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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자유화의 이득? 근거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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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역자유화의 이득? 근거가 불투명하다

[먼슬리 리뷰] 신자유주의의 신화와 현실

노무현 정부가 국내 여론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미국 정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진보적 평론지인 〈먼슬리 리뷰〉가 최근호에 FTA와 같은 국제협정을 통해 관철되는 신자유주의의 신화와 현실에 관한 글을 게재해 눈길을 끈다.

이 글에서 필자인 마틴 하트-랜즈버그(Martin Hart-Landsberg) 미국 루이스앤드클라크 대학 교수(경제학)는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입증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결함이 많다고 비판하고,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만 근거해 경제 및 무역 정책을 수립해 실시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특히 자유무역론자들이 각종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기대효과를 계산해내고 선전하는 데 활용하는 '연산가능 일반균형(CGE, 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모형'은 정교해 보이지만 사실은 생산요소의 완전균형과 국내경제의 원활한 구조조정 등 현실에서 성립되기 어려운 여러 가정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애초부터 자유무역협정 옹호자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내게 돼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도 바로 이 모형으로 계산해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등을 한미 FTA의 경제적 이득을 홍보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지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은 〈먼슬리 리뷰〉에 실린 이 글(Neoliberalism: Myths and Reality)의 번역이며, 세세한 각주는 생략했다. 〈편집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협정들은 경제적 불안정을 증폭시키고 노동의 조건과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비용을 초래하면서 초국적 자본의 힘과 이윤을 증대시켜 왔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가 전례 없는 편익을 창출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이 워낙 자주 반복되다보니 노동하는 사람들도 다수가 이런 주장을 반박이 불가능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WTO를 확장시키고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와 같은 새로운 협정을 수립하려고 애쓰는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업계와 정치권 지도자들은 그런 자기들의 노력이 전 세계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WTO의 첫 사무총장이었던 레나토 루지에로는 WTO를 통한 자유화 노력이 "다음 세기(21세기)의 초반에 세계의 빈곤을 뿌리 뽑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면서 "이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유토피아적인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됐다"고 선언했다. 이와 비슷하게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선임연구원인 윌리엄 클라인도 2005년 12월 홍콩에서 WTO 각료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쓴 글에서 "만약 세계의 모든 무역장벽이 다 제거된다면 앞으로 15년 간에 걸쳐 대략 5억 명이 빈곤에서 구제될 수 있다"며 "도하라운드라는 이름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의 다자간 무역협상은 국제사회가 이런 이득을 달성할 수 있게 할 최선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젝트에 대해 효과적인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사상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그리고 사상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동학이 낳는 경제사회적 결과를 과학적으로 조명해주는 인식 틀이 되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보이지 않게 가리는 덮개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아울러 국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제3세계와 선진 자본주의 국가 모두에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증진하기보다 훼손하는 과정을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의 우월성이라는 신화를 뒷받침하는 이론들**

FTAA와 같은 협정과 WTO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런 협정이나 기구가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적 복리를 최대화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촉진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무역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는 태도는 보다 폭이 넓은 그들의 정치경제적 아젠다, 즉 기업의 이익획득 기회를 확대하고 강화하겠다는 그들의 아젠다를 보이지 않게 가려버린다. WTO에서는 이런 그들의 아젠다가 다양한 협정들을 통해 추구돼 왔는데, 그 협정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무역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맥락에서 경제활동에 대한 공적인 규제를 제한하거나 실질적으로 가로막는 내용으로 돼 있다.

예컨대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은 국가가 특정한 제품(생명이 있는 유기체 포함)에 대해서는 특허를 부여하기를 거부할 권한을 제한하는 동시에 긴요한 의약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도록 하기 위한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의 권한을 포함해 이미 특허가 부여돼 있는 제품의 사용을 통제할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 이 협정은 또한 각국에 특허의 유효기간을 대폭 연장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무역관련 투자조치 협정(TRIMS)'은 각각의 국가가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에 대해 노동을 포함한 국내산 투입재의 사용이나 기술이전을 의무화하는 등 이행의무(performance requirements)를 부과할 권한에도 제약을 가하고 있다. 현재 제안돼 있는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확대안'은 각국에 대해 보건의료와 교육에서부터 공익서비스와 소매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의 국내 서비스 시장을 죄다 해외의 서비스 공급업체들에 개방하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공적인 규제도 줄이라고 강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제안돼 있는 정부조달협정(GPA)은 각국 정부가 조달계약을 발주할 때 노동이나 환경과 관련된 관행과 같은 비경제적 기준을 적용할 권한을 부정하고 있다.

