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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손 잡았던 노무현의 실패, 반복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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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손 잡았던 노무현의 실패, 반복할 건가?" [우석훈 칼럼] "이제는 '금융 민주화'다" <2>
- "이제는 '금융 민주화'다"

<1> "대권주자에게 묻는다…외환은행, 어쩔 건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가장 큰 차이는 대상의 보편성 문제일 것 같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에 있으나 금성에 있으나, 온실가스라는 건 마찬가지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생명체가 살기에 금성에는 너무 많고, 화성에는 너무 없고, 지구는 적당하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는 어디에 있으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고, 이상한 사람과 멀쩡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생애 주기상에서 누구나 나쁜 사람일 때가 있고, 이상한 사람일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래서 사회과학의 관찰은 제한적이다.

지난 정권에서 한참 유행하다가 이번 정권에서 사라진 단어 두 개를 꼽아보면, 시스템과 로드맵일 것 같다. '하이 서울 페스티발'처럼, 이상한 영어를 행정 용어로 쓴 것은 지난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누가 오더라도 바뀌지 않을 정책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어떤 것인가, 얼떨결에 정권을 잡았던 노무현 정부는 그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이해는 할 수 있다. 대선 24시간 전에도 당선될 거라는 보장이 없던 후보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전문가는 한국에 거의 없다. 그러니까 시스템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일정표를 만드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5년 내내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표만 만들다가 끝났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고 나니, 그렇게 만든 로드맵은 그냥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로드맵이나 일정 같은 건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생각나면 하고, 기분 내키면 하고…. 박카스 슈퍼에서 팔게 하는 게 뭐 그리 국운이 달린 일이라고, 등록금 정국 한 가운데에서 청와대가 직접 개입을 하는가? 청와대가 아직도 열심히 하는 것은 방송 장악과 박카스 파는 일 외에는 없는 듯싶다.

대학 등록금 논쟁을 하면서, 나는 돈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선일보는, 죽어라고 돈의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가 돈이 없으니까….

금융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대학생들 무상교육 해주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금융에서 환율 조작 – 혹은 조정 – 하면서 쓰는 돈, 저축은행 부실 메워준다고 '배드 뱅크' 만든다고 하는 돈, 이런 돈의 기본 단위가 10조 원이다. 뻑 하면 10조부터 시작하는 돈이 넘치고 넘치는데, 무슨 돈이 없다고 하는가? 저축 은행 몇 개 망하는 것과 우리의 청년의 삶 자체가 망가지는 것, 그 사이의 우선 순위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는 아니다. 하다못해 박근혜 대표가 다음 번 대선 공약으로 벌써 내건 영남권 공항 사업비도 기본이 15조부터 시작한다. 대학이냐, 공항이냐, 그 선택을 내리는 것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는 아니다. 기술적으로 사업 집행이 불투명한 새만금 사업? 20조다. 제 정신이 있는 정치인이면, 새만금 사업 재검토하고, 일단 전북 지역 대학교부터 무상으로 하겠다, 그런 얘기들이 지금 나와야 하는 상황 아닌가? 되지도 않을 4대강 지류사업 한다고 정부가 쓰겠다는 돈도 20조 원이 넘는다. 우리가 돈이 없는가?

금융 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민주화 논의이기도 하고, 복지 논의이기도 하고, 동시에 생태 논의이기도 하다. '뱅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흥청망청 하는데, 국민들 호주머니에 돈이 한 푼이라도 남아날 리가 있겠는가? 기억을 되돌려서 IMF 시절에 '고통분담' 얘기하던 걸 다시 기억해보자.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이 나누어졌지, 관료와 뱅커들이 고통을 나눈 흔적은 없다. 그리고 다시 10년, 남은 것은 저축은행 비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부패 밖에는 없다. 한나라당은 이 문제는 전 정권의 문제라고 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기들은 그렇지 않았는가, 그리고 뭘 했는가, 그런 질문이 생긴다. 10년간의 민주당 정권이 과가 5라면, 한나라당의 과는 10 혹은 20 정도 되는 것 아닌가? 민주당 정권이 눈치 보면서 부패했다면, 한나라당은 대놓고 부패한 것 아닌가?

