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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정책주권 이양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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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정책주권 이양협정'이다

[FTA 대안은 있다(1)] 허무맹랑한 '충격효과'론

정부는 지난 2월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데 이어 6월 초에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정부와 이 협정 체결을 위한 1차 본협상을 가졌고, 다음달 10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에서 2차 본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이처럼 한미 양국 간 FTA 협상이 빠른 속도로 본격화함에 따라 이 협상에 대한 국내 각계각층의 논란도 갈수록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안적 정책 생산을 위한 민간 싱크탱크'를 표방하면서 최근 활동을 개시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이사장 박경서, 원장 손석춘)'이 한미 FTA와 관련해 그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름의 대안의제를 설정하기 위한 기획 글을 <프레시안>을 통해 발표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프레시안>은 새사연의 이 기획 글이 한미 FTA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고 판단해 오늘부터 연재하기로 했다.

새사연은 이 기획 글에서 우선 정부의 한미 FTA 추진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대안의제 설정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사연은 이 기획 글에서 제시할 대안의제는 현재 한미 양국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협상의 중단 내지 연기를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10여 회에 걸쳐 연재될 이 기획 글은 영국 리즈(Leeds) 대학교에서 기술경제학을 공부하고 새사연의 연구센터장으로 활동 중인 김태억 박사(경제학)가 대표집필한다. 김 박사는 이 기획 글 연재의 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제협정에 대한 최종 비준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 가운데 다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동의한다고 한다. 정부와 언론은 한미 FTA 자체는 인정하되 협정 안에 들어갈 구체적인 내용에 관심을 집중하자고 말한다. 농산물, 개성공단, 교육시장 등 몇몇 영역에서 예외조항을 만드는 것이 성공적인 협상의 관건이란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을 감추기 위해 동원된 쟁점일 뿐이다.

우리는 한미 FTA의 핵심을 투자 및 서비스 부문의 시장개방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식될 미국식 신자유주의라는 '스탠더드'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위험요소이자 반드시 막아 내야 할 우리 사회의 적이라고 판단한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 주류 언론과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주장하는 바와 달리 미국식 신자유주의라는 스탠더드는 미국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쉽게 이전되거나 이식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쟁력 향상이라는 명분 아래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스탠더드를 위로부터 이식하려는 시도는 국내 산업의 경쟁력 향상은 고사하고 그 부정적 효과, 즉 아메리칸 스탠더드와 동전의 이면인 세계최고 수준의 사회적 양극화만을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이를 논증하기 위해 한미 FTA 체결이 몰고 올 장기적, 구조적 효과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간 정부와 청와대는 협상내용을 공개하고 엄밀한 분석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기보다 근거 없는 희망과 기대로, 혹은 압박과 윽박지름으로 일관해 왔다. 이에 반해 한미 FTA를 비판하는 진영에서는 제한된 정보와 역량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민중의 생존과 복지에 미칠 영향을 꼼꼼하게 분석해 왔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한다면, 민중진영은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아직은 정부와 청와대에 의한 미래지향적 의제설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미 FTA를 반대한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구조적인 성장정체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미국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아시아 차원의 외교안보 질서와 남북한 통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미래전략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대안적 미래전략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의제설정의 주도권, 협상의 주도권은 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미국이 계속 행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은 이번 기획 글을 통해 한미 FTA의 직접적인 현실적 효과보다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효과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함과 동시에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에 걸맞게 구조동학적 분석, 즉 한미 FTA 체결에 따른 교역구조의 변화, 자원배분의 변화, 산업구조의 변화를 한미 양국의 중장기 기술정책, 산업정책과 연관해 분석해볼 것이다.

