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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에서 '열광'으로 건너뛰는 대한민국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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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에서 '열광'으로 건너뛰는 대한민국 자화상" [화제의책] '황우석 신기루' 해부한 <침묵과열광>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김병수 생명공학감시연대 정책위원, 한재각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이 같이 쓴 '황우석 사태'에 대한 기록 <침묵과 열광>(후마니타스 펴냄)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른 사람은 엉뚱하게도 러시아의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이었다. 스탈린의 정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에 돈 강 근처의 로스토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솔제니친은 어디에선가 이런 기록을 남겼다.

"마을 공회당 입구에 벽보가 붙어 있곤 했다. 조국의 배신자를 일벌백계한다는 포고문들이었다. 마을의 어른들이 그런 공고를 심각한 표정으로 읽고 있을 때 나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그것들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어린 아이가 어른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진실을 꿰뚫어볼 수 있었을까? 대답을 굳이 찾자면 그것은 시속(時俗)에 좌우되지 않는 평상심의 정직한 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봤을 때 <침묵과 열광>은 황우석 사건의 전말을 통해 시속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극단적인 바람에 휩쓸리며, 제각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했던 우리 사회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한류의 수출국, 미국 내 외국 유학생 1위국이자 '동북아 균형자'를 자처하는 나라의 지도자와 국민이 어떤 수준의 이성과 분별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안타까운 연대기, 아니 어쩌면 블랙 코미디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고난도의 감식안이 아니라 시속에 좌우되지 않는 평상심의 정직한 눈만 있었더라도 눈치 챘을, 하지만 대다수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던, 대 사기극의 해부학이다.

낡아빠진 이념에서, 한물 간 시대정신에서, '얼짱'에서, 휴대전화에서, 스포츠에서, 스타 과학자에서 '백마 탄 초인'을 찾으려고 하는 미숙한 국민 심성의 안타까운 갈증의 증언이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소위 '여론 지도층'들이 타이타닉 호처럼 침몰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포착한 역사의 스냅 사진이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민간 차원의 실록
▲ <침묵과 열광>(강양구·김병수·한재각 지음, 후마니타스, 2006) ⓒ프레시안

<침묵과 열광>의 일차적인 그리고 초보적인 미덕은 약 7년간에 걸친 황우석 사태의 전말을 '사실(fact)' 위주로 가감 없이 기록했다는 데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책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외신에서는 작년 7월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사건의 독립 조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부 응급구조체계의 통신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내용이라고 한다. 무려 1년 가까운 시간을 끌면서 철두철미하게 역사의 교훈을 얻으려는 태도와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엄정하고 포괄적인 조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와 교훈을 도출하기는커녕 '누가 몰래 실험실에 들어가 어떻게 조작을 했다'는 식의 검찰수사만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책임은 몇몇 당사자 차원에서 개별화되고, '우리 모두 사기극의 피해자였다'는 식의 '공동 피해자론'만 남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이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관계만 들춰보더라도 이런 식의 2차적 사건 축소가 또 얼마나 심각한 왜곡을 자아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침묵과 열광>은 시종일관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기록물을 중심으로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하지 못한 민간 차원의 실록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앞으로 쏟아져 나올 수많은 황우석 사태 관련 연구물들은 일차적으로 <침묵과 열광>이라는 관문을 거쳐야만 하게끔 되었다.

'과학기술동맹'의 형성과 붕괴 과정 추적

사건의 객관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침묵과 열광>은 '과학기술동맹'이라는 키워드로 황우석 사태를 규명하고 있다. 도대체 과학기술동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황우석 박사와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매개로 여러 세력들이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는 동맹을 형성·발전시켰다가 결국에는 붕괴되어 가는 과정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고안되었다. 이는 흔히 '정책동맹(policy coalition)'이라고 불리는 정책 형성 과정의 중간 구성물을 과학기술 영역에 대입시킨 용어로서 이번 사건의 분석에 효과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

황우석 사태에서 도대체 어떤 동맹세력들이 형성되었는가? 동맹의 진용을 살펴보면 이 동맹세력에서 빠진 측이 누구인지를 찾는 편이 차라리 더 쉬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드림팀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기영 전 청와대 보좌관을 비롯한 '황금박쥐' 멤버들, 이해찬 전 국무총리, 집권여당의 정동영 전 의장,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손학규 경기도지사, 황우석을 돕는 국회의원들 모임, 삼성과 SK와 LG와 포스코와 농협중앙회와 동원그룹 등 후원 기업들, 노성일 이사장, 문신용 서울대 교수, 안규리 서울대 교수, 윤현수 한양대 교수, YTN 김진두 기자, 리더스미디어의 윤태일 사장, 정규원 한양대 교수, 한희원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침해조사국장, <시카고트리뷴>의 김성희 기자 등이 동맹의 주요 면면들이었다.

