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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와 이익공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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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와 이익공유제

[이정전 칼럼] 경제학자가 말하는 '정의', 두 번째

경제학자가 말하는 '정의', 첫 번째: "시장의 합의가 공정할 수 있으려면…"

경제학자는 자본주의 시장의 최대 장점으로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첫 번째로 꼽는다. 물론, 효율이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효율이 보장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구매자가 존재하면서 자유롭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즉, 자유경쟁시장(경제학자가 말하는 완전경쟁시장)이어야만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는 자본주의 시장의 최대 장점으로 풍부한 선택의 자유를 첫 번째로 꼽는다.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 나가보면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시장은 예컨대 같은 구두라도 온갖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소비자들의 다양한 구미를 최대한 충족시켜 준다. 시장은 빨간 구두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빨간 구두를, 하얀 구두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하얀 구두를, 까만 바탕에 하얀 줄무늬가 있는 구두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정확하게 그런 구두를 공급해준다. 대다수가 검정 색 구두를 신는다고 해서 노란색 구두를 원하는 소수에게 결코 검정 색 구두를 강요하지 않는다. 라면이 인기가 좋고 꽁보리밥은 인기가 없다고 해서 시장은 꽁보리밥 먹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라면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구매자가 존재해야만 각 소비자는 어떤 특정 판매자의 횡포에 시달림이 없이 자유스러워 질 수 있으며, 각 판매자는 어떤 특정 구매자의 심술에 억매임이 없이 자유로울 수가 있다. 다수의 가게가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가게에 억지로 드나들 필요가 없으며, 다수의 구매자가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에게는 팔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점에서 시장은 정치판과 딴 판이다. 정치판에서는 국민의 60% 이상이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60% 이상의 다수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호령하는 작태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들이 전부 마음에 안 들 경우, 아예 기권해버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음에 안 드는 그 누군가가 당선돼서 국회의원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4년간이나 참고 견뎌야 하는 결과에는 변함이 없다. 자유경쟁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자유경쟁시장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며, 소수의 이익이 최대한 반영되고 다수의 횡포가 최소한으로 억제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가 즐겨하는 시장예찬론의 핵심이다. 다만, 신자유주의자나 경제학자는 마치 현실의 시장이 교과서에 나오는 자유경쟁시장(완전경쟁시장)인양 착각하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를 무조건 정당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같이 다수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시장에 존재하면서 자유롭게 경쟁해야만 선택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됨과 동시에 자원이용의 효율이 달성될 수 있기 때문에 자연히 경제학자는 독과점을 무척 경계한다. 왜냐 하면, 독과점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읽게 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독과점 기업이 특정 상품의 시장을 장악한다면 이들은 공급량 조절을 통해서 시장에서 형성될 가격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게 되며, 그럼으로써 독과점이윤을 획득하게 된다고 경제학교과서에 나와 있다. 소비자는 싫어도 독과점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 독과점은 한편으로는 자원이용의 효율을 저해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의 소비자로부터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다. 그래서 경제학 교과서마다 독과점의 비효율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실제로 시장경제가 최고로 발달했다는 미국은 매우 오래 전부터 독과점을 강력하게 규제해왔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정의가 가장 큰 걱정거리임을 시사하는데, 독과점은 바로 이 정의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된다. 시장에서 이루어진 거래의 결과가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거래 당사자들이 대등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합의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래 당사자들이 대등한 관계에 있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가 충분한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택의 여지를 충분히 가진 사람과 선택의 여지를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은 대등한 흥정을 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설령 당사자들의 사이의 합의로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독과점 상품의 가격은 표면상 거래 당사자들이 합의한 가격이다. 하지만, 대등한 관계에 있지 못한 거래당사자들 사이에 합의된 것이요,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된 가격이다. 한쪽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반면, 다른 쪽은 선택의 여지를 가지지 못한 채 끌려가는 입장에 놓여 있다. 그 어느 한쪽만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다른 쪽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독과점시장을 공정한 시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자는 선택의 자유를 자유경쟁시장의 최대 장점으로 꼽지만, 독과점은 그런 장점을 오히려 죽이는 요인이다.

누구나 시장에서의 거래는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자유경쟁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무조건 올바른 가격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들은 공정한 가격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다. 요컨대, 참된 시장은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거래 당사자들 사이의 대등한 관계, 그리고 이들 사이의 자발적 합의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독과점에 대해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똑같은 논리로 비난받아야 할 고리대금업이나 바가지요금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 대다수의 일반국민들이 고리대금과 바가지요금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그것이 공정치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택의 여지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채업자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사채업자는 이렇게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자신의 잇속만 채운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궁지에 몰린 사람과 여유 있는 사람 사이의 거래는 결코 대등한 입장에서 성사된 공정한 거래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름철 휴양지의 바가지요금 역시 선택의 여지를 가지지 못한 휴양객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려는 심보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우리 사회가 진정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누구에게나 선택의 자유가 풍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선택의 자유가 없어서 궁지에 몰린 사람의 수가 최소화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빈부격차도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저촉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시장에서 풍부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경쟁시장은 돈 없는 사람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불공평한 제도이기도 하다.

▲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8일 현대자동차그룹 양재동 사옥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 동반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뉴시스
우리나라 재벌들의 독과점횡포는 오래 전부터 사회적 지탄을 받아왔다. 다만, 우리나라 수출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는 점 때문에 그 동안 눈감아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가장 공정치 못한 정부로 낙인찍힌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이 2010년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선창하였고 정운찬 전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동반성장위원회를 구성하였다는 것은 우리나라 재벌들의 독과점횡포가 이제 한계에 이르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회가 제안한 '이익공유제'의 도입에 재계와 보수언론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고 일부 경제학자들도 이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이익공유제가 '반시장적 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 의하면 오히려 재벌의 횡포가 반시장적 행위다. 어느 경제학자는 이익공유제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재벌들의 기업 활동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인데도 과연 경제학계의 거두인 정운찬 전총리가 이익공유제를 제안했을까? 자세히 뜯어보면, 이 제도가 재벌의 초과이윤을 강제로 환수해서 중소기업에게 나누어주는 로빈 후드 식 반시장적 제도가 아님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계와 보수언론은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정의사회의 구현이다. 정의사회의 구현은 장기적으로 재벌과 중소기업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통령부터 정의사회 구현을 선창하지 않았을까. 이익공유제가 반시장적인가 아닌가의 차원을 넘어서 우선 정의사회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이 제도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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