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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교섭본부는 '소가 웃을 주장'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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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교섭본부는 '소가 웃을 주장' 하지 말라

[기고] "한미FTA 협상, 준비허술에 불투명하고 비민주적"

"(통상교섭본부가) 가장 중요한 결정라인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비밀리에 한미 FTA 업무를 추진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 한미 FTA는 지난해 9월 이후 급속도로 추진됐고, 더더욱 문제인 것은 FTA가 엄청난 외교안보적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물론 동북아위와도 상의를 하지 않은 채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 연구기관들의) 한미 FTA 공동연구는 내년에야 마무리될 것이다. …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서도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관한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비판을 최근 반박하고 나선 데 대응해 정태인 전 비서관이 위와 같이 맞반박하는 글을 1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지난달 27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대해 "준비도 없는 졸속", "어불성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력히 비판하는 동시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한 지금의 통상라인은 "친미 개방론자" 일색이니 "외교안보적 고려도 하는 신중론자"를 추가로 포함시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은 이런 CBS 라디오 대담 내용을 그 다음날인 28일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한미 FTA "어불성설"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이틀 뒤인 30일 통상교섭본부가 이성호 북미통상과장 명의로 이에 대한 반박문을 보내옴에 따라 이 반박문도 〈통상교섭본부, 한미 FTA 비판한 전 청와대 비서관 반박〉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바 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이 보내온 이번의 맞반박문은 통상교섭본부의 지난달 30일자 반박문의 내용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편집자〉

외교통상부의 북미통상과장이란 분이 CBS 시사자키에서 방송하고 〈프레시안〉에 그 내용이 실린, 나의 한미 FTA 비판에 대한 '반박문'을 〈프레시안〉에 보냈다고 한다. 반박이라고 하기보다는 단 네 개의 문장으로 몇 개의 '사실'을 알린 것인데, 그 중 '사실이 아닌 것'들을 재반박이라고 해서 지적해줘야 하는 내 처지가 한심하다.

첫째, "정태인 전 비서관은 한미 FTA 관련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한 바 없는 분"이라는 반박에 대해.

이건 사실이다. 내가 FTA를 담당했던 지난해 2월에서 5월까지 나는 한 번도 한미 FTA 추진에 관해 보고를 받거나 상의를 한 적이 없으니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한 국민경제자문회의(자문회의)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이후 지난해 9월까지도 자문회의나, 그 산하 분과 중에서 주로 FTA 관련 업무를 맡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한미 FTA가 검토된 바 없다.

둘째, "한미 FTA는 우리 정부가 'FTA 추진 로드맵(2003년 8월)'을 처음 확정하면서부터 지난 3년 간 통상교섭본부 등 정부 유관부처와 청와대 유관부서가 심도 있게 검토, 준비해 온 사안이다. 따라서 동북아시대위원회와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에 근무했던 정태인 전 비서관은 이런 정책결정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라인에 있지 않았다"는 반박에 대해.

이것은 거짓말이다. 한미 FTA와 같은 어마어마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정부의 각 부처가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통상교섭본부가 어떻게 접촉했는지는 모르나 위에서 말한 대로 통상교섭본부는 자문회의나 대외경제위원회에 보고를 하거나 협의를 한 바 없다.

대외경제위원회는 대외경제정책을 기획·총괄할 목적으로 자문회의 산하에 2004년 7월 하나의 분과로 신설한 것이다. 이 위원회는 부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경제관련 부처 장관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보좌하기 위해 같은 해 실무기획단(일단 3년 간 한시적으로 운영 후 연장 여부를 검토하기로 하면서)을 만들었다.

2004년 7월 이전에는 대외협상을 주로 담당하는 데 그쳐야 할 외교통상부가 FTA와 관련해 전체 로드맵을 수립하고 국내 산업대책까지도 사실상 수립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경제부 등 여타 정부 부처가 통상교섭본부를 견제하며 협상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실무기획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실무기획단은 단장이 산업자원부 1급이고, 실무는 상근조직의 총괄책임자인 재경부 국장이 담당했으며,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로 구성됐으니, 범부처 차원의 조직이었다.

한편 자문회의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상근기구인 자문회의 사무처가 FTA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은, 부처 차원의 실무기획단이 있더라도 FTA 업무를 청와대에서 총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통령께서 2004년 8월경 경제보좌관에게 FTA 업무를 총괄하라는 지시를 내리셨고, 이러한 맥락에서 대외경제위원회의 상위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보좌하는 사무처의 사무차장이었던 나는 당연히 FTA 업무를 담당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사무처장이 경제보좌관이었고, 내가 맡은 사무차장이란 자리는 대외경제위원회의 간사 격인 경제보좌관을 대리하는, 사실상의 실무책임자 자리였다.

그러나 내가 사무차장으로 갔을 당시에 통상교섭본부와 실무기획단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었다. 실무기획단 쪽에서는 'FTA 절차규정'을 개정해서라도 통상교섭본부가 독단적으로 FTA 업무의 거의 대부분을 맡아 추진하는 것을 견제하고자 했다. 당시에는 양측 간 대화조차 불가능할 정도여서 내가 양쪽의 1급들을 모아 조정회의를 만들었고 실제로 회의도 했다.