주류 언론매체가 이런 협정들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드물다. 이런 협정들을 논의하다보면 '사적 권력 대 공적 권력'의 문제가 곧바로 제기되기 때문에 그것들을 옹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자본주의 세계화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 프로젝트를 떠받치는 제도화된 협정들을 무역협정이라고 부르면서 이른바 '자유무역의 장점'을 근거로 삼아 그런 협정들을 옹호하기를 선호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다. 유감스럽게도, 그리고 부당하게도 그들의 이런 옹호 논리는 노동하는 사람들, 특히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런 옹호 논리를 토대로 한 보다 폭 넓은 가설, 즉 모든 활동영역에서 시장에 의해 결정된 결과가 사회적으로 결정된 결과에 비해 더 낫다는 가설을 대중적으로 수용되도록 하는 게 비교적 쉽다고 느낀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자유무역이 우월하다는 신화에 대한 효과적이면서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판의 논리를 개발하는 일이 긴요하다. 사실 이런 일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쉬운 과제다.

자유무역을 촉진하려는 주장들은 대개 비교우위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비교우위 이론은 데이비드 리카도가 1821년에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소개한 이론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이 나라마다 상이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거나 만들어낼 수 있으며 무역은 유익한 것일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주장한 이론으로만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이론은 매우 특정한 정책적 결론을 뒷받침한다. 그것은 어느 나라든 최선의 경제정책은 규제되지 않는 국제적 시장활동으로 하여금 자국의 비교우위와 국가적 생산형태를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리카도는 두 개의 나라로 구성된 정태적 세계 모형을 이용해 자신의 비교우위 이론을 증명했다. 이 모형에서 리카도는 포르투갈이 영국에 비해 포도주의 생산에서도, 옷의 생산에서도 더 효율적이지만, 두 제품을 비교하면 옷보다는 포도주의 생산에서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라고 가정했다. 리카도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런 세계에서는 포르투갈과 영국이라는 두 나라가 각각 자국이 생산의 효율성 면에서 상대적 우위, 즉 비교우위에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국제 노동분업을 이루면 두 나라 다 이익을 얻게 됨을 증명했다. 그렇게 되면 포도주와 옷이라는 두 가지 제품 모두에서 영국이 포르투갈보다 생산의 효율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자유무역의 논리가 포르투갈은 포도주의 생산에, 영국은 옷의 생산에 각각 집중하게 만들며, 그 결과는 무역이 두 나라 모두에 최대한의 편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리카도 이론의 기본 골격을 수용하는 동시에 그것을 토대로 보다 정교한 이론들을 개발해 왔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헥셔-올린 이론, 요소가격 균등화 이론, 스톨퍼-새뮤얼슨 이론이다. 헥셔-올린 이론은 어느 한 나라의 비교우위는 그 나라의 부존자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자본이 부족한 제3세계 국가들은 노동집약적인 제품에 특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소가격 균등화 이론은 자유무역은 모든 요소의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해지기 전에는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요소(제3세계에서는 비숙련 노동)의 가격을 상승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톨퍼-새뮤얼슨 이론은 희소한 요소(부유한 나라에서는 노동, 가난한 나라에서는 자본)의 소득이 자유무역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정교화된 이론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내놓은 기본적인 결론에 도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이론들은 제3세계의 노동자들이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에 추가적인 밑받침을 제공할 뿐이다.

모든 이론이 다 그렇듯이 비교우위 이론과 그 결론도 여러 가지 가정들에 근거한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기업들 사이에 완전경쟁이 존재한다.
모든 생산요소들이 완전고용 상태에 있다.
노동과 자본은 국내에서는 완전히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다른 나라로는 이동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든 무역으로부터 얻는 이익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다 돌아가며 그 나라 안에서 지출된다.
어느 나라든 대외무역은 항상 균형상태에 있다.
시장가격은 생산된 제품의 실질비용 또는 사회적 비용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이 가정들은 단지 쓱 훑어보기만 해도 너무 많은 것을 전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이 비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정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자유시장 정책이 국제적으로 복리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비교우위 이론의 결론을 받아들일 근거가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노동을 포함한 모든 생산요소가 완전고용 상태에 있다는 가정은 분명히 현실과 다르다. 이 이론에 내재돼 있는 구조조정 과정도 역시 문제가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유무역에 의해 새로 늘어나는 수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들이 그 나라 경제 안에서 확대되는 수출부문에서 새 일자리를 신속하게 찾을 것이라고 가정된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이 새로 옮겨간 다른 일자리에서는 예전의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는 노동 이외의 다른 생산요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점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생산요소의 재배치가 충분히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새로 자유화된 경제는 실업의 증가를 겪게 되고, 이는 다시 총수요의 감소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생산요소의 완전고용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무역이 유도한 구조조정이 가져다준다는 이른바 효율성 이득보다 조정의 비용이 더 크게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가격이 사회적 비용을 반영한다는 가정에도 문제가 있다. 많은 제품시장들이 독점업체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많은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적지 않은 보조금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생산 및 가격의 결정이 정부의 영향을 받으며, 많은 생산활동들이 상당한 규모의 마이너스 외부효과, 특히 환경상의 외부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기존의 시장가격에 근거해 무역을 특화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효율성이 낮은 국제 경제활동 구조를 낳기 쉬우며, 이는 사회적 복리의 저하로 이어진다.

