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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 오줌 담긴 페트병에 한숨만 푹, 위장병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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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학생 오줌 담긴 페트병에 한숨만 푹, 위장병은 기본" [체험 르포] 새벽을 여는 사람들, 대학 청소 노동자의 하루
대학 내 청소 노동자들이 연일 이슈다. 지난해에는 한 대학생이 청소 노동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얼마 전에는 홍익대학교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청소·경비 노동자 170여 명을 거리로 내몰면서 공분을 샀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청소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며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도 잦아졌다. '노조'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조차도 이들의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양이다.

<프레시안>은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이 붙은 청소 노동자들의 하루를 함께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되, 청소는 깨끗이 해야 했던' 투명인간과도 같은 이들의 삶이 어떻게 꾸려지는지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이 생기면 어떤 점이 좋느냐는 질문도 하고 싶었다.

기자가 청소노동자들의 하루를 체험하기로 한 장소로는 연세대학교를 골랐다. 지난 2008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로 풍물패, 한글 교실, 컴퓨터 교실 등 소모임이 제법 잘 운영된다는 평가가 있어서다. 이 학교에선 주 5일 근무제와 정년 보장, 체불임금을 받아낸 역사도 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있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생겨서 좋은 점들은 너무나 사소했다. "청소할 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어서 좋다, 용역업체 소장이 욕을 안 해서 좋다, 동료들과 사이가 돈독해져서 일하기가 재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찾자 쉴 새 없이 웃음소리와 농담이 오고갔다. 서로를 '언니야'라고 살갑게 부르며 수다 떠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계기로 '생활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첫차를 타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본다는 사실도, 풍물패가 만들어진 이후로 학교 주변 떡볶이 노점상 주인과 청소 노동자들이 친해졌다는 사실도 기자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편집자>

새벽 4시 10분. 첫차에 빈 자리가 없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버스정류장. 간판도 꾸벅꾸벅 잠을 자는 새벽 4시 10분. 인기척 하나 없는 거리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60대인 이들은 서로 익숙한 듯 눈인사를 했다. 곧이어 첫차가 왔다. 예닐곱 사람이 우르르 버스를 탔지만 자리는 이미 꽉 들어찬 지 오래. 할 수 없이 몇몇은 서서 간다.

두 번째 버스를 떠나보내자 기다리던 장휘옥(가명‧67) 씨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청소 노동 일일 체험을 하겠다고 나선 기자에게 "그러게 학교에서 5시에 보자니까 뭣 하러 이 시간에 와서 이 고생이냐"는 장 씨의 면박이 쏟아졌다. 그렇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청소 노동자의 하루가 시작됐다.

▲ 모두가 잠든 새벽, 청소 노동자들로 가득 찬 버스. ⓒ프레시안(최형락)

열쇠 30개, 그리고 위장병…"한 시간 일찍 출근 안 하면 일 못 끝내요"

장 씨가 일하는 연세대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5시경. 청소 노동자들은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경비실로 향한다. 경비실에 들른 노동자들의 손에는 저마다 20~30개씩 열쇠가 달린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열쇠로 강의실과 교수실 문을 하나하나 열고 들어가 청소를 해야 한단다.

같은 대학에서 일하는 최순희(가명‧57) 씨는 "강의실과 교수실을 전부 청소해야 하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5시부터 9시 반까지 아침밥도 못 먹다 보니 위장병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월급으로 85만 원가량을 받고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일한다. 근로계약서 상으로는 6시까지 출근해야 하지만 6시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지 않고는 일이 안 끝나기 때문이다.

오줌 담긴 페트병 보며 한숨, "종일 계단을 오르다보면 관절은…"

"바닥이 말도 못하지. 커피 쏟고 담배꽁초 버리고 침 뱉고. 동아리방 근처에는 남학생들이 화장실까지 가기 귀찮아서 페트병에 오줌을 담아 놓고 버리고 가기도 하고…."

▲ 한 청소 노동자 손에 들린 열쇠 꾸러미. 이들은 매일 같이 강의실 20여 군데를 청소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장 씨는 공과대학 6층을 맡고 있다. 지금은 방학이라 일이 없는 편이만 개강하면 건축공학과 학생들이 실습하고 난 자재들이 복도 양쪽에 수북이 쌓인다고 한다.