내년에 정권이 바뀌면, 이제는 금융 민주화라는,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그 부패한 금융 체계에 변화가 와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냥 가면, 마치 노무현 시절에 모피아의 대부라는 이헌재가 경제부총리를 맡으면서, 정권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왕국을 만들어낸 그 시절이 다시 오게 된다. 현 정부에서 강만수 장관이 산업은행까지 먹어 삼키면서 원성이 자자하지만, 이헌재와 강만수, 거기가 거기다. 지금 등록금 문제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비교적 젊은 관료인 금감원장 권혁세까지, 좌우 혹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금융관료와 뱅커들은 철통같은 방어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민주당 내에서 보수적 색채를 대표하는 김진표와 손학규에게 금융 민주화의 방향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 상태에서 은근슬쩍 복지 정책 얘기하면서 묻어가는 방식으로는, 금융은 다음 정권에서도 여전히 목마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경제의 최상위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갔다.

▲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뉴시스
왜 힘들게 국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만들어낸 노무현 정부에서 이헌재 같은 사람이 경제부총리로, 한국의 경제를 총괄하는 그 자리에 간 것일까? 만약 그가 겨우 골프장 수 백개 만들자는 '한국형 뉴딜'이 아니라 요즘 촛불집회의 대상이 된 바로 그 문제를 푸는 '대학 뉴딜' 같은 것을 했다면, 한국은 벌써 복지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겨우 건설사 사장 따위가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농락하는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행정에서 시스템을 얘기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지난 정부에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얘기한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다. 그러나 금융이라는 특수한 분야는, 마치 군부와 마찬가지로 시민사회가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 두 개는,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YS가 했다.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 도입, 이건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적 청산의 문제이기도 하다. 군부에 대한 견제인 하나회 해체는 이루어졌지만, 사실상 한 몸처럼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도 여전히 권력을 놓지 않는 금융집단, 일명 '모피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문제를 피해가서는, 즉 좋은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방식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견제와 균형, 이건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이다. 그래서 우리가 삼권을 분리하고 있고, 행정부 내부에서도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견제의 원리는, 미리 결정하지 않는 불안정한 요소를 시스템 내에 삽입함으로 인해서 특정 집단 혹은 특정 계층이 권력과 돈을 독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자는 것 아닌가? 한국은 지금 귀족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 외교부의 외교 아카데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기들끼리 특권계층, 귀족 계급을 만들겠다는 거 아닌가? 지금의 금융계 역시 그렇다. 은행과 관료 여기에 로펌까지 한 몸으로 엉켜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금융계인지, 혹은 어디가 정부이고 어디가 민간인지, 도대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농민들 돈 운용하는 협동조합인 농협까지 메가 뱅크 만들겠다고 난리이다. 지금 금융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석동, 도대체 자기가 농업에 대해서 뭘 안다고 농협경제연구원장을 몇 년씩 지냈는가? 불법과 합법, 편법과 무법, 이런 게 온통 뒤섞여서 현재 한국의 금융계는 그야말로 쓰레기통이다. 지금도 불법 로비스트, 브로커, 이런 게 판치는 데, 아예 이걸 합법으로 하자고 로비스트 제도까지도 도입하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누가 누굴 견제하는가?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데….