대외무역이 균형상태를 유지한다는 가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을 만한 이유가 있다. 이 가정은 또 다른 가정, 즉 환율의 변동이 무역불균형을 자동적이면서도 신속하게 시정한다는 가정에 의존한다. 그러나 환율은 투기적 금융활동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면 환율이 무역의 균형을 회복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깨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게다가 무역이 점점 더 초국적기업이 통제하는 생산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면서 환율의 변동이 소망스러운 생산형태를 창출해낼 가능성이 점점 더 더 낮아지고 있다. 환율의 변동이 어느 정도 짧은 기간 안에 필요한 무역의 조정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총수요를 억지로 줄이는 것을 통해, 그리고 아마도 경기침체를 감수하는 것을 통해 수입을 줄이는 방법으로 무역의 균형을 회복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국가 간에 자본이 고도의 이동성을 갖지 못한다는 가정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이 가정은 완전고용과 무역수지 균형을 비롯한 다른 가정들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자본이 고도의 이동성을 갖고 있다면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정책이 자본도피를 일으켜 탈산업화, 무역불균형, 실업,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간단히 말해 비교우위 이론에서 유래하고 자유무역을 뒷받침하는 정책권고들은 일련의 매우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가정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자유무역의 우월성이라는 신화를 떠받치는 경험적 주장들**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떠받치기 위해 고도로 정교한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들을 흔히 인용한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비교우위 이론의 가정들 가운데 다수를 그대로 근거로 삼는다는 점만으로도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이런 연구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2개의 연구 내용을 살펴보면, 비교우위 이론의 가정들을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 연구결과의 신뢰성을 얼마나 저해하는지를 알 수 있다.

2001년에 드루실라 브라운, 앨런 디어도프, 로버트 스턴이 공동연구 결과를 '선택 가능한 다자간 협상 및 지역적 협상들에 대한 CGE 모델 구축과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는 WTO의 후원 속에서 모든 무역장벽을 다 제거하면 세계 전체의 경제적 생산이 2005년까지 1.9조 달러만큼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런 연구결과는 2001년 11월 카타르의 도하에서 WTO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언론매체에 게재된 기사들을 통해 널리 전파됐다.

세계은행도 매년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세계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 작업의 하나로 무역자유화가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는 편익을 숫자로 계산해내는 시도를 했다. 2002년도 세계경제전망에서 세계은행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상품무역에 대한 장벽을 낮춤으로써 통합을 보다 신속하게 하는 것은 성장률을 높여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개발도상국들에 누적액 기준으로 대략 1조5천억 달러의 추가소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의 서비스 자유화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이득, 아마도 네 배까지의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개발도상국들 전체에 걸쳐 국민소득 중 노동자 분배 몫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브라운, 디어도프, 스턴의 공동연구와 세계은행의 연구는 숫자로 계산되는 연산가능 일반균형 모형에 근거한 것이며, 이 모형에서는 경제가 서로 연결된 여러 시장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가격이 변하면(위의 두 연구에서는 관세의 변화로 인해 가격이 변하는 것으로 돼 있다) 국내 제품시장에서 균형 회복을 위한 조정이 이루어진다고 가정된다. 각국 경제도 무역을 통해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가격의 변화는 새로운 균형의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보다 복잡한 세계적인 조정도 일으키는 것으로 가정된다. 위의 두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은 바로 이런 모형작업을 토대로 무역자유화의 경제적 결과를 추정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유형의 모형작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양한 시장과 나라들에서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보여주는 행태, 그리고 각 시장과 나라의 조정속도에 관한 구체적인 가정들이 설정돼야 한다. 국가 단위의 자세한 투입산출표도 작성돼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아주 많은 것들이 더 필요하다. 예를 들어 브라운, 디어도프, 스턴은 자신들이 세운 모형이 반드시 해답을 내도록 하기 위해 각각의 무역자유화 시나리오에 대해 균형의 결과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이들은 또한 자본과 노동이라는 단 두 개의 투입요소만 존재하고, 이들 투입요소는 국가 간에는 이동성이 제한되지만 각 나라 안에서는 부문 간에 완전한 이동성을 갖는다는 가정도 설정했다. 게다가 이들은 모든 자원의 완전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각각의 경제 안에서 총지출이 충분하게 이루어질 뿐 아니라 자동적으로 조정된다고 가정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환율이 신축적으로 변동함으로써 관세의 변화가 무역수지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가정도 했다.

