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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문제도 농업으로 해결할 수 있다"

'초록대안' 농업〈21〉 어둠의 시대 '생명농업'의 희망을 쏘자(3)

약간의 정책 목표만 수정한다면 현재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처럼 '멀쩡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한 관행농업과 유기농업 사이의 가격 차이를 줄여주는 것이다. 정부가 하는 일 옆에 수많은 '세금 도둑'들이 있는 것처럼 한 그릇 밥과 상추 한 장이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최소한 3~4단계의 불필요한 단계를 거치게 된다. 가락시장을 정점으로 한 중앙형 물류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이런 관행은 계속될 것이고 농산물 가격도 결코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지역별로 수많은 분산형 시스템을 재구성한다면 일단은 현재 상태에서도 농산물 가격에서 최소한 30% 이상의 거품을 뺄 수 있다. 여기에 지금 고스란히 부동산 개발업체에 넘겨주는 농업보조금을 유기농업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생명 보조금'으로 전환한다면 최종 단계에서 관행농업과 유기농업 생산물 사이의 가격 차이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스위스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유기농업에 대한 교육, 홍보, 기술개발을 정부가 일종의 간접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 이름을 '한국농촌공사'로 바꾼 농업기반공사가 건설보조금 및 건설사업 형태로 날린 (또 날릴) 돈들을 농민과 소비자에게 돌리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유기농업의 확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의지만 보인다면 소비자들이 가격 차이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유기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이는 물론 한국토지공사와 한국주택공사에 이어 한국농촌공사까지 만들어 '건설사랑'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철학이 변할 때 가능할 것이다.

***단체급식으로 유기농 생산물 안정적 수요 확보 가능해**

가격 차이를 줄이기 위한 각종 정책들과 함께 가야 할 또 다른 정책은 학교급식과 같은 단체급식을 통해 유기 농산물에 대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다. 군대급식과 결식 이웃에 대한 급식 등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은 충분하다.

이런 각종 단체급식이 유기 농산물에 관심을 갖는다면 전체 수요의 20%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 또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를 한번만 진지하게 고민해본다면 이런 조치가 가져올 사회적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으로 유기농업으로 전환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에서 12~15%의 경제 활동 인구가 농업 관련 활동에 종사할 수 있게 된다. 유럽의 경우는 일단 무너진 농업을 처음부터 다시 재건해야 했지만 우리나라는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최적의 규모인 소농의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환이 훨씬 수월하다.

이런 유기농업 전환이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다면 실업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실업 문제 해결에 쏟는 비용을 농업에 재투자한다면 안정적인 수입 기반을 조속히 마련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박정희가 새마을운동을 수단으로 농촌 개혁을 추진하던 시절에도 가톨릭 농민회와 정농회 같이 '생명농업'의 기반을 만들었던 힘이 아직 남아 있다. 이제 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나 북유럽같이 농업이 어려운 곳에서도 유기농업에 높은 정책 우선 순위를 놓고 추진하는지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수입 농산물이 저렴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이들은 지금 당장 가까운 샌드위치 전문점에 가서 가장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는 유기농 샌드위치의 원료가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었는지 물어보기 바란다. 영국산 60%, 호주산 40%일 것이다. 아니면 가장 가까운 할인매장의 유아용품 코너에서 유기농 분유와 이유식 아무 거나 집어 들고 재료의 생산 국가를 보기 바란다. 미국산, 호주산, 그리고 중국산이 혼합되어 있을 것이고, 재수가 좋으면 스위스산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농수산물을 포함한 식품 수입 중에서 이미 가공품의 비율이 40%를 넘어선 상태다. 수입하면 싸진다는 말도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무얼 먹일까", 이 질문에 답할 때**

우리나라가 '탈농재촌', '농촌 어메니티', '주5일 시대의 농촌'과 같은 정책을 통해 결국 건설 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동안 세계 농업 정책과 식품 정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른 선진국이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일거리와 함께 산업화에서 떨어져 나온 국민들을 챙기고 있는 동안 우리 정부만 농업에서 떨어져 나온 빈민들이 도시에서 부랑민이 되지 않도록 또 다른 건설사업을 벌이는 '죽음'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명공학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진짜 생명에 단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져보자. 지금 선진국에서 진행 중인 농업을 중심으로 한 생명 개혁의 현장을 왜 보지 못 하는가? 개방도 좋고 경쟁력도 좋지만 EU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만큼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무얼 먹일까"라는 질문이 바로 생명의 질문이고, 지금 우리나라 농업에 바로 필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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