진짜로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면, 아예 부패의 고리였던 대장정을 없애버렸던 일본의 경우가 한 사례일 수 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기획재정부를 없애버리고 경제 기능은 지식경제부로, 은행 업무는 총리실로, 이런 식으로 아예 부처를 날려버린 적이 있다. 이 정도는 해야 시스템 개혁이라고 할 수 있지, 경제부총리를 둘거냐 말거냐, 감독 기능과 집행 기능을 분리할거냐 말거냐, 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데, 약간의 제도 보완을 한다고 뭐가 바뀌겠는가? 유신 경제 때에는 EPB라고 불렀던 경제기획원이 있었다. 문제도 많았지만,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지금처럼 막 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경제기획원을 만들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청와대가 유일하게 좀 견제를 할 수 있는 집단이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금융계와 한 몸이고, 여기에 컨설팅 회사까지 끼어들어서,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통이 되었다. 이 정도면 내부 고발이나 양심 선언 혹은 "좀 바꿔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라도 나올 법한데, 그런 목소리는 거의 없다. 청와대가 최소한 금융과 관련해서는 개혁을 얘기할 처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개혁이 대상이 된 셈이다. 전통적으로 금융관료들을 제어하는 역할을 청와대 정책실장들이 주로 했다. 경제수석이라고 해봐야 역대로 몇 명 빼고는 다 한통속이었고. 진짜로 금융계를 견제하려던 정책실장들은 오래 있지 못하고, 갖가지 사회적 사건에 휘말려서 그 자리를 그만두어야 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견제 역할을 좀 하려고 했던 사람이, 신정아 사건으로 자리에서 밀려난 변양균 정책실장으로 기억한다. 개인으로는, 손대기 어려운 게 바로 금융 개혁이고, 금융 민주화이다.

메가 뱅크로 가는 미국 모델은 이미 실패했고, 파산했다. 그 길을 따라가자는 게, 지금 사실상 한국 모피아의 수장급인 강만수가 가자는 길인데, 이 길 아니라고 막고 나설 집단이 별로 없다. 금융노조 정도가 좀 다른 생각을 가지는 집단인데, 그렇다고 노조 출신들로 금융 관료를 다시 채울 수도 없다. 무엇보다,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노조는 현재 국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고, 신뢰도도 높지 않다. 한 때 아일랜드 모델을 칭송하던 그 때의 금융관료와 금융 전문가들, 아일랜드 경제의 붕괴 이후, 사과하거나 해명한 사람도 한 사람도 없다. 외국에서 모델을 가져오는 방식, 그게 시스템 논의의 기본이었다. 미국 모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모델도 없지 않느냐? 그러니, 그냥 미국 모델로 가자, 이게 요즘 금융계가 얼렁뚱땅 다음 대선을 맞이해서 가려는 기본 방향으로 알고 있다.

시스템? 사람에 대한 논의를 한 번쯤은 먼저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민간 전문가가 하면 좀 나을 거라고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보다 공무원 눈치를 더 보는 경제학과 교수들이, 소신껏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사실 금융 시스템을 비롯한 금융 행정에서 정답은 없다. 어떤 제도든, 부패하지 않고 잘 돌아가면 그걸로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의 시스템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바꾸든, 합치든 떼어놓든, 일관되게 부패했고, 오히려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었다.

돌고 돌아, 결국 자기 자리 찾아 승진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법무법인들이 많은 돈을 주면서 퇴직 관료들을 모시는 것 아닌가? 인적 청산이라고 해서, 반드시 감옥에 가거나, 공무원 생활 그만두게 하자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부패 공무원들의 회전문 인사, 언젠가는 장관 한 번 하는 관행, 그런 건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쉽게 말하면, 강만수, 김석동, 이런 사람들이 물러나게 하는 것이고, 미국 모델 타령하면서 사실은 자기 주머니 돈만 챙기는 그런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모피아들, 너무 썩었다.

각종 금융관련 위원회에 시민대표들이 들어가서 감시도 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차피 모피아나 뱅커 혹은 그들 눈치 보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고 결정을 내려서는, 밀실행정이라는 금융계의 관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벌써 몇 년 전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음이 내렸던 저축은행 문제, 약간의 틈도 없이 자기들끼리 모든 것을 독식했던 모피아들이 책임져야지, 왜 선량한 시민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

금융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떻게 모피아를 청산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논의가 시스템 논의보다 우선이다. 그런 논의가 지금 시작되어야,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금융 민주화의 의미 있는 전진을 할 수 있다. 시스템 논의는, 그 다음이다. 강만수 자리에 오고 싶어서 줄 서 있는 사람은 지금도 차고 넘친다. 제2, 제3의 강문수를 또 만들어내서는, 민주고 복지고, 아무 것도 못한다. 이헌재의 손을 잡았던 참여정부의 실패, 그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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