바꿔 말하면 브라운, 디어도프, 스턴은 일련의 가정들에 의해 애초부터 자유화가 실업, 자본도피, 무역불균형을 초래하거나 심화시킬 수 없게 돼 있는 모형을 만들어냈다. 이런 일련의 가정 덕분에 이 모형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든 무역규제를 폐지하면 시장의 힘이 어려움 없이 신속하게 그 나라의 자본과 노동으로 하여금 더 생산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그리고 무역은 항상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수입이 1달러만큼 늘어나면 구조조정 과정이 수출을 1달러만큼 늘린다. 피터 도먼은 이 연구에 대한 비평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노동자들과 각국 정부가 확대되는 경제부문과 축소되는 경제부문 사이를 쉽게 넘나들 수 있는 한 걱정해야 할 일이 거의 없겠다."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도 연산가능 일반균형 모형을 사용한다. 이들은 2002년도 세계경제전망에서 "저축률, 투자율, 인구 증가율, 무역 증가율, 생산성 상승률과 같은 대체로 안정적인 변수들에 대한 최선의 추정에 근거해 개발도상국들의 발전 가능성에 관해 형성한 기본적 견해"를 전제한 상태에서 시뮬레이션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서 '기본적 견해'는 1997년까지 일어난 세계 무역체제 상의 변화만을 반영하는 것이고, '최선의 추정'이라는 것이 2005년부터 2015년까지의 경제적 결과를 예측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은 무역규제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6분의 1씩 제거되어 결과적으로 모두 다 제거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이런 자유화 시나리오로부터 추정해낸 결과를 기본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자유화가 가져다줄 이득을 측정한다.

이런 모형작업의 노력도 몇 가지 중요하지만 비현실적인 가정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관세의 감축이 정부의 재정적자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정부의 재정적자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그려진 상태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은 각국 정부가 관세수입의 감소액 만큼의 세수를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자동적으로 새로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또 다른 가정은 관세의 감축이 무역수지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무역수지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그려진 상태 그대로 유지된 다는 것이다. 마지막 가정은 완전고용이다. 이런 가정들에 의해 애초부터 강력한 자유무역 편향성이 모형의 핵심에 내장되기 때문에 그 모형을 돌려 작업한 결과가 틀림없이 자유화에 친화적인 내용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편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은행의 연구가 정책의 지침으로 유용하다는 주장을 부인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여전히 검토해볼 만하다. 첫째, 무조건적으로 자유화를 지지하는 세계은행의 태도를 보고 사람들은 흔히 자유화의 편익이 클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세계은행이 추정한 자유화의 편익은 그렇게 크지 않다. 둘째, 2002년도 세계경제전망보다 나중에 이루어진 세계은행의 연구들은 자유화의 편익이 훨씬 더 작음을 보여준다. 2002년의 연구에서 세계은행은 "정태적 관점에서 측정할 때 상품무역 자유화가 이루어질 경우 2015년의 세계 소득은 기본 시나리오에 비해 3550억 달러만큼 더 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 편익 가운데 약 52%에 해당하는 1840억 달러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 돌아가지만, 그 중 1420억 달러의 이득은 농산물 무역 자유화로부터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이 1420억 달러 가운데 1140억 달러는 제3세계 국가들 자신의 농업부문을 자유화하는 데서 나올 것으로 추정됐다는 점이다. 농업 부문에 비하면 제조업 분야의 무역 자유화의 이득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 세계 제조업 분야에서 완전한 무역 자유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로부터 제3세계 국가들이 얻게 되는 이득은 440억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숫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WTO 협정으로부터 제3세계가 얻게 될 이득은 거의 없는 게 틀림없다. 이런 세계은행의 연구에 대한 비평에서 마크 바이스브롯과 딘 베이커는 이렇게 지적했다. "농산물, 섬유직물, 기타 제조업 제품을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의 수출상품에 대한 부유한 나라들의 수입장벽이 모두 다 제거된다면, 그리고 이런 변화가 2015년까지 완전히 실현된다면 … 중저소득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은 0.6%만큼 추가로 늘어날 것이다. 이는 곧 현재의 무역협정들 아래서는 2015년에 일인당 연간 500달러의 소득을 올리게 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 대신 503달러의 소득을 올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바이스브롯과 베이커도 지적했지만, 이런 미미한 이득보다 그밖의 다른 WTO 협정들을 준수해야 하는 데서 초래되는 손실이 훨씬 더 클 것이다.