새사연은 지속가능한 미래의 성장모델을 설계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인 동의와 이해에 기반을 둔 낮은 수준의 한미 FTA 협상이 새롭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동시에 아시아에서 기존의 패권적 모델 대신에 호혜협력 모델을 기반으로 해서 남북통합과 아시아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대안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역내 산업기술구조 재조정을 통한 공동체 전략'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편집자>


여전히 한미 FTA는 비밀에 싸여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비밀유지를 고수하고 있으며, 주류언론들은 한결같이 찬성논리와 반론의 여지가 적은 조항들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주류 언론에서 간혹 민감한 쟁점이라며 부각시키는 조항들은 지엽말단에 속하는 것이다. 주류 언론들은 한미 FTA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고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전히 한미 FTA가 관세에 관한 협정일 뿐이라고 알고 있거나 청와대와 정부, 협상단의 합리적 판단 능력을 기대하며 지켜보기만 할 뿐 민의를 모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눈과 귀가 막힌 무력한 국민들을 앞에 놓고 청와대와 정부, 언론이 벌이는 한 편의 총체적인 사기극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는 다른 FTA들과 다르다

한국 협상단이 1차 협상 초안을 제목만 열거해 공개한 내용을 살펴보자. 이것만 봐도, 이미 알려진 대로 농산물 수입은 물론이고 사업서비스, 금융, 투자, 지적재산권, 보건의료 시장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교역장벽 철폐가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과 '의무이행 부과금지' 조항이며, 이 조항을 도입하자는 미국의 요구는 금융과 의료는 물론이고 일체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규제 철폐 요구를 집약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수행해야 할 산업정책 혹은 사회적 조절 기능이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항들에 대해 합의한다면 경제 영역에서 국가의 존재를 말소시켜 버리게 될 것이다. 가히 신자유주의의 완성판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대기업들이 왜 한미 FTA를 찬성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혹자는 한미 FTA를 '제2의 IMF'라고 부르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2의 한일합방'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는 무역과 관련한 관세협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는 산업 전체에 대한 전방연관 효과가 가장 높은 부문, 즉 금융과 서비스 부문의 완전개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며, 그 효과는 미국과의 경제통합에 버금간다. 그래서 한미 FTA는 품목별 관세장벽 폐지에 집중된 한-칠레 FTA, 한-아세안 FTA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현재 추진 중인 한-중-일 FTA, 한-일 FTA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방연관 효과가 높다는 것은 해당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경우 그것이 경제 전체에 연쇄적인 변화를 일으켜 그 영향을 확대재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 부문의 전방연쇄 효과가 크다는 점은 바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거시경제 정책이 금융통화 정책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금융 부문은 사회적인 개입과 조절이 일어나는 영역이기도 하고, 국가경제 전체 차원에서 장기적인 전략적 기획을 할 때 필수적으로 이용되는 정책수단도 이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서비스 분야 중 '비즈니스 서비스'와 '지식정보 서비스' 분야는 미래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 본질상 사회적 맥락, 문화적 토양 위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서비스, 금융, 투자 부문의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철폐하는 것은 곧 한 국가의 경제주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전략적 국가개입, 즉 산업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고 서비스, 금융, 투자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흐름을 외국자본에 내맡기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서비스 부문(지식, 문화, 교육, 의료, 환경)은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 즉 복지, 사회정의, 분배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새로운 가치창조, 가치의 다양화를 통해 미래의 성장동력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서비스 부문은 시장경쟁의 논리가 통용되기 힘든 영역이며, 시장경쟁의 논리를 적용할 경우 더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대 주류경제학의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조차도 서비스 부문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와 '외부성 효과'로 인해 이 부문에서는 시장경쟁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의 최대치가 항상 사회적 최적 수준을 밑돌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의 글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논증하겠지만, 현재 협상 중인 한미 FTA는 한국경제의 주권과 지속가능한 내생적 경제성장 전략을 포기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미 FTA는 세계적으로는 유일 단극의 지배 체제와 연관되며, 아시아에서는 대중국 포위전략의 완성판이 될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와 신속기동군제로의 군사전략 전환, 그리고 이를 위해 필수적인 '전략적 유연성' 등을 강행하려는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안보 전략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한미 FTA는 특히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금융허브'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미 FTA를 통해 한국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과 미국자본의 한국 금융시장 장악이 이루어진다면 아시아 차원에서 진행돼 온 독자적인 금융통화 협력의 흐름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로드맵에 따른다면 '아시아 금융허브'의 일차 목표시장은 채권시장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아시아 개발 채권은행(ADB)'의 창설을 통해 시장의 논리가 아닌 아시아 지역공동체의 논리를 관철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을 배제한 지역협력의 흐름에 대해 집요하게 반대해 왔으며, 각종 새로운 국제기구 창설을 통해 이를 방해해 왔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 미국의 금융자본에 의해 장악된 '아시아 금융허브'가 한국 내에 만들어진다면 아시아 지역협력을 추진해 온 흐름과 충돌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가 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추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질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미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면서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통일한국의 미래에도 부작용 초래

