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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식' 반값 등록금,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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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식' 반값 등록금,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석훈 칼럼] "성인을 성인으로 보지 않는 철학적 한계"
분당 재보궐 선거 이후 한나라당이 쇄신이라는 이름을 걸었다. 그리고 꺼낸 카드가 반값 등록금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한나라당의 목표는 최소한 손학규보다는 왼쪽으로 가는 것이다. 지난 대선 '혁신적 중도'를 외쳤던 손학규보다 왼쪽으로 가는 건 쉽다. 민주당이 좌파가 아니고, 한나라당은 유럽 기준으로 극우파에 가까운 현실을 생각하면 그 시절 손학규의 중도는 정책적으로는 우파다. 조금만 합리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자연스럽게 손학규보다는 왼쪽에 위치하게 된다.

현재 유력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정책 기조만으로 본다면, 반값 등록금을 내건 한나라당은 이미 손학규보다는 왼쪽으로 왔다. 박근혜도 이미 연전에 복지 기조를 공언했다. 도저히 왼쪽으로 올 것 같지 않은 정세균은, 낙수경제에 반대하는 분수경제론으로 훨씬 더 왼쪽으로 왔다. 정동영은 이미 연전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부유세를 받았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김진표도 뉴타운 문제를 지적하면서 주택 문제에 대한 다른 정책 입장을 밝혔다. 분당 선거에서 리모델링 공사 기간에는 재산세를 면제해준다는 이상한 공약을 내건 손학규보다는 김진표가 더 왼쪽으로 간 셈이다. 분석할 수 있는 형태의 공약을 제시한 게 없는 유시민을 제외하면 지금으로서는 손학규가 가장 오른 쪽에 있는 셈이다. 아, 정몽준을 대선후보 반열에 올려준다면, 명실상부하게 가장 오른쪽은 현재 그가 차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더 왼쪽으로 오게 될 것은, 오른쪽이 상징이 바로 이명박이고, 그로부터 멀어지는 길 외에는 살 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꼭 좌파 정책 외에는 없느냐, 그렇지는 않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소통과 공감의 정책을 추진하고, 자치를 넓히는 방법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건 단기간에 변화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한나라당이 변화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시간은 내년 4월 총선이라서, 반값 등록금 외에도 더 급진적인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 실제로 복지를 꼭 좌파만 하는 건 아니다. 복지라는 개념 자체를 도입한 게 비스마라크 시절이었고, 한국에서도 미국이 부러워한다는 건강보험을 도입한 건 전두환 시절이다.

자, 이런 기준에서 반값 등록금 문제를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반값 등록금을 제시할 때에는 그걸 지키지 않을 게 확실해보였는데, 지금은 좀 다르다. 그거라도 안 하면, 한나라당은 영원한 야당이 되게 생겼다. 현재도 50대 이상에게만 어필을 하는 늙은 당인데, 10년 지나면 환갑 이상만 찍는 환갑당이 되게 생겼다. 20대와 청년을 위한 정책, 이제 한나라당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이런 전제 하에서 본다면, 반값 등록금은 이제 한나라당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특히나 대구 근처의 의원들 아니라면 말이다.

대학이라는 제도는 자본주의보다는 역사가 긴 제도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소르본느 대학으로 알고 있는데, 68 혁명 때 국유화 되어서 지금은 파리 4대학으로 불린다. 등록금은 연간 20만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고, 이 대학에서 먹는 식사비의 50% 정도에는 국가 보조금이 들어간다. 국유화는 68혁명 때 고등학생들의 시위로 국가가 도저히 운영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우파 정부에서 추진한 일이다. 대학을 국유화하는 일은, 좌파들이 한 건 아니다. 다만 사회변화에 대한 사회 총체적인 저항에 부딪히며서 우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는, 68혁명의 총체성보다는 지금의 등록금 집회가 좀 규모가 작다는 정도. 그 대신 반(反)MB라는, 투표로 결집된 표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대학 등록금 문제 해결에는 3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전면 국유화.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만불 이전에 채택한 방식이다. 우리는 국민소득 2만불이니, 토건경제 때문에 뒤늦은 감이 있지만, 경제적 여력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 대신 이제는 2만불 경제이니까 그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경제 규모는 되는 것 같다. 저축 은행 부실의 일부를 떠안기 위해서 정부가 조성하겠다는 '배드 뱅크'도 10조원 규모는 가뿐히 넘는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립대학 네트워크. 이 방안은 2004년 총선 이후로 민주노동당 등 진보계열에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안이다. 국립대학을 일단 100만원 이하의, 무상에 가깝게 낮추고, 여기에 참여하는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동일한 조건으로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사학의 국유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부족할 때, 일단 국립대학부터,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학벌 문제를 좀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대는, 혹시라도 이렇게 네트워크 정책이 생겨날까봐, 대학 법인화로 도망가버렸다.

