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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독' 오른 병원의 속살, 현직 의사의 '카메라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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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돈독' 오른 병원의 속살, 현직 의사의 '카메라 고발' [인터뷰] 송윤희 감독이 만든 '한국판 식코' <하얀 정글>
그는 의사다. 하지만 그는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의사로서 그동안 하지 못한 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한다. 의료계 내부, 그리고 의료 민영화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이 탄생한 계기였다.

'하얀 정글'은 의료계 안에서 본 의료계를 빗대는 말이다. 병원은 기업과 다를 바 없이 돌아가고, 의료인들은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병원은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싼 검사보다는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비싼 비급여 검사를 권한다. 의사들에게 매일 문자로 병원을 방문한 외래 환자 수를 알리고, 의사들의 수익 실적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발표한다. 실적이 좋은 의사에게는 인센티브를 준다. '수익'을 향한 병원의 조치들은 의료진에게 무언의 압력이 된다.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은 "병원과 의료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난 소감을 묻자 그는 다시는 '고발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힘없는 개인이 고발 영화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편집자>


▲ 송윤희 감독.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 의사이면서 감독이라는 이력이 독특하다. 영상 다큐멘터리에는 어떻게 관심을 뒀나?

송윤희 : 원래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 학생 때 휴학하고 독립영화협회 워크숍에서 독립극영화를 6개월간 만들었다. 그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복학하고도 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다.

의사가 하는 일은 대학병원에서 연구하거나, 희귀 수술을 해서 기술을 연마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단조로운 일이다.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다. 나도 영화 만들기 전에는 검진을 했다. 쉬는 날이 꼬박꼬박 있어도 못 하겠더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었고,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면 먹고사는 문제는 많이 해결된다. 하지만 내가 발전하기란 쉽지 않다. 의사에 따라 다르지만, 내 경우는 그랬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다.

"비싼 약 쓰자는 말에 대답 없던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

프레시안 : 굳이 의료 민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계기가 궁금하다.

송윤희 : 내과병동에서 일했을 때 쓴 글이 있다. 거기에 "내가 떠나보낸 환자"라는 표현이 있다. 죽인 게 아니다. 내과에 있으면 환자들이 죽어나간다. 내가 있던 곳은 적십자병원이었기 때문에 환자들이 대부분 가난했다.

실제로 한 할아버지가 <하얀 정글>에 나온다. 오랫동안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앓아 계셨다. 뇌졸중을 앓으면 주기적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 아무리 의료급여 환자라고 해도 입·퇴원을 반복하면 돈이 많이 든다. 할머니가 열이 잘 안 가라앉았다. 할아버지한테 비싸더라도 센 항생제를 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사정이 안 좋았는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주말 지나고 하루 만에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모습을 보고 "저 사람 아들이 조금만 형편이 나았어도 열심히 살리려고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많이 경험했다. 돈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들을 봤다.

"한국판 <식코>를 찍자"

처음에는 소외 계층의 의료접근성 문제를 다루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만 다뤄서는 <인간극장> 수준의, 텔레비전에서 항상 봤던 병원비 못 내서 치료 포기한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밖에 안 된다. 해결책도 안 되고 너무 뻔하고, 대중이 봐서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다고 봤다.

▲ <하얀 정글>에 나오는 의료 소외 계층. ⓒ송윤희

의료 제도를 공부하면서 해결책이 뭘까 고민했다. 대중적인 영향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는 대중적인 콘텐츠가 없었다. 미국 다큐멘터리인 <식코>밖에 없었다. 한국에는 왜 없을까 고민하다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식코>의 현실 말고 한국도 이렇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두 가지를 담으려 했다. 첫째, 의료 상업화의 현실. 둘째, 의료 민영화가 어떻게 추진될 것인지를 담았다.

"그들은 환자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송윤희 : 사전 조사를 할 때 어느 병원에 다니는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걔네(의료기 관련 회사들)는 환자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물건 팔 생각밖에 안 한다고. 기업이 돌아가는 형식으로 그들의 사업 아이템을 실현한다고 했다. 비슷한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다. 인터뷰하다가 취재원들을 소개받았다. 다뤄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더라.