6층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쓰레기봉투를 날라야 한다. 이런 이유로 고령의 여성인 청소 노동자 중에는 관절이 성한 사람이 별로 없다.

"변기가 아니라 담배 재떨이여"

걸레와 수세미, 빗자루와 마대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장 씨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남자 화장실 변기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장 씨는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변기를 철수세미로 정성스레 닦는다.

장 씨는 "여긴 명문대가 아니라 쓰레기장이여. 이게 변기가 아니라 담배 재떨이여"라며 "내가 문 열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남학생들이) 내 눈치를 보면서 담배 끄고 나가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한겨울, 찬 물로 걸레 빨다보니…"손가락이 얼어 빠져"

기자도 걸레를 들고 세면대, 복도 창틀, 계단 손잡이를 닦았다. 걸레가 금세 새까맣게 변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연일 강추위가 밀려오는 겨울에도 온수를 틀어주지 않았다.

더러워진 걸레를 몇 번씩이나 차가운 물에 빠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장 씨는 "겨울에는 고무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얼어 빠지려고 한다"며 "몸 추운 건 견뎌도 손 시린 건 말도 못 한다"고 했다.

장 씨는 1991년부터 청소 일을 시작했다. 예전에 일하던 회사가 망하자 2008년부터 지금 일하는 대학에 취직했다. 1975년에 폐암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삼 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식당일, 노점상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하는 장 씨의 표정이 덤덤했다.

"기술이 있나, 배운 게 있나"

"내가 기술이 있나, 배운 게 있나.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고 댕긴 거지. 아저씨(남편) 죽고 나서 7~80년대에는 다섯 살 난 막내아들을 데리고 다라이(대야)에 손수건을 넣고 팔았어. 그런데 경찰이 노점상 단속한다고 다라이를 발로 차서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지. 그 이후에는 나라에서 하는 공사장에 돌을 실어 나르기도 했고…. 지금은 애들 다 키워서 행복한 거야."

세월이 흘러 다섯 살 난 아들은 어느덧 마흔 살이 됐다.

학생들이 마시다 버리고 간 주스, "다들 새끼 같은데 아깝잖아"

장 씨의 아지트는 공과대학 6층에 한 평도 채 안 되는 청소도구함이다. 간이 냉장고 안에 주스가 있었다. 웬 주스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이 동아리방에서 버리고 간 주스를 주워다 먹는다고 했다. 일하다 보면 목이 탄단다. 그는 "어쩌다 한 번 이렇게 좋은 거 나오면 주워 먹는 거야. 학생들이 입 좀 댔으면 어때. 다들 새끼 같은데 아깝잖아"라고 말하며 기자에게도 한 잔 권한다.

주스뿐만이 아니었다. 이면지, 펜, 필통까지 학생들은 끊임없이 물건들을 버렸다. 그중에 괜찮은 것들이 나오면 모아뒀다며 장 씨가 보여준 필통 속에는 펜이 한가득 있었다. 그는 가끔 연필이 나오면 뛸 듯이 기뻐한다.

군대 간 아들이 쓴 편지 못 읽어서 눈물 흘린 기억

이 대학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연 '한글 교실'에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 교실은 서울서부비정규센터 준비모임과 연세대 학생들이 이 대학 청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강좌다. 이 강좌를 듣는 청소 노동자들이 쓰는 연습장은 전부 일하면서 주워온 이면지다.

장 씨는 "우리 같은 아줌마들은 못 배운 게 한"이라며 한글 공부를 시작한 사연을 말했다. 한글 교실에 다니는 늦깎이 학생들은 주로 "어려서 동생들을 키워 먹이느라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여태껏 잘 살아왔는데 그 나이에 배워서 뭐하냐"고 면박을 주지만 장 씨는 글을 모르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고 반박한다. 군대 간 아들이 쓴 편지를 못 읽어서 눈물 흘리던 기억도, 글을 몰라 은행에서 통장관리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던 설움도 가슴에 삼켜야 했다. 한글을 모르면 지하철을 타도 까막눈이요, 버스를 타도 여기가 어딘지 불안해서 두리번거리기가 일쑤였다.

