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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깃발은 없는 게 낫다', 이게 당연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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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깃발은 없는 게 낫다', 이게 당연한가요?" [기고] "답답한 마음에 다시 글을 씁니다"
답답함에 다시 글을 씁니다. 보이지 않는 얼굴들, 들리지 않은 목소리들 찾아 기록하기도 바쁜데, 왜 내가 대한민국 최대의 조직이라 자부할 수 있는 민주노총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지, 내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지만 다시 글을 쓸 수밖에 없네요.

며칠 전 '희망의 버스'가 한진중공업을 다녀온 뒤 글을 썼습니다. (☞그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왜 안왔을까?) 민주노총은 희망의 버스에서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읽은 뒤 민주노총과 관련된 이들에게 전화나 대면으로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모든 사업장을 다녀야 하느냐?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해 집회도 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위사업장 문제에 민주노총이 일일이 나설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이건 민주노총을 비꼬려고 쓴 거 아니냐. 시민들이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데, 민주노총이 나서면 더 좋지 않은 거 아니냐.'

민주노총 비꼬려고 쓴 거 아니냐!

이 말, 다 인정합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온갖 집회장에 쫓아다닐 필요 없습니다. 글에도 썼듯이 지금껏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해 집회도 하고 노력도 했습니다. 물론 비꼬는 비아냥거림으로 들었다면 제 글이 한낱 비아냥거림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문제이고 마음의 문제니까요. 물론 제 글쓰기의 부족함 때문일 수도 있고.

문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데, 민주노총이 나서면 좋지 않은 거 아니냐" 입니다. 물론 희망의 버스 참여한 사람도 민주노총이 앞에 나서기를 바라지 않을 겁니다. 물론 차려진 밥상 위에 숟가락 올리고 민주노총이 나서라는 뜻으로 쓰지도 않았습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민주노총이 왜 시민들 곁에 떳떳하게 낄 수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도 '희망의 버스' 행동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데,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곳에 없는 게, 민주노총의 깃발은 그곳에 나부끼지 않는 게 '맞고' '좋다'라는 이야기가 '당연'스럽게 여겨지냐는 겁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제외하고, 심지어 민주노총 조합원의 입에서 조차 이런 말이 자랑스럽게 나오느냐를 말하는 겁니다.

'희망의 버스'에 스스로 시간과 돈과 마음을 내어 참여한 사람들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깨우칠 수 있기에 글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영도에서 찾은 겁니다. 김영훈 위원장 개인을 찾은 게 아니라 이 땅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정통성을 찾은 것이고 물은 겁니다.

민주노총 없는 게 맞다?

이러다 민주노총 무너지는 거 아니냐, 라는 말에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답합니다. 절대 민주노총은 망하지 않는다고. 맞습니다. 어떤 조직인데 망합니까! 국민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기 조합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이들에게 외면당하면서도 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입 닥치라는 식의 민주노총 내부의 문제 인식이 참담합니다. 노동운동은 위기인데 민주노총은 끄떡없다는 이 현실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트위터가 없고, 스마트 폰이 없을 때도 현대중공업이 서노협이 마창노련이 전노협이,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설 때 학생들이, 시민단체가, 작가들이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수만 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자랑하는 대변인을 갖춘 민주노총인데, 보수언론이 아니라 진보적인 사람마저도 손사래를 치는 까닭은 어디 있을까, 진심으로 고민해봤습니까?

김영훈 위원장이 민주노총 후보시절 외쳤던 말이 '혁신과 투쟁'이었습니다. 투쟁은 다 아는 사실(?)이라 뒤로 하고, 혁신의 문제는 중앙간부의 관료화와 정파의 분열 극복이었습니다. 운동선배들을 몰아내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김영훈 위원장의 인사는 의지와는 달리 현실을 감안한 '소폭'으로 시작되었고, 이후의 인사는 '적재적소'에 대해 민주노총 내부에서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한 인사로 알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에 대해 싫은 소리를 '절대' 하지 않았던 한 민주노총 자문위원이 이런 말을 할 정도입니다. 조직 사업을 해야 할 간부가 옛날 책 뒤져 언론에 서평 열심히 쓰더라.(칭찬이었나?) 노동기사를 쓰는 어떤 기자는 이리 말합니다. 민주노총 대변인은 리트윗만 하고 있냐고, 기사거리는 없고 스팸에 가깝다고.