지난해 4월경 양측과의 합의 하에 외부협상은 통상교섭본부가 하되 FTA 추진방향 및 국내산업 구조조정, 이해조정 등의 내부협상은 자문회의 사무처와 통상교섭본부, 그리고 실무기획단이 협의하고, 이를 총괄하는 일은 경제보좌관이 하도록 정리가 됐다. 따라서 그 이후 통상교섭본부는 자문회의 사무처 및 실무기획단과 반드시 FTA 관련 문제를 검토하고 합의하여야 했다. 적어도 한일 FTA에 관해서는 그렇게 일이 진행됐다.

물론 1급들 간의 회의 내용을 실무과장(북미통상과장)이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정책결정 라인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 '반박문'이라며 엉터리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보낸 것은 심각한 문제다. 수만 보 양보하더라도 지난 10월 이전에 대외경제위원회에 한미 FTA에 관한 사실을 보고한 적이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결정라인에 있는 사람들(자문회의 사무차장, 경제보좌관, 심지어 대통령)을 제외시키고 비밀리에 업무를 추진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동북아시대위원회(동북아위) 비서관 시절에도 김현종 본부장을 수시로 만났다. 김현종 본부장이 한국-싱가포르 FTA에 최초로 '개성공단의 한국 원산지 인정' 항목을 반영하고 러시아와의 포괄적 경제협력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추진한 것도 동북아위의 건의에 의해서였다.

내가 자문회의 사무차장으로 간 뒤 김현종 본부장이 "우리나라는 뭐든지 사전준비란 것이 도무지 안 되는 나라이니 외부에서 내가 먼저 사고를 치면(어떤 나라와 협상을 개시하면) 정태인 차장이 내부의 문제를 조정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하자"라는 제의를 한 적도 있다(북미통상과장은 자신의 상관인 김 본부장에게 직접 물어보라).

동북아위의 전략은 밑으로는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인도, 위로는 일본과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강화하여 중립지대를 확보하고 나서 중국과 미국을 경쟁시키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문정인 씨가 동북아위원장을 맡은 시절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도 어느 정도 합의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미통상과장이라는 사람이 "동북아위와 자문회의 사무처에 근무했던 정태인 전 비서관은 정책결정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라인에 있지 않았다"는 말로 나의 CBS 대담을 폄훼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 내가 한미 FTA와 관련된 정책결정 내용을 몰랐던 게 사실이라면, 내가 정책결정 과정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도 고의로 나를 제외시키고 비밀리에 일을 추진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미 FTA는 9월 대통령의 코스타리카 방문 이후 급속도로 추진되었고, 당시에 이르러서야 경제보좌관과도 상의가 이루어진 사안이다. 더더욱 문제인 것은 FTA가 엄청난 외교안보적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NSC는 물론 동북아위와도 상의를 하지 않은 채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셋째, "한미 FTA 협상은 우리 경제의 선진국 도약을 위한 기회이지만,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으로 인해 결코 쉽지만은 않은 협상이 될 것인 바, 정부는 우리나라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한미 양국에 모두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의 협상 결과가 되도록 철저히 준비해 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하려면 우리의 목표와 마지노선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외교관례상 비밀이라서 공개하지 못한다지만, 미국의 전략은 이미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가 의회에 보고하고 공개해 우리도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따로 사이트를 만들어서 그러한 '미국'의 보고서들을 실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미국의 전략이 아닌 우리의 전략은 전혀 모른다. 심지어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장관들에게 보고한 문건까지 도로 거둬가고 있는데, 이런 식의 비밀주의가 언제까지 통하겠는가?

'3년이나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이 기껏 지난 2월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내놓은 CGE 모델 돌린 것 등 공식적으로 발표된 세 개의 보고서밖에 더 있는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외에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KIET), 농촌경제연구원(KREI) 등이 한미 FTA 공동연구를 시작한 것이 지난해였다. 이 연구는 내년에나 마무리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서도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가?

반면 한일 FTA에 관한 연구는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발주한 것만도 25개, 그리고 대통령의 직접지시로 내가 주도하여 만든 보고서까지 26개가 있고, 민간의 연구까지 합치면 100개가 넘는다.

다시 한 번 확인해보자. 내가 FTA 정책결정 라인에 있지 않은 사람인데 대통령이 한일 FTA 연구를 지시했겠는가? 내가 공직에 있는 동안에 대외경제위원회 개최를 위해 수시로 통상교섭본부 및 실무기획단과 협의를 해 온 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적어도 그 당시, 즉 내가 사임한 2005년 5월 27일까지만 해도 FTA 업무를 총괄하는 자문회의 사무처의 사무차장이자 대통령 1급 비서관이었던 내가 모르게, 그리고 반드시 사전협의가 되었어야 할 청와대의 여타 부서나 NSC조차도 모르게 '한미 FTA를 철저히 준비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설령 백보 양보해 대통령에게만은 꾸준히 사전에 보고되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기존의 추진체계와 역할분담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진행된 절차상의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더구나 이런 허술한 준비와 지극히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그것도 세계 최강국이자 FTA 협상 경험이 풍부하여 능수능란하기 그지없는 미국과의 FTA 협상 개시를 돌연히 발표한 것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대등한 수준에서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는 게 과연 가능하리라 생각하는가? '서천 소가 웃을 일'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지혜로운 선인들이 만들어놓으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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