세 번째는, 카이스트 방식이다. 특정 대학 혹은 특정 학문에 대해서 무상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취직이 잘 되지 않아 유지하기 어려운 과 먼저 무상으로 하는 방식인데, 문사철이나 물리학과 등 기초 학문들을 먼저 무상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특히 서울보다 지방대학부터 먼저 하면 중앙형 경제의 문제점을 완화시킨다는 장점이 있고, 사학 문제를 피해갈 수 있어 사회적 수용성이 가장 높은 방식이다.

황우여가 제시한 방안은 이 세 가지가 아닌, 부모의 소득에 따른 지원이라는 특이한 방식이다. 보편적 복지를 거부하는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런 기묘한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결국 정도와 속도와 문제인데, 이 방식도 나쁘지는 않지만, 철학적인 문제점을 한 가지 가지고 있다.

부모의 재산에 대학생의 등록금 지원을 연동시키자는 말인데, 성인을 몇 살로 볼 것이냐, 그리고 누가 성인이냐, 이런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등록증을 만 17세에 가질 수 있다. 반면에 투표권은 만 19세에 생긴다. 원칙적으로는 주민등록증을 가지게 되는 나이를 성인으로 보는 게 맞고, 투표권도 여기에 맞추는 게 맞지만, 아무래도 한나라당은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성인이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을 것이다.

▲ ⓒ연합뉴스
어쨌든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었는데, 이런 성인의 대학 교육에 대한 지원을 부모의 재산 혹은 소득과 연동시키는 것은, 정상적인 시민의 재생산에 역행하는 사유이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건 개인이 선택할 자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더 좋은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성인이 되면서 일단은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을 가정하고, 그 상황에서 교육권, 주거권, 보건권, 이런 걸 적절하게 정책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듯이 국가가 챙겨야 할 책임을 부모에게 미루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불평등 상태를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황우여의 반값 등록금 메카니즘은, 성인을 성인으로 보지 않겠다는, 그런 철학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쇄신파가 시간이 없다는 현 상황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급하게 시행안을 만들고, 7월에 공청회 한 번 열어서 확정짓겠다는 방식은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번 결정되면 수십년은 가게 될 대학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서 사학재단과 국가와의 관계 그리고 시민의 재생산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발생할 문제점들을 미리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최소화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 68혁명급의 사회적 운동과 함께 대학 재정정비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서 아무래도 유럽형으로 직접 가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대학 국유화를 추진한 사람들이 우파들이었다는 걸 상기해본다면,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과정이다.

공청회 한 번으로 안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가지 말고, 좀 더 넓게 그리고 차분하게, 각 방안의 장단점과 필요한 제도 성립 같은 것을 시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면서 하는 게 좋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표현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 지방과 수도권,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 공립과 사립, 고등교육과 실업교육, 2세들의 독립과 결혼 그리고 출산과 같은 재생산 메카니즘, 이런 걸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 나름의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대학 등록금에서 재원 문제는 정책의 우선 순위 결정에 관한 문제이므로 오히려 부차적 문제이고, 더 중요한 것은 기술적 옵션들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다. 국민들과 많이 대화하고,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솔직히 애기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제도를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미테랑 대통령의 시대가 끝난 후, 프랑스에 우파들이 다시 정권을 가져갔다. 초기에는 국립대학을 다시 민영화하고 사립 대학의 시대로 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또 실제로 그런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시락의 시대 그리고 다시 사르코지의 시대를 맞아도 대학 민영화가 실제로 추진된 적은 없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잘 수용된 안정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 제도를 비롯해서 많은 제도는, 그것이 최적인가, 그런 기술적 요소만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는가, 그런 수용성이 더 중요하다. 한국도 어느덧 그런 단계로 접어들어 가는 것 같다. 왜 현 대통령의 인사나 정책은 즉각 반발에 부딪히게 되는가? 유권자와 납세자들에게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단계를 생략해버리니까, 설령 그것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 것 아닌가? 대학 등록금 문제의 해법에서, 이런 새로운 흐름을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바늘 허리에 묶고 바느질 할 수 없다는 말, 황우여 원내대표가 이 시점에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말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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