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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맞는 말'하고도 인기 없는 이유, 안철수가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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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가 '맞는 말'하고도 인기 없는 이유, 안철수가 뜨는 이유" [우석훈 칼럼] '대통령 안철수'를 상상해 보았는가?
인간 안철수라는 말도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정치인 안철수라는 말은 더더욱 낯설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이렇게 극적이고 전격적으로 누군가가 한국에서 영웅이 된 적이 해방 이후에 과연 있었는지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과 집권도 전격적이기는 했지만, 그는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 그리고 선거 전날의 극적인 단일화 파기 같은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1년 이상의 길고 긴 정치과정을 거쳤다. 몽양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고, 미군정을 등에 엎은 이승만의 전격적인 등장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 미군정과 같은 강대국의 지원도, 정당은 물론 유력한 집단 혹은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도 없이, 안철수는 어느 날 우리 앞에 섰다.

결국 이건, 안철수를 그렇게 지지하고 열망하는 우리들의 모습보다는, 그를 열망할 수밖에 없게 만든 MB라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통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두움이 깊으면 조그만 빛이라도 더욱 눈부시게 보일 것이다. 우리는 MB라는 아주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지도자에 질리도록 질렸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민주당의 무능 혹은 기만에 지칠만큼 지친 것이 아닌가? 적어도 2011년 한국에서 안철수는 니체가 얘기한 '초인'이든, 이육사가 시 '광야'에서 노래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든, 우리가 열광할 수 있는 그런 초인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구 시대의 막내'라고 했지만, MB라는 돌연변이가 한 번 더 튀어나왔다. 박근혜가 그 막내를 한 번 더 해보고자 하지만, 이미 한국의 시간은 흘러 '새 시대의 첫 번째'를 우리가 열망했던 것 아닌가? 구한말 나라의 멸망에서 일제시대와 6.25 동란, 군사정권을 거쳐 MB의 4대강 사업까지, 영화 <전우치>의 한 대사처럼 "암울했던 근현대사"를 거치는 동안, 안철수처럼 완전체에 가까운 상징을 가진 영웅은 일찍이 없었던 것 아닌가?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MB가 너무너무 싫었고, 그 어둡던 시대가 박근혜라는 캐릭터로 다시 한 번 연장되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던 사람들이 있다. 미국 민주당이 배출한 최고의 영웅인 존 F. 케네디도 이 정도로 전격적으로 등장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현실은 물론 마음 속에서도 꿈꾸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무기력과 함께 일상화된 배반감을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잘 안 될거야, 우리는…"

우리는 현실에서는 물론, 상상의 세계에서도 이렇게 금제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 상상해도 좋지만, 어차피 잘 안 될 것인데, 유토피아 같이 멋진 게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약간만 나아지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조차 괴로웠다. 20대의 '반값 등록금'은 현실 속에서는 상상도 괴로운 것이 되었다. 김진숙의 길고 긴 고공농성을 보면서, 마구잡이 해고에 대한 사회적 협약을 통한 해법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이었다. 혹시라도 생태적이거나 문화적인 이유로, 실정법상 공사를 세워야 하는 일이 생길까 봐 경찰 차단막을 만들어놓고 구럼비 바위부터 부수는 이 잔인한 현실에서 어찌 상상이 고통이 아닐 수 있겠는가?

누르면 반발한다는 것이, 지금 안철수 현상의 본질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일부에서는 비정치 혹은 탈정치의 한 현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안철수에게 희망을 보는 사람들이 정당 정치를 혐오한다는 면에서 무당파의 성격이 강할 수는 있어도 탈정치는 아닌 듯싶다.

사람들은 그가 우리들의 리더가 되기를 바라고, 서울 시장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 아닌가? 정파적이지 않고, 비정당적인 상상일지는 모르지만, 탈정치는 아니다. 안철수 본인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이 강렬한 욕구는 지독할 정도로 정치적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대중적인 열망을 한 몸에 받은 인기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따라붙는 말 한 마디가 "괜히 정치했다가 좋은 사람 망친다"는 말이었다. 지금 안철수에게는 그런 말이 덜 따라붙는다.

이 모든 것의 모티브를 억지로 생각해보면, 나는 MB의 지독할 정도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일 잘하는'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일방주의의 근원일 것인 것인데, 일단 결정하고 나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MB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싶다. 1970~80년대의 카리스마의 지도자 시대에는 그게 가능했는데, 그만큼 대중들은 힘이 없었고, 참여의 폭도 작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 시대 변화를 MB는 읽지 못했고, 그래서 박정희처럼 하려고 했다. 박정희의 아바타와 박정희의 딸만 있는 선택지, 그리고 절대로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보이는 무기력한 민주당 후보들, 그 속에서 70% 가까운 국민들이 지난 4년 동안 가졌던 절망과 무기력증, 그게 안철수라는 심지를 만나서 활활 타오른 것 아니겠는가?

