 다시 접근했으면 한다.

첫째 모든 대책을 시장 중심으로 풀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는 농업소득의 증가를 위해 규모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단순한 규모의 확대는 경영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농가소득에 별반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규모의 확대보다는 규모의 적정화와 복합화를 통해 농업 경영비를 낮춰야 하며, 규모의 경제를 살리기 보다는 범위의 경제를 살리는 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범위의 경제란 완전 경쟁 시장에서 경쟁력을 통해 농산물의 판로를 확보하고 가격 안정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지역 시장이나 알고 있는 소비자를 통해 경쟁을 피하고 농업소득을 올리는 방법이다. 지역시장의 활성화를 통한 지역소비의 증가, 도시민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직거래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농가의 지출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공공 서비스 중심으로 풀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는 농촌의 교육, 문화, 생활 서비스를 확충하여 농민이 소비 지출을 하지 않더라도 도시와 같은 수준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의 확충은 대개 공공 서비스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공공 서비스는 제도에 의해 획일적, 일률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 내의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고 서비스의 전달체계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쉽다. 작년 겨울 결식아동의 급식 도시락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셋째 농업ㆍ농촌만을 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변화하는 데에 농업ㆍ농촌 대책이 일조를 했으면 한다. 생산 규모의 확대는 농가경영비를 증가시킬 뿐만이 아니라 농기계와 화석연료의 의존도를 높이고 과도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농업과 농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농업과 농촌이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 산업이며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농업ㆍ농촌은 우리 환경을 지키고 있으며 전통과 문화를 보전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고 우리 미래를 담보하고 있는 생명 중심의 가치관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농업ㆍ농촌의 가치를 서로 나누고 공감하며 고양시키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농업정책은 농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 전 국민을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하며 농민을 개별적으로 파편화시켜 시장에서 성공하는 CEO를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의 환경, 생태, 문화를 지키는 공동체적 지도자를 만드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농촌 살리기 사회 협약'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농업ㆍ농촌을 살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안한다.

첫째 농업ㆍ농촌 정책에 있어 시장주의, 경쟁력 위주의 정책을 재고하고, 친환경 농업 중심의 생산체계와 지역 소비 및 직거래 중심의 유통체계를 결합하는 유기적인 방향으로 농업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쟁력 중심의 규모의 확대와 전문화를 기조로 한 농업구조 조정 정책은 그 효과도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반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복합영농과 순환적 농업체계는 농업 경영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계도 보전할 수 있다. 또한 생산과 결합한 지역소비체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도시 소비자와의 직거래는 유통기간, 유통비용을 줄여서 수입개방 하에서도 농산물의 판로를 확보하고 농산물을 제 값에 팔 수 있는 최선의 유일한 방법이다. 궁극적으로 건강한 농산물의 공급을 통해 건강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둘째 도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농가부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농촌 살리기 사회협약'을 추진해야 한다. 이 사회협약을 통해 농민단체는 안전한 식량 생산과 친환경적 농촌개발을 약속하고 소비자 단체와 환경단체는 친환경농산물의 소비 확대와 농촌 살리기를 위한 인적, 물적 교류를 확약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 농업관련 공공기관, 대기업이 가용한 모든 자금을 통해 농가의 부채를 탕감해야 하는 부담도 사라진다.

우리나라 사회협약의 모델이 된 아일랜드의 '국가재건프로그램'에서도 노ㆍ사ㆍ정 이외에 농민단체가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국가재건에는 노동계, 재계 뿐 아니라 농업과 농민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 국민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농업과 농촌을 가치를 보전하고 살리기 위해서는 환경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농촌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협업 방식의 공동체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비뚤어진 방식으로 지역에 자리 잡은 현재의 농협을 농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단체로 개혁해야 한다. 또한 경제 사업 뿐 아니라 문화, 복지, 교육 부문의 다양한 협동조합과 주민 주체 공동사업체를 활성화하여 농민 스스로 지역에서 조직을 구성하고 그 조직에 의해 다양한 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농민 스스로 자신과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경제, 문화, 복지, 교육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효율화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농업과 농촌을 이야기하는 토론회에서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요"라는 스타급 농민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특별하게 성공한 이야기 때문에 보통의 농민들이 상대적인 비참함을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농업ㆍ농촌을 살리자고 하는 것은 일부 능력 있는 농민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산업발전 과정에서 희생한 보통의 농민을 위한 것이며 농업과 농촌에 기대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전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를 담보해줄 수 있는 농업ㆍ농촌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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