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국가 제소권을 미국기업에 주는 것은 '위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국가 제소권을 미국기업에 주는 것은 '위헌'

[한미FTA 뜯어보기 71:기고] 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재판참여권 침해

"이 저주받은 나라의 배야, 네 정체는 다 알고 있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에서 바다를 제2의 조국으로 선택한 네모(Nemo) 선장은 노틸러스 호를 공격해 오는 군함에 대해 이렇게 분노를 터뜨린다. 하지만 한국의 법률가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한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 거부를 결정했다. 그래서 이 제도가 한미 FTA 8장에 들어 있다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다.

미국의 위헌논의와 통상법 개정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인 납세자 단체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한 납세자 연맹(Taxpayers for Common Sense)'은 2002년 5월 미 의회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북미 자유무역 협정(나프타, NA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미국 헌법이 허용하고 있지 않은 권리를 외국인 투자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미국의 납세자들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군 협회, 읍 협회, 주의회 협의회, 시 연맹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연대조직들도 같은 달에 의회에 공동 항의서한을 보내 미국 시민들이 미국 헌법 아래에서 누리고 있는 권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부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2002년 5월 24일 미국 의회는 미국 안의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미국 안의 미국 시민들보다 더 중요한 권리(greater substantive rights)를 부여하는 내용으로 통상협정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새 통상법(2102(b) (3)조)에 규정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전개됐던 이런 논의는 한국의 헌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한국 헌법은 국제조약이나 통상협정에 대해 국내법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미 FTA의 모든 조항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대상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위헌인 한미 FTA 조항들을 무효화시킬 권한을 갖고 있다.

FTA의 수용보상 조항은 명백한 위헌

우리나라 헌법 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질서에 의하면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 사용 또는 제한하려면 '공공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의 수용보상 규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한미 FTA의 협상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으니 나프타의 관련 규정을 들여다보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자산을 수용(expropriate)하거나 이와 효과가 같은 조치(a measure tantamount to expropriation)를 취하려면 첫째 공공의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둘째 차별적 조치여서는 안 되며, 셋째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보장을 포함해 국제법과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넷째 수용 직전의 공정한 시장가격으로 지체 없이 완전히 현금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상해야 한다(나프타 1110조)고 돼 있다. 이러한 나프타의 수용보상 조항이 한미 FTA에도 그대로 반영된다고 할 경우 그것이 우리나라의 헌법 23조에 합치될까?

필자는 헌법 위반의 소지가 많다고 해석한다. 위 조항은 한국 헌법 아래서는 국가에 부여될 수 없는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규정된 재산권의 '수용'과 '제한'의 범위를 보자.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그 재산 소유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취득하는 것을 강제수용이라고 본다. 그리고 토지 재산권에 대한 '제한'과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그린벨트에 관한 1998년도 판례에서부터 일관되게 토지를 종래의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없거나 더 이상 법적으로 허용된 토지이용 방법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경우에만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FTA에 들어가는 수용보상 조항은 이와 다르다. 나프타 체제 아래에서 미국기업 메탈클래드와 멕시코 정부 간에 벌어진 쟁송과 관련해 2000년 9월에 성립된 판례를 보자. 이 판례에 따르면 수용(taking)뿐만 아니라 정부가 의도한 결과이든 부수적인 결과이든 투자자의 자산 사용에 대해 어떤 간섭(interference)이 있고 그 효과로 인해 투자자가 투자자산의 전부나 중요한 부분을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투자자가 투자자산에 대해 합리적으로 기대했던 경제적 이익이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정부에 보상의 의무가 있다.

이런 나프타의 판례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재산권은 사적 유용성 및 그에 대한 원칙적 처분권을 내포하는 재산가치 있는 구체적 권리이므로, 구체적인 권리가 아닌 단순한 이익이나 재화의 획득에 관한 기회 등은 재산권 보장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판결한 것과 어긋난다. 그래서 한국 헌법에서는 정부에 부여될 수 없는 의무를 정부에 부여하는 나프타의 관련 조항과 같은 조항이 한미 FTA 8장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헌법 위반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민의 평등권, 재판청구권, 재판참여권 침해

아울러 한미 FTA 8장은 헌법 11조가 보장한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 한국의 영토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들 가운데 한국인이 투자한 기업들에는 한미 FTA 8장이 당연히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의 금액과 지급방법에서 한국 기업과 한국인 투자자는 미국 기업과 미국인 투자자에 비해 차별을 받게 된다. 예컨대 미국인 투자자는 한미 FTA 8장에 따라 현금보상을 받게 되는 반면, 한국 기업과 한국인 투자자는 어떤 경우에는 현금보상을 못 받고 채권으로밖에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63조). 여기서는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차별적 조치에 대해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차별의 합리적 이유'를 찾아내기 어렵다.

이런 필자의 논지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와 한국의 국민이나 기업은 헌법 상의 지위가 다르다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헌법재판소는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헌법 상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가 직접 한국에서 사업체를 경영하는 경우에 그 사업체는 당연히 이런 기본권의 주체가 된다. 그러므로 한미 FTA 8장은 똑같은 기본권 주체들의 일부를 차별하는 것이 된다.

아울러 한미 FTA 8장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에 대한 침해가 된다. 모든 국민은 헌법 24조에 따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헌법은 국가의 안전 등을 해치게 되지 않는 한 재판의 심리를 공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재판의 결과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재판 절차에 참여하고 변론할 권리가 보장된다. 특히 공공정책이 문제가 되는 행정소송의 경우에는 재판의 결과에 따라 권리 또는 이익을 침해받는 자는 행정소송법에 따라 소송에 참가해 일체의 변론을 할 수 있고, 판결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항소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가 반영된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미국인 투자자의 선택에 따라서는 한국의 공공정책이 한국의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심사되지 않을 수 있다. 그 대신 국제 중재기관에 소속된 3인의 중재인이 한국 공공정책의 FTA 준수 여부를 심판하게 된다(나프타 1123조). 그리고 심문 절차는 공개되지 않는다.

과연 이런 제도가 한국의 헌법에서 허용되는 제도인가? 일찍이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법관에 의한 사실 확정과 법률해석 적용의 기회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하는 제약이나 장벽을 쌓는 것은 우리 헌법 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92헌가11). 이런 해석론에 따르면 한국 국민이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공공정책에 대한 심판의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심판 회부권을 갖도록 허용함으로써 한국 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재판참여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위헌이라고 본다.

개인과 개인 간의 분쟁이나 나라와 나라 간의 국제분쟁은 애초부터 한국 법원에서의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회사에 대한 행정처분에 대해 그 회사의 주주가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고까지 결정한 한국의 판례에 기초해 생각해보면,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국민 모두에게 보장된 재판청구권과 재판참여권을 침해하는 것이 분명하다.

국민 스스로가 퇴보하면 자유를 잃을 것

헌법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미국인 투자자에게 특혜를 주는 나프타식 수용보상 제도와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한미 FTA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한미 FTA에 위헌의 소지가 있는 조항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외부의 적에 의하여 파괴되지는 않겠지만 미국인 스스로가 퇴보할 때는 자유를 잃을 것이다"라는 링컨의 말이 미국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