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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년전 YS정부의 OECD 가입논리 연상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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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IMF 1년전 YS정부의 OECD 가입논리 연상돼

[한미FTA 뜯어보기 30] 사회의 양극화, 사고의 단극화 (3)

외부쇼크라도 미국發이면 좋은 것이라고?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할 양대 과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과 '양극화의 해소'라고 선언했다.

가장 추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양극화는 대내외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미 FTA는 상상하기 어려우리만큼 커다란 외부 쇼크다. 따라서 한미 FTA는 양극화에 심각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정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부도 "한미 FTA 추진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명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도 그것이 양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국정브리핑)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한 반대를 반미(反美)로 몰지 않아 일단 다행이지만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주장은 '기우'"(국정브리핑)라고 단정하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이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미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이다.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거나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서비스 부문의 발전을 촉진시켜 (…) 소득 불평등도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분석"(국정브리핑3)이다. 참으로 요령부득이다.

또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구조적인 요인 중 하나로 '중국 요인'이 지적되고 있다"든지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과의 FTA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양극화를 개선시킬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것"(국정브리핑)이라는 등 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중국과 미국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더 나아가 "한미 FTA는 금융, 의료, 교육, 법률, 회계 등 고부가가치형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킬 촉매제가 돼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기여할 것"(한덕수, 국정브리핑)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을 보니,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수입업자들이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희박하기 그지없는 근거다.

나는 분명 대한민국 사람이지 미국이나 그 어떤 다른 나라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의 주장과 설명을 들으면 걱정이 된다. 믿으려 해도 논리부터 어긋나기 때문이다. 사실은 어떠한가?

<그림> 양극화의 구조적 원인 ('동반성장의 길', 이정우 외, 미발간)


위 그림에서 보듯이 현재의 양극화는 199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경제 세계화의 흐름이 가속화하던 중 한국 사회가 1997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런 흐름을 급속히 받아들인 데 기인한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내의 양극화는 정부 정책의 미비나 오류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

소위 '중국 쇼크'는 양극화 문제의 심화에 하나의 부차적 계기가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미국과의 FTA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의 제도를 전면적으로 미국화하면서 양극화를 심화시킬 큰 계기가 된다. 이를테면 한미 FTA는 노동시장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연화하는 정책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의 주장대로 한미 FTA는 "시장경제의 대표주자인 미국경제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불평등도가 높고, 그런 불평등이 제도로 굳어져 있는 나라다. 우리 정부는 1994년에 미국, 멕시코, 캐나다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이들 나라의 상호간 교역을 확대하고 성장률을 높였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NAFTA가 체결된 후 이들 세 나라 모두에서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점은 도외시하고 있다.

의료-교육 분야에도 양극화 빚어질 것

그동안 '중국 쇼크'로 인해 생산성이 낮은 국내 제조업이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이번엔 '미국 쇼크'로 인해 농업과 서비스업이 타격을 입을 차례가 될 것이다.

한덕수 부총리가 한미 FTA와 관련해 많이 거론하는 서비스업도 기업인수합병(M&A)을 앞세운 미국 기업들이 장악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한미 FTA 체결 이후 국내 서비스업에서 대량 해고의 확대와 함께 고급 시장과 저급 시장으로의 양극화의 심화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미국의 의료기업이나 영리 교육법인이 한국시장에 즉각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투자 및 서비스업 시장이 미국의 2004년도 양자간 투자협정 모델 안(BIT 2004) 수준에서 개방된다면 이런 분야의 미국 기업들도 한국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의료나 교육과 같이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도 양극화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재정경제부는 국내 서비스업의 개방을 유도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이미 재경부 관리들은 싱가포르의 예를 들면서 '어떤 형태로든 외국의 우수학교를 국내에 유치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으로 하버드와 같은 미국 명문대학의 아시아 분교를 경제자유구역에 유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런 재경부의 태도는 병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재경부 관리들의 생각대로 의료, 교육 시장이 개방되어 병원 강제지정제(공영 의료기관뿐 아니라 사적 의료기관 등 모든 의료기관을 의료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로 지정하는 제도)가 무너지거나 대학의 영리법인화가 허용되는 경우에는 그나마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한국경제의 공공성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통상 당국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 국민으로서 나는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랄 뿐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명저 <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체제전환국들에게 미국 경제를 본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최근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조언을 하면서 "미국 대신 스웨덴에서 모범을 찾으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미 FTA처럼 경제체제를 바꾸는 차원에서의 선택은 비가역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한미 FTA가 일단 한국경제 내의 한 체제로 굳어져 경로의존성(우연에 의해 하나의 경로가 정해지면 다른 경로로 옮겨가는 것이 어려운 고착현상)이 생기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없던 일로 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 만큼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미 FTA의 체결은 신중해야 한다. 몇 십 년, 어쩌면 100년 이상 우리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선택을 1년 내에, 그것도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상대로 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양극화 대책은 FTA가 아닌 다른 데서 찾아야