어쩌면 일개 자연인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관련부처 장관, 여야 국회의원들, 여당과 야당의 대권 주자들, 대기업들, 유력 언론인들로 이루어진 동맹이 형성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유의 사태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덧붙여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놀랍게도 같은 편에 서고 세상이 알아주는 엘리트 기자들이 하나 같이 칭송과 찬양에 몰두했다. 종교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황우석 박사는 영웅이고 구원자였다. 최소한 평자의 기억 속에서 이런 동맹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더 이상 막강할 수 없는 진용,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인맥,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호화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동맹세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우군이 떠받쳐 주었는데도 어떻게 황우석 호가 침몰할 수 있었을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집요하게 모색하는 것이 <침묵과 열광>의 또 다른 장점이다. 해답을 짧게 요약하자면 황우석 연구의 내용이 그만큼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사상 최대최강의 동맹세력도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알맹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신기루요, 모래성이요, '카드로 지은 집'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전 국민의 허탈이 녹아 있다. 수백억 원의 혈세를 쏟아 붓고 수천만 명을 설레게 한 사건의 결과가 이토록 허망하다는 데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황우석 박사에 대해 기대를 접지 못했던 이유도 된다. 도대체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사건이 한창 논쟁거리가 되어 있던 작년 말 어떤 자리에서 사회지도층 인사 한 분을 만났다. 높은 자리에 있는데도 신중하고 겸손해서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황우석 사건이 사기극이 아닐 거라고 단언하면서 "그럴 경우 국민의 실망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라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당위가 '그럴 수는 없다'는 인식의 판단으로 이어졌다가 '그러므로 그것은 사기가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논리의 오류를 발견한다. 많은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황우석의 거대한 신기루는 이러한 논리의 오류 뒤에서 오랫동안 보호 받았고 고비 고비 더욱 커져만 갔다.

'황우석 신기루'의 어이없는 실체

이 신기루의 진짜 실체를 알게 되면 우리는 허탈을 넘어 포기감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이런 과학 사기가 가능했을까? 탐정소설처럼 읽히는 7장을 살펴보자. 우선 황우석 박사 스스로의 자기기만이 있었다. 대중적 지지를 얻고 막대한 투자를 하면 맞춤형 배아복제줄기세포를 얻을 거라고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배아복제 연구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고 과학자로서 소양도 부족했다는 정황증거가 있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과학자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임을 믿고 또 믿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연구내용, 실험방법, 심지어 논문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과학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배경 위에서 사건이 터지자 언론 플레이로 일관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황우석 신기루의 어처구니없는 실체였다. 줄기세포 연구라는 포장 하에 학계 유명 인사들을 얼기설기 엮어 논문에 이름을 올려 주고, 권력의 막강한 비호를 받아 성장하면서 대중들에게 계속 환상을 심어준 황우석 신기루, 이것으로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전 세계 앞에서 농담거리로 전락했다.

여기서 우리는 '국익'을 위해 황우석을 보호하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국익'이 도대체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 과학계에 자정 능력이 있음을 외국에서 크게 평가했던 사실만 보더라도 진실이 최상의 국익임을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크게 배웠다. 이것은 상식이요 평상심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서 놓쳐선 안 될 또 하나의 포인트가 9장에 나와 있다. 황우석 사태로 수면 위에 극적으로 부상한 정부의 '의료 산업화' 정책이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 시장화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정부와 산업체와 의학계 등이 정·산·학 복합체를 형성하여 보건의료를 공공의료가 아닌 시장의료로 끌고 가려고 했던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한 꼭지점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황우석 박사의 연구결과가 '공익'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했지만 기실 의료산업화 정책이 실현되면 돈 없는 사람이 줄기세포 치료의 혜택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다. 연구가 설령 성공했더라도 국민들에게 공정한 의료혜택이 돌아가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졌더라면 황우석의 연구가 그토록 열렬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곱씹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꺼지지 않는 열광과 위기의 민주주의

이 책이 서점에 깔릴 때쯤이면 우리나라는 또다시 월드컵이라는 열광에 빠져 온 국민이 일희일비하고 있을 것이다. 흥분과 열정을 쫓아 부나비처럼 출렁대는 이 거대한 광란의 축제 앞에서 이성과 평상심의 목소리는 개미처럼 짓밟힐 것이다. 왜 우리는 항상 극단으로만 치닫는 것일까? 월드컵 응원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제발 온 세상에 월드컵만 있는 것처럼 '오버'하지 말자는 말이다. 밤 9시 뉴스를 30분씩 축구뉴스로만 채우지 말자는 말이다.

징검다리처럼 열광에서 다음 열광으로 건너뛰기만 하는 이 세태, 언제 황우석 사건이 터졌던가 싶을 정도로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선 손쉬운 망각과 침묵을 택하면서 또 다른 열광의 레퍼토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들의 자화상…. 이런 풍토에서 잘못된 행위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나올 수 없고 책임소재의 규명도, 진정한 사회발전의 방향도 도출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들이 "꺼지지 않는 열광과 위기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환상 앞에서 이성도, 지성도, 판단력도, 분별력도, 최소한의 소박한 평상심도 깨져버렸던 사실을 이 책은 극히 냉정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성과 계몽의 수호자로 자처해 온 진보진영조차 미망과 허상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이 책의 주장은 우리에게 뼈아픈 자성을 촉구한다.

열광과 기대와 흥분이 끝나는 지점에 신기루가 아닌 현실이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모든 깨어 있는 독자들에게 <침묵과 열광>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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