지금 안철수에게 환호하거나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박정희의 망령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시대는 20세기에 두고 넘어가고 싶다는 열망은 우리를 배신했고, 2010년대를 다시 박정희의 그람자와 싸워야 한다는 건 그 상상만으로도 고통이다. 그리고 고통은 상상마저도 억압하고, 마음 속에서라도 진짜 꿈을 가져보지도 못하게 만든 것 아닌가?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뉴시스
안철수가 우리에게 준 것은, 그 금제를 풀어서, 다시 상상을 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아, 내가 뭘 원했지? 우리가 바라던 사회가 어떤 거였지? 그게 열풍이 되고, 돌풍이 된 건데, 상상의 힘이 현실권력이 되는 그런 달콤하고도 황홀한 현실을 우리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정책을 펼칠지, 어떤 꿈을 꿀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약간에 언급이 있지만, 그걸로 그의 정책적 비전을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 말은 맞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검증을 무서워할지도 모른다. 핵폭탄이 미국 슈퍼볼 경기장에서 터지는 <썸 어브 올 피어스>, 모든 두려움의 합과 정확히 반대, 그는 70% 국민의 모든 희망의 합과 같은 것이다.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행동을 하면 할수록 여백은 좁아진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그러나 이미 안철수는 우리에게 충분한 것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상상 속의 혹은 무의식 속의 금제를 깨고,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미래를 상상하고 희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MB는 전형적으로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 스타일의 정치인이다. 그에게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일방적인 선호와 판단만 있고, 논의 과정과 갈등 과정이 완벽하게 생략되었다. MB만큼 무지막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일방주의가 강한 스타일의 통치를 보여주었다. 난데없이 국민들 앞에 꺼내놓은 한미 FTA 협상개시가 대표적이다. MB가 옳은 얘기도 종종 했다. 공정사회를 내걸기도 했고, 녹색을 가치로 걸기도 했고, 최근에는 공생발전이라는 개념도 얘기했다. 그러나 그걸 8.15 축사에서, 아무도 미리 귀뜸도 듣지 못하게 전격적으로 발표해야만 했었을까? 서울에 주재하는 외신 기자들이 불평을 한 건, 이번 정부 들어와서 8.15 전에는 보도자료도 돌리지 않아서 꼼짝없이 휴일날 나오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들만이 아니라, 이런 중요한 국정기조에 대해서 국민들은 앉아서 경청하는 들러리 노릇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정책에 대해서는, 좌파나 우파나 혹은 진보든 보수든,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이 있다. 지금 그런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정책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방주의는 비밀주의와 연결되고, 미리 논의하지 않은 정책은 당연히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게 되고, 갈등을 만들게 된다. 물론 아무리 논의해도 100%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지만, 아무리 반대가 많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사회적 논의를 거친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은 행정 과정이 전혀 다르게 된다. MB는 지독할 정도로 행정과 정책에서는 일방주의를 선호했고, 그게 아닌 방식의 정치나 정책이라는 것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인 듯싶게 국정을 이끌어 왔다.

지금 박근혜가 빠진 함정도, 본인 외에는 전혀 속뜻을 알 수 없고, 토론은 고사하고 진의도 제대로 아는 측근이나 대변인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수첩 공주'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판단은 대통령이 고독하게 내리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판단까지 가는 사회적 논의와 토론을 완전 생략하면, 이제 집행과 이행 과정에서 갈등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생각해보자. 여의도 정치도 고비용 구조라고 하지만, 청와대의 일부 측근들과 소망교회의 일부 교인들이나 알 법한 일을 일방적으로 이행하는 MB의 기독교 정치가 더 고비용 구조가 아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에서 박정희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20대~30대는 문화적으로 그런 카리스마의 통치와 일방주의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무리 60대 이상들이 강력한 카리스마의 시대를 원하더라도, 한 번 개방적인 소통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그 답답한 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예비 정치인 안철수의 이미지는 허상일지 몰라도 그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은 결코 허상이 아니다. 그들의 상상은 투표장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사회적 결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보통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점점 더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게 되고 투표율도 낮아지게 된다, 사실 국가가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면 누가 통치하든지, 약간의 정책적 방향은 바뀌어도 사회적 근간은 바뀌지 않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지금의 이 열망은, MB라는 지독할 정도의 일방주의 신봉자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젊은 정치인이라고는 하지만, 오세훈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 역시 그런 일방주의 아닌가?

안철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소통을 넘어선 공감의 경지였다. 그가 느꼈을 중압감,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 그 속에는 오랫동안 한국의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보지 못했던 공감이라는 게 있었다. 그가 진보냐 보수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을 가만히 보면, 자신의 정책을 측근들과 캠프의 측근들과 이미 결정하고, 그걸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홍보하는 것과는 좀 다른 새로운 흐름이 있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이면 응당 가지고 있는 캠프와 싱크탱크도 없고, 왼팔, 오른팔에 해당하는 측근도 없다. 그게 단점일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오히려 그런 게 장점이다.