보다 최근에 세계은행이 추정한 결과를 보면, 자유화가 가져다줄 이득은 훨씬 더 작다. 2005년도 세계경제전망에서 세계은행은 "1997년과 2001년 사이에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진 개혁들(예를 들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의 시행과 WTO 가입을 위한 중국의 변화 등)을 포착하고 특혜무역협정들의 효과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데이터들을 모델작업에 추가로 반영했다. 그 결과 상품무역 자유화가 가져다줄 정태적 이득의 총액은 2600억 달러(2015년 기준, 기본 시나리오와의 차이)로 줄어들었고, 이 가운데 41%만이 제3세계에 돌아가는 것으로 나왔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자본주의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입어 왔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세계화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이는 그들이 자본주의 세계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학문적' 주장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그런 주장들은 자본주의의 작동을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이론과 고도의 작위적 시뮬레이션에 근거한 것이어서 도전하거나 거부할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돼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현실**

1980년 이후의 신자유주의 시대는 성장의 둔화, 무역불균형의 확대, 사회적 조건의 악화라는 특징을 보여 왔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는 이렇게 보고했다. "1990년대를 1970년대와 비교해보면 중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들 전체의 평균 성장률은 2%포인트 낮아졌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적자 비율은 평균적으로 거의 3%포인트 상승했다."

모든 개발도상 지역들이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여 왔다. 1970년대와 1990년대를 비교하면 중남미의 경우는 평균 성장률이 3%포인트 낮아졌고, GDP 대비 무역적자 비율은 변화 없이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는 성장률이 떨어졌고, GDP 대비 무역적자 비율은 상승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1980년대에는 1970년대에 비해 더 빨리 성장하면서 무역수지 적자도 줄일 수 있었지만, 1990년대에는 성장률이 더 높아지지 않은 가운데 무역적자만 대폭 확대됐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제3세계의 경제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한 마크 바이스브롯, 딘 베이커, 데이비드 로스닉의 연구도 비슷한 결론을 냈다. 이들은 "대중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지난 25년 간(1980~2005년)에는 그 전의 20년 간에 비해 대부분의 중저소득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낮아졌고 사회적 지표들의 개선도 저조했다."

국제 경제활동의 자유화를 지지하는 주류의 주장들에 밑바탕이 되는 주요 가정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결과가 놀라운 게 아니다. 대체적으로 보아 무역자유화는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탈산업화를 촉진했고, 그럼으로써 제3세계 국가들의 수입 의존도를 상승시켰다. 또한 무역자유화는 제3세계 사람들이 사치재를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치재의 수입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역자유화는 초국적 기업들로 하여금 생산시설을 제3세계로 옮기도록 유도함으로써 제3세계 국가들에서 생산되는 수출상품의 수입원료 집약도를 상승시켰다. 그런가 하면 제3세계 국가들의 수출대금 수입은 그렇게 빨리 늘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수입 증가를 상쇄해야 했기에 제3세계 국가들의 수출활동과 경쟁이 더욱 촉진됐고, 이런 흐름이 제3세계 국가들의 수출대금 수입 증가를 억제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성장세가 둔화되고 보호주의가 강화된 것도 제3세계 국가들의 수출 증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3세계 국가들은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경제성장을 늦추고 수입을 줄이기 위한 긴축정책, 특히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정책을 채택했고, 이런 긴축정책의 채택은 흔히 IMF와 세계은행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3세계 국가들은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는 데 필요한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고, 경제활동을 민영화했으며,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체제를 약화시켰다. 이런 정책들은 노동하는 사람들과 국가적 발전 잠재력에는 파멸적인 것이었지만, 초국적 자본과 제3세계 국가의 수는 적지만 영향력이 큰 국내 자본 부문의 이익에는 부응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현실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동태적 변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여러 측면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실태와 정책들의 본질을 포착하게 해주긴 하나 몇몇 중요한 측면에서 문제점도 있다. 이 용어는 특히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폭넓게 동시에 존재하며 신자유주의는 그런 선택 가능한 정책들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용어는 각 국가가 원한다면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러 나라에서 채택됐던 것과 유사한 사회민주주의 정책이나 개입주의 정책을 채택해 시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흔히 신자유주의와 동일시되는 경제활동의 자유화가 잘못된 정책선택의 결과라기보다 강요당한 구조적 대응의 결과다. 달리 말하자면, 제3세계에서 도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은 하나의 정책집합으로서의 신자유주의라기보다 동태적이고 착취적인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다.

