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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문 열어줬다…"들어라, 관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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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결국 대문 열어줬다…"들어라, 관료들아" [기고] 한·EU FTA '잠정' 발효,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오늘(7월 1일), 한·EU FTA가 '잠정' 발효된다. 이로써 매우 좋지 않은 선례 하나가 생겼다. 원래 조약의 발효는 국회의 비준동의가 완료된 이후에 가능하다. 그럼에도 한·EU FTA는 협정문의 협상단계에서 국회의 동의없이 '잠정' 발효를 합의하였다.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다.

한·EU FTA는 분명 한·미 FTA와 비교해 조용했다. 나 스스로도 협상 초기부터 사람을 모으고 각종 이슈를 쟁점화해 보고자 여러 시도를 해 보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국회비준단계에서 터진 '오역파동'이라는 다분히 비본질적인 사안이 흥행요인이 되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끓고 있었던 골목상권 문제로 그나마 없던 동력이 모이는 걸 확인하는 정도였다.

▲안호영 주(駐) 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와 카렐 데휘흐트 유럽연합(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FTA 잠정발효 기념 리셉션'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EU FTA가 이렇게 흥행이 저조했던 데에는 아무래도 미국에 비교해 EU가 가지는 한국사회 영향력이 약한 데에 기인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미 FTA가 어쩔 수 없이 지정학적 함의, 곧 군사안보적 측면을 옆에 끼고 있는 반면, 한·EU FTA는 그것보다는 '지경학적(geoeconomical)'인 고려가 선행한다. 한·미 FTA는 스크린쿼터, 쇠고기등 4대선결조건, 절차상 하자 등으로 처음부터 쟁점화가 용이했지만, 한·EU는 그렇지 못했다. 한·미 FTA가 '투자자-정부 제소제(ISD)' 등 희대의 독소조항 등으로 시선을 끌 수 있었지만, EU의 제도적 특성으로 인해 한·EU FTA에는 마치 이것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EU FTA가 '착한' FTA라는 인식은 현저히 잘못된 착시이자 착오다. 한·EU FTA는 특히 2006년 EU가 리스본조약에서 만들어 낸 '글로벌 유럽' 전략의 시범케이스다. 이전의 FTA모델과는 달리 여기서 EU는 미국, 일본에 대한 경쟁력강화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이를 위해 통상정책을 활용하고자 새로운 전략을 내세운다. 신모델의 FTA가 그것이다. 그리 보면,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미 FTA를 극대활용하고자하는 오바마의 수출드라이브와 큰 틀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아무튼 한·EU FTA로 인해 우리는 글로벌하게 '민폐'를 끼치게 생겼다.

EU의 협상전략은 처음부터 '한·미 FTA 동등대우(parity)'에 있었다. 동등대우를 교두보로 특히 EU가 강세인 서비스, 투자 분야에서 한·미 FTA 플러스를 보태는 전략이었다. 이는 한-EU 교역 추세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10년 기준 한·EU 국제수지를 보면, 경상수지가 18.6억 달러 흑자다. 그 내역을 보자면 상품수지가 +150억 달러, 서비스 수지가 -84억 달러, 직접투자나 주식투자에 대한 배당금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본원소득수지가 -46억 달러, 이전소득수지가 +1억 달러다.

그런데 여기서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과 비교해 뚜렷한 하나의 경향성이 확인된다. 우선 2007년의 경상수지는 22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 상품수지는 +318억 달러, 서비스수지는 -60억 달러, 본원소득수지는 -60억 달러, 이전소득수지는 +4억 달러였다. 그래서 경상수지는 무려 200억 달러가 감소했는데, 이는 주로 상품수지흑자가 318억 달러에서 절반이하인 150억 달러로 감소한 때문이다. 반면에 EU가 강세인 서비스무역의 적자는 60억 달러에서 84억 달러로 꾸준한 증가추세고, 특히 주로 투자소득에 따른 배당금 지급으로 인한 본원소득수지 역시 43억 달러 적자에서 47억 달러 적자로 계속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추세 즉 상품수출이 반동가리나고, 서비스 및 투자수입이 지속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관세가 없어지면 누구에게 이익일까. 한국 대 EU간 평균관세율이 농산물 48.6% 대 13.5%, 수산물 16% 대 11.8%, 공산품 6.6% 대 4%인 조건에서 자유무역협정이 누구에게 유리할 지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동시에 관세가 철폐되면 한국의 농산품 수출업자는 13.5%만큼, EU업자는 48.6%만큼의 가격경쟁력을 추가로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EU가 유리한 서비스와 투자부문은 아예 제외한 수치다.

굳이 FTA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추세적으로 한국경제의 대 EU 수출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고, 서비스무역 등에서의 적자는 꾸준한 증가세다. FTA는 이 경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한·EU FTA는 수출인증제도를 시행해서 인증을 받지 못한 수출업자는 수출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EU의 인증비율이 근 100%인 반면 한국의 그것은 10%수준이다. 참으로 안이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처음부터 FTA로 인한 GDP증가율을 약 10년간 최대 5.6%라고 발표, 허망한 숫자 놀음을 한 바 있다. 반면 EU의 자료에 따르면 15년간 0.84%다. 내가 관계하는 국제통상연구소가 계산한 자료에 의하면 10년간 GDP증가율은 0.1~0.18%에 불과하다.