그뿐만 아니라 아시아 이같은 금융허브의 등장은 국내 경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이 요구하고 한국 정부가 협정 초안을 통해 이미 수용하기로 결정한 '금융 및 투자'에 관한 조항들은 아시아 경제공동체 추진에 필수적인 국가 간 분업구조의 재편 및 이를 위한 국내 산업구조 재편을 추진할 수 있는 전략적 산업정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막대한 규모의 금융자본이 국내에 유입되어 활개를 칠 수 있는 데 반해, 사회적 조절과 조정, 미래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산업정책의 손발은 완전히 제거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미국에 군사와 안보의 측면에서 종속된 데 이어 경제의 측면에서도 일방적 종속이 완성되는 것이다.

또한 한미 FTA는 통일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런 우려는 단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원산지 규정 적용 문제와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 경제통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간에 경제체제의 비교우위론적 분업구조를 넘어선 대안적 경제체제 내지 경제질서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협의, 과감하고도 안정적인 장기투자, 특구를 넘어선 미래 기반산업 중심의 클러스터 정책 등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북한에 잠재적인 성장동력을 만들고 그것을 현실화하기까지는 많은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야 하며, 이에는 남북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아시아 차원의 국제적 노력이 조화를 이루며 결집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미국자본에 의해 장악된 우리나라의 금융, 투자, 서비스 시장이 막대한 통일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미래 기반산업 중심의 클러스터 구축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할 수 있을까? 이런 조건들이 전제되지 않은 채 추진되는 남북한 경제통합은 북한 경제와 북한 민중의 미래를 외국자본의 단기이윤 추구 논리 앞에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내던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남북한 경제통합으로 인해 발생할 비용은 전적으로 남북한의 민중에게 떠맡겨질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그동안 알량한 일반균형연산(CGE) 모델의 추정결과를 내세워, 그것도 그 추정의 근거와 전제들은 공개하지도 않은 채 한미 FTA의 경제적 기대효과를 과대광고 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고 보더라도 한미 FTA의 경제적 기대효과는 여전히 마이너스다.

현재 양국의 평균 관세율을 보면 한국이 7.9%인 데 비해 미국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FTA로 한미 양국의 관세장벽이 모두 철폐된다면, 그 순효과는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적자로 나타나는 게 필연적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도 한미 FTA가 한미 양국 정부의 계획대로 체결될 경우 2010년경이 되면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미 미국이 한국에서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올리고 있는 자본수익을 합칠 경우, 2010년경이 되면 미국에 대한 경상수지 적자 규모에서 우리나라는 주요 교역상대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한미 FTA 비판에 대해 궁색해진 청와대는 한미 FTA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성과로 서비스와 금융 부문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시장이 개방되면 외부충격으로 국내 서비스 및 금융 부문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고도화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력 강화와 경제구조 고도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이 협상안의 내용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미 FTA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관료들은 물론, 그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그 많은 국책연구소들 가운데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에서는 한국 최고의 싱크탱크라는 삼성경제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이 완강한 침묵의 카르텔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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