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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공동체로 다시 눈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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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공동체로 다시 눈을 돌리자

[FTA 대안은 있다(8)] 경로수정 이유 없다

한국은 자립적 재생산 구조를 갖추기 위한 기초자원, 시장규모, 기술적 지식기반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개방과 지역화 전략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동안 정부는 이런 현실인식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방식의 지역 경제협력을 추구해 왔다.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된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 경제통합'의 모색, IMF 사태 이후 김대중 정부 때 추진된 '동남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정책에 이어 북한, 중국과의 에너지, 물류, 경제, 안보 협력을 포함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론'에 이르기까지 지역 경제협력 정책은 일관되게 지속돼 왔다.
  
  그런데 이제 한미 FTA로 인해 이러한 지역 경제협력, 즉 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상에 심각한 경로수정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탈아입미(脫亞入美)냐 호혜적 아시아 지역경제공동체냐를 두고 일대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필자는 한미 FTA 대신에 추구돼야 할 개방화, 지역화의 대안으로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추진하는 과정은 어렵고 난관이 많은 일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일 수 있는 대상과 범위, 추진 과정과 절차, 전략적인 국제 산업연관 등에 대해 살펴보자.
  
  동북아도 이젠 제도화된 지역협력 체계 갖춰야 한다
  
  몽고를 포함한 한, 중, 일, 러로 구성된 동북아는 물류, 에너지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지정학적으로도 역내 국가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어 온 지역이다. 동북아 지역은 전세계 무역의 20%를 차지하며, 아시아 전체에서 GDP는 91.6%, 무역액은 69.2%, 역내투자는 81.1%를 차지하고 있어 아시아 경제권의 실질적인 중심이다. 이에 비해 동남아는 12개 이상의 나라들로 구성돼 있지만 경제적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싱가포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며, 각국의 산업구조 역시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하면 서로 다르고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도 상이하다. 게다가 물류와 교통은 해상이나 항공을 통해야 한다.
  
  그래서 청와대와 정부는 동남아보다는 동북아, 동북아보다는 미국과의 협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특히 동남아의 경우는 전체를 다 합쳐도 경제규모가 작은 반면 국가별 다양성과 이질성이 심해 협력의 성과를 얻기 힘들다는 게 그 주된 논거다. 중국 한 나라만 해도 인구나 경제규모에서 동남아 전체보다 적어도 10배가 넘는다는 점에 비추어도 동남아는 주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동북아에는 우리나라가 지역협력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중국과 일본의 2강구도가 구축돼 있으며, 북한의 존재도 지역협력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강점보다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비교적 높은 경제력을 갖고 있음에도 동북아 경제협력을 주도하는 데 필요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위치가 취약하다. 그 결과 지역협력에 관한 담론은 차고 넘치는 반면 그 실질적인 성과는 매우 저조하다. 현재 동북아 지역은 역내 국가 간 자본투자, 상품교역, 기업 간 제휴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 어떤 제도화된 지역협력 체계도 없다. 이런 상황은 아시아 경제권 통합과 관련해 동북아의 당면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정치, 외교상의 협력과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 한 동북아에서 진정한 지역협력이 시작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와 달리 동남아의 경우는 지역협력이 꾸준히 강화돼 왔고, 그에 따른 제도적 성과도 안착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체결한 아세안(ASEAN)과의 FTA, 접경지대에 구축된 산업 클러스터 등은 동남아의 경제협력이 한층 심화되도록 하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아울러 2000년대 들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의 고기술, 첨단 산업분야가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싱가포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산업분류를 기준으로 할 때 전체 산업의 68%가 고기술 부문이다. 이런 비중은 일본의 47%, 한국의 43%, 중국의 33%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동남아에는 그동안 일본과 수직적인 국제분업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지역에 대한 일본의 직접투자가 줄어드는 대신 미국의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한편으로는 일본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탈피해 산업고도화를 이루려는 이 지역 국가들의 노력,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지역의 낮은 노동비용을 활용하고 시장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결합된 결과다. 특히 최근 들어 이 지역에서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분야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우리나라에 위기로 작용하는 동시에 기회도 제공한다.
  
  IT의 경우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주력 수출부문으로 선택하고 있어서 역내교역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IT로의 집중은 지역 전체 차원에서 보자면 '구성의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이 지역 국가들이 IT 관련 핵심 기술이나 부품을 미국과 일본에 의존한 채 완제품 수출에 집중하고 있어 서로 간에 보완이 되기보다는 서로 대체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출혈경쟁만 심화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이 지역 진출은 낮은 노동비용을 활용하기 위한 아웃소싱과 시장의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어서 호혜성을 갖춘 지속가능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점은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더 주력하는 하나의 이유로 볼 수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다국적 기업들을 위한 아웃소싱 기지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 경제공동체와 관련해 핵심적인 문제는 누가 비용절감형 직접투자나 시장진출을 넘어 호혜적인 대안을 이 지역 국가들에 제시할 수 있느냐다.
  
  동아시아 공동의 과학기술 지식기반을 창출해야 한다
  
  동북아 경제권과 동남아 경제권을 연계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동북아의 경우 직접투자, 기업 간 제휴, 관세조정을 넘는 보다 상위의 경제협력을 제도화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강대국 간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국가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낮고 관련 당사국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물류, 에너지, 통신, 전력 등 기초 인프라 부문에서 경제협력을 우선 시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이런 노력을 오래 전부터 기울여 왔지만 아직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적 역량을 집중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
  
  지역협력을 위한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사회 전체적으로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프로젝트와 국내 산업구조 전환을 연계시키는 방식을 검토해볼 수 있다. 한중일 경제협력의 경우는 관세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국제적 분업연관 구조를 확대, 강화하는 동시에 기업들의 자율적인 제휴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철강 및 화학 분야에서는 이미 한중일 기업 간 제휴가 활발한 만큼 국가가 나서기보다는 현재의 흐름이 안정화하도록 주변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다만 정부가 국제적인 차원의 과학기술 협력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구조적인 차원의 보완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과학기술 협력과 관련된 첨단 분야의 지식창출 능력 면에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산업 중심의 과학기술 협력을 통한 지식흡수 및 이전이 일어날 수 있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남아와의 지역협력을 위해서는 해상연계 외에 항공연계도 필요하며,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동남아의 풍부하고 다양한 자원을 대체에너지 도입선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주목할 것은 중국이 이미 동남아 지역의 통신 인프라 구축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동남아 지역 통신시장 확보를 위해 이 지역 통신 인프라의 90%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휴대폰 수출에만 몰두해 있는 사이에 중국은 1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역과의 물류 및 교통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해상을 이용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보다 값싸고 빠른 항공 물류체계 구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에 대해서는 물류와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인프라의 구축과 접경지역 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지역협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면, 동남아에 대해서는 중-아세안-한국을 잇는 지식기반 국제분업 망의 구조화를 지역협력의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과학기술 분야 국제협력을 최고로 중요한 과제로 설정해 추진해야 한다. BT 분야의 경우에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국내의 여러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이 지역 생물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국제협력의 성과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공동의 과학기술 지식기반이 창출된다면 역내 국가 간 개발격차의 축소와 역내 분업구조의 상호보완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며,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 경제협력의 미래를 밝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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