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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전략산업은 더이상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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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전략산업은 더이상 없게 된다

[FTA 대안은 있다(4)] 자원배분 왜곡 효과

청와대와 정부는 한미 FTA 추진의 핵심적인 근거를 '개방을 통한 경쟁력 확보'론에서 찾는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 육성과 관련하여 한미 FTA 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청와대의 논리를 그 핵심만 간단히 정리해보자. 그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한미 FTA에 따른 관세 철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효과는 자동차,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분야의 교역조건 개선으로 인한 수출증가다. 또 한미 FTA의 장기적, 구조적 효과로는 시장개방 확대를 통한 선진자본 유인과 지식 수입을 통한 한국경제의 구조 고도화 및 경쟁력 확보를 들 수 있고, 그 결과로 직접투자 유입 촉진, 선진기업의 연구개발(R&D) 시설 유치로 경쟁을 통한 혁신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특히 금융, 지식, 서비스 분야는 전방연계 효과가 큰 부문이므로 이들 영역에서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을 통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직접적인 효과를 얻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자동차, IT, 부품소재 분야를 들여다보자.

작은 것을 취하고 큰 것을 버리는 셈

자동차 관세가 한국은 8% 수준인 데 비해 미국은 2.5% 수준으로 이미 낮아, 한미 FTA에 따른 관세인하로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 증가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출입 역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이 2005년에 서명한 미국의 수소에너지 프로그램 등 신에너지 기술 개발노력이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변화시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자동차 산업에서 미국의 경쟁력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노기술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될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최근 들어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 대한 한국의 자동차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중국이 매우 높은 수준의 자동차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미국과의 FTA보다는 중국과의 FTA 체결이 우리에게 훨씬 더 유리하고 절박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2000년 이후 아주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자동차 부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자동차 부품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지역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과 아시아다.

IT 부문의 경우에도 관세인하로 인한 수출증가 기대효과는 아주 미미하거나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 최종재(특히 휴대폰)의 경우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미 무관세 수출을 하고 있고, 휴대폰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전자제품 최종재는 현지생산 체제가 구축돼있기에 미국의 관세가 철폐되거나 낮아져도 그 수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면에 IT 관련 생산장비의 경우는 가격경쟁력이 아닌 기술경쟁력이 교역조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한미 FTA로 인한 양국의 관세장벽 철폐는 그동안의 무역역조 현상을 훨씬 더 심화시킬 것이다.

게다가 머지않은 미래에(10여 년 이내에) 분자컴퓨터나 양자컴퓨터에 기반을 두고 대대적으로 진행될 컴퓨터 아키텍처 상의 근본적 전환 과정에서 국내 IT 분야 하위연관 부문의 생존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IT 관련 부품소재의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부품소재 수출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한다고 하지만, 메모리 분야를 제외하고는 차세대 컴퓨터 기술과 관련된 원천기술이 우리에게 전혀 없는 것도 또한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FTA를 체결할 경우 10년 뒤에 국내 IT 부품소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상상해 보자. 현재도 IT 제품 수출에 따른 외화가득률이 마이너스인 상황인데, 앞으로 컴퓨터 관련 기술의 지각변동이 이루어져 미국이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갖게 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부품소재 전체를 보면 어떤가? 미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 중 부품소재 수출의 비중은 1990년에 24.9%였지만 2004년에는 11.5%로 낮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에 대해서는 이 비중이 1.3%에서 29.3%로 높아졌다. 부품소재의 수입 쪽은 2004년 현재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14.3%,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14.8%로 엇비슷하다. 이처럼 부품소재의 수출로 보나 수입으로 보나, 우리로서는 한미 FTA보다는 한중 FTA의 체결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부품소재 수입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부품소재 제품들은 우리나라의 기술적 경쟁력이 특히 취약한 것들이며,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제품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을 제조하는 데 투입되는 부품소재의 90% 이상이 바로 이런 수입 제품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품소재 제품 수출은 저급 기술의 품목들을 중심으로 아세안 시장에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부품소재 부문에서 FTA에 따른 한미 양국의 관세철폐가 가져올 직접적인 효과는 수출의 미미한 증가와 고기술 부문 제품의 급격한 수입증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미 FTA로 인해 얻어질 수출증가 효과가 작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중국의 급속한 추격과 좀체 좁혀지지 않는 일본과의 비교열위 격차 등으로 인해 구조적인 위기상황에 직면한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에 얼마동안 숨통을 틔워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세인하 효과로 얻어질, 그것도 아주 미미한 수출증대 효과가 아니라 부품소재 산업에 기술혁신 역량을 창출하는 것이며, IT 중심으로 편중돼있는 산업연관 구조를 화학과 바이오, 정밀기계, 광학 등으로 다변화함으로써 미래 전략산업의 부품소재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책결정권을 미국자본에 넘기려나

이처럼 자동차, IT, 부품소재 분야의 경우 한미 FTA로부터 우리나라가 얻을 것은 별로 없는 반면, 미국은 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한미 FTA를 지렛대로 이용해 다른 나라들에도 FTA 압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된다. 가령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대미 수출에 주력하고 있을 경우 미국이 한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은 중국의 교역조건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고, 미국은 이런 측면에서 한미 FTA를 무기로 삼아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

결국 미국은 한미 FTA를 통해 아시아 지역을 겨냥한 경제적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뒤에 다시 거론하겠지만 한국의 '아시아 금융허브' 계획과 맞물리면서 미국의 대아시아 경제 헤게모니 구축에 활용될 것이다.

이밖에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고기술 산업 부문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혁신도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투자와 기술혁신의 결과로 새로운 산업연관 망이 형성될 때 우리는 그것을 산업구조의 고도화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대개의 경우 기술혁신에 근거해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려면 초기의 일정 기간에 기술적 우위에 기초한 그 새로운 산업의 경쟁우위가 유지되어야 하고 연관된 기술혁신이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발생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신산업 창출 과정의 핵심 특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군집된 형태(cluster)의 기술혁신이 진행된 결과로 기존 구산업 부문의 자본 및 상품가치가 신속하게 파괴되어야만 산업연관 구조의 구조전환, 즉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구조 고도화의 조건들은 시장 자체의 움직임만으로는 좀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정부의 기술정책과 산업정책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이며, 정부가 그런 정책들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달리 한미 FTA로 인한 교역조건의 변화와 투자 및 금융서비스의 자유화는 자원배분을 단기이윤 극대화로 향하도록 강요한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인 산업정책으로 개입하지 않을 경우 한미 FTA는 국내 산업연관 구조의 고도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이미 경쟁력이 확보돼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자본투자가 집중되도록 함으로써 관련 시장을 보다 빨리 포화상태에 이르게 하거나 관련 상품의 가치가 절하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그 안에 포함될 투자자-국가 소송제, 의무이행 부과 금지 등의 독소조항들로 인해 우리 정부가 오직 경쟁정책만 펼 수 있게 될 뿐 산업정책을 펼 기회는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게 된다. 게다가 경쟁정책의 경우도 그 정의와 범위를 미국의 투자자들이 판단하고 결정하게 된다. 우리가 한미 FTA 체결을 경제주권 포기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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