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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기 전에 김진숙이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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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겨울이 오기 전에 김진숙이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호소문] "전국노동자대회를 부산에서 열 수 있게 도와주세요"
1. 전태일 열사, 故 이소선 어머니, 1400만 노동자의 불꽃같은 희망을 향해

1970년 11월 13일, 20살의 전태일 노동자는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온몸을 불태웠습니다. '희망'을 염원하는 전태일 열사의 마음이 불꽃으로 타올랐습니다.

1987년 여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전태일 열사가 몸을 사른 지 17년. 한반도 남쪽 땅에는 수십년의 침묵을 깨고 노동자들이 폭발했습니다.

1988년 11월 13일. 서울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전국 각지에서 온갖 설움을 당하던 3만 명의 노동자들이 한곳에 모였습니다. 일하는 노동자의 혁명이었습니다. 꿈은 꾸었지만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노동해방'의 꿈이 현실로 올 지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감격하여, 모두들,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행진했습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전국노동자대회였습니다. 혁명이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바랐던 그 노동자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전국노동자대회가 24년째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마음과 희망은 세월이 흘려도 노동자의 가슴에 뿌리 깊게 밝혀있습니다.

소박하지만, 그 희망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있습니다.

5차례의 희망버스는 85호 크레인을 살리기 위한 거대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11년 9월 6일, 노동자의 마음과 희망이 담긴 이소선 어머니의 영정이 85호 크레인을 찾아왔습니다.

투쟁과 역사는 승리하기도 하고 좌절하고 패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생명과, 인류의 거대한 생산의 역사,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크레인에 오르고, 아스팔트를 침대삼아, 밤하늘의 수많은 별빛을 이불 삼아 투쟁하는 94명의 한진중공업 해고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반도 동남쪽 부산 영도 섬마을에서 전국각지에서 모인 수만 명 노동자 함성이 동북풍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전태일 열사, 이소선 어머니, 85호 크레인과 1400만 노동자들의 꿈을 이루는 거대한 횃불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2.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을 하늘 아래,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300일이 되도록 85호크레인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 김진숙을 만나고 싶습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2년에 걸친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많은 동지들이 현장을 떠나고 그 동지들이 주위의 조선소 하청노동자로 다시금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현상, 결국 전 조합원을 비정규직화로 만들기 위한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전국으로 뛰어 다녔습니다. 추운 겨울 부산시청 노숙투쟁, 국회의원 사무실 노숙투쟁, 그리고 85호 크레인 고공투쟁인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서울 상경투쟁, 청와대 보이는 인왕산등반, 정부 중앙청사 1인 시위 등 정리해고철회를 위해 투쟁한 10개월은 눈물로 보낸 시간들이고, 분노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투쟁들이 국민들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우리들 투쟁이 힘들 때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버스는 다시금 우리 해고자들이 투쟁할 수 있는 희망을 만들어 주었고, 결코 나만의 투쟁 외롭고, 고립된 투쟁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 시민이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속에 이루어진 기만적인 6.27 노사협의 이행합의서로, 85호 크레인에 3명의 사수대 동지를 두고 우리들은 눈물과 희망이 잠들어 있는 현장에서 용역들에게 강제로 끌려나왔지만, 우리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한진중공업의 부도덕한 경영 행태와 정리해고를 합법화하기 위해 만든 불법들을 전국의 국민들에게 폭로해내며, 국민들과 함께 투쟁했습니다.

그 결과,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을 대국민사과를 하게 만들고, 국회청문회를 통해 한진중공업 경영진들의 거짓말을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힘들은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 함께 전국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희망버스 참여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퇴직노동자 94명에 전원에 대해 1년 이내 복직을 약속하고, 그동안 2000만 원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내용의 국회 권고안을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수용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후 10월 14일 한진중공업 지회선거도 민주노조를 사수하고자 하는 조합원들의 열망으로 승리했습니다.

한진중공업 경영진들은 아직도 저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부터 이틀에 걸쳐 노사간의 교섭이 진행되었습니다. 교섭에서 회사는 회사의 안을 수용할지 말지 결정하라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일방적으로 교섭장을 박차고 나가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정투위 동지들은 회사측의 이런 만행에 대해 결코 정리해고 철회는 투쟁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였습니다. 이제 투쟁의 전선에서 당당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

가을이 지나면 칼날 같은 추위의 겨울이 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300일을 싸우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 김진숙 동지와 크레인 위의 3명의 동지가 내려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힘을 전국의 노동자와 희망버스 승객들에게 원합니다. 하늘에서 300일이 다 되도록 투쟁하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살아서 이 땅에 내리기 위해 다시금 전국의 여러 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전국노동자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금까지 4차에 걸친 희망버스가 부산을 다녀갔습니다. 그 결과, 많은 것이 변화되고 전진되어 왔습니다.

즐겁게, 의연하게, 담대하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던 김지숙 지도위원의 목소리를 절망에서 희망을 만드는 이 땅위에서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진숙 1960년생.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노동자의 삶을 결정한 사람.
1986년 해고당한 사람.
2011년 1월 6일 85호 크레인에 오르다.

- 박영제 1958년생.
김진숙과 함께 엄혹한 시절에 같이 선전물을 뿌리고 해고당하고,
20년만에 복직했으나, 5년만에 또 해고당한 사람.
2011년 6월 27일 85호 크레인에 오르다.

- 박성호 1962년생.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당하고, 복직하고, 또 해고당하고, 징역 3번 살고
2011년 6월 27일 85호 크레인에 오르다.

- 정홍형 1963년생
금속노조 간부로써 김주익 곽재규 열사투쟁 때 상황실장을 하며
감옥소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
2011년 6월 27일 85호 크레인에 오르다.

부산에서 전국노동자대회 개최를 바라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 한진중공업 지회 /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 / 김진숙 박영제 박성호 정홍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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