주류 이론가들은 대개 국제무역, 금융, 투자를 각각 별개의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위에서 조명한 바 있지만, 더 높은 수익성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충동은 일반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 광범한 영향을 초래하는 자유화와 규제완화에 나서도록 압박을 가하는 작용을 해 왔다. 이런 추동력은 그동안 제3세계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제3세계에 대해 중대한 결과들을 낳았다. 이 추동력은 무엇보다도 초국적 기업들이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의 기존 기반과 추가로 확장된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들의 목적을 보다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제3세계의 산업활동에 대한 지배의 구조가 새로운 형태로 구축되면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 점점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국가 간 관계가 재편되고 통합돼 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이 국가가 지도하는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추구했고, 무역적자를 은행융자로 메웠다. 이런 방식의 공업화 전략은 1980년대 초에 갑자기 중단됐다. 당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에서 경제가 불안정해지면서 금리가 오르고 세계적인 불황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의 대외차입 비용이 치솟고 수출대금 수입이 급감하면서 제3세계에 '채무위기'가 일어났다. 제3세계의 부채상환이 의문시되자 은행들은 대출을 크게 줄였고, 그 결과 제3세계의 경제사회적 문제들이 더욱 더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제3세계 국가들은 수출을 늘리고 국제자금 조달처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수출 지향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에 따라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제3세계 국가들은 너도나도 자국의 투자제도를 변경했고, 그 대부분은 보다 자유화되고 규제완화가 이루어지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도변경이었다. 초국적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호응했으며, 사실 제3세계의 이런 변화 중 상당 부분은 초국적 기업들 자신 또는 그들의 정부가 촉진시킨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1991년부터 1998년까지는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제3세계의 순 자본유입액 중에서 3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이 개발된 기술들은 초국적 기업들이 생산과정을 여러 개로 쪼개어 지리적으로 분산 배치함으로써 많은 제품들의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초국적 기업들은 이렇게 할 수 있는 제품 생산과정 중 노동집약적인 공정, 특히 부품이나 부분품을 생산하거나 조립하는 공정을 제3세계에 배치하기 위한 투자를 실시했다. 이런 일은 특히 전기전자, 의류, 그리고 광학적 도구와 같은 일부 첨단 기술제품 분야에서 많이 일어났다.

그 결과는 수직적으로 구조화된 다수의 생산 네트워크가 성립되고 확장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가운데 많은 생산 네트워크가 다수의 나라들에 걸치는 형태였다. UNCTAD는 이렇게 지적했다. "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신흥시장 국가들의 투입산출표를 토대로 추정해본 결과, 수직적 생산 네트워크 안에서의 특화를 근거로 해서 이루어진 무역이 지난 25년 동안 40% 늘어나면서 전 세계 수출의 30%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됐다."

제3세계 국가들이 FDI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음에도 초국적 기업들은 투자를 오로지 소수의 몇 개 국가들에 집중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대체로 보아 미국 자본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역에, 일본 자본은 동아시아 지역에, 유럽 자본은 중부 유럽에 각각 투자를 집중했다. FDI 경쟁에서 진 국가들은 대개 무역 및 자본조달 상의 문제를 긴축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FDI 경쟁에서 승리한 국가들은 대체로 산업적 변환을 상대적으로 빨리 경험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국가들은 제조업 제품, 특히 트랜지스터, 반도체, 컴퓨터나 사무용 기계의 부품, 통신장비와 관련 부품, 전기기계와 같은 첨단기술 제품의 주된 수출국이 됐다.

이런 발전의 결과, 제3세계의 수출에서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20%였으나 1990년대 후반에는 70%로 크게 확대됐다. 전 세계에서 수출되는 제조업 제품 중 제3세계 제품의 비중도 1965년에는 4.4%였으나 2003년에는 30.1%로 확대됐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제조업 제품 수출의 증가는 자유화의 편익을 증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WTO 식의 자유화 협정이 경제발전에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FDI와 제조업 제품의 수출을 경제발전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며, 초국적 자본축적의 동학을 심각하게 곡해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초국적 기업이 통제하는 생산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이 생활수준의 상승, 경제적 안정, 국가의 발전 전망을 뒷받침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FDI를 유인하는 데 성공한 국가들은 대개 자국의 경제를 자유화하고 규제완화를 함으로써 그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런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입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산업이 파괴되어 실업이 늘어나고 수입이 급속히 증가하며 산업공동화가 초래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둘째, 선진국 자본이 제3세계에 입지해 벌이는 활동은 기법이나 기술을 전수하거나 그 나라의 국내 산업 간 연관성을 강화시키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곧 그런 활동들이 동태적이고 국가적으로 통합된 경제발전 과정을 촉진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뜻한다. 게다가 그렇게 생산되는 수출품들은 고도로 수입 의존적이기 때문에 외화소득의 편익이 그리 크지 않은 수준으로 억제된다.

