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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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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 최장집 교수 "대통령, 개혁 조타수이기는커녕 민주주의 위협"
"나는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가 견제되지 않은 대통령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후 혹은 약화의 징후이다. 민중의 정치 참여 축소가 민주주의의 가장 중심이 돼야 할 정당과 의회 민주주의 약화를 초래하면서, 그 결과로 나타난 대통령 권력의 팽창은 민주주의를 피폐화하는 근원적 문제가 된다."

민주화 20년, 한국 사회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최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그에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큰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장집 교수는 27일 오후 2시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주관한 '민주화 20년, 한국 사회 어디로 가나' 강연회를 위해 미리 준비한 원고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특히 최 교수는 "지금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견제되지 않은 대통령 권력"이라고 밝히며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한 번 더 정면으로 거론했다.

"대통령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
▲ 최장집 고려대 교수.ⓒ프레시안

최장집 교수는 "처음에는 나도 대통령이 민주화의 개혁 의제를 실천하는 개혁의 조타수(操舵手)라고 생각했다"며 "대통령의 권력 견제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권력을 통한 적극적 개혁의 실현에 더 큰 관심을 가졌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최 교수는 "민주화 20년을 경험하면서 특히 최근 들어 대통령 권력은 제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대통령 권력의 팽창은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라며 "대통령 권력을 제약할 수 있는 정당체제가 허약한 상태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구조적으로 권위화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구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누가 이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최대의 이슈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민주화 20년간 강력한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할 관료와 오히려 결탁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대표-책임의 원리를 경시하는 방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로 출현했다"며 "현재는 대통령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그 전형적인 예로 노무현 대통령을 들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결정이 정당, 의회, 이해당사자의 참여, 심의 없이 대통령과 소수 관료들에 의해 폐쇄적으로 이뤄지고 반대자의 시위를 권위적으로 탄압한 것을 보면 대통령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이 됐음을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어서 "여러 선거에서 정부여당이 압도적으로 패배했다면 투표를 통한 국민의 평가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지만 한국 대통령은 선거 결과가 어떻든 내 갈 길 간다는 식"이라며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채 한 달밖에 안 된 내각을 총선 결과에 따라 상당 부분 교체해 선거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대통령제의 중요한 단점은 한 공동체의 정치적 운명을 한 개인의 성향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라며 "강력한 국가기구를 관장하는 강력한 대통령을 잘 못 선출할 때, 그것은 자칫하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문자 그대로 제왕을 선출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비대한 '대통령 권력', '시장 권력'과 결합할 때 위험하다"
▲ ⓒ프레시안

최장집 교수는 '대통령 권력'이 '시장 권력'과 결합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더욱더 큰 문제에 봉착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는 정치의 영역에 한정된 원리일 뿐 경제는 시장과 성장의 원리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는 논리가 횡행하면서 정치는 다만 경제 성장에 복무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이 결과 대중정치, 대중참여, 선거경쟁은 소모적 낭비로 인식된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하면서 '한국에서는 선거가 너무 많다. 선거를 줄이면 예산 절약 효과를 갖는다'고 말한 것은 그 한 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목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드는 것이 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정당 역시 사회의 갈등과 다양한 이익이 대표될 수 있는 구조라기보다는 선거 전문가 정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유행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며 "사회의 밑으로부터 민중의 정치 참여를 통해 정책 대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식인·전문가 집단이 위로부터 이슈를 제시하는 방식의 한 예"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대통령 권력'과 '시장 권력'이 결합하고, 그것을 견제할 '노동에 바탕을 둔 대중정당'이 존재하는 것 같은 정당체제가 부재하면서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경제 정책, 즉 한미 FTA, 비정규직 보호법 등이 나타났다는 게 최장집 교수의 진단이다. 최 교수는 "민주정부가 성장지상주의 정책과 경제적 민족주의를 동원해 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을 견제할 정당체제가 제대로 있고, 대표-책임의 연계가 유지된다면 중요한 사회세력의 격렬한 저항을 받는 이런 정책 선택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권위주의를 붕괴시킨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올 권위적 대통령 권력을 탄생시켰다는 커다란 역설이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개헌 논의에서 대통령 권한 축소 논의해야"

그렇다면 최장집 교수의 대안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개헌 논의와 관련해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개헌 논의의 핵심은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으로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대통력 권력을 증대해야 하나, 축소해야 하는 것"이라며 "행정부가 입법부, 사법부의 견제를 받지 않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제와 의회중심제 중에서 뭐가 좋은지를 답하기는 어려운 문제"라며 "대통령제 안에서 정당, 의회의 권력을 증대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정당정치가 활발한 프랑스식 정치 모델을 한 가지 방향으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결론적으로 "△국가·대통령 권력은 견제, 축소되고 △시장은 민주적으로 조율되고 △시민사회는 자율적 집단의 조직망이 강해져야 한다"며 "결국 정당이 중심이 된 정치를 통해 이를 추구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수단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선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창조하는 동적 행위"라며 정치 공간 안에서 어떤 사회를 그릴지 논할 것을 제안했다. (☞관련 기사 : "범여권 통합, '제2의 노무현 정권' 만들기")
노 대통령 실정이 '대통령 권력' 비판 낳았다
▲ ⓒ프레시안

최장집 교수는 '대통령 권력'에 대한 비판을 스스로 "개인적 입장에서 관점의 큰 변화"라고 언급했다. 그런 관점의 큰 변화에는 정권 말기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서 느낀 위기감이 강하게 깔려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이 한 정치학자의 관점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셈이다.

최 교수의 '대통령 권력'에 대한 비판이 최초로 제시된 것은 지난 2월 출간된 <비평> 2007년 봄호(제14호)에 기고한 '정치적 민주화 :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였다. 이 글에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해 논란이 됐던 개헌 논의를 간단히 언급했다. 최 교수는 당시 이 문제를 이렇게 논평했다. 이번 강연은 이 문제의식을 더욱더 심화한 것이다.

"개헌이슈와 관련하여 논의해야 할 문제는,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으로 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 국가권력을 체현하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증대해야 하나, 아니면 축소해야 하나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개헌 논의에서 이 문제는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강력한 국가주의의 이념 및 정조와 더불어 강력한 대통령 권력을 보장하는 기존 헌법과 결합하면서 국가권력 행사가 쉽게 권위주의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하겠다.

일찍이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첫째는 투표 시기, 둘째는 투표 이전 시기, 셋째는 투표 이후 시기로 나누어 세 단계로 구분한 바 있다. 민주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선출된 정부가 민주적이 되지 않는 권력행사가 발생하는 단계는 바로 이 세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는데, 이 단계에서 대통령 권력을 포함하는 국가 행정관료 기구들이 투표자로부터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광범한 자의적 권력행사가 쉽게 가능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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