"위암 수술에 코디네이터가 로봇 수술을 추천한다. 파일에 수술한 부위를 비교해 놓았다. 위암 수술 후 꿰맨 자국을 보여준다. 끔찍하다. 환자 측은 (그 사진을 보고 아무리 비싸더라도) 로봇 수술한다고 한다. 자동차 파일 보여주듯이 비교한다. 로봇을 처음 들였을 때 1년에 30건밖에 못 했다. 그 뒤로 갑자기 늘었다. 의사들도 예전엔 안 권하다가 이젠 마구 권한다."(<하얀 정글> 내용 일부)

▲ 로봇 수술 광고. ⓒ송윤희

"오늘 환자 ○○명입니다"…의사 실적, 일등부터 꼴찌까지 등수 매겨 공개돼

프레시안 : 취재하면서 어떤 내용이 새로웠나?

송윤희 : 나는 '30초 진료'가 진짜 있는 줄 몰랐다(<하얀 정글>에는 대형병원이 환자 한 명을 보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을 재는 장면이 있다. 결과는 평균 31초였다<편집자>).

의사도 놀라는 장면이 꽤 있다. 의사 인센티브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시행되니까 안 놀란다. 그런데 의사 휴대전화로 "오늘 진료 환자 ○○명입니다"라고 일일이 문자 오는 장면에서는 의사들도 놀라더라.

일반인들이 놀라는 부분은 과별로 의사 실적 가지고 등수를 매기는 장면이었다. 거의 모든 병원이 다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병원들끼리도 경쟁한다. 이를테면 "A 병원은 외래진료 성과가 얼마인데 우리도 이 정도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식으로 (서로 실적을) 비교한다. 내시경 검사를 할 때마다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 한 대형병원 의사는 매일 외래 진료 환자수를 문자로 받는다. ⓒ송윤희
"우리 의료계가 너무 '돈돈'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감독이 의사라서 의료계 내부 사정을 더 잘 알 것 같다.

송윤희 : 우리 사회에 그런(비판적인) 사람이 있다. 90%는 조직에 안 좋은 측면이 있어도 숨기고 싶어 한다. "여기서 밥 먹고 사는데 이 정도쯤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10% 미만의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걸 기꺼이 말해 준다. 어떤 분들은 더 말해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우리 의료계가 너무 '돈돈'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레지던트가 MRI를 지시하면 월급에서 얼마 더 준다. 어느 순간부터 MRI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개원가에서도 지나친 검사가 막장으로 간다. 싼 위내시경 수가를 보완하려고 조직검사를 한다. 조직검사가 필요하지 않아도 하는 경우가 있다."

"성과를 자꾸 내야 하니 교수가 10시까지 진료를 본다. 자꾸 비교해서 돈 벌려고 한다. 슈퍼마켓이 대형화되는 것처럼 병원도 똑같다. 큰 자본들이 잡아먹는 느낌이다. 교수회의 때 파워포인트로 일등부터 순위 나오고, 얼마 벌었는지 월별 실적 등수를 다 얘기한다. 교수들도 스트레스받는다." (<하얀 정글>)


"다시는 고발영화 안 만들겠다"

프레시안 : 다큐멘터리에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힘들지 않았나?

송윤희 : 다시는 고발영화는 안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대중들은 고발장면이 쇼킹하겠지만, 고발 이야기를 할 때는 전날 잠을 못 잔다. 긴장한다. 카메라를 들고 가면 자신만만해야 하는데 속으로는 두근두근 떨린다.

병원 안에 카메라가 허용이 안 된다. 찍는 것 자체가 금기다. 몰래 카메라였다. 평범한 사람은 몰래 카메라를 찍을 일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려고 하는데 안 떨릴 수가 있겠나. 물론 내가 마이클 무어(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식코>의 감독. <편집자>)였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 나는 <PD 수첩>제작진이 아니다. 파워가 없다. 한 개인이 고발영화를 만들기란 힘들다는 것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됐다.