마지막으로 초국적 축적 과정은 제3세계의 성장을 해외수요에 점점 더 의존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생산 네트워크의 주된 최종시장은 미국이다. 이는 곧 제3세계의 성장이 점점 더 큰 규모의 무역적자를 지탱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에 갈수록 더 크게 의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가정이 현실에서 성립하는지는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피해간 나라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UNCTAD는 1981년부터 1996년까지의 기간을 대상으로 '앞선 개발도상 7개국', 즉 홍콩, 말레이시아, 멕시코, 한국, 싱가포르, 대만, 터키의 경제실적을 연구했다. 이들은 제조업 수출에서 가장 성공적인 제3세계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수출활동 중 많은 부분이 초국적 기업이 통제하는 생산 네트워크의 내부에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복지나 국가적 발전의 측면에서 실현되는 이득은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어 이들 7개국 전체의 제조업 부가가치 평균치는 조사대상 기간 내내 제조업 수출제품 전체의 가치보다 낮은 수준에 일관되게 머물렀을 뿐 아니라, 제조업 수출제품의 가치에 대비한 제조업 전체 부가가치의 비율도 1981년의 76%에서 1996년에는 55%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들 7개국의 GDP 대비 제조업 제품 수출의 비율이 급등했음에도 GDP 대비 제조업 부가가치의 비율은 전반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더욱이 7개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놓고 볼 때 1980년대 말까지는 제조업 제품 무역이 대체로 균형상태를 유지했지만, 그 뒤에는 제조업 제품의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났다. 멕시코의 경험은 이런 성장전략의 파산을 가장 잘 상징하는 사례일 것이다. UNCTAD의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1980년부터 1997년까지 전 세계 제조업 제품 수출에서 멕시코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배로 늘어났지만 전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멕시코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이상 축소됐고, (경상 달러화 기준으로) 전 세계 소득에서 멕시코가 차지하는 비중은 13% 가량 축소됐다."

***중국, 최근의 신자유주의 '성공 스토리'**

자본주의가 경제발전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역동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다.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각국 내부와 국가 간에 새로운 생산관계 및 교환관계의 발달과 그 작동을 촉진함으로써 각국의 경제적 운명에 급격한 변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단히 그 구성내용이 변화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규모가 축소되는 '승자' 집단과 점점 더 커지는 '패자' 집단이 생겨나지만, 이 두 집단이 서로 어떤 연결관계를 갖는지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 1997~98년의 동아시아 위기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와 같은 주역급 국가들을 파탄시킨 데서 보듯이 동아시아마저도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내재된 불안정성에 휘둘렸다. 대부분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재빠르게 이들 나라와 거리를 두었고, 이제는 새로운 챔피언인 중국을 열렬히 끌어안고 있다.

사람들의 상식적인 인식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3위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국이자 제조업 제품 수출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다. 이렇게 된 것은 대체로 중국 정부가 사기업과 국제 시장세력을 우대하는 것을 토대로 하는 성장전략을 채택한 덕분이라고들 한다. 이런 새로운 성장전략 덕분에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순유입액이 1990년 35억 달러에서 2004년에는 606억 달러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중국의 제조업 전체 매출 중 외국계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3분의 1에 이른다. 이런 외국계 기업들이 중국의 전체 수출 중 55%를 생산하며, 중국이 수출하는 첨단기술 제품 중에서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비중은 훨씬 더 높다. 이런 추세의 결과로 중국의 GDP에 대비한 수출의 비율은 1990년 16%에서 2003년에는 36%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곧 중국의 성장이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조직된 수출활동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는 뜻이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중국의 수출 증가율을 보다 빠른 궤도로 끌어 올리고 국내 생산능력을 상당히 확대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위에서 살펴본 성장전략의 한계 중 많은 것들이 중국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외국계 기업이 지배하는 수출활동은 국가적으로 통합된 생산 및 기술의 공급 네트워크를 발달시키는 데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더욱이 중국에서 국가가 계획 및 지도의 능력을 점점 더 많이 잃어가는 동시에 중국의 자원이 해외 시장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계 생산 네트워크에 점점 더 긴밀하게 통합되어 가면서 중국의 자율적 발전 잠재력은 소실되고 있다.

