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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왜 안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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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왜 안왔을까? [기고] '희망의 버스'를 보며 느낀 씁쓸함
부산 영도의 밤은 뜨거웠습니다. 6월 11일 밤과 새벽 사이, 전국 각지에서 희망을 실은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죽음의 사자처럼 검정색 티셔츠를 입은 용역회사 직원이 한진중공업 영도공장 출입구를 틀어막고 있었지만 희망의 출입을 막진 못했습니다. 컨테이너와 철판으로 출입구를 없앴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곳은 희망의 연단으로 탈바꿈했으니. 박종철의 아버지가 오르고, 박창수의 아버지가 오르고, 백기완 선생이 오르고, 문정현 신부가 올라 봉쇄된 철문 위에서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희망의 버스가 157일째 크레인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온다니 회사의 손님맞이는 괴팍했습니다. 얼마나 자신들이 저지른 정리해고가 부끄러웠으면 철판으로 출입문을 용접했겠습니까? 얼마나 자신이 없는 부당한 행동을 했으면 까만 옷의 용역들을 고용해 자신의 행위를 감추려했겠습니까?

한진중공업을 향해, 85호 크레인을 향해 촛불을 들고 영도다리를 건너오는 이들의 얼굴은 사뭇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희망의 버스 때문에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더욱 고통을 당하고,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위원은 더욱 고립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과 긴장이 촛불을 든 이들의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다만 촛불에 비춰진 그들의 눈에는 '다짐', 두 글자가 아로 새겨졌습니다. 어떡하든 저 가로막힌 절망의 벽을 올라 희망을 전하리라는 진실의 마음.

85호 크레인 옆 담장 아래로 철 사다리가 내려왔습니다. 검은 용역들을 뚫고 하얀 옷의 문정현 신부가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담장을 올랐습니다. 역시 하얀 옷의 백기완 선생이 사다리를 올랐습니다. 그 순간 통쾌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희망버스의 무박2일이 아닙니다. 왜 아직도 저 하얀 옷의 허연 머리의 어른들이 담장을 올라야 하는지 입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진중공업 조준호 회장의 잔인함이 아닙니다. 10만이 넘는 조합원을 거느린 금속노조는 150일이 넘도록 무엇을 했는지 입니다. 삼사십만의 조합원을 거느린 민주노총은 이제껏 정말 신심을 지니고 한진중공업을 위해서 싸운 적이 있는지 묻고 싶어서입니다.

물론 금속노조도 민주노총도 했습니다. 압니다. 부산역 앞에서 집회를 하고 행진을 하며 영도를 향했고 그곳에서 촛불도 들었습니다.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의 투쟁의지도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의 뜨거운 결의도 '목소리'로 들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압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열변이, 그 행진이, 그 다짐이, 그 약속이 진실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비싼 돈 들여 KTX 타고 부산에 내려간 게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잘 짜인 시간표에 맞춰 적당히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실천과 시간에 맞춰 끝낼 줄 아는 행사만을 보았습니다. 모든 게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적절한, '형식'이었습니다.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것 없이, 현장에서 터지면 쫓겨 체면치레만 하고 마는 거였습니다.

분신항거가 일었던 KEC 투쟁 때도 그랬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부턴가 한진중공업도 흐지부지되었고, 아마 아니 이미 유성기업도 그럴 겁니다.

'희망의 버스'가 부산 영도를 향해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참담했습니다. '결국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손을 떠나는 구나.'

기륭전자 싸움이 한창일 때 김영훈 위원장이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기륭전자 앞 굴삭기 위에서 농성하던 송경동 시인을 말하며 "내가 할 일, 민주노총이 할 일을 송경동 시인이 하고 있다"고.

송경동 시인이 농성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송경동 시인은 송경동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김영훈 위원장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입니다. 빈 소리로 송경동 시인을 추켜세우기 전에 스스로에게 각성의 바늘을 찔러야 할 때 입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희망의 버스를 타지 못했더라면, 미처 몰라 희망의 버스와 함께 하지 못했더라도, 그날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진 영도조선소 앞으로 와야 했습니다.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말입니다. 백기완 선생이 왔으니, 문정현 신부가 왔으니, 라는 어른에 대한 예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조합비로 차를 타고 밥을 먹으며 온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동원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열정적으로 담장을 뚫고 막힌 공장을 들어갔는지, 민주노총 위원장이 와서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속노조 위원장이 와서 깨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등록금 집회장에 주먹밥 들고 가기에 앞서 어떻게 사람은 조직되고 싸움이 만들어지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기본부터, 초심부터 배워야 할 때입니다.

하고픈 말 많습니다. 지난 경총 앞 최저임금 관련 기자회견 할 때 마이크도 점검하지 않고 와서 기자회견 시간을 넘겨서 건전지 사러 가던 민주노총 집행부의 모습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날 기자가 한 명밖에 없었던 일. 뭐 이런 말 말고요.

세상이 민주노총만 미워한다고 여기기 전에 세상이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십시오. 저, 87년 노동자대투쟁 때처럼, 전교조를 만들 때처럼, 전노협을 세울 때처럼 진실에서 시작된 마음과 행동이 희망을 만듭니다.

▲ ⓒ오도엽
▲ ⓒ오도엽
▲ ⓒ오도엽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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