"손주 같은 선생님"과 정이 들다

하지만 장 씨가 한글 교실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큰 결단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창피해서 못 갔는데 한 동료가 "언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 말고 배워"라고 말해줘서 용기를 냈다. 장 씨는 "잘하든 못하든 나한테 늘 최고라고 말을 웃기게 해준" 대학생 한글 교사가 수더분하고 싹싹해서 좋다고 한다. 덕분에 장 씨는 "손주 같은 선생님"과 정도 많이 들었다. 지금은 배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나이가 드니 돌아서면 잊어버려서 속상하다고도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4시간 일하고, 시계 보니 오전 9시…쏟아지는 졸음과 배고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장 씨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7시까지도 학교 주변에는 고요한 어둠이 뒤덮여 있었다. 장 씨가 마대로 복도를 닦는 동안 기자는 대걸레를 잡았다. 대걸레를 빨 수 있는 공간이 6층에는 없어서 매번 5층까지 오르내려야 했다. 덕분에 미로 같은 공과대학에서 몇 번이고 길을 헤맸다.

첫 번째 청소는 8시 30분에 끝났다.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난 탓에 졸음이 쏟아졌고 아침부터 일한 탓에 배가 고파왔다. 아침에 밥을 못 먹어서 위장병이 생겼다던 최순희 씨가 떠올랐다. 4시간이나 일했는데도 겨우 오전 9시였다.

"남자 화장실에서 고개를 어디다 둬야 할지"…'청소 아줌마'는 '無性'의 존재

오후에는 사람이 좀 더 많은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보았다. 중앙도서관에서 일하는 이장순(가명·61) 씨를 따라 대학원 열람실로 향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던 오전과는 달리 사람이 많은 오후가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씨도 처음에는 민망해서 남자 화장실 문을 열었다 도로 나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고 한다. 먼저 들어온 동료한테 "여기서 그러고 있으면 하루 종일 해도 일 못 끝낸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도 뻔뻔해졌다.

이 씨는 "이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남자들도 내가 들어오면 그러려니 한다"면서도 "아직도 고개를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청소 아줌마'는 '무성화된 존재'로 여겨졌다.

"여자라는 게 들어가나 나가나 일이야"

여자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한 평도 채 안 되는 청소도구실에서 잠시 쉬었다. 이 씨가 기자에게 박스 위에 앉으라고 권했다. 새벽에 시작된 하루는 길기 그지없었고, 곧장 피로가 쏟아졌다. 하지만 4시에 퇴근해도 일이 끊임없이 쌓여 있다는 '엄마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4시에 끝난다고 일이 끝나나. 집에 가면 집안일 해야지. 여자라는 게 들어가나 나가나 일이야. 이제 곧 설인데, 설 쇠려면 장도 봐야지."

청소 노동자들은 설을 앞두고 돈 나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장 씨는 "손주 네 놈에게 5만 원씩 세뱃돈 주면 그것만 해도 20만 원. 동생 조카도 오면 많이는 못 줘도 몇 푼 쥐어 줘야 하는데 상여금이 15만 원이라 택도 없다"며 한숨을 쉰다.

"예순 넘은 엄마가 3~40대 실직자 자식 벌어 먹인다"

연세대학교에서 청소‧경비 노동조합 부분회장을 맡은 홍명화 씨는 "청소 노동자들 집안에는 실직자 없는 경우가 별로 없다"며 "남편이 환자인 경우도 있고, 예순 넘은 엄마가 3~40대 실직자 자식들을 벌어 먹이고 사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설사 집안에 실질적인 가장이 아닐지라도 자기 살 돈은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가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며 청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절박함을 말했다.

이 대학이 청소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역사는 길다. 한 용역업체는 이 학교에서만 38년 동안 계약을 유지했다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1990년대보다 한참 전인 1972년부터 대학 내에는 청소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온 셈이다.

"다른 건물 동료도 못 만나던 시절은 가고"

그렇다고 해서 대학 내 청소 노동자들이 마냥 힘들게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공과대학에서 일하는 김영희(가명‧63) 씨는 "만날 서러우면 이 일을 어떻게 계속 하겠느냐"며 "재밌을 땐 재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재밌는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과 봉급 타는 날이 좋단다.