중국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비중은 작지만 절대숫자로는 규모가 상당히 큰 고소득층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고, 이들은 종전보다 크게 확대된 소비의 기회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득은 중국의 노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거의 대부분 상쇄된다. 예를 들어 중국 국가가 취한 자유화 정책의 결과로 국유기업들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해고한 노동자가 3천만 명이나 된다. 도시의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이르기 때문에 국유기업에서 해고된 노동자들 가운데 적절한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실제로 국유기업에서 해고된 노동자들 가운데 2180만 명 이상이 현재 정부의 '평균최저생계 수당'에 의존해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2005년 6월 현재 이 수당은 대략 월 19달러 수준이며, 도시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이 대략 165달러인 데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다.

외국계 기업의 지배 아래 이뤄지는 수출품 생산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고용기회들이 창출되긴 했지만, 이런 일자리의 대부분은 임금이 매우 낮다. 미국의 노동통계국을 위해 일하는 한 컨설턴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공장 노동자들은 부가급여를 포함해 시간당 평균 64센트를 번다. 중국 수출품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는 광둥 지역에서는 제조업 부문의 최저임금 기준이 지난 10년 간 동결됐다. 게다가 이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서 저렴하고 살만한 주택, 보건서비스, 연금혜택, 교육기회가 주어지는 노동자들도 있긴 하겠지만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경제적 변환은 중국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비용을 안겨주면서 이루어진 것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이 지닌 모순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어 왔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선진 자본주의 시장, 특히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생산자들을 그 시장에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중국에서 조업하는 수출 지향의 초국적 기업들이 사용하는 부품과 부분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수출활동의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이렇듯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의 지역적 축적체제 속으로 짜 넣어지고 있으며, 이 축적체제는 국경을 넘나들며 작용하면서 각국 내부의 활동과 자원이 구조적으로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 하게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그 대신 각국의 국내 활동과 자원은 사회적 또는 환경적 결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비용절감에만 관심을 갖는 초국적 기업들의 지휘 아래 동아시아 지역의 바깥에 존재하는 수출시장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동아시아 위기 이후 이 지역 국가들의 성장속도가 종전보다 훨씬 느려졌다는 점, 그리고 이 지역 전체에 걸쳐 경쟁압력이 고조되면서 삶의 기준을 저하시키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은 이 지역 경제관계의 새로운 체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 발전과정을 촉진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이와 동시에 중국의 폭발적인 수출 증가는 미국의 지탱불가능한 무역적자는 물론 일본과 미국 경제의 산업공동화 현상도 가속화시켜 왔다.

이런 축적과정에 의해 초래된 경제적, 정치적 불균형은 언젠가는 그 정도가 너무 커져서 교정이 일어나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자본주의적 경쟁의 논리가 도전받지 않고 계속 관철되는 한 각국 정부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은 물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큰 정책들을 통해 조정과정을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다음 차례 성공 스토리를 발견해내는 수단으로 바로 이 조정과정을 수용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발견해낸 성공 스토리의 경험을 시장의 힘이 우월함을 입증해주는 증거로 인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우리의 과제**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정책이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경제적 활동과 관계들을 변환시킬 것임을 입증하겠다는 주장들은 자본주의의 실제 작동을 왜곡하는 이론과 시뮬레이션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실에서는 갈수록 더 통합되고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축적 과정에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포섭되고 있다. 더 많은 부가 창출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 관여된 모든 나라의 노동하는 사람들은 서로 싸우며 대치하게 되고, 삶의 조건과 노동조건, 그리고 실업 등의 고통을 동시에 비슷하게 겪게 된다.

노동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균일하지는 않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점점 더 커지는 저항에 가담하고 있다. 이 저항은 점점 더 효과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대체로 방어적이고 정치적 초점이 제대로 맞춰져 있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 이론이 사실은 자본가 계급에 의해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인데도 자본주의 세계화의 이데올로기적 덮개로서 강력한 효과를 계속 발휘한다는 데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성격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경향이 있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있다. 그러므로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삶을 재편성하는 축적과정의 성격을 노동하는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게끔 돕는 방식으로 우리의 투쟁을 전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노력을 해나가면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공통된 자본주의적 뿌리를 드러내 보일 수 있고, 근본적 사회변혁과 국제연대에 헌신하고 기여하는 운동을 구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조명할 수 있다. (번역=이주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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