정파 분열 문제의 극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야기가 정파의 극복은커녕 이제는 산별위원장들마저도 입을 다물고 팔짱 끼며 김영훈 위원장을 쳐다본다고. 심지어는 역대 위원장 가운데 가장 정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혁신과 투쟁으로 당선된 위원장

김영훈 위원장은 '혁신과 투쟁'을 말했지만 가장 공을 들인 일은 '통합이었습니다. 숱한 시간과 애정, 노력, 투쟁을 걸쳐 '민중의벗'을 만들었지만 그 영향력과 조직은 이전의 사안별 연대의 수준 그 이상은커녕 이하로 떨어지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문제는 합의서가 나왔음에도 더 큰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만든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위원장 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습니다. 수십만의 조직이 아닙니까. 하지만 위원장이 이 문제를 이겨나가지 못할 거면 (민주노총 당선사로 말한 것처럼) 굳이 이명박 씨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위원장직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김영훈 위원장의 선택은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위원장 후보 선거유세 때 공약은 거기가 거기라고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까. 대신에 '혁신과 투쟁'을 말했지요.

민주노총의 사업방식 조직방식 이제 '혁신'하면 됩니다. 혁신이 불가능하면 '투쟁'하면 됩니다. '희망의 버스'에서 공장 담을 타 넘어가는 것 배우라는 것 아닙니다. 민주노총이 결심하면 이보다 수십 배 수백 배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기라성들이 당신의 주위에 있지 않습니까. 날라리들을 모으라는 게 아닙니다. 민주노총이 '진심'으로 앞장서면 날라리 대대 연대 아니 사단이 나설 거니까요. 관성과 한계라고 생각하는 걸 버릴 줄 아는 '희망'을 찾아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서라는 이야기입니다.

민주노총도 안다, 우리가 더 잘 안다, 금속노조도 할 만큼 한다. 맞습니다. 저는 민주노총만큼 알지도 못하고 금속노조만큼 한 일도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하십시오. 알면서도 하지 않았던 것을 찾아, 할 만큼 한 것처럼 여기는 습성을 이겨내는, 바로 이것을 하면 됩니다.

날라리 사단이 기다린다

지난 15일 '민주노총 위원장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다음에는 영화를 함께 보자고 했더군요. 언론과 친밀감, 민주노총이 당연히 할 일이고 앞으로 더 잘, 더 자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아끼는 기자들은 영화보다는 민주노총다운 현장에서 기사를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희망의 버스'에 기자가 동승하고 언론사에서 탑 기사로 올리는 까닭도 그날 영도에 가셨더라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노동절 집회 다음날인 5월 2일자 <한겨레> 1면 탑이 왜 노동절 대신 서울지하철노조 민주노총 탈퇴와 제3노총 설립을 다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입니다.)

글을 써야 하고 글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내가 민주노총에 대해 글을 쓰는지는 지금도 잘 모릅니다. 다만 김영훈 위원장의 임기가 절반을 지나가고 있음을 따가운 햇볕이 계절로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나의 부족한 글 때문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희망의 버스' 탑승 하지 않은 것을 질타한 것으로 이해했다면 사죄드립니다. (15일 간담회에서 영도에 가지 못한 이유를 밝히며 가고 싶었다는 진실한 심정은 전해 들었습니다.) 그저 민주노총 식의 '희망의 버스'를 만들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는데.
이만 총총.

▲ 11일 밤 촛불을 들고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향하는 참가자들. ⓒ김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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