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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최장집이 함께 놓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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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과 최장집이 함께 놓치고 있는 것?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복지국가, 높은 노조 조직율이 '답'
최장집 교수는 좋은 정당이야말로 좋은 정치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좋은 정당이 없어서 한국 정치가 나빠졌고, 그 결과 민주주의도 나빠졌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에서 좋은 정당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운동이 거세된 정당이 좋은 정당일까?

그런데 문제는 좋은 정당을 어떻게 만드느냐다. 좋은 정치인을 만드는 정당이 좋은 정당이다. 그렇다면 좋은 정치인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좋은 정당이라면 좋은 정치인을 만들 수 있다. 문제의식은 좋지만, 해답은 여전히 미로다.

그가 말하는 정당은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당이어야 하는데, 처방전은 노동운동 같은 사회운동이 거세된,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마키아벨리식(式)'보다는 '플라톤식' 정당이라는 느낌이 든다. 훌륭한 정치인이 많으면 좋은 정당이 된다. 그러면 민주주의가 좋아질 것이다. 미로의 연속이다.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

최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나쁜 이유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는 정당이 없고, 그렇다보니 산업사회의 가장 큰 집단인 노동자의 목소리가 정치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정치 갈등이 현대 산업사회의 최대 구성원을 소외시킨 채 이뤄지다 보니 정치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퇴행적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나빠졌다. 그렇다면 노동 있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하고, 그 정당이 제대로 된 좋고 강한 정당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안타깝게도 최장집 교수는 자세한 답변을 주지 않는다.

강한 노조는 좋은 정당의 출발점

최장집 교수가 던진 문제의 해답은 강한 '조직 노동(organized labor)', 즉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의 수가 많으냐 적으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많을수록 노동자의 목소리가 사회 전체적으로 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치권에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의 목소리도 자연히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노동자의 이해관계에 관심이 없던 정당들도 노선과 정책을 바꾸거나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하게 된다.

높은 노조조직률이 관건

결국 해답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의 규모, 즉 노동조합 조직률이다.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정당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아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현대 산업사회의 최대 구성원인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자연스럽게 '노동 없는 민주주의'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전환될 공간이 넓어진다.

좋은 정당, 좋은 정치,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은 조직 노동의 양과 질인데, 그 중에서도 출발점은 조직 노동의 양(量), 즉 높은 노조 조직률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노조 조직률이 결정적인 분야가 하나 더 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언급하고 나선 '양질의 일자리'가 그것이다.

이 대통령은 2010년 신년 연설에서 "31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고, 양질의 일자리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첫째, 31만 개 일자리 가운데 양질의 일자리는 몇 개일까? 둘째, 양질의 일자리란 도대체 뭔가?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쉽다. 고용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치고, 심지어 정권 측 사람들까지도 2010년에 생긴 31만 개의 일자리 다수가 양질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양질인지 저질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일자리의 질을 따지는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주제로 '지적 재산권'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갖고 있다. ILO는 7가지 활동 목표를 내세우는데, 첫 목표가 '모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다.

양질의 일자리, 체면 차릴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영어로는 decent work인데, 중국은 '체면공작(体面工作)'으로 번역을 했고, 일본에서는 영어 발음 그대로 'ディーセントワーク'라 쓰고, 독일에서는 'gute arbeit'로 쓴다. 개인적으로는 '양질'이라는 한자말보다는 '좋은' 일자리라는 쉬운 우리말이 더 좋다고 본다.

ILO는 양질의 일자리를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정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생산적인 일자리"로 본다. 이 개념은 1999년 6월 열린 제87차 ILO세계총회에서 처음 논의되었고, 이후 ILO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

총회에서 후안 소마비아 ILO 사무총장은 "ILO의 관심사는 양질의 일자리다. 그 목표는 일자리 창출 자체가 아니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고용의 양은 고용의 질과 분리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 일자리나 좋은 거 아니냐. 일자리만 늘리면 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은 '양질의 일자리' 정책이 가장 경계하는 바다.

양질의 일자리, 노조가 있나, 단체협약이 있나

ILO는 양질의 일자리가 네 가지 토대 위에 서 있다고 본다. 고용 기회, 일터의 권리, 사회적 보호(사회보장제도), 사회적 대화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구성요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어느 하나가 빠지는 순간 양질의 일자리는 빛을 잃는다.

ILO는 국가 수준에서 일자리가 양질인지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범주와 지표를 개발했는데, 그 중 핵심적인 것이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다. 국가 수준에서 볼 때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일자리가 양질일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31만 개의 일자리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일자리 수와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일자리 수는 몇 개였을까. 물론 짧은 시간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자료 없이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화자찬(自畵自讚)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프레시안(자료)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2008년 기준으로 10.3%로 60%대를 넘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는 물론 조직률이 대단히 낮다고 분류되는 일본(18.2%)과 미국(11.3%)보다도 떨어진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노조조직률이 낮은 나라는 프랑스(7.7%)와 터키(5.8%) 두 나라 뿐이다.

재미난 점은 조직률이 대단히 낮은 프랑스의 경우, 단체협약 적용률은 9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체협약 적용률은 노조 조직률과 별 차이가 없다.

높은 노조 조직률, 복지국가의 토대

2010년 지자체 선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복지'가 떠오르고 있다. 학교식당의 점심 한끼를 어린 학생들이 부모돈 내고 먹느냐, 아니면 정부 예산으로 먹이느냐를 두고 벌어진 정치 논쟁은 병원비 문제로 확산되었다. 덕분에 한나라당까지도 '70% 복지'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4년 총선을 떠올리면, 그때의 민주노동당이 하던 주장을 지금의 민주당이 하고, 그때의 열린우리당이 하던 주장을 지금의 한나라당이 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100% 복지가 되었든, 70% 복지가 되었든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10%의 노조 조직률로는 힘들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이 20%를 넘어 30%에 육박한다면, 정당과 정치의 지형은 물론 경제와 사회의 지형까지도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고, 국민들의 삶의 질도 바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좋은 정당, 양질의 일자리, 복지국가.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화두는 제대로 나온 듯 보인다. 문제는 화두를 풀어갈 방법인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노동조합원 수의 양적 확대다. 노사정 3자는 물론 시민사회와 학계 모두 관심 가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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