특히 대학 내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조합이 생긴 이후로 여기저기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주 5일제가 시행됐고 학생들의 협조도 늘었다. 풍물패‧한글 교실‧컴퓨터 교실 등 소모임이 생기면서 청소 노동자들 사이도 예전보다 돈독해졌다.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다른 건물에 있는 동료도 못 만나게 했던 용역업체였다.

얼마 전부터 풍물을 배우기 시작한 장휘옥 씨는 "배우려고 애를 쓰는데 손이 헛갈려서 웃음만 나온다"면서도 풍물패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닭발이나 돼지껍데기를 볶아 가면 같이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나도 모르게 동료들과 정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 풍물패 소모임. 얼마 전부터 풍물을 배우기 시작한 장휘옥 씨는 "배우려고 애를 쓰는데 손이 헛갈려서 웃음만 나온다"면서도 풍물패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조 생겨서 좋은 점?…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이장숙 씨는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학교가 청소 노동자들은 엘리베이터도 못 타게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연세 드신 분들은 다리 관절이 안 좋은데 예전에는 지하에서 6층까지 오르내려야 했다"면서도 "이제는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도 학생들의 민원이 안 들어와서 좋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제는 학생들이 분리수거도 예전보다 제법 잘하고, 따라와서 인사를 하는 경우도 늘었다"며 "학생들이 거의 우리를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로 작은 권리들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노동조합이 생기고 난 다음 가장 큰 변화였다. 이전까지 청소노동자는 '학생들의 눈에 띄지는 않되, 보이지 않게 학교를 깨끗이 해놔야 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10끼 먹으며 설득했던 학생들의 소중한 성과, 노동조합

연세대학교에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2007년 연세대 학생들이 학내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하면서부터다.

노조가 생기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학생들은 미화원 휴게실을 돌며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설득하고 다녔지만 해고를 두려워한 현장 노동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한 학생은 고심 끝에 숟가락 하나를 들고 "밥만 먹고 가겠다"며 휴게실을 돌아다녔고, 하루에 밥을 10끼씩 먹고 게워내고는 했다고 한다. 결국 학생들의 설득에 용기를 낸 노동자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노동조합이 생겼다.

노조가 있으면 좋은 점을 묻자 이 씨는 "부당한 일이 생겨도 개인이 맞서면 절대 안 되니 단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용역업체의 횡포가 말도 못 했다고 한다.

현장 소장 부인 다니는 교회에서 강제 청소도

욕설과 폭언은 예사였고, 심지어 용역업체 현장 소장이 자신의 부인이 다니는 교회에 연세대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을 동원해 강제로 청소를 시키기도 했다. 노조가 있었기에 정년 축소와 해고를 막아내고 용역 업체 소장의 욕설도 시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씨에게는 홍익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 170여 명이 한 번에 해고된 일이 영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노조 만들었다고 한꺼번에 다 자른 홍익대학교가 잘못했지. 총장, 이사장이 (노동조합 결성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해. 이 추운 날에 밖으로 내몰린 홍익대 조합원들에게 추위가 가면 봄이 오듯이 희망을 가지고 싸우라고 말해주고 싶지."

"홍대 이사장 옆구리를 팍 찍듯, 장구채를…"

고단한 하루가 끝나도 이 씨를 비롯한 몇몇은 풍물교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풍물패 교사가 장구채를 들고 "홍익대 이사장 옆구리를 팍 찍듯이 장구채를 찍어야 한다"고 말하자, 장구채를 장구에 '탕' 하고 찍는 조합원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배어났다. 풍물패는 "비정규직 철폐하라, 생활임금 보장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두 시간 동안 장구를 쳤다.

풍물이 끝나자 학교에는 어느덧 어둠이 내렸다. 어둠으로 시작해 어둠으로 끝나는 일과를 마치고 조합원들의 걸음은 떡볶이 포장마차로 향했다. 종이컵에 소주를 한가득 따라 놓고 풍물패 조합원인 장 씨는 노래를 불렀다. 포장마차 주인과 이들은 서로 익숙한 사이인 듯 농담을 주고받았다. 여기저기서 구성진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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