"진료비 확인 요청을 했더니 비급여로 3400만 원이 나왔다. 병원이 불법 비급여 청구를 했다. 1990만 원이 부당 진료비로 확인됐다. 민원을 걸자 병원은 민원을 취소하라고 설득했다. 어떤 의사는 "기껏 살려줬더니 뒤통수친다"고 했고 다른 의사는 "다시 재발해서 입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돌려서 얘기하더라. 의사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적 문제다. 보험이 되는 진료를 보험 안 되게 바꾼 거니까. 의사도 직원이다. 직원이 월급 받는데 회사(병원) 방침을 따르지 않기란 힘들다. 의사만의 탓은 아닐 수 있다." (<하얀 정글>)

"의료 민영화는 내 이야기"

프레시안 :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과 영화를 만들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프레시안(김윤나영)
송윤희 :
영화에 '밥가'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밥은 서로서로 나눠 먹습니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 장면이 좋다. 사회는 자본화되고, 자본화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웃이 있다. 영리의료법인이 생기거나 의료 민영화가 되면 나라고 소외되지 않을까. 의료 민영화는 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밥은 하늘이고 서로서로 나눠 먹는 것처럼 국가가 모든 국민이 건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아쉬운 점은 중산층을 취재하고 싶었다는 점이다. <식코>는 맨 앞에 몰락한 중산층을 보여준다. 그런 사례가 한국에도 있을 거다. 차 한 대 있고, 40평 아파트에 살고, 애들 대학 보내고, 아버지 퇴직하고 연금받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외국에 가는 중산층. 병원에 가면 그분들조차도 어려운 점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섭외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영화의 취지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 블랙리스트가 있다. 환자를 진료하려고 하면 (예전에 내지 않은 진료비가) 뜬다. 지난 진료비를 정산 안 하면 진료 자체를 안 한다. 심지어 응급실로도 십몇 년 전 데이터가 뜬다. 밀린 돈을 내야만 진료를 해준다. (돈 안 낸 상태에서) 진료해주면 윗사람에게 시말서감이다. '몇 년 전 진료비 누락된 거 처리해야 합니다.' (응급 환자일지라도 돈 안 내면) 다른 병원 가라고 해야 한다." (<하얀 정글>)

"건강은 상품이 아니다? 1980년대엔 물도 그랬다"

프레시안 : 영화에 한국 의료계의 문제점이 많이 나온다. 영리병원 문제도 있고, 과잉 진료 문제도 있다. 환자들은 돈이 없어서 죽어간다.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딱 하나만 꼽아본다면 뭐가 제일 문제일까?

송윤희 : 막장 자본주의다. 자본의 속성상 시장을 넓혀야 한다. 망하거나 넓히거나 둘 중 하나지 유지가 안 된다. 의료마저도 시장으로 편입하려고 한다.

<하얀 정글>에서 "이제 한국이 먹고 살 게 없다. 성장 동력은 의료밖에 안 남았다"는 말이 나온다. 그건 이 세계에서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 같다. 할 수 있는 건 다 상품화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 걸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물 사 먹는 게 당연하다. 1980년대에 물이 상품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품인 것처럼, 건강 역시 지금은 덜 하지만 앞으로는 사고파는 것으로 전락할 것이다.

프레시안 : 영화 상영 계획을 들려 달라. 더 나아가 앞으로의 다른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송윤희 : 편집 작업 중이고 곧 완성본이 나온다. 아직은 한 사람이 보기는 어렵고 공동체 상영 신청을 해야 한다. 공동체 상영 신청은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하면 된다. 어떤 감독이든 자기 영화는 개봉되는 게 목표다. 아직 그 단계는 힘들다. 자본도 부족하다.

여건이 되면 영화를 또 찍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탈진 상태다. 아이를 낳고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면, 아기를 더 낳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딱 그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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