정부측은 이 황당한 GDP 증가 수치(5.6%)에 기반해 한·EU FTA 비용추계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세수가 매년 2.2조 원 증가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쪽이 다시 계산해보니, 정부측 추정치가 맞다 치더라도 연평균 5000억 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 GDP값을 대입해 계산하니, 매년 1.7조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 2009년 우리나라의 조세총액이 210조 원이라고 할 때, 한·EU FTA에 따른 약 1조7000억 원의 세수감소는 조세총액의 0.8%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2009년 기준 GDP 약 1000조 원 중 복지관련 지출은 9%, 약 90조 원가량된다. 그리 보면 2009년 복지예산의 약 1.9% 정도가 한·EU FTA로 인해 사라지는 셈이다. 여기에다 한·미 FTA로 인한 세수감소도 감안한다면 이 수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한·미FTA 관련, 정부는 세수가 매년 6.3조 원 증가한다고 하지만, 우리 국제통상연구소가 국제 표준모형으로 추계한 바에 따르면 매년 세수가 2.1조 원 감소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미+한EU FTA 2년의 세수감소액이 약 7.6조 원에 달한다. 이 돈이면 반값등록금을 실행하고도 남을 지경이다. FTA와 복지국가는 이처럼 같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참으로 부질없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SSM법안과 관련한 중소자영업자와 정부의 갈등은 정부의 무능하고 오만한 협상이 자초한 인재였다. 현재 여야 합의로 어설프게 봉합되어 있지만, 그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처럼 한·EU FTA에는 충분히 쟁점화되지 않은 독소문제조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나 서울, 경기, 인천, 부산 이렇게 4군데를 콕 찍어서 건설하도급 관행을 문제 삼은 관련 조항은 해당 지자체의 조례와 충돌한다. 이 조항은 한·미 FTA에서는 개방하지 않은 서비스부문 7개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는 하수시장 개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프랑스의 물기업을 위해 추가적으로 개방한 것이다. 이들은 하수다음에 대개 상수시장을 노려왔다. 그리고 산업보조금을 금지보조금으로 만들어서 정부의 산업정책을 제약한 것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미 FTA때 그렇게 자랑하던 개성공단은 실종되었고, '계속적 개방'을 강제하는 조항도 눈에 띈다.

앞으로 체결할 다른 FTA에서 한·EU FTA보다 개방폭을 늘릴 경우 EU에도 자동 적용되는 조항, 곧 '미래의 최혜국대우'라는 독소조항도 들어가 있고, 매년 EU에 막대한 '불로소득'을 가져다 줄 지재권 분야 협상은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서비스무역 수지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EU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고, 또 매년 막대한 이익을 챙겨가는 투자금융부문에서 유럽계 금융자본의 이해는 여지없이 관철되었고, 금융세이프가드는 한·미 FTA의 1년보다 못한 6개월로 되어 있다. 의약품 분야의 허가특허 연계조항은 협정문에는 없지만, 유럽계 제약회사들도 이 어마어마한 혜택을 미국계와 더불어 누리게 해주고자 통상관료들은 그저 안달이다. 막상 EU에서는 이 조항이 위법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약사법 개정은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두 건의 FTA로 가장 큰 이익이 기대되는 분야는 자동차 부문이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예전부터 해외생산기지를 착실히 늘려왔다. ⓒ뉴시스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한·EU FTA 역시 역사상 고도성장기 '정경유착'을 연상케 할 정도의 친재벌적 통상정책의 결과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부문이다. 하지만 EU의 경우 미국과는 달리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고, 현대기아차의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 규모의 유럽현지생산을 진행하고 있는 조건에서 과연 한·EU FTA를 통한 자동차 수출 효과가 지속가능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미 FTA건 한·EU FTA건 모든 협상의 무게중심은 자동차에 있었다. 정부는 요즘 웬만한 개미투자자도 하지 않는 행태, 곧 계란 모두를 한 바구니에 담는 협상전략을 취했다. 그래서 두 건의 FTA는 자동차 수출, 이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막상 현대기아 사측은 '괜찮으니 국회에서 빨리 통과나 시켜달라'고 한다. 현지생산이 이미 50% 가까이 되는 상태에서 어차피 울산에서 실어 나르나, 미국, 유럽의 현지생산량을 증가시키나 사측으로서는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의 노동자도 괜찮고, 그 하청기업들도 다 괜찮을 것일까. 누차 지적한 것처럼 토요타는 이미 미국산 토요타를 우리 시장에 우회수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자동차 수출, 여기서 실패하면 이 허약한 FTA 구조물은 붕괴되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재앙이 바로 우리 옆에 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해서 말한다. '들어라 관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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