정부가 말한 대로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국정브리핑)하다. 그러나 정부는, 그리고 우리는 개방에만 적극적일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대안적 경제체제를 찾는 데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국내 유통업체인 이마트가 최근 모든 정부 문서에 개방의 성공 사례로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까르푸나 월마트 등 세계적인 유통기업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결국 이마트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특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유통시장 개방의 이익을 외국의 대기업이 취했는지, 아니면 국내의 대기업이 취했는지와 관계없이 이제는 '동네 수퍼'로 불리는 영세 자영업자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한국의 토종이 이겼다는 '민족적 감성'을 뺀다면, 이마트의 성공도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했다는 점에서는 해외 유통기업의 국내 진출과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에 탄생한 '햇빛촌(전국 수만 개 동네 슈퍼들의 공동 브랜드)'이다. 햇빛촌은 양극화를 완화하는 중요한 방법을 보여줬다. 이것은 공동체적 합의에 의해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도덕적 해이 등을 극복했기에 성립이 가능했고, 정부의 정책 없이 자생적으로 양극화를 극복한 경우에 해당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정부가 마이크로 크레딧(소액신용)을 비롯한 빈곤퇴치 정책과 클러스터 조성 정책 등을 의식적으로 실시할 경우, 일반 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생산성 증가 모델을 끊임없이 찾아낼 수 있다. (위 그림에 인용된 '동반성장의 길'은 바로 그러한 정책방안을 집대성한 보고서이며, 저자들은 이 보고서를 곧 책으로 발간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정부도 물론 한미 FTA로 인한 국내의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정부는 4월 19일자 국정브리핑에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정밀한 영향분석을 거쳐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무역조정 지원제도를 소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이 국정브리핑에서 미국식 FTA 모델에서의 구조조정 지원제도와 유럽연합(EU)식 구조조정 지원제도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자국의 재정으로 자국 내 피해 산업 및 피해 노동자에 대한 보상과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EU는 모든 회원국이 공동으로 출연한 '유럽구조기금(European Structural Fund)'을 이용해 구조조정 지원을 하고 있다.

유럽형 무역조정 지원제도는 이를테면 무역협정에 참여한 복수의 나라들이 각각 자국의 기금을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국내총생산(GDP)에 비례해 기금에 출연하도록 함으로써 역내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의식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미국과 한국이 진심으로 '윈-윈(Win-Win) 게임'을 할 요량이라면 유럽형 구조조정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아직 남아 있는 희망

판도라의 상자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것"(국정브리핑)이라거나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 지금까지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인색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국정브리핑)는 정부의 언급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드시 타결해야 한다는 실적주의에 매몰되면 국익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고, 한 발 더 나아가 "안 되면 접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각 부처의 관료들과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들도 이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말고 가슴에 깊이 품어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초보적인 논의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은 공청회 등을 통해 한미 FTA 관련 자료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월 2일 한미 FTA 공청회가 무산된 것은 한미 FTA 추진에 법률적 하자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의식한 듯 "5월 중에는 협상전략과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을 가지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국정브리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에서 "검토 중"이란 말은 '당분간은 하지 않겠다'는 말과 뜻이 같다. 이런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을 걸어본다. 정부는 한미 FTA와 관련해 공개할 것은 다 공개해야 하고, 국민의 의견을 물어야 할 것은 다 물어야 한다. 이것만이 살 길이다.

또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의견을 묻겠다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통상협상 체결절차 등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안'이나 기타 관련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여당에 요구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국회가 국민의 뜻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국회도 제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나도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을 믿는다. 그러나 존 케인즈의 말대로 장기(長期)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 '연산가능 일반균형(CGE) 모형'이 그리는 장기균형은 오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의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모든 가능성을 다 점검하면서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 FTA를 맺으면 우리나라의 국제신인도가 올라가고, 우리가 한 걸음 더 선진국에 다가갈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똑같은 이유로 서둘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가 바로 1년 뒤에 경제위기를 맞고 우리나라의 국제신인도가 폭락했으며, 우리는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관료든 경제학자든 구체적 정책대안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결국은 시장이 모든 것을 이루어줄 것"이라거나 "개방과 경쟁이 우리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줄 것"이라고만 되뇌는 것은 무능과 무책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를 떠받치는 참모들의 사고는 단극화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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