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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타고 싶다는 말씀이 유언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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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타고 싶다는 말씀이 유언이 될 줄은…"

[현장] 故 이소선 여사 영정, 부산에서 김진숙 지도위원 만나

"희망 버스 타고 가서 진숙이 만나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오셨습니까? 희망 버스 타고 가서 해고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던 말씀이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까?"

전화 통화를 통해 이소선 여사를 추도하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몇 번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철조망이 쳐진 담벼락 밖으로 고인의 영정 사진을 맞이한 그는 "어머니께서 쓰러지기 전에 두 번이나 전화하셔서 여기로 오시겠다는 걸 곧 내려가서 뵙겠다고 못 오시게 했는데 (그 말이) 이렇게 후회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영정 사진이 6일 오후 7시 30분경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앞에 도착했다. 살아생전에 '희망 버스'를 타고 싶다던 고인의 뜻에 따라 기획된 추모제였다.

"살아 내려와서 함께 싸우자더니…"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전화로 "태일이처럼 죽으면 아무 것도 못하니 꼭 살아 내려와서 함께 싸우자"고 말했었다. 3차 희망 버스에 타고 김 지도위원을 만나고 싶다던 고인은 7월 18일 버스 출발을 며칠 앞두고 의식을 잃었고, 지난 3일 소천했다.

김 지도위원은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는 이 먼 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라며 "배고프다는 말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아드님 만나 못 다한 얘기 못다 나눈 정 마음껏 나누십시오"라며 흐느꼈다.

김 지도위원은 고인을 "억울한 노동자들이 싸우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전국에 열사들 장례식은 도맡았다"고 회고하며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도록 꼭 살아서 건강하게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는 영정 사진을 서울대병원에서 부산으로 보내기에 앞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밤, 어머님은 늘 김진숙을 가슴에 눈동자에 담으셨다"며 "김진숙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소중한 생명을 지켜서 반드시 두 눈동자로 많은 노동자들이 시련과 소외와 차별에서 벗어나는 그 날을 봐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영정 사진만이라도 들어가게 해달라"

오전 11시께 영정 사진과 80여 명의 탑승객을 태운 희망버스 두 대는 오후 5시 30분경 한진중공업의 곽재규, 김주익, 박창수 열사가 잠들어 있는 양산 솔밭산 공원 묘역을 들렀었다. 곽재규, 김주익 열사는 2003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박창수 열사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수감돼 1991년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추모제는 묘역을 떠난 희망 버스가 영도조선소에 도착한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됐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박창수 열사의 부친 등의 추도사와 두 차례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추모객 800여 명이 영정 앞에 헌화를 하면서 추모제는 끝났지만, 나머지 200여 명은 9시 30분께 행사를 마치고 한진중공업 정문 앞으로 향했다.

희망버스 주최 측은 지난 5일 영정 사진과 함께 85호 크레인 인근을 한 바퀴 돌기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약속을 받아냈었다. 그러나 8시경부터 85호 크레인에는 전기가 끊겼고, 이재용 사장을 비롯한 책임자들과의 연락도 두절됐다. 정문 앞 진입을 시도한 추모객 200여 명은 "영정 사진만이라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버스와 경비원에 가로막혔다. 이들은 "조남호 회장이 85호 크레인 갈 수 있게 약속했는데 왜 막느냐"며 "살아생전에 어머니 가시는 길은 대통령도 안 막았다"고 항의했다.

정문에서 가로막힌 추모객들은 담장을 돌아서 85호 크레인 바로 밑으로 이동해 크레인에 오른 박성호, 박영재, 신동순, 정홍형,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름을 불렀다. 크레인에 오른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박살내자"는 말로 화답했고, 추모객들은 "어머니 소망이다. 살아서 내려와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행사가 모두 끝난 후에도 추모객들은 85호 크레인 주변을 서성거렸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며 추모객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다음날 치러질 발인을 앞두고 추모객들은 오후 10시경 아쉬운 듯 서울로 향했다.

고(故) 이소선 여사는 7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한 뒤, 아들 전태일 열사가 묻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 김주익 열사의 묘지에 들른 고(故) 이소선 여사의 영정. ⓒ프레시안(김윤나영)
▲ 추모 공연. ⓒ프레시안(김윤나영)
▲ 헌화하려는 추모객. ⓒ프레시안(김윤나영)
▲ 85호 크레인에 가까이 가려 했지만,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버스와 경비원에 가로막힌 영정 사진. ⓒ프레시안(김윤나영)
▲ 85호 크레인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추모객. ⓒ프레시안(김윤나영)
▲ 85호 크레인을 향해 영정 사진을 들어보이는 추모객.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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