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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부와 적십자사가 아예 '매혈'에 나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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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부와 적십자사가 아예 '매혈'에 나서는구나! [기고] 주택 마련 위해 '매혈' 하는 슬픈 대한민국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4일 <한겨레>에 기고한 '아직도 엽전 바지저고리인가'라는 칼럼에서 "정치와 언론의 권력은 활기찬 새로운 한국인의 이미지를 심어주기는커녕 우리의 열등감을 짐짓 조장하는 듯하여 안타깝다"며 "우리가 아직도 엽전 바지저고리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음을 슬프게도 다시 깨닫게 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비약적 발전상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를 두루 들을 수 있는 한완상 총재의 지적이다 보니 그 내용에 십분 이해가 가면서도 정작 그가 담당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사업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생각이 미치면 씁쓸하기만 하다. 주택 마련 대출을 위해 사실상 '매혈'을 해야 하는 서민들은 결코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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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27일자 <한국일보>에 헌혈과 관련한 한심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받고자 하는 서민들에게 적십자사의 등록헌혈자가 되면 금리의 0.2%를 깎아준다고 해서 대출을 받고자 하는 서민들이 등록헌혈자로 가입하는 숫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금리인상에 따른 서민들의 부담이 늘어나자 몸으로라도 때우게 해서 이 어려운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발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명백히 '헌혈을 가장한 매혈'이다. 더 나아가서는 알량한 돈으로 그 소중한 피를 거의 거저 먹는 매혈이다.
  
  여전히 어렵게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국민들만 불쌍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 5월 16일에 열린 혈액관리위원회 회의자료 43쪽에 나와 있는 것처럼, 헌혈자의 인센티브 방안으로 등록헌혈자에 대한 금리우대 혜택 방침을 마련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WHO "헌혈과 관련해서 어떤 경제적 인센티브도 줘서는 안 돼"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혈액안전관리의 주체에서 적십자사를 떼어내는 것과 함께 헌혈자의 안전과 권리에 대한 전진적인 대책이 없이는 헌혈율을 근본적으로 개선해나가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계속 이야기해 왔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헌혈율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가 부실한 혈액관리와 헌혈자를 봉으로 보는 혈액관리정책에 있다고 보고 이런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이 바닥을 친 적십자사로 하여금 혈액관리에서 손을 떼게 하고, 헌혈자를 중심으로 하는 혈액관리제도로 재편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헌혈자에게 헌혈과 관련하여 어떠한 금전적인 인센티브도 제공하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헌혈자에게 어떤 유무형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게 되면 헌혈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도 헌혈에 참여하게 되어서 전반적으로 혈액의 질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수혈을 받아야 할 환자들의 안전이 심각한 위협에 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헌혈에 참여하도록 유도해봐야 이는 헌혈율이 반짝 올라가는 데에 기여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헌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발전해서 결국 헌혈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인센티브로 높인 헌혈율은 '독'이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나라의 헌혈 홍보는 이런 방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거꾸로 간 감이 있다. 헌혈을 해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라는 식의 헌혈 홍보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병원에 가야 할 사람들이 헌혈에 참여해 온 것이 그것이었고, 각종 문화상품권에다 영화 티켓까지 주어가며 아직도 헌혈을 유도하는 홍보활동에 열을 올리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처럼 아예 은행 금리를 깎아주겠다고 홍보하는 것은 이제 정부와 적십자사가 나서서 봉사를 가장한 매혈을 전 국민적으로 조장하는 짓이다. 당장 그게 효과적이고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장기적으로 헌혈율은 필연코 떨어진다. 만약 헌혈율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혈액의 안전성은 크게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게 해서 떨어진 헌혈율은 지금보다 더 높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인센티브에 길들여진 헌혈자들의 의식을 끝없이 그렇게 끌고 가다가는 봉사나 기부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서 자리 잡기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 그러한 제도는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제도일 수밖에 없기에 헌혈율 상승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제발 기본으로 돌아가자
  
  헌혈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지 않는 가운데 지금까지 국민들이 고통을 받아 왔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대출 이자를 덜 내기 위해 헌혈을 하고 아예 등록헌혈자로 나서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정책들은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그 어려운 서민들이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부(말 그대로의 '헌혈')를 해 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는데 이제는 돈 때문에 자신의 피를 내주도록 만드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이유로 등록헌혈자로 등록한 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문제(대출 등 금전적인 문제)가 풀리면 헌혈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정책을 입안하는 당신들이 더 잘 알 것 아닌가?
  
  원칙을 생각하고 근본으로 회귀하라. 그 길이 좀 힘들고 어려워도 그게 맞는 길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픈 환자들을 위해 내 몸의 일부를 이 사회에 아무런 조건 없이 내 놓고 싶어 한다. 은행 이자 때문에 내 피를 준다는 것은 우리를 너무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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