복지냐, 토건이냐, 그런 논쟁도 중요하다. 감세냐 증세냐 혹은 반값 등록금 같은 주제도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개별적인 정책들을 넘어서 정말로 지금 우리가 넘어서야 할 다음 단계의 벽은, 바로 이런 것들이 결정되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한 쪽에서는 주민투표를 해야겠다고 하고, 한 쪽에서는 그걸 '나쁜 투표'라고 거부할 수밖에 없던 상황, 이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청산해야 하는 것은, 미래 의제와 미래 정책이 아니라, 20세기에 두고 왔었어야 하는데, 2010년대까지 청산되지 못한 일방주의 아닌가? 정책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그걸 힘으로 정권이 밀어붙이고자 하면, 필연적으로 반발하는 측을 경찰의 힘으로 막아야 하게 된다. 행정자치부가 해야 할 일이 자치를 비롯해서 엄청나게 많지만, 결국은 경찰을 관리하는 일이 행자부 장관이 해야 하는 가장 큰 임무처럼 된 게 지난 10년 동안 우리들의 모습이다.

촛불을 누군들 좋아서 들겠는가? 김진숙이라고 좋아서 저 높은 곳에서 농성을 하겠는가?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사람들이, 뭐 특별하게 덕볼 게 있거나 현실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는 꿈에 사로잡혀서 자기 돈 내고 버스를 타겠는가? 그 앞을 막아서는 경찰들이 폭력적인 인성을 가지고 있거나 힘 쓰는 것을 유달리 좋아해서 그 자리에 서야 했겠는가?

사회라는 것은 엄청나게 복잡하기 때문에 갈등이 뒤따르지 않는 집단적 결정이라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일방주의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미리 조율되지 않거나 이해를 받지 못한 정책에 사람들이 막아서는 결과가 생기고, 또 그걸 막으면서 강행하기 위해서 지난 10년 동안 여전히 우리는 경찰국가인 상태로 한국을 운용해온 것이 아닌가?

안철수 현상을 보면서 내가 꾸는 꿈은, 내가 바랬거나 지지했던 정책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발의하고 전격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되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정부운용과 행정 과정에서 일방주의가 해체되고, 그래서 국회나 정부 공청회에서 격렬한 논쟁은 있을지언정, 길거리에서 경찰과 마주서고,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자기가 믿을만한 사람으로 공들여서 앉히고, 그는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시민들을 때리게 되는 상황이 없어지는 것이다.

극에 달한 듯이 절정으로 치달아가던 MB식 일방주의, 그게 안철수라는 도화선을 만나서 터져 나온 것이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이 내가 가진 이해이다. 방송과 홈페이지 그리고 블로그까지 틀어막을 수밖에 없던 일방주의가 2010년대라는 도도한 흐름의 대세를 이길 수 없다는 것, 그게 한국식 공감 혁명이 아닐까 한다. 다른 건 모르겠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서 밀어붙이기와 대세론만으로 한국이 통치될 수 있는 나라의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많은 현실 정치인들이 이해하기를 바랄 뿐이다.

정책, 물론 중요하다. 지금의 이 특별한 정치적 공간이 보편적 복지냐 아니면 선별적 복지냐, 그 논쟁 과정에서 열린 것 아닌가? 2010년대, 우리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어떻게 결정되느냐, 그것 아닌가? 안철수에게 우리가 투영한 미래의 모습은, 바로 일방주의를 해체하고 우리의 정치에서 생략된 '과정'을 집어넣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정도 왔으면, 소통과 공감의 시대는 벌써 왔었어야 했는데, MB라는 독특한 지도자와 몇 년 허송세월하다 보니 안철수라는 도화선을 만나서 폭발한 것 아닌가?

'닥치고 경제' 그러나 경제 망했고, '닥치고 토건', 요즘 건설사들 내부적으로 구조조정 하느라고 바쁘다. 덕분에 경찰들만 내륙은 물론, 거의 데모도 없던 제주도까지 내려가느라고 정신이 없다. 일방주의와 함께 그로 인한 경찰국가의 해체, 이게 우리가 같이 꿀 수 있는 꿈이 아닐까 한다. MB의 일방주의, 백색 테러와 함께 넘어설 금을 넘어가버렸다. 한국에서 아무리 보수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백색 테러의 주체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좌파이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정책들 대신에 일방주의를 해체하고, 경찰국가 그만하자는 꿈을 안철수에게 얹고 싶다. 딱 하나의 소망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던지라면, 나는 MB식 일방주의, 그거 그만 하는 나라를 만들기라고 말하고 싶다.

교과서에서 다 본 거 아니냐? 토론하고 논의하고 공감대를 넓혀서 같이 결정할 수 있는 사회…. 그 교과서적 상식과 MB의 한국은 너무 먼 곳에 와 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일방주의와 비밀주의 그리고 밀실 행정, 그 시대가 이렇게 끝나가는 것 아닌가? 불도저로도 밀리지 않는 게 있고, 수첩으로도 감추어지지 않는 게 있는 법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지난 대선을 지배했던 '닥치고 경제'의 정신, 그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한 단계를 넘어서는 것 아닌가? 대선은 멀었지만, 이렇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상상력이 권력이다"는 68혁명의 오래된 구호, 그걸 이렇게 눈 앞에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상상을 금제할 때만이 생기는 힘과, 상상만이 힘인 두 흐름, 그게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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